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승리의 노래[사우디왕족의골프장선물,죄인임을자각케하는율법]/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09:24

2009 4 12 주일예배

 

승리의 노래

(고전 15:55-58)

55.사망 너의 승리 어디 있느냐 사망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1. 사망 쏘는 것은 권능 율법이라
  2. 우리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3.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안에서 헛되지 않은 앎이라

 

요즘 주말 드라마로 사극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KBS WORLD를 잠깐 들여다보니까 `천추태후'가 나오더군요. 고려 왕건의 손녀딸이고, 고려 다섯 번째 왕 경종의 부인이었고 여섯 번째 왕 성종의 누이동생이었고, 또 그 다음 목종의 어머니였던 인물이고 고려 건국 이후 백 년 역사 속에 굉장히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죠. 그러나 그가 누군지 대부분 모르죠. 그런 사극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니까 우선은 모르던 사실을 알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죠. TV매체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거든요.

   그러나 한 가지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가. 시청자들의 욕구가 있어요. 재미있어야 되니까. 거기 맞추다 보면 사실을 왜곡하게 되지 않습니까? , 모르던 사실을 알게 해준 효과가 있는 반면에 잘못 알려줄 수 있어요. 사극을 보고 `이런 게 있구나' 하면 한번 백과사전도 뒤져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그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가' 살펴본다면 그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부활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다 나름대로 듣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알고 있느냐? 궁극적으로 그 부활은 내게 주시는 선물이거든요.

   예전에 이런 일화가 있어요. 사우디의 한 왕족이 프로 골프선수와 함께 플레이를 했어요. 이 선수가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줘서 마음에 들었어요. 헤어지면서 언제 한 번 우리나라에 와서 나하고 다시 한번 시간을 갖자고 했어요. 자꾸 간청을 해서 다시 만났습니다. 며칠간 함께 플레이를 했어요. 그러면서 얘기합니다.“내가 선물을 하나 하고 싶은데 필요한 것은 없느냐?”뭘 바란다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냥 말꼬리를 흐린 거죠. 떠나갈 때 봉투를 하나 준 거예요. `얼마나 사례를 넣었나 보다' 하고 비행기 안에서 뜯어보니 골프장을 하나 사서 아예 소유권을 넘겨준 거예요. 역시 돈 많은 부자가 달라요.

   여러분,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이에요.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잖아요. 그런데 그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을 주셨어요. 최고의 선물이에요.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몰라요.

   그런데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사람들이 꾸며낸 얘기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약에 부활에 관한 것을 꾸몄다고 한다면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을 여인들로 설정하면 안돼요. , 2천년 전 유대사회에서 여자들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없었어요. 여자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만 어쨌든 그랬어요. 여자들이 먼저 예수님을 봤다고 해서는 효력이 없단 말이에요.

   `부활이란 예수를 너무나 갈망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집단적 망상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도바울은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베드로와 열 두 제자, 심지어는 500여 명의 성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죽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 나와 더불어 살아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보잘것 없는 나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고 고백해요.

   또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이렇게 객관적 표현을 써요. `내가 예수를 봤다' 그런 표현은 열에 한 구절 정도 밖에 없어요.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줄 알았는데 죽은 게 아니다. 거의 죽을 뻔 했는데 서늘한 무덤에서 깨어났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음은 확실한 죽음이었어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멍든 채로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고 무덤 밖으로 나왔다면 그를 과연 죽음을 정복한 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심지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어 아무도 모르는 다른 곳에 옮겨두었다. 그래서 그게 빈 무덤이 된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무덤을 바꿔 치기 했다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것같이 `예수께서 사셨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가? 아니요. 그럴 수 없죠.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어보면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을 부활장이라고 얘기해요. 첫째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무덤에 누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이렇게 선언합니다. 먼저 그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나열합니다.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해요. 두 번째, 그 사실을 가지고 논증을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너희의 믿음은 헛것이 된다.' , 예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 된다고 증거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그는 우리의 그리스도가 된다고 이야기했으므로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모든 것은 다 거짓말이 되고 헛된 말이 되고 그것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은 다 헛것이 된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 의미가 없고 부활이 없다면 오늘 현실을 살면서 이 고통과 핍박을 참고 견디는 우리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고 불쌍한 사람들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도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하게 된다. 이렇게 논증해요.

   `어떻게 사람이 부활 하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연의 이치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씨앗을 뿌리는데 어떤 종자든지 그 모양은 비슷해요. 비슷한 모양의 씨앗을 뿌렸습니다만 나중에 거두는 것을 보면 다 달라요. 종류별로 다 달라요. 이와 같이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렇게 비슷하고 잘 구분되지 않지만 그것은 나중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변모될 것이다. 썩을 몸을 심었는데 썩지 않을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비천한 것을 심었는데 존귀한 것을 거둘 것이다. 약한 것을 심었는데 강한 것을 거둘 것이다. 자연적인 몸을 심었는데 신령한 몸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제 부활의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이 그렇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다음에 하나님의 마지막 약속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고 또 그 부활하신 주님을 보는 우리들도 다 변화될 것이며 또 먼저 죽은 자들이 다같이 변화될 것이다. 그 약속을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상기시키면서 이제 결론을 내리면서 사도바울은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 때 문제가 뭐냐 하면 죽음이죠. 태어나고 죽는 것은 모든 인생이 피할 수 없어요. 백 년 후에는 우리 누구도 없을 거예요. 엄연한 사실이에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죄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부활을 알고 그것을 믿는다면 두려워할 일이 없어요. 그것은 그저 문을 열고 나가는 것과 같아요.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고 문을 열고 비행기에 오르는 것과 같아요.

   문제는 죄예요. 믿지 못하는 것이 죄예요. 왜 믿지 못하느냐 하면 내 안에 허물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 안에 연약함이 있기 때문이에요. 불안과 근심과 고통과 염려와 불신앙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것을 죄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때 우리는 이런 무지와 불신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깨끗하게 받을 수 있어요. 또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어요.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율법대로 살아야 되는데 율법을 꼼꼼히 읽어보니까 율법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뼈아프게 깨닫게 됐어요.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러므로 이제 죽음이 두려워졌어요.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 거예요.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데요, 고등학교 2학년 때인데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자려고 하다가 `내가 만약 오늘 그냥 죽는다면 어떻게 되지?' 제가 그때 믿음이 없이 흔들흔들했기 때문에 갑자기 무서워지더라구요. 그날 밤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요. 때로는 철없이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예요. 그거 제대로 안다면 무서워서 자겠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그 몸으로 해결하시고 이제 말씀하셔요. `네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너는 이제 내가 십자가에서 보여준 사랑을 믿고 나와 함께 살자.' 그거예요. 주님과 더불어 사는 거예요. 그 안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셨어요. 주님이 부활하셨듯이 이제 우리도 부활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노래하면서 이제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맙시다. 주의 일에 더욱 더 힘씁시다.' 라고 우리에게 권고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십자가야말로 인생의 모순의 극치예요. 예수님같이 바른 말을 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억울하게 십자가에 죽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겪는 억울한 모든 것의 극치적 표현이란 말이에요. 십자가는 인생의 모순을 가리킵니다마는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다면 십자가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요. 이제는 억울하고 원통한 모순이 아니에요. 그게 인생의 현실일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이 되는 거예요. 흔들릴 이유가 없어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의 싸움의 판도를 결정적으로 뒤바꾼 것이 뭐냐 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에요. 1944 6월이었어요. 그때 완전히 전세가 바뀐 거예요. 독일이 항복하는 거는 1945 5월이잖아요. 1년이 걸렸어요. 그러나 보세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이미 연합군은 승리를 얻은 거나 다름없어요. 적들이 저항하지만 이미 전세를 뒤집을 수 없어요. 결국에는 히틀러가 자살했잖아요. 그리고 전쟁은 끝났잖아요.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 여기에 긴장관계가 있어요. 예수께서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율법과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어요. 이미 해결되었어요.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가 죽는 그 날 전쟁은 끝나는 거예요. 내 인생의 현실 속에 아픔과 눈물은 여전한 거예요. 그러나 기억하세요. 이겼단 말이에요.

   예전에 우리가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서 일본과 최종예선을 했잖아요. 근데 그거를 다른 일이 있어서 실시간으로 못 봤어요. 할 수 없이 녹화로 봤어요. 일본이 한 골을 먼저 넣었어요. 그러나 걱정 안 해요. , 우리가 이긴 걸 알고 보니까. 한 골을 먹어서 모양은 불안한 것 같은데 더 재미있어요. 이긴 걸 아니까. 어떻게 역전승을 할 것인가 보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게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에요.

   오늘 세례 받고 입교 문답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특별히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학생들을 보니까 옛날 제 생각이 납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입교 문답을 했어요.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았으니까 다시 세례 받을 필요 없이 `내 입술로 나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게 입교잖아요. 근데 부끄럽게도 시골교회에서 제대로 모르면서 입교 문답을 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아쉬움이 많아요.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거예요. 이미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우리의 생명이 지어졌어요. 부모님의 은혜 속에서 자라났어요. 교회가 정한 때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문답을 하는 거예요. 이미 여러분의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그걸 기억하세요.

   저는 어렸을 때 주일 예배 끝나고 아버지가“가자”하면 하던 일을 얼른 내려놓고 따라 나섰습니다. , 경험적으로 아버지가“가자”그러면 틀림없이 맛있는 거를 사주시거나 영화관을 데려 가거나 뭔가 좋은 것을 주시려고 '가자' 하셨으니까요.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직은 잘 모르죠. 이제부터는 정신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고 듣겠습니다 라고 하는 약속이에요. 첫 출발이에요. 그거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신앙이 뭔가' 집에 가셔서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어 보세요. 그런데 개역改譯성경이 좀 어려워요. 표준새번역이나 현대어 성경으로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거기에는 작은 소제목이 있어요.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부활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구체적 사실과 신학적 논증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마지막에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에게 권고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귀한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들에게 부활을 약속하시고 내가 부활로 너를 붙들겠노라. 부활의 이 놀라운 약속으로 너를 사랑하노라. 주님이 주셨던 약속을 놓쳐버렸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늘 다시 한번 이 부활의 약속을 선물로 받고 마지막 그날까지 승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