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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0:1-7 ”새벽 이슬 같은 청년”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7. 21. 02:07

시편 110:1-7 ”새벽 이슬 같은 청년”|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스티그마 | 조회 27 |추천 0 |2019.07.19. 07:36 http://cafe.daum.net/stigma50/EfmC/945 


시편 110:1-7 ”새벽 이슬 같은 청년”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1.
하나님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생겨난 호칭이 주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주’라는 호칭도 죄인들이 함부로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2.
주여 주여 부른다고 해고 천국 백성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그분의 권능, 다스림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3.
‘주’라는 호칭은 고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씌었지만 이 시에서 다윗은 메시아를 주로 부르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실 것을 간구합니다.

4.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의 통치가 언제나 흡족하다면 그런 소원을 가질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 모두가 목마릅니다.

5.
인간의 통치는 언제나 기울게 마련입니다. 유토피아를 내세울수록 인간은 절대권력의 탐욕을 드러낼 뿐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스럽습니다.

6.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심각성을 깨달을수록 하나님 앞에 엎드려 두 손을 들고 통회합니다.

7.
그는 왕이 되었기에 사실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몸이 편해졌기에 더 큰 욕심을 부렸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자신에게 엎드렸기에 타락했습니다.

8.
다윗은 자신이 왕권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권능으로 다스리는 백성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신앙하는 이유였습니다.

9.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어야 할 옷은 화려하고 값비싼 옷이 아니라 거룩의 옷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결코 많은 소유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0.
거룩함의 특징은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두려움의 헌신이 아닙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기쁨의 헌신은 또한 창의적입니다.

11.
청년들은 어떨까요? 방황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분노가 이글거리지 않습니다. 그들 안의 희망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12.
새벽 이슬 같이 아름다운 청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극장입니까? PC방입니까? 클럽입니까? 아닙니다. ‘주’ 앞입니다. 다음 세대가 주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밝은 미래는 없습니다. 그런데 윗 세대의 신앙이 이끌지 않고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