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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6. 10. 월요일 / 믿음으로 하는 '가오 싸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6. 17. 17:26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6. 10. 월요일 / 믿음으로 하는 '가오 싸움'|김동호목사의 페이스북

스티그마 | 조회 30 |추천 0 |2019.06.10. 07:34 http://cafe.daum.net/stigma50/Dhpk/2586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6. 10. 월요일

6
22일 제 1 CMP 컨서트 설교원고를 작성했습니다. 미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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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하는 '가오 싸움'
1:17.

1.
저희 선친은 1904년생이십니다.
지금 살아계셨다면 115세이신 셈이지요.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최종 학력이셨답니다.
일본인 담임 선생이 맘에 들지 않아 소주 병으로 가격(?)하고 그 다음부터 학교에 가지 않으셨답니다.
그 이후론 일본 사람들만 보면 때려 주기 시작하셨는데
나중에는 일본 깡패 오야붕과 일본 경찰 서장까지 때려주셨답니다. 물론 서장을 때려주시곤 몽고로 도망가셨지만 말입니다.

몽고로 가셨을 때는 어머니와 아마 신혼이셨던 때 인 것 같은데
거기서도 당신 버릇 남 못 주셔서 또 일본 깡패 오야붕과 헌병 대위까지 때려 주셨는데
아버지에게 맞은 헌병 대위가 일본 군도를 뽑아 들고 집까지 찾아와 목을 내 놓으라고 소리 지를 때
아무렇지도 않게 자르라고 목을 내 놓으셨답니다. 머뭇 거리는 헌병에게 너희 천황이 이런데 쓰라고 군도를 주었느냐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헌병 대위가 칼을 거두었고 무슨 삼국지 같은 이야기지만 나중에 그 헌병 대위와 친구가 되어 의기 투합 잘 지내셨다는 이야기를 술만 한 잔 하시면 영웅담처럼 이야기 하시곤 하셨습니다.

2.
평북 선천이 고향이셨는데 고향에서 양복을 제일 먼저 입으신 멋쟁이셨습니다. 영하 20도가 내려가는 겨울에도 바지 주름 죽는다고 내복을 안 입으셨다니까요? 사이클, 테니스(그 때는 정구), 휘겨 스케이트를 타셨고 유도가 공식 3단이셨고 씨름도 잘 하셔서 소를 타셨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도 같은데 그건 정확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여행하신다고 상해, 홍콩, 일본, 월남을 다니셨던 분이니 1904년생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 살으셨던 분인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분이 학교 소사가 되셨습니다. 학교 청소하고 허드렛 일하고 심부름하는 사람을 그 땐 소사라고 했었습니다. 나중엔 수위일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소싯적 아버지를 아시는 분들은 저희 아버지가 학교의 소사일과 수위일을 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절대로 남의 밑에 못 있는 성격의 저희 아버지가 반바지에 런닝 셔츠 하나 입으시고 소사 수위 노릇 하시는 걸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그 때 저희 아버지가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 하셨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
나이 오십 다되어 너를 낳고 보니 수위가 아니라 똥 구르마라고 끌겠더라'

저는 그 말씀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아 남았고 사람 구실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3.
수위와 소사 일을 하셨지만 성격은 어딜가지 않으셔서 학교 선생님들 숙직하시다가 우리 아버지한데 많이 맞으셨습니다. 숙직을 하실 때 술 한 잔 씩을 하시곤 소사와 수위라고 조금만 무시하거나 깔보는 태도를 취하면 여지 없이 아버지에게 맞곤 하셨습니다. 아마 우리 아버지에게 안 맞은 선생님들보다 맞은 선생님들이 더 많았다고해도 크게 과장은 아닐겁니다.

제가 페이스 북에도 썼던 적이 있는 이야기인데,
아버지 수위실 연탄난로와 교장실 난로가 같은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교장실 난로 뚜껑이 깨져 연탄 가스가 새자 서무과장이 아버지 비번인 날 수위 실 난로 뚜껑과 바꾸어 갔답니다. 다음 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 아버지 깨진 난로 뚜껑 들고 교장실로 가서 바꿔 오셨습니다. 그냥 바꿔 오신게 아니고 서무과장을 교장실로 멱살 잡고 끌고 들어 가 '교장은 가스 맡으면 죽고 수위는 가스 맡아도 사냐?' 호통 치시고 뺨까지 올려 붙이셨답니다.

그래도 잘리지 않고 정년까지 계셨던 걸 보면 당시 선생님들과 서무과장님은 참 훌륭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선생님들 중에 우리 아버지 팬도 많았었습니다.

저희 아버진 학교 수위셨지만
소위 '가오' 가 있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가오'는 잘 나가던 이북에서만 아니라 탈북하여 피난민으로 살 때도
늘그막에 학교 수위로 반바지에 런닝 셔츠 하나 입고 사시던 때나 조금도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그런 저희 아버지가 좋았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멋있었습니다.

4.
저는 자라면서 늘 제가 아버지처럼 되지 못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겁쟁이가 될까봐 그게 제일 두려웠습니다.
아버지처럼 살 자신이 없어서였습니다'

제가 얼마 전 페이스 북에도 썼었지만
어느 우리 한국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저는 참 좋습니다.경찰들이 나눈 대화 같습니다.

'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 말이 저는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폐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폐암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를 알게 되고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솔직히
멍멍하고
먹먹하고
당황스럽고
불안스러워졌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생각한게 뭔지 아십니까?

그건
엉뚱하게도
'
가오'였습니다.

5.
저는 제 폐암이 완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으면 다시 재발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이 고생하지 않고 넘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죽기는 죽겠지만 암으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도하기도 합니다.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제가 해야 할 노력은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합니다.

폐암 판정을 받았을 때
'
왜 내게?'
'Why me?'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내가 나에게 답을 했습니다.
'
넌 왜 안돼?'
'
왜 다른 사람은 되고 너는 안 되는데?'
괭장히 중요한 답을 찾은 셈이었습니다.

6.
제가 뜬금 없는 질문을 하나 할 터이니 대답해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이 부잘까요 아님 안 믿는 사람이 부잘까요?
답은
'
사람 나름입니다'입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고 설교하는 목사들도 있는 모양이고 그걸 고지곧대로 믿는 분들도 많은 것을 알지만 그건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사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 중에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믿느냐 안 믿느냐를 가지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부자는 다 예수를 잘 믿어서 그렇게 된건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다 예수를 잘 안 믿거나 못 믿어서 그렇게 된건가? 아닙니다.
'
사람 나름'이 맞습니다.

하나도 질문 할 터이니 대답해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이 건강합니까 아님 안 믿는 사람이 건강합니까?
사람 나름입니다.

예수 잘 믿어도 가난할 수 있고
예수 잘 믿어도 병들 수 있고
예수 잘 믿어도 암 걸릴 수 있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확률은 높습니다. 그러나 가난이 무조건 예수 안 믿기 때문은 아닙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건강할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또 저도 신유의 은사를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다 아무런 사고도 없이 문제도 없이 건강한 건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7.
저도 이 암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성공적으로 벗어나기 위하여 저의 최선을 다할 겁니다.
치료를 잘 받고
운동도 열심히하고
저의 최대 문제가 될 식사도 열심히 잘 할 겁니다.
그리고 기도도 할 겁니다.
그래도 혹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힘든 암의 과정을 걷게 된다고 하여도
하나님 앞에 'Why me?'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무서울 겁니다.
무서운게
무서워하는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인간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그 보다 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는게 있습니다.

그게 무서워
다시 말해서 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픔을 격어야 하는게 무서워서
'
가오'가 죽을까봐
그게 무섭고 두렵습니다.
'
나 목산데'
'
나 예수 믿는 사람인데'

8.
저는 암과 맞붙어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싸워서 이길 상대가 아닙니다.
날 대신하여 싸워 줄 장수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병원과 전문의들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십니다.
병원과 전문의들이 장군들이라면
하나님은 저들까지 총지휘하시는 사령관이십니다.
저는 생명은 일단 하나님께 맡기고
치료는 병원과 의사에게 맡기고(그게 저들의 직업이니까)
그냥 제 할 일 열심히 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싸워보고 싶은 싸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암과의 싸움'이 아니라 '가오 싸움'입니다.

암으로 죽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건 암 앞에서 가오가 죽는 겁니다.
고통과 죽음 앞에서 가오가 죽는 겁니다.
아플 수는 있습니다.
죽을 수는 있습니다.
죽을 수 있는게 아니라 우리는 모두가 다 죽습니다.
암 환자만 죽습니까?
안 암 환자도 죽습니다.
죽고 아픈 것보다 더 무서운 건
평생 예수 믿고 설교하며 목사로 살았는데
아픔과 병과 죽음 앞에 가오가 죽어서 벌벌 떨며 초라해 지는게 무섭습니다.
저는 그것과 싸우고 싶습니다.
암에는 걸렸지만
가오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이 '가오 싸움'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9.
'
가오'는 어디서 오는가?
저희 아버지의 '가오'는 아버지의 성품에서 왔습니다.
본성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감한 사람
뱃짱이 쎈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종류의 '가오'가 쎈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의 '가오'입니다.
사실은 그 '가오'가 진짜 '가오'입니다.

'
가오' ''입니다.
'
'가 살면 '가오'도 살고
'
'가 죽으면 '가오'도 죽습니다.

10.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먼저 진흙으로 모양을 빚으신 후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기는 하나님의 영이었습니다.
그것을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를 받은 우리 인간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가 삽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감동하고 은혜를 받으면 ''가 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부르면 ''가 삽니다.
찬송은 영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웃으면 ''가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11.
암에 걸리면
그날 부터 암에 충만한 삶을 삽니다.
하루 종일 암만 연구하고 묵상하고 생각합니다.
암에 걸렸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완전히 걸려들어 삽니다.
아직은 건강해서(암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살만 한데도
미리 가불까지해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우울하고 절망하고
암의 종으로
암의 노예로 삽니다.
기가 다 죽어서 시커먼 얼굴로 어께 축 늘어트리고....

암 충만을 몰아내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를 받아야 합니다.
그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일입니다.
그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오'입니다.

12.
이스라엘에게 블레셋이 처들어 왔습니다.
블레셋의 장군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그의 장대함 앞에서 이스라엘은 왕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기가 다 죽었습니다.
벌벌 떨며 어쩔 줄 몰라 할 때
목동 출신 어린 다윗이 무장도 하지 못한 채
물매와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을 대적합니다.

"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다윗은 '가오'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도 보니 '가오'의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보니 '죽음'에게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조금도 쫄지 않고
기죽지 않고 말입니다.

"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다윗의 그 '가오'는 어디서 왔습니까?
'
만군의 주 여호와'
바울의 그 '가오'는 어디서 왔습니까?

사망에 대한 바울의 호통(고전 15:55)에 이은 고전 15:57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3.
저는 로마서 8 35절 이하의 말씀이 좋습니다.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건 세상에 없습니다.
환난도
곤고도
핍박도
기근도
적신도
위험도
칼도
암도.

14.
6
9일 주일은 성령강림 주일이었습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번 째로 나타난 현상이 방언이었습니다.
자기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와 지방의 말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말만 말이 아닙니다.
생각도 말이고
행동도 말입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암에 걸린 사람들의 보편적인 말과 행동과 생각들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암에 걸려도 저들과 다른 말을 해야만 합니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기뻐하고
감사하며
우아하고
아름답게
행동하며
말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그게 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언보다 근사하고 파워 풀한 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15.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입니다.
강력한 ''입니다.
'
' ''입니다.

암 충만으로부터 벗어나십시요?
암에 대한 묵상 시간을 줄이십시요.
암에 걸려들지 마십시오.
벗어나십시오.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성령충만함을 사모하십시요.
하나님의 영과 기로 여러분의 하루 하루를 채우십시요.
그리고
암 앞에서
'
가오' 잡으십시요.
그리고
그것을 만민에게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보여주십시오
특히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말로
얼굴 표정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
나 예수 믿는 사람이야'를 보여주십시오.

'
믿음의 가오'를 가지고 근사하게 암과 싸워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