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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6. 11. 화요일 / 절망하지 않는 자에게 소망은 없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6. 17. 17:29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6. 11. 화요일 / 절망하지 않는 자에게 소망은 없다.|김동호목사의 페이스북

스티그마 | 조회 34 |추천 0 |2019.06.11. 06:53 http://cafe.daum.net/stigma50/Dhpk/2587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6. 11. 화요일

절망하지 않는 자에게 소망은 없다.

1.
나도 폐암 판정을 받고
폐의 20% 이상을 떼어 낸 폐암 환자다.
내 옆구리엔 그 분명한 흔적(스티그마)도 있다.

2.
그래서
암이 가져다 주는 심적 정신적 고통 즉 두려움, 불안, 당황스러움과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 나도 느껴서 암에 걸린 분들이 얼마나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까에 대한 실제적인 느낌은 조금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서 CMP 사역을 시작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암 환자들이 겪는 육체적인 고통은 아직 잘 모른다.
아직까지는 암 치고는 비교적 견딜만한 과정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어느 암 친구의 댓글을 읽고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암에 걸리고
재발하고
또 재발하여
지금 현재 그녀의 표현대로 무시 무시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였다.
근육통, 복통, 혈관통.

아마 암에 걸린 후 예수를 믿게 된 모양이다.
그게 그렇게 감사하고 좋은 모양이다.
예수 안 믿고 안 아플 때보다
지금이 감사하다고 썼다.

아내가 오해할 까봐
걱정할까봐
화장실에서 몰래 소리 죽여 울었다.

도대체 그 무시무시한 통증은
어떤 것일까?
얼마나 아픈 것일까?
얼마나 힘든 것일까?

3.
내가 있는 양평 황토방에는 다 암 환자들이 와 있다.
나보다는 대개 다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옆 방 환우의 우는 듯한 비명 소리에 잠이 깨었다.
통증이 시작된 모양이다.
우리 암 친구가 표현한 그 무시 무시한 통증인가 보다.

마치 왜정시대 때
군사정권 시대 때
고문실에서 고문 받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4.
위로 할 수 있을까?
저들을 과연 위로할 수 있을까?
어제 '가오' 이야기 너무 쉽게 한 건 아닐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미션 임파서블이 아닐까?

5.
CMP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글을 올리자
어마 엄청난 공감들이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하고 돕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참여하겠다는 신청자도 제법 많이 생겼고 (현재 한 200명 정도)
후원금도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씀 드릴만큼 쉽게 빨리 많이 모였다.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진행되고 있다.
자신감이 생긴다.

홍해를 가르고
애굽에서 수 많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고
바로의 손에서 성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
잠시 착각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기 위해 반석을 칠 때
마치
자기 힘으로
자기 능력으로 물을 내는 것처럼 착각하여
"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20;10) 했던 것처럼
그런 착각이
나에게 없다고 부인 할 수 없다.

6.
칼빈주의 5대 강령이라는 것이 있다.
그 강령 중의 첫 째 강령이 매우 중요한 강령이고 교리이다.
그것은 절대 무능력의 교리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고백이다.

나는 이 교리가 매우 중요한 교리라고 믿고 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무능력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고백해야만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덧 입을 수 있다.
백 퍼센트 비운 그릇엔 백 퍼센트 물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뭔가가 채워 있으면 그 채워져 있는만큼 물을 채울 수 없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도 마찬가지다.

7.
암은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다.
그것이 주는 절망과 아픔 그리고 거기서부터 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쉽게 위로하고 극복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게 어제 이야기한 하나님의 ''이다.
'
생기'이다.
예루살렘 초대교인들이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방언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서 각 자 자기가 알지 못하던 말을 하게 되었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 나야만 CMP는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위로는
내가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위로의 능력까지 있는 건 아니다.
능력은 우리에게 없다.
그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너희들은 못하니 끼어들지 말고 저리 비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
내 백성을 위로하라"(40:1) 말씀하셨다.

능력은 내가 줄 터이니 하기는 네가 하라는 말씀이다.

8.
어제 암 친구의 댓글과
오늘 새벽
옆 방 환우의 단말마적인 비명소리를 들으며
'
위로'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을 느꼈다.

절망을 통하여 귀한 깨달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이번 CMP집회는 위로에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 두 손 들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능력을 간구해야지.
그 능력으로
그 힘으로 위로해야지.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지.
위로는 암 친구들과 보호자들에게
영광은 당연히 하나님께.
그래도 하나님은 이 일에 참여하는 나와 모든 동역자들에게
칭찬해 주실꺼야.
그거면 됐지.
그건 욕심내도 괜찮겠지.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아멘, 아멘, 아멘.

9.
나는 절망한다 고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