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22) 충성된 종②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면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16

"충성된 종②"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면서

빌립보서 2장 25~30절
석원태 목사


  3. 충성된 종(빌 2:19-30)

  1) 디모데를 보내면서(빌 2:19-24)

  2)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면서(빌 2:25-30)

  유럽의 처음 교회였던 빌립보 교회는 드로아 환상 후 세워진 바울 선교의 첫 열매였다. 그렇기에 저들은 바울이 복음 때문에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저들은 예수의 사상을 담은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기로 교회적인 뜻을 모았다. 그것이 바울에게 보낸 사랑의 연보였다. 그러나 로마라고 하는 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저들 중에 교회를 대표하는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그 선물을 보내게 되었다.
  저들은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사랑의 선물만을 보냄이 목적이 아니었다. 아예 에바브로디도를 로마에 머물게 하면서 일종의 바울의 몸종이 되어 그를 수종을 들게 하기까지 했다.
  이런 경우, 교회를 대표하는 에바브로디도야말로 참으로 어떤 사명의 존재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확실히 용감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복음 때문에 투옥이 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그 사람의 종이 되겠다고 교회와 가족을 떠나 멀리 로마까지 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었기에 빌립보 교회가 그를 뽑아 보내지 않았던가?
  로마 땅, 바울이 투옥된 곳에 이른 그는 정말 바울의 말을 빌리면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충성스럽던 에바브로디도가 큰 병에 걸려 앓게 되어 버렸다. 빌립보서 2장 27절에 보면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좌우간 그가 병들었다는 이 일이 이미 빌립보 교회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하여 빌립보서 2장 26절에서 말하기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빌립보 교회를 대신하여 로마에 가서 바울을 수종들던 에바브로디도가 병을 얻은 것은 모든 경우에 근심꺼리요, 걱정이 되게 되었다.
① 무엇보다도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앓고 있음이 그가 섬기는 바울에게 염려와 걱정이 된 것이고,
② 또 자기를 보낸 빌립보 교인들에게 염려와 걱정을 끼치게 된 것이고,
③ 또 그가 병듦을 인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 못함이 그에게 근심이 아니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를 긍휼히 여기심으로 그가 병에서 놓이게 됨으로 바울로 하여금 근심 위에 근심을 면케해 주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빌 2:27).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 앞서(빌 2:25)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모 교회인 빌립보 교회로 보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보내게 된 이유와 목적을 빌립보서 2장 28절에 말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본래 예정보다 앞당겨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이유였다고 했다.
  그런데 사도에게는 더 깊은 생각이 있었다. 만약에 에바브로디도를 예정보다 더 앞서서 보냄으로 혹시라도 에바브로디도 자신이나 빌립보 교회에 또 다른 걱정을 끼칠까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에바브로디도가 속히 본 교회로 되돌아오는 일로 인하여 혹시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가 무례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고 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가 되돌아옴으로 인하여 바울이 또 얼마나 불편스러울까 하는 염려에 잠길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병들었다가 쾌유된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내면서 빌립보 교회 앞에 에바브로디도의 충성된 모습을 여지없이 공개하고 칭찬해 주었던 것이다.
  에바브로디도 그는,

  1) 바울의 ‘형제’라고 칭찬했다.
  빌립보서 2장 25절에 「그는 나의 형제요」라고 했다.
  여기 형제, 곧 ‘아델포스’(avdelfo,j)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나누는 신앙의 형제라는 격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만큼 에바브로디도는 바울 자신과 영적으로 가까운 상태에 있는 자란 뜻이 된다. 말하자면 신앙의 동맹자라고 말한 것이다. 영과 영이 서로 통하고 지낸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2) ‘함께 수고한 자’라고 했다.
  빌립보서 2장 25절에 「함께 수고한 자요」라고 했다.
  함께 수고함 곧 ‘쉬넬고스’(sunergo,j)는 ‘함께 노동하는 자’로 번역할 수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단순한 교회의 심부름꾼이 아니었다. 그가 감당한 사역은 바로 바울 자신의 복음 사역과 동질의 것이라고 높이 평가해 준 것이다.

  3) ‘함께 군사된 자’라고 했다.
  빌립보서 2장 25절에 「함께 군사된 자요」라고 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을 복음의 영적 전사로 생각하고, 에바브로디도도 영전의 전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함께」, 「함께」, 「함께」라고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모든 일에 형제로 공감하고, 바울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바울과 함께 생명을 불사하고 격전의 전투에서 싸우고 있는 십자가의 용병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나에게 보내어 온 에바브로디도야말로 나의 신앙의 형제요, 복음전도사역의 동역자요 그리고 영전의 용사요, 목숨을 함께 나눈 전우라고 소개한 것이다.

  4) ‘너희의 사자’라고 했다.
  빌립보서 2장 25절에 「너희의 사자로」라고 했다.
  여기에 사용한 사자(messenger)는 ‘아포스톨로스’(avpo,stoloj)이다. 이 말은 그 나라 통치자의 훈령을 받고, 외국으로 파송받는 대사 혹은 공사를 뜻하는 공직에 있는 공인을 말한다. 중대한 사명은 띠고 파견된 사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는 빌립보 교회로부터 바울을 위해 사명을 띠고 보냄받은 공인으로서 일하러 온 자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 곁에서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자기 사명을 거뜬히 감당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가 파송한 에바브로디도를 결코 어떤 개인의 사유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빌립보 교회가 보낸 ‘사자’ 곧 공인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에바브로디도도 그런 사명감으로 자기 앞에서 일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였다고 했다.

  5) 그는 바울을 ‘돕는 자’라고 했다.
  다시 빌립보서 2장 25절 하반절에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했다.
  여기 ‘돕는 자’, ‘레이툴고스’(leitourgo,j)는 고대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을 지고 있는 말이다. 고대 세계의 많은 헬라 도시에서는 그 도시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기 개인 부담으로 중요한 공무를 담당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때는 그 도시에서 파송되는 대사의 비용을 맡는 일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위대한 시민들의 희곡 중 하나를 상영하는 비용을 맡기도 하고(돕기도 함), 어떤 경우는 그 시를 대표하여 경기에 나가는 대표 선수들의 참가하는 비용을 돕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군함을 건조하는 비용을 맡기도 하고, 해군에 근무하는 선원의 급료를 맡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기부를 하는 자들은 그 시나 아니면 국가의 공로자였다.
  바울이 에바브로디도에게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단어인 ‘레이툴고스’를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위하여 로마의 감옥에 보낸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를 대표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헌신과 희생의 종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정말 하나님께 바쳐짐이 된 레이툴고스 곧 종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정돈하면, 바울이 디모데보다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돌려보낼 때 에바브로디도는 나의 신앙의 형제요, 나와 함께 수고하고, 함게 군사된 자요, 너희가 내게 보낸 사자(avpo,stoloj)요, 나를 돕는 레이툴고스 곧 종이었다고 높이 칭찬한 것이다. 그렇다면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섬기는 동안에 바울에게 이런 높은 영적 은총의 수준까지 올라간 자가 된 것이다. 결코 에바브로디도가 일을 잘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바울 자신에게나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에바브로디도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①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라(빌 2:29), 즉 교회적인 환영을 하라고 했다.
  ② 뿐 아니라 또 교회 안에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자들이 있으면 그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했다. 이 말은 ‘가장 자랑스럽고 귀하게, 영에롭게 여기라’는 의미이다. 아마 사도의 마음에는 빌립보 교회가 제2, 제3의 에바브로디도 같은 자를 키워내야 된다는 미래적 희망을 피력하고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빌립보서 2장 30절에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했다.
  여기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는 것은 지사충성(至死忠誠)을 다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 영감의 기록에서 교역자와 교회(성도)와의 관계를 너무 잘 드러내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빌립보서 2장 19절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어 소식을 들으므로 그 마음에 안위를 받고 싶다는 마음 곧 교회로 말미암아 생기와 활기가 넘치는 마음을 얻고 싶다고 함이라든지, 빌립보서 2장 20절에 교회를 진실히 생각하는 디모데의 마음, 빌립보서 2장 24절에 바울 자신도 가능한 한 속히 옥에서 나와 빌립보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 빌립보서 2장 25절에서 에바브로디도의 병 때문에 서로가 피차 걱정하거나 부담을 주거나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낸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가 함께 하고, 바울과 빌립보 교회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와 빌립보 교회가 주 안에서 만남으로 인하여 오는 기쁨이 가득하기를 원하는 마음 등을 볼 수 있다. 실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의 생명적 영교(κοινον?α)가 아닌가? 실로 목양의 정서가 넘치고 있지 않은가?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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