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코로나19가 교회에 주는 교훈, 장로신문 특별기고 [오승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6. 04:51

코로나19가 교회에 주는 교훈, 장로신문 특별기고

은혜 추천 0 조회 44 20.04.09 19: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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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세계적으로 140만 명을 넘고 있다. 세계 제2차대전 이후의 가장 큰 재앙이라고 한다. 이 바이러스는 빈부, 귀천, 남녀 할 것 없이 침투하고 인종, 이념, 국가, 언어의 높은 장벽도 가리지 않는다. 오직 이 병균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반공을 국시로 나라를 지켜왔다. 한국전쟁이 있었지만, 한국은 UN에서 인정한 국가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UN군의 지원을 받아 자유대한민국을 지켜 왔다. 동아시아의 남단 작은 나라가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들을 머리에 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으로 올라섰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은 왜 코로나로 백성들을 흩어놓으시려는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 노아의 자손은 번성했다. 그들이 흩어짐을 면하려고 높은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때도 언어를 혼잡게 하여 그들을 흩어놓았다. 그들이 교만해져서 창조주를 배반하고 다시 죄악 속에 빠져들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선이요 인간에게는 재앙이었다. 지금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이 코로나의 재앙은 하나님이 어떤 선을 이루시려는 것일까?

지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이다. 예수님은 왜 고난을 받으셨는가? 그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유대인에게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돌아가시면서 그는 다 이루었다(19:30).”라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즉, 그의 영혼을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물(代贖物)로 쏟아붓는 일을 다 이루셨다. 부활하고 오순절에 우리에게 오셨을 때 이제는 우리 믿는 무리에게 사명을 주셨다. 주의 말씀에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소리가 나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주님은 그들을 열방에 흩어놓으셨다. 이제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DNA를 가지고 열방에 흩어져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을 인내로 주의 증인 되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코로나로 교회는 망했다고 한탄하면 안 된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나님께서 말한 교회는 텅텅 비어 가고 있다고 한탄하지 말자. 교회의 중심은 예배와 설교인데 설교하는 자는 있는데 예배드리는 회중은 없다고 슬퍼하지 말자. 병자가 맨 먼저 찾는 곳, 굶주린 자가 자비를 외쳐 구하는 곳이 교회인데 한국전쟁 때도 닫지 않은 교회를 왜 닫으라고 하느냐고 당국을 원망하지 말자.

교회가 만일 건물이었다면 텅텅 빈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한다. 교회가 만일 초신자를 모아 선물을 나누어주는 행사장이었다면 그렇게 모으는 일을 못 하면 망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ekklesia: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예수님을 머리로,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으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자신이 있는 곳에서 거룩함을 드러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무리들이다. 이들을 흩어놓은 건 재앙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이다.

만일 이 세계적인 공황 속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명을 살리고 가난한 자를 찾아가셨을 것이다. 그분의 지체가 교회이다. 교회는 코로나의 고난을 극복하고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그분을 닮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한국장로신문 제1684호(2020년 4월 14일) 특별기고에서

 

오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