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3. 8. 금요일 /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3. 10. 05:31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3. 8. 금요일 /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김동호목사의 페이스북

스티그마 | 조회 36 |추천 0 |2019.03.08. 07:50 http://cafe.daum.net/stigma50/Dhpk/2498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3. 8. 금요일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1.
나의 모 교회는 청량리중앙교회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다니기 시작하여 24년을 다녔었다.
거기서 신학을 하였고
거기서 교육전도사, 전임전도사 그리고 부목사까지 했었다.
모교회에서 사역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천방지축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교역자로 인정을 받는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청량리중앙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청량리중앙교회는 나의 훌륭한 인큐베이터였다.
우리 나이 20살에 유년부 총무가 되었다.
당시 청량리중앙교회 유년부는 주일학교 교사만 60명 가까이 되고
아이들 출석이 400명 가까이 되는 큰 조직이었다.
당시 주일학교 부장은 김익명 장로님이라는 분이셨는데 장로님은 그 큰 주일학교의 행정과 계획을 비롯한 모든 일을 아직 아이티도 벗지 못한 나에게 다 맡겨주시고 당신은 뒤에서 철저히 뒷받침만 해 주셨다. 사업을 크게 하셨던 장로님은 내가 기획하는 모든 일에 대한 재정을 다 지원해 주셨다. 그 때 나는 일군이 되었고 교회와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3.
이춘익 장로님은 나의 중고등부 때 선생님이셨다.
야 동호야라고 부르시던 분이셨다.
교육전도사가 되었을 때부터 나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180도 바뀌셨다.
한번도 나를 김전도사라고 부르시지 않으셨다.
김전도사님으로 부셨다.
말만 그렇게 하신 게 아니라 속 마음과 생각과 자세 전체를 그렇게 바꾸셨다.
친구 아버지들이 장로님들이셨다.
그 장로님들도 나를 아들 친구로 대해 주지 않으시고 깍듯이 전도사님, 목사님으로 인정해 주시고 대해 주셨다.
그 땐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4.
임택진 목사님은 나를 디모데처럼 키우셨다.
교단 총회장이 되셨을 때 일년 동안 목회 전체를 나에게 위임해 주시고
당신은 주일 설교만 하셨었다.
목회계획과 예산편성 그리고 목회 전체를 31살이었던 나에게 맡겨주시고 위임해 주셨다.
그 때 많이 클 수 있었다.
목사님이 어느 큰 교회 잡지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었다.

디모데를 보는 바울의 심정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5.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나는 신대원을 졸업할 때 기뻤다.
학교 더 이상 안 다녀도 됬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대학원을 가라고 하셨다.
말을 듣지 않았다.
해마다 대학원을 권유하셨다.
삼년 째 되는 해에는 당시 약국을 경영하고 있던 세 자녀들로부터 대학원 등록금을 걷어(?)가지고 나에게 주시며 대학원 가라고 거의 명령하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엘 가서 나는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논문을 쓸 때가 절정이었다.
목사님은 교회 일을 많이 줄여 주셨다.
전임전도사였는데 파트타임 전도사처럼 일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 때 그나마 뒤늦게 공부다운 공부를 한 것이 평생 목회의 큰 본전이 되었다.

6.
바울은 본시 교회에 발을 붙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핍박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초대교회의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나바 때문이었다.
바나바가 그를 받아 들이고 교인들에게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나바는 당시 교회에서 가장 존경 받는 지도자였었다.
안디옥 교회가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 할 때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아니라
바나바와 바울이었다.
이름이 순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당연히 바울과 바나바가 아니라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슬며시 바울과 바나바로 바뀐다.

7.
성경의 훌륭한 지도자들은 후계를 잘 양육하여 리더쉽의 바턴 터치가 원만하였다.
모세는 여호수아
바나바는 바울
바울은 아볼로와 디모데
예수님도 12 제자를 키우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사람(제자들)을 준비해 놓고
키우셨기 때문이다.

8.
자기만 크고
기껏해야 자기 자식이나 키워
자기나
자기 자식이 아니면
교회를 맡길 사람이 없게 목회를 하는 건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다.
모세는 자신의 시종(servant, 33:11) 여호수아를
자기 대를 이을 지도자로 키웠다.
그리고 그에게 전적으로 모든 사역을 위임하고
자기는 느보산에 올라가 죽었다.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대단한 리더쉽이 아닐 수 없다.

9.
교회를 죽이고 목사가 사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사가 죽어 교회가 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래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

모르는 건 아닌데
쉽지가 않다.
그게 제일 어렵다.
그런데 그게 제일 중요하다.

오늘 아침에,

나를 두고 '당신은 쇠하여야 하리라'하셨던 내 목사님을 기억하며
이젠 내가 쇠하여야 할 때 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