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노란 고양이 눈-소설, 1971.08. [(1971年 現代文學 8月號), 2019년 9월 개작][오승재 지음]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9. 24. 04:38

노란 고양이 눈-소설, 1971.08.|소설, 콩트, 에세이, 칼럼

은혜 | 조회 23 |추천 0 |2019.09.23. 09:53 http://cafe.daum.net/seungjaeoh/J74U/84 

     

       "여보세요. 윌리엄 펠즈씨 댁입니까?"

나는 서른한 번째 수화기를 들었다.

". 미세스 펠즌데요."

여인의 목소리가 꽤 상냥하다. 이번에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가슴이 뛰었다.

"저 펠즈씨께선 댁에 계십니까?"

"안 계신데요. 거긴 어디지요?"

태평양 부동산소개소에 있는 필립 김입니다. 그런데 부인께선 부동산 투기엔 취미가 없으신지요? 이건 정말 잘 남는 장산데요.”

나는 행여 그녀가 수화기를 끊을세라 마구 주워댔다.

꼭 사실 필요는 없구요. 그저 부동산 투기라는 게 어떤 것인지 이야기라도 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여보세요?"

여인이 대화를 중단하기 위해 마구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말을 끊지 않았다.

"이건 돈 받는 게 아닙니다. 시간약속만 해주신다면 저희가 가서 알고 싶으신 모든 것을 설명해드리고 옵니다. 절 믿어주세요. 언제든지 좋으니까 시간약속 좀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노 댕큐."

전화가 달칵 끊기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빌어먹을!) 직업치고는 더러운 아르바이트라는 생각을 하며 그때까지 멍청히 들고 있던 수화기를 동댕이치듯이 내려놓았다. 까짓것 내동댕이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한 두어 시간 전화기를 들고 실랑이를 하면 십 불 내외의 수입이 되었기 때문에 쉽게 놓이질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전화 때문에 사람이 변해가는 기분이었다. 첫째는 한없이 자기 자신이 비굴하게 느껴지고, 둘째는 표독하게 거절을 당했을 때 강한 충격으로 오는 자기혐오는 자신을 반미치광이로 만들지 않나 하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하루 두 시간의 전화가 끝날 무렵은 누구든지 나타나기만 하면 물려고 달려드는 사나운 개처럼 되어있었다.

나는 얼마쯤 감정이 가라앉자 두꺼운 전화번호부에 색연필로 체크를 해 가며 또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부르스 페너씨 댁입니까?"

"그렇소. 누구시오."

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전 태평양 부동산소개소에 있는 필립 김인데요."

"노 댕큐."

말을 잇기도 전에 전화가 딱 끊기었다.

나는 또 다이얼을 돌렸다.

"마가렛 페리씨 댁입니까?"

나는 알지도 못한 사람에게 전화번호부를 두고 무조건 A자부터 시작해서 지금 F자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것이었다. 만난다는 시간약속만 해주면 일 불, 만일 만나서 계약성립이 되면 십 불, 큰 땅이 팔리면 백 불까지 줄 수 있다는 계약조건이었다.

". 누구시죠?"

"태평양 부동산소개소에 있는 필립 김인데요. 부인께선 훌륭한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우리 불루버드 부인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난 이건 잘 맞아 들었다고 기뻐했다.

"물론이죠. 그건 아주 훌륭한 활동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우리 사업에 찬동하시고 돈을 좀 기증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우리가 미처 부동산소개소는 생각을 못 했군요."

"기증이요? 네 경우에 따라선. 그런데 그런 회에서 혹 여유가 있으시다면 부동산에 투자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부동산이라니 땅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곧 목소리가 변하였다.

"우리는 그런 덴 취미 없어요."

전화가 딱 끊기었다.

(빌어먹을, 오히려 되 덤비는데.)

나는 수화기를 던지고 의자에 깊숙이 묻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가에 쳐놓은 가는 철망을 통해 야자수가 잡힐 듯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끔 자동차의 전조등이 노란 고양이 눈을 하고 앞을 살피며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 눈)

나는 밤중에 불을 밝히고 암고양이를 찾는듯한 이 고양이 눈 때문에 신경과민이 되어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무엇엔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불안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이 불안감은 미생물처럼 내 모세혈관의 각처에 퍼져서 마음의 평온을 뒤흔들어 놓고 내 설 자리를 홀랑 빼앗아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불안감이 밀려들면 내장에 두드러기가 생긴 것처럼 온몸이 가려워지고 장갑을 뒤집듯 내장을 확 뒤집어버리고 싶은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안절부절못해지는 것이다. 맨 처음, 이 불안감이 밀려든 것은 내가 오토바이를 배우기 시작하던 때였다. 면허증을 받지 못한 채 오토바이를 몰다가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걸렸었다. 그는 안테나가 붙은 둔중한 모터사이클을 세우더니 나더러 면허증을 내라고 했었다.

"깜빡 잊고 집에 두고 왔습니다."

나는 얼결에 말했다.

"사실이요?"

"그렇습니다."

그는 내 주소와 이름을 묻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무전기로 본부에 연락했었다. 오 분도 채 못 되어서였다. 내 면허증은 없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면허 운전, 속도위반의 쪽지를 떼어 나에게 건넸다. 불안감은 그때부터였다. 무엇을 하든 어디선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누군가가 추적하고 있는 듯한 견딜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게 했다. 한번은 내가 자신이 있던 과목의 숙제가 빨간 연필로 가득 코멘트가 붙어 돌려진 때가 있었다. 자신이 있어 제출 전날까지 머뭇거리지도 않고 낸 숙제였다. 마구 가슴이 떨리고 학문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왔다. 시험 땐 너무 자세히 쓰다가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부실했던 기초의 허가 드러나기도 해서 성적은 차츰 엉망이 되었었다. 유학을 온 나는 자꾸 몰리고 몰리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불안감은 늘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평온한 마음으로 교회에 출석하여 친구와 환담하며 아르바이트로 공부를 계속했었다. 그러다가도 이 증상은 뚜렷한 원인도 없이 불시에 일어나 나를 괴롭혔다. 잠이 오지 않고 소양감(가려움증)이 계속되면 나는 거의 광기를 느꼈다. 나는 이것이 병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의사는 진찰 후 컬처쇼크이거나 홈씩일 거라고 가볍게 말했다. 나는 표현 부족으로 내 병상을 영어로 잘 설명할 수 없는 것만 답답하였다. 제깐 놈의 나라 문화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내가 문화충격을 받겠는가 하고 의사를 욕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이 야릇한 증상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태평양 부동산소개소 소장 모리스의 우묵 들어간 눈자위에서 노란 고양이 눈을 보자 바로 이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곳곳에서 이런 눈매를 느끼고 있었다고 깨달았다. 쉽게 믿지 않고 따지고 드는, 또 남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은, 그리고 집요하게 자기의 꿈을 추구하는. 나는 이런 보이지 않는 눈에 의해 계속 쫓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지금쯤은 모두 피곤한 직장을 벗어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잡담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친개처럼 속이 상해있는 시간에 말이다. 그러자 소장 모리스의 번쩍이는 노란 눈이 다시 보였다. 녀석은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시간임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등불 밑 방안을 둘러보았다. 책상 하나, 의자 둘, 전화기 하나, 캐비닛 하나, 이것이 소장의 전 재산이었다. 그러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모리스는 자기가 백만장자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미스터 김, 아이디어가 물질을 능가하는 거야."

그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미친놈) 소망이 너무 간절하면 꿈이 되려 현실로 착각되고, 현실이 허망한 것으로 생각되는 법이다. 그러나 정신이 뒤집히지도 않고 허망한 꿈을 밀고 나가는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멀쩡한 내 정신이 뒤집힐 것 같았다.

내가 모리스를 생각하며 온몸이 스멀스멀해지려는 무렵 전화의 벨이 울렸다. 박성지에게서였다.

"나 수학 문제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데 좀 가르쳐 주지 않겠어요?"

그는 나와 함께 한인 기독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있는 친구였다.

"마침 잘 되었소, 어서 오시오."

그러잖아도 누군가 상대가 필요했다. 박 군은 나보다 일 년 전에 와서 곤충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요즘 회중시계 문제로 한인 학생 간의 말썽이었다. 마누라를 데려오는데 조부대로부터 물려받은 론진회중시계를 팔겠다고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광고뿐이라면 문제가 달랐다. 그런데 그것이 기사화되어 한국 학생 아무개가 부인을 데려올 여비가 없어 귀한 가보인 회중시계운운해서 한국 학생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공론이었다. 하와이(전라도) 출신이 하와이에 와서 한국 학생 망신을 시킨다는 등, 장학기간이 다 되었는데 주임교수를 삶아 기간 연장을 하려 한다느니, 이제는 부인을 데려와 미국 시민을 하나 낳아서 귀국할 셈이라느니, 온갖 비난이 떠돌고 있는 터였다. 처음 나는 그가 하와이 출신인 것을 알고 "어이 우리 이럴 것 뭐있어, 서로 말 낮춰서 하드라고" 하고 대들자 어색하게 "좋을 대로 해."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퍽 쑥스럽게 서로 반말을 지껄였으나 다음 만났을 때 그는 다시 존댓말을 써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썩 다정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그가 달리 다정한 친구를 가진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전공하고 있는 곤충학에 대해서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다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설탕 농장의 해충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약물살포의 방법이 아니고 암컷이 발산하는 강한 성적인 냄새를 풍겨 수컷을 모아 집단으로 살해하는 연구라는 말도 있었다. 또 이건 무자비한 방법이어서 교미도 하고 일생을 살되 생산능력을 마비시키는 그런 방법의 하나라는 말도 있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박 군이 노크하고 들어서더니 노란 봉투에서 이슬이 엉킨 맥주 깡통 두 개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박 형, 그래 수강료부터 내는 거요? 그렇다면 한 다스를 사 온다든지."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김 형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라며 그는 쑥스러운 표정을 하더니

"냉장 상태로 그냥 들고 왔습니다."라고 하며 방안을 휘 한번 둘러보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두 발을 올리고 답답한 속에 맥주를 부어 넣었다.

"아 이놈이 통 이해가 안 된단 말입니다. 미국은 웬 놈의 수학을 생물학에서도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는 성급하게 선형대수의 책을 펴들고 가까이 왔다. 얼마 동안 설명을 듣더니 그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말했다.

"그런 걸 몰랐구먼요. 참 내가 김 형만큼 수학을 알면 박사학위는 문제가 없을 거요."

나는 이 녀석이 소문난 대로 좀 구린 데가 있다고 생각하며 넌지시 물었다.

"그래 박 형, 그 회중시계는 팔렸소?"

"참 그놈들 세심 하드만요. 내 시계의 시리얼넘버를 알려달라고 합디다. 회사에 문의 해봐서 그것이 분명 골동품이면 사겠다는 거요."

나는 박 군이 자기에 대한 비난보다 미국인의 머리 쓰는 것에 더 감탄하고 있는 듯한 차분한 태도 때문에 마음이 다시 울렁울렁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회중시계가 기사화되어 말이 많습디다."

나는 그가 알아듣도록 말하였다.

"그건 자기들 생각이지요. 누가 기사화했나요? 광고를 내겠다니까 자기들이 달려왔지. 여기서는 옳다고 생각하면 자기 주관대로 살아야 합니다. 누가 돈을 대줍니까?”

그러더니 그는 책을 주섬주섬 모으고 봉투와 깡통을 쓰레기통에 넣은 후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다. 나는 창가에 나가 드르렁드르렁 소리를 내고 가는 그의 고물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맥없는 전조등 불빛이 몇 번 깡충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2

 

"어떨까요? 레이(하와이에서 목에 거는 화환)라도 사 들고 갈까요?"

나는 나에게 라이드를 주는 한인 기독교회에 있는 미국인 목사에게 물었다.

"나쁘지 않군."

유난히 키가 큰 그는 꽃집 앞에서 차를 세우며 말했다. 나는 내려서 즐비하게 있는 꽃집 하나를 골라 들어섰다. 하와이 옷인 긴 무우무우를 걸친 처녀가 다가왔다. 나는 플루메리아를 실에 꿴 화환을 가리켰다.

"한 꿰미에 얼마죠?"

"일 불이에요"

그녀는 상냥하게 웃었다. 나는 일 불을 꺼내주며 소개소에서 전화하던 버릇으로 그녀 칭찬을 하였다.

"이 많은 꽃집에서 특히 이곳에 들른 것은 아가씨가 예뻐서요."

그녀는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두 꿰미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미스터 김, 수완이 대단한데."

육순이 다된 목사는 차에 돌아오자 웃으며 말했다. 그의 손엔 꽃이 가뜩하였다.

공항 출구에서 내가 서성거리며 박 군의 부인을 찾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어머, 김 선생님."

하고 반가운 한국말이 들리며 질겁을 하고 한 여인이 뛰어나왔다. 나는 처음 어이가 없어 얼마 동안 멍청히 서 있었다. 그녀는 고향 교회 김 집사의 딸, 임 정숙이었다.

"정숙이 박 선생의?"

나는 얼결에 말하였다. 그녀는 안길 듯이 달려오다가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서더니 말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한걸음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우리의 착잡했던 과거와 오늘의 기구한 현실을 느끼며 다가가 꽃을 목에 걸어주었다.

"알로하."

그녀의 귓바퀴가 벌겋게 되어있었다. 목사에게 그녀를 소개하자 그도

"알로하."

하고 꽃을 걸어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차의 트렁크에 그녀의 짐을 싣자 우리는 뒷자리에 앉아 공항을 출발하였다. 내가 박 군이 나오지 못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 그녀는 예정일에 도착하지 못한 일을 장황히 설명하였다. 출국 절차가 복잡한 한국 일들이 눈앞에 선하게 나타나며 한국 냄새가 확 끼쳐오는 기분이었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던 일이며 제대 후 그녀 집을 찾아다녔던 일이 생각났다. 그녀의 달콤한 입술의 감각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나기도 했다. 구혼한 것은 내 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모친에게서 거절을 당하였다. 일류대를 나오지 않은 남자에겐 딸을 줄 수 없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어머니의 어처구니없는 꿈을 무시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김 집사는 자기 딸이 영리하지만, 시험 운이 없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정숙은 성적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류중학교에 합격 하지 못하였다. 고녀 때도 그녀는 성적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는 모친의 원대로 일류 여대에 합격하지 못했었다. 그녀의 모친은 늘 그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며 결혼만큼은 자기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웃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모욕 속에서 정숙과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윽고 나는 직장을 구하여 고향을 떴다. 그 뒤로 정숙이 한번 찾아왔었다. 그녀는 하숙방에서 자고 가겠다고 우겼다. 끝내 그녀가 설득되지 않자 나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버렸었다. 이것이 그녀와 마지막 만난 기억이었다.

나는 그녀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았다. 일류병에 걸려 있는 그녀의 모친을 원망했을 뿐이다. 그런데 김 집사는 교회에서 성령을 받은 집사라고 부인들 간엔 선망의 대상이었다. 방언도 하고 안수도 했는데 내 모친도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을 안수받은 후론 말끔히 좋아졌다고 김 집사의 신유(神癒)의 은사에 탄복하고 있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그때도 어렴풋이 소양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마지막 찾아온 날 밤 내가 옷을 입고 나가기 직전 그녀의 말을 기억했다.

"거짓 사랑이었거나 아니면 신념이 불투명하기 때문이에요. 왜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우리가 결혼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는 축적된 불만을 터뜨릴 대상이, 나 자신인 것을 알고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정숙이 일류대를 나온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있다고 너무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며.

"김 선생님은 미국 냄새 같은 것을 안 느끼셔요?"

정숙이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말했다.

"미국 냄새요?"

나는 차창 밖으로 자동 분수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잘 깎인 잔디에 무지갯빛의 물방울을 날리고 있는 것을 보며 물었다.

"미국에서 온 항공엽서나 소포를 뜯으면 이상한 미국 냄새가 났었어요. 그런데 여기선 그 냄새가 꼭 차 있는 것 같애요."

그녀는 나를 외면하고 차창으로 눈을 돌린 채 말했다. 그녀는 말없이 눈웃음을 칠 때 이외에는 외면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전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독점욕이 강하거든요."

그런 말을 할 때 외면하고 있는 보얀 그녀의 귓불이 예쁘다고 나는 생각하곤 했었다.

"글쎄요."

나는 그녀의 귓불을 보며 차가운 것이 가슴을 섬광처럼 스쳐 가는 것을 의식했다. 박 군으로부터 항공엽서나 소포를 받고 껴안은 채 박 군을 그리워했을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플루메리아, 레드진저, 히비스커스 등 원색 꽃들이 꽉 차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정말 향기로운 냄새에 취한 사람처럼 행복한 표정이었다.

박 군의 셋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입구 울타리에 피어있는 레드진저를 보고 소녀처럼 깡충깡충 뛰어갔다.

"정말 향기가 좋아요."

내가 차에서 짐을 내려 들고 가자 그녀는 목에 걸어준 꽃과 울타리에 피어 있는 꽃을 비교하며 나를 향해 말했다. 이때 이 층에서 미국부인이 누구냐고 소리치고 박 군이 맡겨놓은 열쇠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소리쳤다.

열쇠를 열고 들어서자 그녀는 부엌 겸 응접실인 방을 한번 휘 둘러보고 문을 열어 좁다란 침실을 들여다보고 다시 들어가 뒷문을 열어 깨끗이 깎인 잔디를 둘러보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핑 돌아섰다. 한 손으로 그녀는 침대 가를 쓸며 걸어 나오다가 머리맡에 놓인 닭털 베개를 보자 들고 가슴에 꼭 껴안았다. 무심코 이런 동작을 보고 있던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돌아섰다.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었다.

 

3

 

박 군의 부인이 도착하여 일 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저녁 초대를 받았다. 좀 야비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첫 사랑하던 여인의 가정생활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호기심이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마실 것을 좀 사 들고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특별히 신혼부부(결혼해서 일 년도 못 되었으니까)의 아기자기한 모습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아 부러워하는 체하는 화제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마치 식탁에 마주 앉은 그녀의 드러난 팔에 많은 상처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부인 팔이 왜 그러십니까?"

하고 말을 꺼냈다. 그녀는 잽싸게 팔을 탁자 밑으로 내리며 얼굴을 붉히고 박 군을 쳐다보았다.

"박 형, 장난이 너무 심하신 게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은 물어뜯은 흔적이 아니었다.

"아니에요, 모기에 물렸어요."

"여긴 모기가 있나요?"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니에요, 며칠 전에 정크 야드(폐차장)에 갔어요."

"무슨 그런 소릴."

박 군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때요. 우리 차 고물이란 것은 다 아는 처진데."

나는 그녀가 도착해서 얼마 되지 않은 때 마켓에서 그들을 만났던 것을 회상했다. 차가 고장이 나서 밀고 있었는데 나는 그녀가 창피해할까 봐 모른 체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거들어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가까운 서비스 공장까지 밀어다 주었었다.

"타이어라도 갈아 끼웠나요?"

"뭐 좋은 게 없나 하고 그저 가본 건데 머플러가 말짱한 게 있어 떼어왔지요."

박 군이 쓴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머플러를 쇠톱으로 썰어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산더미처럼 버린 고물차 사이에 들어가 라이트를 켜놓고 폴리네시아인들의 모기 춤처럼 퍼덕거리며 모기를 쫓으며 쇠톱 질을 한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도 좋은 아이디업니다. 하나씩 새것으로 갈면 새 차가 되지 않겠어요?"

나는 위론지 익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우리 차를 타면 머플러가 달리는 기분에요. 그리고 이상하게 정크 야드의 냄새가 나서 골치가 아파요."

박 군은 그것은 쓸데없는 선입관이며 그는 이 차로 어려운 운전시험을 어떻게 무난히 치러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아무리 예쁜 미국 아가씨라도 데이트할 수 있을 훌륭한 차라고 호언장담했다.

식사가 끝나고 맥주를 들면서 박 군은 한인 기독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는 이 교회는 골이 빠져버린 곳이라고 했다.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이곳은 리승만 대통령이 1915년 한인교회의 독립을 주장하여 한인 감리교회에서 분립한 것이었다. 그 뒤 국민회를 일시 리 박사가 장악했던 때나 1952년 동지회를 조직했을 때는 리 박사의 독립운동자금 조달을 이 교회 지도자들이 주로 맡았었다. 그러나 막상 독립이 성취된 뒤는 목적을 상실하고 김이 빠졌다는 것이다. 현재는 교인 수가 오륙십 명에 불과했고 그도 대부분이 사진 혼인 때문에 어린 처녀로 입국해서 뼈가 굽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박 군은 그들의 근본적인 믿음 자체도 매우 편협하고 폐쇄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솔직히 이 교회에 대해서도 그런 비판적인 안목을 갖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목사관이나 교육관을 갖고 있었고 다른 교회가 하는 일상적인 종교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마음의 평안함이 있었다. 다만 이 교회가 조국의 교회들과 다르다면 광신적인 면이 없었고(좋게 말해서 영통력이 없었고) 교인을 유인한다든가 헌금을 강요하는 면에 있어서 의욕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개개인의 관계인만큼 교인이 교회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그것으로 교회는 기능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노동으로 일생을 바쳐버린 그들에게 내세의 소망을 안겨줌으로 무의미한 여생을 보람있게 해주고 있는 것은 교회의 큰 공헌이라고 봅니다."

"그것 보세요. 당신의 신앙은 머리로 믿는 신앙이에요. 생명을 맡기고 의존하는 심정으로 믿는 신앙이 아니란 말이에요."

정숙이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공격해왔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김 선생은 성령을 믿습니까?”

왜요?”

성령을 받지 않고 교회 다니는 것은 예수를 안 믿고 교회 다닌다는 겁니다. 제 집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은 성령을 받아야 하며 자기는 성령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성령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일러준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했으니 믿는다는 사람은 자기가 알든 모르든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보세요. 김 선생님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녀는 울먹이며 문을 꽝 닫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박형, 너무한 게 아니오?"

"가만두세요."

그는 맥주 깡통을 들고 의자 등에 머리를 기대었다.

"저는 성령이란 일종의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명감도 있기 전에 성령이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건 성령도 아니고 자기 멋대로 그린 무녀도(巫女圖)요 결국 종교와 미신이 미분화 상태에 있다는 말이에요.“

소명의식이 있겠지요.?”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거든요. 저녁준비를 하지 않고 목욕을 한 뒤 머리를 풀고 멍하게 앉아 있다든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정말 구토를 한다든지."

"혹 임신이 아닙니까?"

그는 고개만 흔들었다.

"너무 피로한 게 아닙니까? 무슨 직장이라도 나가고 있나요?"

나는 정숙이 입국 당시의 명랑한 표정을 잃고 지난주 교회에서는 망하던 게 약간 병적인 것 같다고 느낀 것을 기억했다.

"너무 한가해서 공상이 지나친 게 아닌가 해서 지난주부터 세탁소엘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박 군은 정숙의 병적인 상태가 신앙에 있다고 보는 것 같았으나 나에게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았다. 건강이 나빠진 데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저 같으면 세탁소를 내보내지 않겠습니다."

"이건 돈 때문이 아닙니다. 벌면 얼마를 벌겠어요? 그러나 성령이 무얼 일러준다는 것은 망상에 대한 확신이거든요."

이 녀석이 처음부터 부인을 데려온 것은 일을 시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세탁소의 근무도 그의 고의적인 강압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아무튼, 난 건강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나는 박 군의 집을 나왔다. (자식, 장학기간을 연장하여 박사학위를 노린다. 아내를 데려와서 미국 시민을 낳으려 한다) 이 소문이 어디까지 맞을까를 생각했다. 녀석 마음속에 무엇인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모리스처럼 시원하고 선명하게 자기표현을 하지 않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만일 정숙의 병이 악화하여 알려지게 된다면 한국 학생 간에 또 어지간히 파문이 일겠다고 마음이 어두워졌다.

 

4

 

"여덟 시에 만나자고 했던 건 스튜워드였지?"

하고 모리스는 고양이 눈을 나에게 돌렸다. 내가 졸음으로 까칠까칠해진 눈으로 전화번호부를 내리읽으며 그렇다고 말하자 녀석은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양발로 마룻장을 땅 구르며 일어섰다. 그는 캐비닛을 열어 지적도와 선물용 트랜지스터 몇 대를 꺼내어 가방에 넣고 나갈 채비를 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 전화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십 분도 채 못되어 전화의 벨이 울었다.

"미스터 김이요? 나 지금 미스터 미카엘 스튜워드 집 근처까지 왔는데 삼분 뒤에 전화 좀 하시오. 오케이?"

소장 모리스의 원기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시계를 보고 있다가 삼 분 후에 다이얼을 돌렸다.

"헬로우, 스튜워드 씨 댁입니까? 혹 지금 태평양 부동산소개소 소장인 모리스 씨가 들르지 않으셨나요? 어쩌면 문밖에서 이야기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제발 전화 좀 대주십시오. 지금 이곳에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땅을 사고 싶다고 말입니다. , , 꼭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찌푸린 눈으로 수화기를 노려보았다. 모리스가 문전에서 쫓겨나는 것을 방지하고 그를 집안으로 침입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래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모리스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나 태평양부동산 소개소의 모리습니다. 윌리암 라벗슨 씨라구요? , 그렇습니다. 그렇지요. 빅아일랜드엔 곧 국제공항이 생길 예정으로 지금 땅을 사두면 굉장한 이익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상대자도 없는데 모리스의 굵은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공전하고 있었다.

"이것 참 죄송합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시면 지적도를 가지고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실은 이곳 스튜어트 씨께도 그곳 형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종교적인 양심으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 없다고 한번 모리스 씨에게 말한 일이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눈을 크게 뜨고 놀랐었다.

"거짓말이라뇨.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하는 말은 하나도 거짓이 없습니다. 이것은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 무지한 그들에 대한 나의 최대의 봉사요. 나를 믿어주시오. 그들은 전문적인 안목이 없습니다. 내 머리로 그들에게 돈을 벌도록 해주는 것이오."

"하지만 오지도 않는 사람을 왔다고 말하고 상대도 없는 데 있는 체하고 전화질을 하는 것은 분명 거짓이거든요."

"미스터 김, 당신은 그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상대방이 내 소개소에 와서 땅을 팔라고 조르는 모습이 선하게 봅니다. 또 그의 목소리를 선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어떻게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신만만하게 전화로 대화를 계속할 수 있겠소? 이것은 사실보다도 더 참된 것이요. 인간은 타성과 안일 때문에 초점 없이 산만한 사실만 보고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놓치는 일이 많소. 미스터 김은 정말 둘러 먹는 일이라면 그런 일을 하룬들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궤변인 줄 알면서도 그의 요설(妖說)에 속는다. 정말 거짓말을 어떻게 그렇게 하고 다닐 수가 있겠는가. 그의 눈에는 보통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가 또렷이 나타나 보이는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녀석은 자기의 꿈을 과신한 나머지 꿈이 현실로 착각되고, 그 착각된 현실 속에서 사는 것이리라. 말하자면 약간 미친 것이다. 나는 현대인은 누구나 약간은 미쳤다는 게 사실일 거로 생각했다. 인간은 대낮엔 모두가 한 태양 아래 같은 세계를 공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태양이 지면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개개인이 되며 자기 나름의 꿈을 꾼다. 그들의 꿈은 자기 나름대로 확대되어가고 자기 나름대로 꿈에 대한 확신을 굳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태양이 뜨면 그 꿈을 실현하려고 덤벼든다. 자연과 조화되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개의 꿈들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집요한 노력이 이 세계를 끊임없이 변화시켜온 것만은 사실일 것이었다.

나는 모리스의 노란 눈을 보고 있으면 쇼펜하워의 의지에 대한 말이 생각나곤 했다. 모친의 생명에 대한 집요한 의지가 태아의 살을 뚫고 모세혈관을 형성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전화번호부를 덮어버리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눈까풀이 까칠까칠 아팠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까지 나는 잠을 못 잤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선 석사 자격시험을 생각하자 불안이 앞섰다. 지난 학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마저 실패하면 나는 귀국하거나 과를 바꾸어야 할 처지에 있었다. 나는 시험을 대비해서 정리해놓은 카드를 앞에 놓고도 아예 손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모리스는 나에게 성공했던 경험을 상기하라고 했다. 전화하기 전에 먼저 설득했던 경험을 상기하라. 그리고 확신을 가지라. 그런 뒤에 다이얼을 돌리고 그때의 영감대로 대화를 계속하라.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맞아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대부분이 실패였다. 나에게는 패배감밖에는 없었다. 나는 앉아서 시험과는 연관도 없는 공상만 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유학을 올 때 교회 윤 장로의 우렁찬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 학문만 배우지 말고 하나님의 참 진리를 배우고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비옵나이다"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집안 재산을 송두리째 교회에 바치고 종지기가 된 윤 장로가 기도하던 내용이었다. (세상 학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참 진리? 이건 또 무언가?)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상념들이 머리를 스치면 이제는 시험 준비 카드 따위는 들여다보기도 싫어진다. 결국, 나의 실패는 모리스의 소개소 전화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공한 경험을 상기하라. 그것에 자신을 가지라. 그러나 나는 실패한 경험밖에 상기할 것이 없다. 오래도록 잠이 오지 않고 머리가 아프며 어지러워진다. 숨이 가빠지면서 덥다고 느낀다. 옷을 벗어 던진다. 온몸이 가려워지고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이다. 심호흡하며 미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러나 소양감은 가시지 않는다. 소리를 내어 마구 악을 쓰고 싶어진다. 나는 방을 몇 바퀴 돌다가 침대에 몸을 던진다. 방죽에 돌을 던졌을 때 나타나는 나선형의 파문 같은 게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나는 눈을 감고 무진 애를 쓰며 이 어지러운 증상을 피하려고 한다. 주기적인 속도가 가속되면 미치리라 생각한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커다란 손이 나타나 양편 견갑골을 누르는 꿈에 깜짝 놀라 일어나서 나는 세 시간쯤 잠들었던 것을 알았다.

나는 어젯밤의 피로 때문에 아물아물 잠든 상태에서 전화벨 소리를 듣자 등골이 오싹해지며 놀라 깨었다. 수화기를 들자 박 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형, 큰일이 났어요. 빨리 좀 집에까지 와주세요. 제발 빨리요."

가슴이 둥둥둥 북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멍청히 수화기를 들고 있는데 저편에서 찰칵 끊었다. 정숙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요 삼 주일간 나는 그들을 교회에서도 만나지 못하였다. 박 군은 석사 논문 준비 때문에 나오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꿈속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밤을 싫어했다. 땅거미 지기 시작하면 을씨년스러워지고 어둠이 꽉 차면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남의 정신으로 차를 몰았다.

박 군의 집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자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뛰어나왔다.

"지금 제 집사람이 뒤 잔디 우에 누워있어요. 가서 좀 침실까지만 데려다주시오. 네 부탁입니다. 김 형 말 밖에는 듣지를 않습니다."

그는 바르르 떠는 손으로 내 양팔을 붙들었다.

"나를 보기만 하면 눈이 뒤집혀 막 악을 쓰니 어떻게 합니까? 이웃 부끄러워서도 큰일입니다."

나는 떠밀리는 대로 침실로 들어섰다. 그가 따라와서 나를 붙들고 수면제를 가리키며 침실에 눕히면 이걸 먹여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평소에 침착하던 그가 사시나무처럼 떠는 것을 역겹게 노려보며 몽유병자처럼 걸어 나갔다.

뒷문을 열고 잔디를 바라보았다. 뒷집 미국인 집은 엷은 핑크색 커튼이 쳐있고 그쪽 외등이 뜰을 밝히고 있었다.

정숙이 긴 파자마 바람으로 잔디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가 나는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머리를 풀고 마치 잔디를 애무하다 지쳐버린 사람처럼 팔을 길게 뻗은 채 쓰러져있었다. 볼은 무엇에 부딪혔는지 퍼렇게 멍들어있었고 입술은 침에 젖어 빤질거렸다.

"미세스 박,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요?"

나는 나직이 말했다.

"헬로우, 미스터 김."

나는 깜짝 놀라며 머리끝이 쭈뼛 올라서는 것을 알았다. 나를 알아본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녀의 음색은 정말 정신병자의 것처럼 변질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되찾으려고 땀을 흘리며 말했다.

"절 알아보시는군요. , 방으로 갑시다."

"헤이, 유 노?"

그녀는 또 영어를 지껄이며 씽긋 웃었다. <헤이 유 노?>는 박 군이 제일 많이 쓰던 영어였다. 그러나 그 음색과 웃음이 기분 나빴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목 밑으로 팔을 넣어 가만히 일으켰다. 그녀는 다행히 반항하지 않고 교태를 부리듯 몸을 기대왔다. 이번에는 허리에 팔을 돌리고 걸으려 할 때였다. 그녀는 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커다란 소리를 질렀다.

"마귀요. 저기 마귀가."

나는 그때 파자마 깃 위로 길게 뻗은 목에 굵은 힘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며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제가 보구 왔습니다. 마귀는 없습니다."

나는 그녀를 걸려 침대에 앉히었다. 그리고 컵에 물을 따랐다.

"약 드십시오."

그녀는 순순히 물이 든 컵을 받아쥐었다. 그녀는 내 말을 다 알아듣고 있었다. 완전히 정신이 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입에 물을 머금었다. 그러나 내가 약을 내밀려 했을 때였다. 그녀는 머금었던 물을 내 얼굴에 확 뿌리며

"마귀야."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뒤집힐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나는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다시 약을 내밀었다. 나선형의 파문이 빙글빙글 머릿속을 돌고 있었다. 이번에는 순순히 받아마셨다. 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뒷문을 걸고 거실로 걸어 나왔다.

"약은 먹었어요?"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쓰러지듯이 의자에 앉아 본정신을 회복하려고 눈을 감았다. 나선형 파문이 커지면 몸도 같이 팽창하다가 그것이 사라지면 전율이 오고 다시 파문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박 군이 말했다.

"그놈의 맹신 때문이오. 제가 이번 논문은 통과될 것 같다고 말하고 이번 여름방학엔 본토에 가서, 공부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심한 발작을 하더니 저렇게 되어버리질 않겠소."

나는 잠을 못 자서 기분이 언짢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오토바이의 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자 마구 달리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입원시키는 게 좋겠소."

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속력껏 차를 몰았다.

 

5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자격 고사는 예상했던 대로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 귀국할 생각을 하고 책을 도서관에 반환하러 갔다. 도서관 정문 앞은 잔디가 모양 있게 가꾸어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학생들이 지름길을 만들어서 그 부분만 잔디가 볼품없이 짓이겨져 있었다. 그런데 내가 책을 반환하러 갔을 때는 어느새 콘크리트의 지름길이 생기고 잔디는 새로운 모양으로 꼴을 바꾸고 있었다. 학교는 새로운 지름길을 콘크리트로 하나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이제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그 지름길을 걷고 있었다.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버린 나무 같은 심정이었다. 약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름길을 걷고 있을 땐 그래도 나는 이 땅에 뿌리를 뻗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콘크리트 길 위에 뿌리뽑힌 나무로 덩실 올려진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내 꽁무니를 끈덕지게 따라다니며 내가 뿌리를 뻗고자 하는 토양을 샅샅이 포장해버리는 것 같은 불안감이 따라왔다.

퀸 병원의 정신병동에 입원한 정숙을 생각했다. 잔디에 쓰러져있던 그녀의 볼에 있던 멍든 자국이 잊히지 않았다. 내 마음속도 장갑 뒤집듯 뒤집어놓으면 그보다 더한 멍든 자국이 이곳저곳에 있으리라는 생각했다. 박 군이 시험공부를 한다고 하면 집에 있지 못하고 공연히 시내를 걸어 다녔다는 그녀가 가련해지기도 했다. 일류대생에게 시집 보낸 희생양이었다.

(정숙과 나는 무슨 꼴인가?)

꽃을 몇 송이 살까 하다가, 그만두고 그저 한 번쯤 그녀를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병동 입구에 안내하는 여인이 앉아 있고 왼편 양지바른 곳에는 노천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고 면회 간 사람이 앉아 있거나 가벼운 환자들이 혼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밑 좀 응달진 곳에서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TV를 즐기고 있었다.

정숙의 병실은 싸구려 입원실이어서 늘어선 침대를 커튼으로 구별하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박 군이 와 있었다. 정숙은 침대에 앉아 있었고 박 군은 무릎을 세워 침대 곁 마루에 앉아 둘은 손을 꼭 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정숙이 작은 소리로 계속 중얼대는 것이 들렸다. 나는 방해하고 싶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안내인에게 그녀의 경과를 묻고 담당 의사가 누구냐고 물었다.

"저기 오시네요. 미세스 헬렌 초이"

하고 바른편 복도를 가리켰다. 나는 인사를 영어로 했더니 한국분이시죠?’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의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반가워 정숙의 경과를 물었다.

"좋은 편이에요. 이삼일 있으면 퇴원할 거예요."

우리는 노천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원인이 뭔 것 같습니까?"

나는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여러 가지 있겠지만 세탁소에서 있었던 게 가장 큰 쇼크가 아니었을까요."

"세탁소에서요?"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모르셨나요? 그때부터 정신신경증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세탁부가 자기네끼리 웃으면 비웃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대학까지 나와 세탁부 노릇을 한다고 말이에요. 그래 매니저에게 이야기했어요. 두 사람이 불려가서 주의를 들었는데 그 여인들이 왈패였던 모양이죠? 불러내다 두들겨준 거지요."

정숙의 볼이 멍들어있었던 것을 회상했다. 돼지같이 살이 찌고 키가 작은 갈색 하와이안이 떠오르며 몸이 떨렸다.

"그래 가만뒀나요?"

"물론 항의해서 그들은 해고되었대요. 하지만 잘못은 이곳에도 있었으니까."

"박 군은, 미세스 박의 병이 그릇된 신앙 때문이라고 늘 말하고 있었는데."

"글쎄요. 그런 점도 있었겠지요. 그런 환자에겐 논쟁은 금물이니까요. 무턱대고 모든 주장은 수긍해줘야 해요. 그러나 내가 보기론 부풀었던 큰 꿈이 갑자기 깨졌다고나 할까, 자기 가치나 목적의식의 상실이라고 할까, 그런 데서 온 충격이라고 봐요. 거기다 무리한 노동이 겹친 거지요."

"전 처음부터 세탁소 근무를 반대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재정적으로 어려워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녀는 임신 중이었거든요."

"그래요?"

내가 두 번째 충격으로 멍해 있을 때 안내 쪽이 시끄러워지며 웬 여인이 일본말로 욕을 퍼부으며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닥터 초이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박 군이 나에게 부인의 임신을 왜 숨기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부인의 임신을 떳떳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미국 시민을 낳고 그 애를 미끼로 언젠가 다시 입국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짜식, 기간을 연장하여 박사학위를 노리고, 이제는 미국 시민까지 낳아서 귀국하려 한다는 소문이 사실 아닌가?) 나는 또 한 사람의 모리스를 보는 것 같았다. 집요하게 꿈을 추구하는. 그 둘에 차이가 있다면 모리스의 것은 양지의 꿈이고 박 군의 것은 음지의 꿈이라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것이 동양인의 꿈을 추구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데이트하면 미국 여성은 즐거워 어찌할 줄을 모르는 표정과 표현을 한다. 그러나 동양 여인은 피동적으로 아닌 체함으로써 자기의 값을 높이려 한다. 모르는 체하고, 가난한 체하고, 기쁘지 않은 체하고, 무엇이나 남모르게 하려 한다.

(나는 이 나라에 와서 학문하는 데 실패한 낙오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은 체해야 하는가?)

나는 이 나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란 고양이 눈에 쫓겨 귀국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모리스에게는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예고를 하고 짐을 싸서 배편에 부쳤다. 한인교회에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성가대장은 메시아 공연을 마치고 가라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딴말을 꺼냈다.

"이번에 말야, 일리카이 호텔에서 우리 성가대원을 초청한 걸 거절해버렸지!"

"아까와"

한국인 이세의 부인이 우리말로 지껄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한국말은 이것뿐이었다. 어머니가 남은 음식을 버릴 때마다 쓰던 말이기에 배웠다는 것이다.

"본토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를 초대한다. 어쩌고 해서 일축해버렸어."

"그건 해석을 잘못한 게 아니오?"

바바라가 불평하고

"아무튼, 한국 사람은 배짱이 있어."

하고 누군가가 말하고. 그러자 성가대장이 짝짝 손뼉을 쳤다. 연습을 시작하자는 신호였다. 이것이 배짱 있은 사람들이 다니는 한국 교회였다.

육순이 넘은 할머니들은 옆방에서 긴 나무 책상에 둘러앉아 언제나처럼 늘어지게 한국 찬송가를 부르며 고기를 찢고 있었다. 통조림 할 것이었는데 기계로 자른 것보다 찢는 게 맛이 있대서 맡아 돈을 벌고 있다. 교회는 주로 이 돈으로 운영되고 그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의 터전이었던 이 교회가 개방되지 않고 이대로 한인 기독교회의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이 소원이었다.

떠날 때 공항에 박 군이 나왔다.

"부인은 퇴원했소?"라고 내가 묻자

". 김형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꼭 같이 나오려고 했는데 이리됐습니다."

하면서 작은 트랜지스터 하나를 선물로 나에게 주었다.

"뭐 드릴 게 있어야죠."

나는 정색을 했다.

"박형. 왜 우정을 순수하게 받지 못하십니까?"

"정말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는 비굴할 만치 친절하게 내 가방에 그걸 넣어주었다.

교회에서 꽤 많은 환송객이 나왔기 때문에 내 목은 레이로 묻혀있었다. 떠날 때를 몇 분 안 남기고 모리스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았다.

"헤어지게 되어 정말 서운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노란 눈을 보며 나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호주머니에서 종이쪽을 하나 꺼내주었다.

"혹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백 불의 수표였다.

"이게 뭡니까?"

"가지시오."

"그럴 이유가 없는데요?"

"당신은 날 잘 도와주셨으니까요."

내가 고맙다고 호주머니에 넣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한국 도자기를 잘 식별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전혀."

"혹 그럼 친구라도?"

"왜요?"

그는 다시 종이쪽 하나를 꺼냈다.

"이 사람이 국보급 도자기를 수종 갖고 있다는데 한국에 가면 좀 찾아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의아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걸 아시지요?"

"한국에 주둔했던 군인 친구에게서 들은 건데 아마 도굴한 모양이요. 그런데 감별 능력이 없어서 사 오질 못한 것 같아요."

내가 탄 비행기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왔다.

"전 그런 일은 못 합니다."

나는 수표를 꺼내주었다.

"아니요, 그건 상관없는 돈이오. 기분이 나쁘다면 잊어버리시오."

그는 당황히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선물 트랜지스터를 받은 사람은 십중팔구 땅을 산다는 그의 상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수표를 땅에 던지고 도망하다시피 출구로 뛰었다.

기체에 올라 트랩에서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좌석에 앉았다. 목에 건 레이를 스튜어디스가 준 비닐봉지에 넣어버리자 처음으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이내 쇳소리를 내고 비행기는 이륙하기 시작했다. 나는 밖을 내려다보았다. 무더운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비행기의 꽁무니를 따라오는 기분이었다. 차츰 이 아지랑이는 뱀의 혀처럼 바뀌고 땅바닥에 던진 백 불의 수표가 짓궂게 내 뒤를 쫓아오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푸른 하늘과 난롯가의 잡담과 고스톱의 소일과. 이 모든 것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노란 고양이 눈은 한국까지 올라와 기어코 내 뿌리를 뽑아버릴 모양이었다.

(1971年 現代文學 8月號), 20199월 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