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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6:1-13 ”생존인가 생명인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6. 17. 17:57

예레미야 16:1-13 ”생존인가 생명인가”|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스티그마 | 조회 25 |추천 0 |2019.06.15. 08:27 http://cafe.daum.net/stigma50/EfmC/914                   



 





예레미야 16:1-13 ”생존인가 생명인가”|






16:12

너희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하고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1.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 사람들은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의 반경이 넓어지고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2.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지는 것, 더 잘 사는 것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배 부르고 등 따뜻한 환경을 누리는 것이 맞습니까?

3.
그것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바른 믿음의 출발입니다.

4.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치르셨던 첫 시험이 근원적인 욕망의 테스트입니다.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유혹에 굴하지 않습니다

5.
예수님은 끝까지 내 능력을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도전에도 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오직 경배하기를 택하십니다.

6.
그렇다면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보다 우선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말씀이라고 답하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 곧 하나님이십니다.

7.
이 말은 결국 나보다 하나님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근원적인 분기점입니다. 신앙이 신앙일 수 있는 바른 출발점입니다.

8.
바른 신앙은 생존의 가치를 격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인간 생명의 가치를 생존의 가치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9.
생명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이 지고한 것이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것을 선으로 여기는 생존지향적 가치를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10.
이스라엘 백성들이 걷게 된 악한 길은 어떤 길입니까? 지극히 평범한 악의 길입니다. 단지 더 잘 사는 것, 더 낫게 사는 것을 택했습니다.

11.
더 잘 살 수만 있다면, 더 낫게 살고 더 편하게 살 수만 있다면, 모든 현실과 타협한 것입니다. 우상도 좋고 잠시 하나님 떠나도 좋습니다.

12.
하나님의 책망은 무겁습니다. “너희들이 너희 조상들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나를 떠났구나.” 신앙과 불신의 구분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내가 먼저인가 하나님이 먼저인가, 내 생각이 먼저인가 하나님 말씀이 먼저인가, 내가 내게 묻고 답하는 것으로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