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10) 바울의 고백적 간증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8. 13. 21:37

"Ⅱ. 바울의 고백적 간증(빌 1:12-30)② "
빌립보서 1장 15~18절
석원태 목사

Ⅱ. 바울의 고백적 간증(빌 1:12-30)

1. 투옥(매임)의 의의(빌 1:12-18)

1) 투옥의 첫째 의의(빌 1:12-14)

2) 투옥의 두 번째 의의(빌 1:15-18)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또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 절(빌 1:12-14)에서 바울 자신의 투옥이 복음의 진보가 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우들에게 알려주는 고백적인 변호와 간증을 생각했다.
이제 그의 투옥이 가져다 주는 두 번째 의의를 말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복음의 진보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 아래 뜻밖에 두 가지 종류의 일꾼들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저들은 로마의 시위대 안에 사슬로 매여 있는 바울의 선교를 보고 크게 자극을 받은 자들이었다. 한 류는 바울에게 선의의 신뢰를 보내는 참된 일꾼이고, 또 한류는 투기와 분쟁 등 불순한 모양으로 일하는 전도자들을 본 것이다. 빌립보서 1장 15절에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고 했다.
문제는 이들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누구며,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이들은 모두 이미 로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로마에는 바울이 이르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울이 로마에 이르럿을 때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행 28:15)고 한 사실에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들의 성분들은 어떠했는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류들이 있었다(빌 1:15).
저들은 빌립보서 1장 16절에 바울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저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은 줄로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바울을 사랑했다고 했다. 저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주권적 경륜을 좇아 예정을 받고, 소명을 당하고 사명을 받은 자로 알았다. 그래서 바울을 신뢰하고, 바울을 돕고, 바울을 사랑하는 바울의 동역자들이 된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선한 목적과 동기와 방법을 가진 자들이었다.
반대로 투기와 분쟁(빌 1:15)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었다. 빌립보서 1장 17절에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었다.
저들은 바울이 로마에 오기 전까지는 성도들 사이에 상당한 지위와 신뢰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던 자들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기독교 복음운동의 일종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온 이후로 저들의 기득권이 흔들리고 상실당할 처지에 이르렀다. 저들에게는 다툼, 헬라어로 ‘엘리데이아’(evriqei,a)가 있었다. 그리고 분쟁심이 있었다. 당파심이 있었다. 원래 여기 사용된 ‘엘리데이아’는 임금, 삵과 관계되어 있는 단어인 ‘엘리도스’(evriqο󰐠)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저들의 복음 전파 행위는 자신의 이익 추구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동기와 질이 매우 낮다.
더 확실히 말하면 ‘엘리데이아’는 직업인과 관계되어 움직이는 행동을 가리킨다. 자기 이익 추구와 관계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순전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다(빌 1:17). 저들은 이것이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들의 전도의 동기는 불순했다. 자기 욕구 충족이 가득 찬 마음으로 경쟁하려는 심사를 말한다. 저들은 바울이 옥에 갇혀 자유하지 못할 동안 자기들의 주장과 명예를 더 높이고, 바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 바울이 투옥되어 잇는 로마의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선교 현장에서 위대한 선언을 하고 있다. 그것이 빌립보서 1장 18절이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했다.
여기 「외모」는 ‘투기와 분쟁’(빌 1:15)을 가리킨다. 「참」이란 ‘착한 뜻’(빌 1:15)을 가리킨다. 「무슨 방도」란 ‘복음 전파의 동기와 행위’를 말한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했다. 전도의 동기와 행위가 어떠하든지 간에 저들이 전하는 복음은 좋은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복음 전파의 동기와 행위가 불순한 것을 예찬하거나, 묵인함은 아니다. 지금 사도는 전파되는 복음 그 자체를 중심에 두고 토한 일종의 선언적 메시지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가 전파되는 곳에는 인간의 이해관계와 애증 관계가 다 결과적으로 무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의 위력이 인간의 투기와 분쟁과 다툼을 모조리 덮어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오직 복음 전파 그 자체가 인간적인 모든 것을 가리어버리기 때문이다. 실로 사도다운 바울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다운 바울의 모습이다.
지금 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자기 투옥에 대한 번호와 간증 더 나아가 그 의의를 말하고 있다.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혹시나 그의 투옥이 저들의 신앙 성장에 장애가 될까 염려한 나머지 자기의 매임이 오히려 복음에 진보를 가져왔다고 알려준 것이다. 또 하나는 로마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명암의 사실을 알려주고, 이것도 결과적으로는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므로 자기의 투옥이 빌립보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활력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처세 중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선을 목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결코 버릴 것이 없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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