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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9:1-11 “옳은 길과 공정한 삶”[하나님의 진노는 예수님에게, 긍휼은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1. 23. 09:05

역대하 19:1-11 “옳은 길과 공정한 삶” |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스티그마 | 조회 0 |추천 0 |2018.11.23. 07:49 http://cafe.daum.net/stigma50/EfmC/740 


역대하 19:1-11 “옳은 길과 공정한 삶”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1. 같은 전장에서 싸웠지만 아합 왕은 죽었고 여호사밧은 살았습니다. 아합은 변장했지만 죽었고 여호사밧은 제 옷 입고 싸웠지만 살았습니다.

2. 여호사밧은 예루살렘 자신의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을 뻔하다 살아왔으니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어쩌면 어느 때보다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3.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선지자 예후가 마치 왕을 재판하듯 나무랍니다. 참전한 사실 그 자체를 놓고 나무랍니다.

4. “왕이 악한 자들을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아합 왕을 도와서 전쟁한 것을 직설적으로 질책합니다.

5. 왕은 한 백성과 나라의 상징입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거울과 같습니다.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결정하는 것은 온 백성들의 기준입니다.

6. 그러니 왕은 악한 자들의 편에 설 수 없는 일입니다. 적어도 유다의 왕이라면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설 수는 없습니다.

7. 아무리 사돈 사이라도 그렇습니다. 왕이란 사심이 없어야 하고 사적인 관계에 묶여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오롯이 공적인 삶의 자리입니다.

8. 유다의 왕은 패역한 북이스라엘 왕과 멍에를 같이 맬 수 없는 사이입니다. 선지자 예후는 거리낌없이 그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따집니다.

9.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전합니다. 왕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예후는 왕에게 갈 때 이미 목숨을 걸었습니다.

10.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함께 전합니다. 여호사밧이 나라의 신앙을 바로잡으려 했던 사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고 알려줍니다.

11.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얼마나 마음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더라도 하나님의 긍휼이 함께 임해야만 합니다.

12. 그때 우리의 구원 사건이 일어납니다. 진노가 있어야 죄를 돌이킵니다. 긍휼이 있어야 다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진노와 긍휼은 십자가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님에게, 긍휼은 우리에게 베푸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