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23) 주(主) 안(內)에 있는 기쁨의 불멸성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17

"Ⅱ. 이단에 대한 경고"
-기쁨을 빼앗는 거짓 스승을 경계하라-

빌립보서 3장1~21절
석원태 목사


  Ⅱ. 이단에 대한 경고(빌 3:1-21)   -기쁨을 빼앗는 거짓 스승을 경계하라-

  빌립보서 1장의 중심은 사도 바울 자신에 대한 간증과 그의 인생관의 고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빌립보서 2장의 중심은 교회 곧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대한 권면이다. 교회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그 생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겸손을 본받고, 그 겸손을 중심하고 움직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제 3장의 내용은 그 중심이 이단에 대한 경고와 경계이다.

  1. 주(主) 안(內)에 있는 기쁨의 불멸성(빌 3:1)

  빌립보서 3장의 서두인 1절에서 그리스도인이 공유하고 있는 불멸의 기쁨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빌립보서 3장 1절에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했다.
  빌립보서 3장 1절 서두에 「종말로」(finally)라는 말이 나온다. 문자적 의미로는 ‘남은 점에 관하여는’, 혹은 ‘결론적으로’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빌립보서 1장과 2장의 결론일 수도 있고, 또 빌립보서 3장 2절 이하에 전개될 이단에 관한 경고적 권면을 염두에 두고 한 의미의 말도 된다.
  더 중요한 바울의 영감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이 말을 1장과 2장을 결론짓는 말에 연결시켜 생각하면, 빌립보 교회가 받은 은혜 곧 ‘예수를 믿는 믿음과 그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경우’(빌 1:29)에도 기뻐해야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다시 이 사실을 연결지우면서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 1:30)고 했다.
  바울 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후, 사명을 받고 온갖 죽음의 박해를 받는 고난의 싸움들 가운데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고 간증한 바 있다. 그래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라고 주를 향한 일편단심의 일사각오의 의지를 피력한 일이 있었다.
  더욱이 바울은 이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지금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빌립보 교우들에게 고난의 수고를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빌 1:12-30, 2:19-28).
  이런 십자가적 수난(고난)의 역경 가운데도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3:1)고 한 것이다. 크리스천은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받은 자들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현재의 고난」(롬 8:18)이라고 하는 무거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고난」, 「장차의 영광」 그 두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다(롬 8:17, 빌 1:23). 이런 경우 「기뻐하라」고 했다. 기뻐하는 일만이 현재의 고난을 장차의 영광으로 승화시키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또 「종말로」라고 하는 말을 3장 2절부터 나오는 이단들의 경계에 관계시킬 경우에도 「기뻐하라」고 하였다. 그 큰 이유는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다음에 나오는 「개들」(빌 3:2), 「행악하는 자들」(빌 3:2), 「손 할례당」(빌 3:2)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십자가의 원수들(빌 3:18)을 이기는 비결도 기쁨이라고 한 것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바로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불멸의 기쁨인 구원은 「주 안에서」이다. ‘주 안’, ‘그리스도 안’,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승리로 이끌고, 가정을 승리로 이끌고, 교회를 승리로 이끌고, 이단 곧 십자가의 원수를 이기는 결정적인 근원이 되는 것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승리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6장 22절에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

  주 안에서의 기쁨이 무엇일까?

  1) 성령의 거듭난 기쁨이다.
  이것은 새로운 출생이고, 새 인간으로서의 새 창조이다(요 3:5). 예수님 자신은 성령으로 기뻐하면서 사역했다. 그 분의 사역은 그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는 역사(役事)였다(고후 5:17). 그는 성령과 물로 우리에게 세례를 주셨다(마 3:11). 그는 죄인들이 복음을 받고, 거듭나는 사실 앞에서 ‘성령으로 기뻐했다’(눅 10:20)고 했다.

  2) 믿음에서 나는 기쁨이다.
  저 빌립보의 간수는 밤에 바울과 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고, 복음을 받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 16:34)고 했다. 바울은 그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 8절로 9절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였다.
  믿음에서 오는 구원의 즐거움이 기쁨을 충만케 한다. 결국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히 11:6).

  3) 사죄의 기쁨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고 했다.
  사죄의 기쁨은 그리스도인만이 받은 특권이다. 그래서 복음은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눅 2:10-11). 에베소서 6장 16절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했다. 이 뜻은 사죄의 복음으로 마음에 평안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신을 신고’라고 했다. 활동함을 뜻함이다. 사죄의 즐거움이 새 인생을 출발시키는 것이다.

  4) 말씀(진리)을 듣는 즐거움에서 오는 기쁨이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자들에게 임한다(행 10:44). 그 결과 신자들에게 기쁨이 임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6절에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했다.

  5) 계명(말씀)을 파수하는 사명 수행에서 나오는 기쁨이다.
  계명 수행은 하나님의 뜻을 행함이다. 그때 기쁨이 온다. 성도가 주의 계명을 지킴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그 사람 마음속에 임한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한다는 말은 주의 말씀(계명) 안에 거한다는 뜻이다. 주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말은 바로 그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삶을 뜻한다. 그것은 마치 포도나무 둥치에 그 가지가 붙어 있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어야 할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실로 주 안에 섬으로만 가능한 기쁨이다.

  6) 핍박(고난)을 감수할 때 오는 기쁨이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했다. 그 기쁨은 자신과 마귀와 세상을 이긴 기쁨이요, 또 하늘에서 상을 받는 기쁨이다. 실로 주 안에서만 받는 기쁨이다.

  7) 축복 체험에서 얻는 기쁨이다.
  누가복음 10장 17-20절에는 70인 전도인들이 복음 전도를 하고 돌아와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는 사실을 기뻐하면서 보고했다.
  주님은 이러한 기쁨 위에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했다(눅 10:20).
  전도와 기도 응답의 체험, 주일성수의 체험, 십일조와 감사 생활의 체험 등에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실로 주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다.
  실로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이 기쁨은 「주 안에서」이다. ‘주 안’은 ‘그리스도 안’은 그리스도인들이 두리는 기쁨의 불멸성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절의 마지막에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했다.
  여기 「같은 말」이란 무엇인가? 기뻐하라는 것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기뻐하고 또 기뻐하라고 하는 것이다. 반복적인 말이다. 같은 말이다.
  이 말을 쓰는 것이 바울 자신에게는 수고로움이 아니고, 오히려 즐겁고, 기쁘고,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왜냐? 그것이 너희에게는, 즉 그 말을 받는 자들에게는 든든한 믿음의 진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안전」이란 말은 ‘비틀거리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권면이나 교훈은 수고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왜? 그 결과 자식들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양식은 항상, 일정하게 먹어야 한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같은 말」, 곧 ‘기뻐하고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반복한다고 했다. 그것은 저들의 안전 때문이라고 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는 결코 어떤 시련에도 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기쁨이야말로 승리의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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