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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상한 분, 독한 분, 순진한 분 / 최현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12. 13. 17:01

[편집국에서] 이상한 분, 독한 분, 순진한 분 / 최현준

등록 :2019-12-12 09:21수정 :2019-12-12 09:36

 

최현준

법조팀장

이상한 분, 독한 분, 순진한 분.

김지운 감독의 11년 전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제목을 따왔다.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라는 당대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아 6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모은 흥행작이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문재인 대통령을 대입해 보면 어떤가.

이상한 분. 지난 6월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될 때,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에 직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합리적인 비판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때 권재진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행을 반대했던, 당시 야당이었던 지금의 여당은 조국은 검찰 출신 권재진과 다르다는 이상한 논리로 찬성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다. 조국은 온 가족이 검찰 수사를 받았고 부인과 동생이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고, 본인은 또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독한 분. 지난 6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될 때 법조계에서는 설마?하는 의견이 많았다. 사법연수원 기수 23기 윤석열 검사장을 5기수를 뛰어넘어 검찰총장으로 직행시키는 게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되는 관례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정치적 눈치 보기를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합리적인 반대였지만, 청와대는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과거 여당 시절 윤 총장에게 당했던 지금의 야당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의 임명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다. 그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칼을 휘두르는 통에 청와대는 조국 카드를 날린 것은 물론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김기현 하명수사 의혹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순진한 분. 문재인 대통령은 이 모든 판을 설계했다.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많은 이들이 반대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들이 환상의 짝꿍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수통윤석열의 을 빼앗지 않는 것으로 적폐청산 작업을 지속하면서, 검찰개혁이 필생의 사명이라는 조국을 통해 검찰의 힘을 차츰 빼놓으려고 계획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다. 집권 2년 반이 갓 넘었지만 청와대는 벌써 검찰의 압수수색을 두 번이나 받았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는 윤 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해달라고 당부했다. 윤석열이 나는 지금 대통령의 요구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실제 윤 총장은 나는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악역을 맡고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하게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김기현 하명수사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 브리핑은 순진함을 넘어 어설픔을 보여줬다. 청와대는 지난 4일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관련한 제보 접수와 하달이 문제없었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했지만, 불과 서너 시간 만에 비공개했던 제보자가 드러나면서 하명 의혹은 더 짙어졌다.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에서 청와대는 어설픔을 넘어 안일함을 보여준다. 청와대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비위 사실을 상당히 포착하고도 사표만 받고 조용히 넘어갔다. 강제수사권이 없어 더 깊이 감찰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고위공직자의 금품수수 정황을 포착하고도 수사 의뢰를 하지 않은 것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당분간 검찰의 시간이 이어지겠지만 앞날은 알 수 없다. 조 전 장관 수사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도 최근 유재수·김기현 수사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특히 오래 묵은 수사를 조 전 수석 수사 직후 꺼낸 타이밍을 놓고 검찰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선이 많다.

영화는 유쾌했지만 현실은 답답하다. 우리 사회의 이상하고 독하고 어설픈 단면을 반년 가까이 지켜보는 것은 고역이다.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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