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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5. 30. 목요일 / 기독교적인 죽음의 이해에 대하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6. 9. 09:26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5. 30. 목요일 / 기독교적인 죽음의 이해에 대하여.|김동호목사의 페이스북

스티그마 | 조회 40 |추천 0 |2019.05.30. 07:23 http://cafe.daum.net/stigma50/Dhpk/2576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5. 30. 목요일

기독교적인 죽음의 이해에 대하여.

1.
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꽤 오랫동안
피하고
미루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어제 미리 말씀드린대로 '죽음의 문제'였다.

암 친구 한 분의 댓글이 깊이 마음에 와 닿는다.

'
오늘 목사님 글은 심장이 내려 앉네요. 가슴이 먹먹해 지고 꽉 막힙니다. 암이 축복이라는 말도 수긍이 안 되고요. 예수님처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싶어요.'

2.
예수님도 십자가 앞에서 땀이 떨어지는 핏방울이 될 때까지 기도하셨었다.
참 인간적으로.

'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암은 우리 인간에게 십자가와 같다.
고통과 죽음
당연히

'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기도가 나온다.
나오는게 정상이다.

'
나도 날마다 한다'

3.
그러나 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죽음은
예수님도 결국 피하지 못하셨다.

피할 수 없다면 돌파해야 한다.
당하던가.

4.
돌파하려면
이해해야 한다.

知彼知己 百戰百勝

이해해야 결단할 수 있고 결단해야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 승리할 수 있다.

5.
죽음 이해.
기독교적인 죽음 이해

1)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암에 걸린 우리만 죽는게 아니다.(고통도 마찬가지다)

2)
죽음은 끝이 아니다.

3)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심판 이후에는 영생이 있다.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 9: 27-28)

4)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망가진 이 세상을 개축하려 하지 않으시고 신축하시기로 결정하셨다. 망가진 세상을 허물어 버리시고(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예비 하시기로 하셨다.

5)
요한은 환상 중에 그 나라를 먼저 보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서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1-7) 아멘.

6)
우리를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핏값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루셨다.
그리고 구원을 영생을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유업으로 물려주셨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6-18) 아멘.

6.
이게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이다.
감사한 것은
참 감사한 것은
나는 그것이 믿어진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 있다고 죽음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섭다.
나도 무섭다.
당연히 무섭다.
피하고 싶고 도망할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피하려 하지 않기로 했다.
죽음에 사로잡혀 살지 않기로 했다.
이 믿음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다윗처럼.

"
다윗이 불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7.
도망가면
40
년이고
싸우면 7일이다.

나도
무섭지만
돌파하련다.
도망다니지 않으련다.

난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암에 걸리니 말씀이 다 삶이 된다.
믿음이 다 삶이 된다.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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