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푸른 옷을 입고 편지를 읽는 여인>(1663년 작). 편지를 읽거나 쓰는 여인의 미묘한 설렘과 떨림을 담아낸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은 볼 때마다 감동을 준다. 편지를 읽는 여인의 표정은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가 느끼는 설렘을 무척이나 닮았다.
문학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소설 속에? 시 속에? 혹은 작가나 독자에게? ‘이런 것이 바로 문학이다’라는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바라보면, 문학은 우리가 감동을 느끼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문학은 책이나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산소나 습기처럼 세상 모든 곳에 흩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문학의 형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우리가 언어를 통해 느끼는 감동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모든 곳에 문학은 있다. 예컨대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창작자 중에서도, ‘이토록 문학적인 아티스트가 있다니!’라는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이 있다. 내게는 가수 이소라가 그렇다. 호메로스나 소포클레스나 황진이가 이소라의 음악을 들었다면, ‘이건 영락없는 한 편의 시로구나’라고 무릎을 치지 않았을까. 그 시대에는 음악이 곧 시고, 시가 곧 음악이었으니 말이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을 때, 가사 하나하나가 영롱한 시어가 되어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화살이 꽂히는 느낌이 든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이 곡이 흐를 때, 나는 사랑 없는 세상에 영원히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의 전부였던 당신이 오늘부터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참혹한 고통을 느낀다. 이렇듯 문학은 시나 소설 같은 전형적인 텍스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떨림과 울림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 존재한다.
타인의 슬픔 속 여행하기이소라의 음악에는 격렬하게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에 전혀 휘둘리지 않을 것 같은 지독한 담담함이 공존한다. 이토록 강렬한 격정을 이토록 고요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이소라의 음악이 내게 주는 감동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읽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닮았다. 그들은 모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의 극한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그 슬픔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함을 지녔다. 왜 기쁘고 행복할 때보다는 우울하고 슬플 때 이소라의 음악을 찾게 되는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이소라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 같은 그리스 비극을 읽는 이유와 비슷하다. 즉 나의 고통보다 더 커다란 타인의 고통으로 내 슬픔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의 원리는 우리가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희곡을 통해 느끼는 감동과 정확히 같다. 깊은 우울은 더 깊고 쓰라린 다른 우울의 힘으로 치유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문학은 나보다 더 아프게 앓고 있는 타인의 슬픔 속으로 여행하는 일이다. 앉은 자리에서 세상 모든 이의 슬픔 속을 여행하는 기적이, 문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타인의 슬픔 속을 한참 여행하고 나서 다시 내 슬픔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바로 그 순간 성숙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 속에 푹 빠져 있다가 다시 나만이 돌볼 수 있는 나의 고통으로 돌아올 때, 문득 깨닫는다. 내 아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아픔과 소름 끼치도록 닮은 그런 고통을, 때로는 수백 년 전 이야기 속 주인공이, 때로는 생면부지의 타인이 앓고 있고, 이겨내었고, 마침내 그 아픔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아주 비슷한 슬픔을 앓고 있다는 사실,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어도 서로 너무 닮은 슬픔을 앓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분명 우울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 당신의 우울과 나의 슬픔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은 마치 만유인력처럼 우리를 서로에게 끌어당겨, 서로의 슬픔을 쓰다듬으려는 본능적 충동으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바로 이럴 때 작동하는 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다.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 없던 14살의 내가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들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사랑해온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가슴이 아팠던 것,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편지를 읽는 여인들을 보며 ‘이건 분명 그림인데 마치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읽는 것처럼 은밀한 느낌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안의 문학적 상상력이다.
마음껏 슬퍼하기, 문학하기편지를 읽거나 쓰고 있는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여성들을 보면, 몸은 집에 갇혀 있지만 마음만은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때 그 시절 여인들의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망이 느껴진다. 편지는 그녀들에게 세상을 향해 열린 단 하나의 창문이 아니었을까. 남자들처럼 자유롭게 바깥세상으로 활보할 수 없었던 여인들에게, 편지는 문을 꽁꽁 닫아놓아도 집 안으로 스며드는 산들바람처럼 영혼을 간질이는 자유의 마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현대인은 과거 17세기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여성들보다 자유로워진 것일까.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많은 자유를 쟁취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나는 이소라의 음악이 너무 우울해서 싫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버럭 화가 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울할 권리조차 없단 말인가. 예술가가 슬픔을 표현하는 일을 금지당할 때, 나는 그 사람 곁으로 가서 그의 슬픔을 응원해주고 싶다. 마음껏 슬퍼도 될 권리, 마음껏 아파해도 될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 우울할 권리란 숨 쉴 권리만큼이나 소중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우울할 권리가 있지만, 우울을 통해서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는 슬픔이나 우울의 시간이 더욱 절실할 때가 있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었던 시절,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서정적인 가사가 ‘불순하다’는 이유로 금지될 수 있었던 시절. 예술가의 슬픔은 검열의 대상이었으며, 그런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대중의 자유조차 검열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그런 황당한 정치적 검열은 사라졌지만, 악성 댓글이나 블랙리스트로 여전히 예술가들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을 괴롭히는 심리적 억압기제가 남아 있다. 우리가 예술가들의 슬퍼할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마음껏 자유롭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평론가와 작가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시나 소설을 써야 문학 하는 사람’이라는 무의식 깊숙이 뿌리박힌 편견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작가님은 소설 안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당황스러움은 ‘내가 언젠가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들킬 수 있나’라는 마음 때문이고, 고마움은 ‘내 글을 보고 이 사람이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나의 숨은 재능에 대한 칭찬이 아닐까’ 하는 설렘 때문이다. ‘당신은 왜 소설을 쓰지 않나’라는 질문이 여전히 서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에세이나 평론은 문학의 본령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뿌리 깊은 무의식 때문이다. 소설이나 시를 쓰지 않아도, 나는 항상 문학의 길 위에 있었다. 평론이든 수필이든, 우리가 언어를 통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려는 모든 노력은 문학의 자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소설가나 시인이 아님에도 ‘문학 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은 것은, 나도 소설가처럼 내 이야기의 플롯을 짜고 나도 시인처럼 내 문장의 운율을 고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학 하는 마음은 어떤 장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사람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름다운 말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당신은 오늘 문학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당신이 따스한 언어로 누군가에게 깊은 위로를 받았다면, 그는 당신에게 문학이라는 선물을 듬뿍 안겨준 것이다. 문학은 어디에나 있다. 당신이 이야기의 오랜 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아름다운 언어의 맛과 향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문학은 어디서나 당신의 마음에 기쁘게 노크할 것이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