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왜 죽고자 하느냐[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10. 20. 21:32

060312 왜 죽고자 하느냐                                    설교집 Ⅱ<마음을 시원하게> 2-16

성경본문                                                                                                     / 장영수 목사

21.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26.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18:25-32)

 

서울의 유명한 설렁탕 집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식당이 문을 열 때에 주인과 주방장이 서로 의견이 달라 갈등이 컸다고 합니다. 견디다 못한 주방장이 주인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어디 한번 할 테면 해봐라, 한번 망해봐라 하고는 고기를 듬뿍 듬뿍 얹어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네 뜻밖에 설렁탕에 고기가 듬뿍 듬뿍 얹어 나오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그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짐짓 그 내막을 알면서도 주방장을 칭찬하고, 자랑하고, 격려하면서 주방장을 추켜세웠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방장은 어쩔 수 없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그 식당은 더 잘되게 되었고, 종래는 주방장이 마음을 풀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하였나 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 역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뒤집어 보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마침 오늘 성경말씀을 보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아주 심각한 갈등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공평하지 못하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어찌 내가 일하는 방식이 틀렸다고 하느냐. 너희야말로 틀리지 않았느냐. 왜 이런 심각한 논쟁이 일어났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이라고 하는 강대국의 침략 위기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곧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일에 근본원인은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따지다가 결국은 하나님께로 그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더니 아들의 이가 시리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오늘 이렇게 된 것은 바로 조상 때문이요, 너 때문이요, 상황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나 모든 영혼은 내가 만들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버지의 죄로 인하여 아들은 아들의 죄로 인하여 나와 계산할 것이다. 누구든지 범죄하는 영혼은 죽을 것이요, 회개하는 영혼은 살 것이다. 자기 일에 대한 책임을 다른데 돌리지 말고 자기가 져야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이것을 달리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지향적인 태도는 어떤 것입니까? 기득권을 고집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릴 때, 대체로 보면 자기가 늘 즐겨 앉는 자리가 있어요. 웬일인지 그 자리에 앉으면 얼른 마음이 정리가 됩니다.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생소한 자리에 가 앉으면 마음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또 눈과 귀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요. 자 그러다 보니 자기가 늘 앉는 자리를 즐겨 찾게 되는데 혹시라도 교회에 처음 나오시거나 새로 나오신 분이 그만 내가 즐겨 앉는 자리에 앉았다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섭섭하거든요. 그게 일종의 기득권이죠.

또 고정관념이 있어요.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서 놀라운 하나님의 많은 이적을 체험한 교회였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시대를 이끌어가시는 그  방향에 대해서는 생각이 열리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유대인에게 한정된 것이라고 이해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지 이방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하나님도 답답하셨는지 그들에게 많은 이적을 보여주시고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만 복음을 가지고 로마 땅 끝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이 닫혀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쓰지 않으시고 이제 일어나고 있는 자그마한 안디옥교회를 쓰셨어요. 거기는 다양한 인종이 모였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합니다. 다양한 언어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있습니다. 생각이 열려 있는 것이죠. 열려 있는 생각, 열려 있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신다고 하는 거죠.

또한 유월절 사건과 홍해 이적을 체험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를 불평하고 원망할 뿐만 아니라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옛날 애굽 시절에 가마솥 옆에 주저앉아 고기를 얻어먹던 그때를 그리워했던 거지요.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실을 도피하려 했던 거지요. 그리고 오늘 내게 부딪히는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항상 다른 사람에게 전가했던 거지요. 또한 눈먼 시각장애인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추상적인 공론, 교리논증하기를 즐겼다고 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은 과거지향적인 태도입니다.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합니다. 문제에 오히려 얽매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이 나라에 나와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 여기 온 모습은 다르다 할지라도 이제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합니다. 내가 너로 그곳에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이게 하나님의 뜻이죠. 이 사실을 믿을 때,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의 관심은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죠.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안이숙여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그의 책을 읽어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여자분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갔습니다. 그는 화가였습니다. 집은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인테리어가 잘 돼있었습니다. 또 음식도 아주 깨끗하고 정갈하고 맛있었습니다.

이렇게 대접을 다 받고 나서 묻습니다. “오늘 왜 나를 초대해주셨습니까?” 그러자 이 여자분이 말합니다. “사모님 이것 좀 보세요하며 내미는데 아주 낡아빠진 편지입니다. 그 편지를 읽어보니 거긴 아주 뜨거운 사랑의 글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건 무슨 편지입니까?’ “, 제가 그 사연을 말씀드리겠어요.”

저는 10여 전에 한국에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군 장교가 강사로 가르치는 영어공부 모임에 나갔다가 한 신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알게 됐고 가깝게 됐고 장래를 서로 꿈꾸고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가난했기에 고학하면서 학비도 벌어야 했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기에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때, 우리를 가르쳐주던 그 미군 장교가 나를 불쌍히 여겨서 여러 가지로 많은 것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남자 친구가 그러한 것을 알고는 오해를 하여 저 남자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라고 단정짓고 스스로 자격지심에 물러가버렸습니다. 학교도 지방으로 옮겼습니다. 영어공부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슬퍼서 그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식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가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가까스로 수소문해서 찾아갔을 때에 그는 눈물을 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이 미군장교가 부대 발령이 나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 저녁식사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나와 결혼해달라고 청혼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화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연 이 남자를 만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꿈을 펼칠 수 있을까?’ 저는 그와 결혼하기로 작정하고 그리고 급히 대사관을 통해 결혼신고를 하고 미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얼마 전, 저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신학대학생이었던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이웃 도시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저는 너무나 놀라서 남편이 멀리 출장 간 틈을 타서 비행기를 타고 그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뒤에 앉아서 선글라스를 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목사가 된 그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누군가 저에게 다가오는데 보니 아마도 그 교회 사모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굉장히 강해 보였습니다. 제 눈에 보기에 그녀는 목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건 틀림없이 우리의 사랑이 깨어진 이후에 저 남자가 성실된 마음이 되어서 포기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청혼하는 여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혼 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날 돌아와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을 뒤져서 그 옛날 그가 보냈던 이 편지를 찾아냈습니다. 이것을 날마다 읽으면서 눈물을 뿌리고 과거의 일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아름다운 그림도 싫고, 화려한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고, 남편도 꼴 보기 싫고 더 이상 상대하기 싫었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는 지금 화가이기 때문에 돈을 얼마든지 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 연약한 교회를 돕고 싶습니다. 매주 비행기를 타고 가서 그 교회를 돕고 싶습니다.

안이숙 여사가 그 이야기를 다  듣고는 참으로 마음이 아프겠군요. 그러나 이제 내 말을 잘 들으셔야 돼요. 내가 이제 꼭 한마디만 하고 싶군요.” “, 무슨 말씀이든지 하세요. 제가 다 듣겠습니다.” 안이숙 여사가 말합니다. 당신은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었습니다.” 깜짝 놀랍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과거는 과거입니다. 제 아무리 그 시절 사랑했고 아름다웠다 했을지라도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입니다. 이미 10년 동안 하나님은 당신에게 남편을 허락해주셨고,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허락해주셨고, 이제까지의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당신을 넘어뜨리려고 그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미화해서 오늘의 현실을 무너뜨리고 과거의 일들을 기억나게 해서 당신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여 오늘을 더 망가뜨리려 하는 그런 마귀의 계략에 지금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 교회를 돕는다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가정과 그 교회 모두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 교회 사모님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제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과거를 정리해야 합니다. 당장 그 편지를 찢으세요.” 이 여인이 깜짝 놀랍니다. “선생님이 대신 찢어주세요.” “아니 이걸 왜 내가 찢습니까? 당신이 당신 손으로 직접 찢어버리세요.” 편지를 찢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보면 옛사랑의 남자 여자가 만나 또 그러한 일들을 반복하는 내용들로 꽉 차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공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그 과거로 돌아가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을 깨뜨리는 마귀의 계략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오늘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미래를 향하여 열린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습니다. 이 미래지향적인 삶을 놓칠 때에 우리는 과거에 매이게 되고 과거의 허물과 실수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진정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최근에 공지영이라고 하는 인기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거기 남녀의 만남이 있습니다. 남자는 사형수입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그들이 아주 어릴 때 집을 나갔습니다. 그는 술주정뱅이 아버지한테 늘 맞으면서 자라났습니다. 끝내 그는 젊은이가 되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 돈을 훔치러 집에 들어갔다가 강간살인범으로 체포됩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게 됩니다.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역시 세상을 버렸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 또 여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부잣집 딸입니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고 미술을 공부해서 여 교수 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도 세 번째 자살을 기도하다가 실패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이 세상을 향하여 문을 닫았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죽으려고 하는 것이죠. 그에게 숨겨진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섯 살 때, 친척 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친척오빠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을 때, 엄마는 오히려 그를 나무라며 이것을 덮어버린 것이죠. 그러기에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닫아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살았다 하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죽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죽음만이 돈에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을 비웃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너무나 그 겉모습은 극단적으로 대조적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죽음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여자가 사형수를 돌보는 수녀고모를 쫓아서 우연히 형무소를 방문하다가 남자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만남은 예기치 못한 만남이었어요. 그러나 이 남자는 사형수였고 언제 사형집행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은 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은 말합니다. “나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해야 한다면 겉치레로 꾸미는 그런 인사말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여주인공은 사형수로 마지막 순간을 맞는 그 남자의 상황에 공감하며 그에게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숨겨진 고통을 하나하나 꺼내놓습니다. 그때 이 남자는 온몸이 귀가 되어 이 여인의 말을 듣습니다. 이 여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자기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죠.

그리고 또한 이 남자는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자기가 사람을 죽였을 때, 나는 가난하고 버림 받은 사람이었지만 너희들은 넉넉한 가정에서 배울 것 다 배우고 부족함이 없이 행복을 누렸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고 미술을 공부하고 교수가 된 부잣집 딸에게도 정녕 행복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저가 강간을 당하여 그것이 저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문을 닫게 만드는 그런 고통이 있다고 하는 사실에 눈뜨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로 인해서 죽어간 그 이름 모를 소녀를 향하여 죄의식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비로소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은 감옥 안에, 한 사람은 감옥 밖에 있으나 철창 안에 있든지 철창 밖에 있든지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결국 이 남자는 사형집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나는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고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으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느끼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에 힘입어서 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달아나버린 공범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를 범죄자로만 볼 뿐, 단 한번도 나의 형편을 살펴주지 않았던 경찰들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를 어려서부터 그토록 내팽개치고 괴롭혔던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증오하고 사람들을 증오하며 살았던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결국 서로 나누는 자그마한 사랑만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죠.

오늘 하나님이 말합니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회개가 뭡니까? 나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죄의 실제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원인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건 간에 내가 저지른 그 죄를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도덕법, 율법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감옥에 들어간다고 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해결책이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오직 은혜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이죠. 그러기에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이 불의한 세상 가운데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으로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리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늘 확인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악 된 세상을 이기며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친구로 삼았노라. 내가 너희로 내가 본 하늘나라의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리라.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건과 그 안에 담겨있는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발견할 때, 우리는 미래지향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위로를 얻고 소망을 얻고 용기를 가지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 과거에 매어서 죽어가고 있느냐? 오늘 눈을 들어 미래를 내다보고 하늘의 소망을 붙들고 다시 살아가라.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스스로 살아 있으나 죽은 자로 살아가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의 놀라운 사건으로 구원하시고, 그 안에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담아서 오늘을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올바로 깨닫고 주님을 의지하는 건강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