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528 스스로 종이 된 사람 설교집 Ⅱ<마음을 시원하게> 3부-24
성경본문 / 장영수 목사
16.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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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2.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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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19-27) |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이란 책이 있습니다. ‘공병호’ 박사가 쓴 책입니다. 그는 왜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가? 사람은 자신의 생각만큼 밖에는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좋은 생각은 무엇인가? 보다 구체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누군들 부자로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가 가난한 자로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부자들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또, 가난한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는 것을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 조직, 가정, 사회 이렇게 구분해서 그 구체적인 생각의 갈래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재미있더라고요.
그 중에 몇 가지를 들어봅니다. 부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원인은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책도 내 안에 있다.’ 가난한 자들은 ‘원인은 밖에 있다.’ 부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정이란 미리 앞서가서 변화하는 세상이 뒤따라오기를 기다리는 상태, 이게 안정이다.’ 가난한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안정된 직장, 안정된 일, 안정된 위치에 있다. 이대로 머물러도 상관 없다.’ 부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그렇듯이 남들도 이기적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내가 그렇듯이 남들도 이타적이다.’ 또 부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쁜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누구나 잘못과 죄를 범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쁜 사람은 따로 있다. 대부분은 선량하다.’
어느 같은 직장에 일하는 남녀 직원이 해외로 출장을 갔습니다. 그러네 하도 출장비가 짜서 호텔에 묵었는데 방을 하나밖에 못 얻었어요. 큰일 났어요.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여자가 말합니다. 침대 가운데에 성경을 딱 놓고 ‘오늘 잘 때, 이걸 넘으면 짐승이에요.; 그래서 남자가 자면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자는 둥 마는 둥 몸부림치다가 겨우 위기를 넘기고 아침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너무 피곤한 몸으로 아침에 일어났더니 여자가 더 날카로운 눈으로 말합니다. ‘짐승만도 못한 놈이에요.’ 스스로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 나를 구원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게 거짓이죠. 가지를 말아야 되는 거죠.
부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앞가림을 해야 남도 도울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나만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인 짓이다. 나보다 남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 부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회사는 언제든지 나를 해고할 수 있다. 아무리 큰 기업도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제까지 이 회사를 위해서 일한 게 얼만데 설마 나를 자르겠어? 이렇게 큰 기업이 하루 아침에 어떻게 되겠어? 대기업에 있는 한 나는 안전하다.’
부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혼은 서로 맞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서로 맞춰가며 사는 게 결혼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도서실의 책을 빌려보세요. ‘가난한 사회는 행복할 수 없다. 성장이 중요하다.’ 이게 부자의 생각이에요.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회도 행복할 수 있다. 분배가 중요하다.’ 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부자들의 생각이 이러하고 가난한 자들의 생각이 이러하다고 하는 것을 한번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다가 그렇다면 부자인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에 대하여 믿음이 부자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 그러기에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을 때, 분명히 나를 향한 계획이 있다. 그 계획을 발견하고 그 계획을 따라 살 때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이게 믿음 부자들의 생각이에요. 그러나 믿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가 열심히 살고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잘 들어야 합니다. 믿음 부자의 생각을 가지고 그 울타리 안에서 지성이면 감천이다 할 때는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고백이 없는 상태에서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는 생각은 크게 잘못되는 거예요.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 노력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 길이 어긋나 버린 것, 그 무지함과 불신앙이 죄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그 사건을 믿을 때에 우리는 죄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 용서를 맛보게 되고 자유로움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믿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4대 성인의 한 분으로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 분이다. 그분은 참 훌륭한 분이다.
성령에 관해서는 어떻게 이해합니까? 믿음 부자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령님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대로 말씀의 약속대로 지금 예수를 믿는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하신다. 날마다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내가 기도할 때, 나를 도우셔서 그 기도가 하나님께 전달이 되고 응답되게 하신다. 그리고 날마다 나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신다. 그러나 믿음이 가난한 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를 모델로 예수의 고상한 인격을 따라가기 위하여 도덕과 교훈을 열심히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교회에 대해서도 믿음 부자들은 이렇게 이해합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만나주신다. 하나님이 저 목사님의 설교 말씀 속에서 나를 만나주신다. 그 말씀은 나를 위해 주시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반드시 말씀의 증거가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반드시 우리의 삶 속에 응답을 주신다. 이게 교회의 비밀이에요. 그런데 믿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라. 교회에 나가면 좋은 말씀 듣고 얼마나 좋으냐. 세상 사는 지혜도 배우고 마음도 수양하고 얼마나 좋으냐.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에 머무르는 거예요. 또 하나는 지금 생명으로 내 안에 오신 주님을 새롭게 만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있는 한인선교사들의 전체 수련회가 뿐짝에서 있었습니다. 아주 은혜로운 시간이었거든요. 이 분들이 각 지방에서 오셨으니까 수련회를 마치고 가야 되잖아요? 그 중에 같은 교단에 계신 여선교사님이 하루 늦게 비행기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하루 우리 집에 머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죠. 아. 이 분이 스포츠에 대해서 박사예요. 골프하면 골프선수들을 쫙 꿰고 있어요. 어떤 유명한 선수가 오랫동안 부진한 데 그건 슬럼프라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슬럼프라는 것은 잠깐 빠졌다가 일어나는 것이지 그렇게 몇 년씩 지속되는 것은 슬럼프가 아니라는 거예요. 전 처음 듣는 얘긴데 그 아버지가 도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번 돈을 다 도박에 쏟아버렸대요. 그러니 누군들 힘이 나겠어요?
이런 스포츠 비화까지도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그런 것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3남1녀 오빠들 틈에서 자라났는데 어려서부터 오빠들이 운동할 때, 자기도 쫓아다니면서 같이 운동하고 TV 볼 때 같이 옆에서 보면서 저건 뭐야? 묻다가 다 배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야구를 아주 즐겁게 보면서 결정적인 말을 하더라고요. 스포츠는 규칙을 알고 봐야 재미있다는 거예요. 전 사실 그걸 잘 몰랐어요. 전 야구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전 야구는 재미없어요. 왜? 규칙을 모르니까. 그런데 이분은 눈이 뚱그래져가지고 설명을 해요. 규칙을 알고 봐야 재미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영적인 원리를 분명히 알고 시작해야 응답이 있고, 능력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는 거예요. 눈을 가리고 한번 다녀보세요.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지요. 깨질 수밖에 없지요.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주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감격이 있을 때, 그 신앙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죠. 규칙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오늘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자기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니 종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요즘 누가 있어요? 제가 자카르타에 오신 분들, 다 처지는 다릅니다만 제가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어요. 콧대가 세요. 고집이 강해요. 역시 해외 나와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에요. 그거 하나님 안에서 잘 쓰임 받으면 큰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왜 그럼 내가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었느냐? 그리스도가 너무 좋아서. 내가 그리스도가 너무 좋아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유대인에게, 이방인에게, 율법을 아는 자에게, 율법을 모르는 자에게, 잘난 자에게, 못난 자에게, 배운 자에게, 못 배운 자에게, 남자에게, 여자에게 전하기 위하여 내가 나를 비우고 나를 낮추었다.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못해요. 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말 한마디가 자기의 열등의식을 자극하면 화가 나가지고 감당 못해요. 사도 바울과 같이 최고의 학문을 하고 종교적 열심을 경험하고 가문도 혈통도 훌륭하고 이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리스도를 발견한 다음에 그리스도 앞에 자기를 내려놓을 때, 그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을 발견한 거예요. 마치 예수님 같이.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잖아요. 복잡한 얘기를 하지 않잖아요. 사람이 거듭나려면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 바람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다. 왜? 성령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므로. 지금 내 안에 오신 성령께 나를 열어놓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수가성의 못 배운 가난하고 비천한 여인이 물 뜨러 우물가에 왔을 때, 예수님이 그의 과거를 아시고 그의 아픔을 아셨어요. 그녀가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물을 때 “여기도 아니요, 저기도 아니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영과 진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발견한 사실을 고백합니다.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지금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배운 자도 못 배운 자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남자도 여자도 누구라도 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원한다. 왜? 그리스도가 너무나 좋기에 그리스도가 생명이기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종이 되기로 작정했노라. 왜?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하여,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려고 할 때,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의 맛이 어떠한지를 알게 해주심으로.
어제 밤에 이메일을 하나 받았는데요, 제 사촌동생이었습니다. 그 가족이 기러기가족이 되가지고 일부는 지금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거든요. 혼자 남아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마음을 열고 이메일을 보낸 거예요. 그러면서 ‘한마음’ 이라고 하는 단어가 자기는 그렇게 마음에 든다는 거예요. 제가 그걸 읽다가 그렇지, 저 한국에 멀리 있는 사람도 이름이 좋다는 한마음에 무슨 비밀이 있는가. 신앙이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는 거예요. 내 안에 오신 성령과 한마음이 되는 거예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때, 하나님이 증거를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의 감각을 의지하려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경험을 의지하려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보 잘 것 없는 지식을 가지고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려 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게 한마음이에요.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 나를 낮추고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하여 내가 저들의 종이 되었노라. 서로서로 한마음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한마음이 된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고 한마음이 될 수 있어요.
어느 부부가 사이가 안 좋대요. 싸운대요. 그러면 우리는 “그 집이 어떻게.” 이건 불신앙이에요. 왜 그런 식으로 얘기합니까. 그 소중한 가정이 깨어질 위기에 있는데. 그게 왜 우리의 가십(gossip)이 됩니까? 우리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그 가정을 지켜주십시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들의 어려운 형편을 들을 때에 판단하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우리가 얘기를 들을 때에 그것이 내 귀를 즐겁게 하고 저 사람이 안 되는 것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에요. 악한 사람이에요.
오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이제 종으로서 어떻게 살아갈까? 마치 마라톤을 하는 사람같이 끝까지 내가 힘껏 달리겠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 4.19 기념 마라톤대회를 나갔어요. 제가 한번 도전해봤거든요. 제가 좀 몸이 약하니까 한번 나를 시험해봐야겠다 그러고 한번 뛰었는데요, 마라톤 하는 사람들의 기쁨을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서울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런데 교통순경들이 나와서 길을 다 열어주고 반바지 티셔츠차림으로 뛰는데 이건 뭐 잘 뛰고 못 뛰고 간에 그렇게 신날 수가 없는 거예요.
상암 월드컵경기장 개장할 때, 개장기념 축구대회의 티켓이 왔기에 가족과 함께 갔는데요, 바로 앞자리에 앉았는데 진짜 멋있더라고요. 선수들이 뛰는 거친 숨소리가 ‘헉헉’ 다 들려요. 그런데 저 꼭대기 기둥 뒤에 잘 안 보이는 지붕 아래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사람하고 그 앞에서 흥분된 모습을 보는 사람하고 그 감이 같겠어요? 다른 거예요. 그리스도가 좋으면 가까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구경꾼으로 살지 말고 선수로 살아라.’ 하나님이 꼭 잘하는 것만 바라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 은혜 받는 것만 쳐다보고 ‘저 사람 은혜 받았대, 좋겠다.’ 구경꾼으로 살지 말아라 하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오늘 내가 너를 위해 은혜를 준비했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선수로 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거예요.
제가 한번은 오버한 적이 있어요. 제가 마라톤을 했는데 완주를 했거든요. 그 다음에 또 뛰었는데 잘 뛰었거든요. 제가 그래서 군대 가서 구보는 자신 있었어요. 제대 후에 고향 도시 승격기념 마라톤대회가 있어서 제가 가서 반바지에 멋지게 입고 뛰었는데, ‘아이고’ 이번엔 실수했어요. 완전히 선수들이 모였더라고요. 땅 하니까 샥하고 다 사라져 버렸어요. 저만 혼자 쳐져 가지고 그래도 오기가 있어서 끝까지 뛰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군대 갔다 온 사람인데 끝까지. 제가 도착했더니 이미 그 행사는 다 끝나고 운동장에서 완전히 다른 행사를 하는데 제가 오기가 나서 그냥 뛰었습니다. 결승점까지. 그러나 여러분, 왜 그랬겠습니까? 구경꾼하고 선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내가 너를 위해 예비한 은혜가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에요. 은혜의 마라톤. 달려가야 되는 거예요.
‘박완서’ 씨의 <잃어버린 가방>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분의 여행을 스케치한 글이죠. 그런데 그 글에 보니 매년 1월에 독일 Lufthanza 항공에서는 여행객들이 분실한 가방을 공개경매에 내놓는데요. 하기는 그 안에 중요한 게 들어있으면 주인이 기어코 찾겠죠. 그러니까 주인도 안 찾아가는 여행가방이라면 별 볼일 없는 거죠. 오히려 그런 건 혹시 폭발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경찰에서 한번 다 훑어본대요. 다 훑어보고 내용물을 보고 다시 돌려준대요. 그것을 공개경매를 하는데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낙찰이 되면 그 자리에서 열어보는 게 관례래요. 뭐 귀중품이 있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사람이 남의 것 들여다보는 재미라는 게 있잖아요. 뭐 있나? 그래서 나오는 것마다 깔깔거리고 웃는다는 거예요.
이분 박완서씨도 여행을 하다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결국 못 찾았어요. 그러면서 말이죠. 아이고 큰일 났다.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거기에 속옷들, 그야말로 팬티 뭐 이런 것들을 막 쓸어 넣었는데 혹시 귀중품이 있는가 하고 도둑이 훔쳐갔을지라도 속이 검은 사람이 훔쳐갔을지라도 그 가방을 열 때, 시시하고 죽은 동물의 내장같이 막 썩은 냄새가 나는 것들이 나오면 더 부끄럽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의 육신, 인생을 살아가는 여행가방과 같은 이 육신 속에 담겨있는 내 영혼이 주님 앞에 서는 그 마지막 날, 밝은 빛 앞에 다 드러날 텐데, 그때 추악하고 썩은 냄새를 내면 어떡할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 있을 때에 날마다 새로움이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사건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이제는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열린 마음, 열린 생각, 낮은 마음으로 주의 은혜를 구할 때마다 응답하시고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 우리의 무지와 불순종과 우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참으로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정결하게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은혜로 풍성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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