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하늘의 노래[휴거소동,하늘이 열리고,영적자유,헨델의 메시아]/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09:49

2009 3 29 주일예배

하늘의 노래

 ( 15:1-4)

  1. 하늘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내가 보니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모세 노래, 어린 노래 불러 이르되 하나님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제가 대학을 다닐 때의 일입니다. 방학을 맞아서 집에 내려왔습니다. 교회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요한계시록을 하시더라고요. 잘 들어보니까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가짜 그리스도, 많은 나라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어가는 존재에 관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잘 들어보니 누구를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있냐 하면 `헨리 키신저'를 두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 이름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는 1972년 미국과 중국의 수교를 실무적으로 다룬 사람이잖아요. 유대계 미국인이지요. 그러나 물론 그건 성급한 해석이지요. 누구나 그런 잘못을 범할 수 있어요. 

   1992 10월에 오랫동안 끌어오던 다미선교회를 중심으로 한 휴거 소동이 한바탕 한국사회에 휘몰아쳤습니다. 왜 그랬느냐, AD 2000년을 종말로 보았기 때문에 역산해서 7년 대환난이 오기 전에 다 휴거携擧, 하늘로 들림 받는다고 해서 일어났던 소동이에요. `그런데 모인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라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나 약간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냥 멍하니 쳐다본 사람도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모르긴 마찬가지니까. 알아서 피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열정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거기 있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조심스럽게 신학적 이해를 가지고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배경을 알아야 돼요. 로마제국시대에 기독교가 성장하면서 드디어 로마제국과 기독교가 부딪히게 되면서 네로의 대박해가 있었어요. 1세기 말에 네로 못지않게 아주 조직적이고 전반적인 박해가 있었어요. 도미시안 황제 때에 박해가 있었어요. 왜 그랬냐 하면 로마제국이 황제를 우상화하는 신앙으로 정신적 통일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해요. `퀴리오스'라고 불러요. 동시에 이 단어는 로마황제를 가리켜서 부르는 용어예요. 그래서 부딪힌 겁니다. 진정 누가 주님이냐?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양보하지 않았어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러면서 대 박해가 일어난 거예요.

   , 그러자 어떻게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아 순교하게 된 거예요. 교회는 그 핍박을 피해서 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원래 로마 경내에는 무덤을 쓸 수가 없어요. 다 경계 밖에 `카타콤'이라고 부르는 무덤이 있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서 지하무덤을 깊이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 거예요. 무려 로마 주위에는 총 연장 560Km에 달하는 수많은 지하무덤들이 있었고 그들이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다음에야 나올 수 있었어요. 따져보면 약 250년간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지하무덤 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태어나고 거기서 살고 거기서 죽었던 거예요. 이게 현실이에요.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셔서 끝내 교회는 승리할 것이다'고 믿고 서로 격려했던 거예요.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면 용이 나와요. 붉은 용, 이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붉은 용이 자기의 대리인을 세워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해요. 짐승으로 표현돼 있어요. 로마 제국이에요. 또는 음녀나 바벨론으로 표현돼 있어요. 바벨론으로 표현된 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리고 성전까지 파괴하고 모든 사람을 바벨론으로 끌어갔던 처참한 박해를 기억하고,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이 끝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성경과 역사의 사건에 빗대어서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말했던 거죠.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는 단순히 미래에 대한 예언만 있는 게 아니에요. 과거의 사건도 있어요. 그것을 통해서 교훈을 얻고 용기를 얻기 위해서. 오늘의 상황이 은밀하게 표현돼 있어요.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도 들어있는 거예요. 이게 요한계시록이에요.

   특별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숫자에 대한 이해가 참 중요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와요. 7년 또는 7, 일곱 교회, 일곱 촛대, 일곱 사자, 일곱 별, 일곱 나팔, 일곱 대적. 7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룩한 수, 완전수라는 의미예요. 7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배어있는 거예요. 반대로 그 절반이 있어요. 7을 나누면 3.5가 되겠죠. 7일이 아니고 3일 반, 7년이 아니고 3년 반, 3년 반이면 42개월, 날짜로 말하면 1260, 이런 표현들이 계시록에 들어있어요. 이거는 절반의 의미가 있어요. 더 은밀하게는 `한때, 두 때 그리고 반 때'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어요. , 이건 뭐냐, 오늘의 고난이 극심할지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승리에 비한다면 그것은 반 토막 난 것이다. 잠깐이면 지나갈 것이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예요. 

   `666'은 하나님의 능력에 버금가는 사단의 수를 의미하고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로마황제를 은밀하게 지칭하는 표현이지요. 요한계시록 14장 그리고 15장을 이어서 읽어보면 `14 4천 명이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여호와의 증인에게서 14 4천이란 숫자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들은 `마지막 때에 구원 받는 숫자가 14 4천이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러나 14 4천은 12 곱하기 12, 거기다 다시 곱하기 천인데, 천이라는 것은 많다는 의미가 있어요. 12라고 하는 숫자도 열두 제자, 열두 사도 하듯이 완전수를 의미해요. 하나님의 수를 의미해요. 거기에다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곱한 거예요. 그리고 다시 많다는 의미로 천을 부친 거예요.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런 의미가 있는 거죠.

   제가 군에서 설교집을 열심히 받아 읽을 때 요한계시록도 탐독을 했었어요. 읽어 보니까 다니엘서에도 있고 요한계시록에도 있습니다만 열 뿔, 또는 열 발가락, 이런 표현이 나와요. 그것을 가지고 종말을 헤아리려고 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때는 다들 그렇게 헤아렸어요. 꼭 누가 잘못했다고 얘기하기도 어려워요. 그걸 읽어보니 유럽 공동체, EC, 예전에는 EEC였죠. 유럽 공동체가 1970년대 중반에는 일곱 나라였어요. 그래서 뭐라고 설명을 했냐 하면 세 나라가 더 가입을 해서 열 개의 나라가 되는 순간, 열 발가락의 예언이 완성되고 그때 유럽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해놨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열 개가 뭡니까? 20, 30개 다 넘어가 버렸어요. 거기서도 결국 서기 2000년을 종말의 때로 생각했기에 역산해서 그렇게 풀었던 거예요.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목사님이었지만 그렇게 풀었던 거예요. ? 많은 신학자들이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이었죠.

   `천년왕국'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이 땅에 천년왕국이 있고 다시 마지막 심판이 있고 하늘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영원한 세계가 열릴 것이다. 옛날에는 인류역사를 6천 년으로 봤어요. 상당히 문자적인 해석이죠. 성경에 나와 있는 인물들의 나이를 합산해서 보니 아담이 기원전 4004년으로 산출이 됐어요. 그럼, 아담이 기원전 4004년 이니까 AD 2000년이면 6천 년이 꽉 차는 거잖아요. 그래서 AD 2000년이 종말이라고 애써서 날짜를 맞추려고 했던 거예요. 종말이 오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께서 6일 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하루 쉬신 것 같이,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했으니까 인류의 역사는 6천 년이 되고 주님이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이 이어지고 그리고 나서 새로운 나라가 열리는구나 라고 해석을 했던 거죠.

   여러분, 여기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대해서 그날을 알고자 하는 열망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건 당연한 거죠. 그러나 생각을 열어놔야 돼요. 그 날짜와 시간과 장소, 이런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는 거예요. 그걸 열어놔야 해요. 굳이 그걸 내가 알겠다고 따지면서 수많은 오류가 있었어요. 한국 사람들만 그랬던 게 아니에요. 미국사람들도 이미 1840년대에 안식교가 등장하게 된 것은 그 때 종말이 온다고 난리를 쳤었어요. 그런데 종말이 오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면서 만들어진 교파예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건만 인간의 몸을 입고 사셨던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날과 그때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요한계시록의 기록 의도는 그날이 몇 월 며칠이냐 그것을 알려주려는데 있는 게 아니에요. 어떤 자세, 어떤 신앙으로 살 것이냐 예요.

   초대교인들이 어떻게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었는가. 그들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어요. 성경을 통해서 수많은 믿음의 위기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어요. 오늘 하늘에서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를 부른다' 그랬어요. 모세의 노래라는 게 뭐예요? 모세가 애굽에 종살이하던 자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가운데 이끌어 내어 홍해를 건넌 후 애굽 군대가 홍해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을 보면서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했던 것이 출애굽기에 기록돼 있어요. 바로 그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도 약속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난 날 받은 은혜를 잘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말씀을 잘 분별하고 깨닫고 그 은혜를 지켜야 되는 것이죠. 모세의 노래는 드디어 어린양의 노래로 바뀌어요. 어린양의 노래는 더 완전한 구원이에요. 모세의 구원은 애굽의 종살이 하던 자들에게 정치적 해방이에요. 사회적 해방이에요. 경제적 해방이에요.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해요.

   여러분, 1945 8 15일 낮 12시 일본천황이 방송으로 항복 선언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기록에 의하면 서울 거리에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생각 같아서는 당장 태극기 휘날리며 나왔을 것 같죠. 아무도 안 나왔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사건이냐, 이해할 수 없어서 숨죽이고 있었어요. 기록에 의하면 오후 4시에 서대문 형무소가 열리면서 죄수들이 막 나오면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이 `진짜 해방됐나 보다' 하고 쏟아져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 내 노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 놀라운 구원이요, 자유였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자유가 얼마나 중요해요. 그러나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이기에 영적 자유가 있어야 돼요.

   어린양의 노래는 어떤 거예요? 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요. 정치적 자유, 사회적 자유, 경제적 자유, 모든 자유를 다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마 마지막 남은 것이 있다면 그건 영적 자유일 거예요. 영적 자유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위기, 사회적 차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 그게 바로 영적 자유죠.

   에리히 프롬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혁명과 투쟁을 통해서 자유를 얻었는데 막상 그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요.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하지 못해요. 기껏 피 흘려 자유를 얻어 놓고는 `내가 이 자유를 감당할 수 없으니 누가 내대신 결정해 주고 내 인생을 대신 이끌어 주시오.' 그렇게 해서 나타난 인물이 히틀러예요. 독일민족이 자기들의 자유를 송두리째 그에게 맡긴 거예요. `이 자유가 버거우니 당신이 알아서 해결해 주시오. 이 경제적 위기와 온갖 혼란 속에서 우리는 판단할 수 없으니 당신이 알아서 이끌어 주시오.' 그 결과 미치광이 히틀러가 독일민족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뭘 말하느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자유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영적 자유가 분명할 때에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향유할 수 있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적으로 보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마는 오히려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선포하고 너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두려워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게 바로 자유자의 노래죠.

   오늘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정상이에요. 인간이 살아있다는 자체가 문제예요, 공동묘지에 가면 아주 조용해요. 거긴 문제가 없어요. 정작 문제는 그런 위기상황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부를 노래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니까 어린 양과 14 4천의 성도들이 새 노래를 부른다.

   여러분, `게오르그 프레드리히 헨델'을 아시죠. 헨델은 원래 독일 사람이에요. 벌써 나이 스물에 오페라를 만들었어요. 히트를 쳤어요. 이태리에 가서 오페라를 공부하고 이십 대 후반에 영국으로 건너갔어요. 한 십여 년 동안 영국 음악계에서 아주 주목 받는 인물이 됐어요. 너무 잘 나갔어요. 조지 1세라고 하는 왕이 그를 후원해 줬어요. 그러나 조지 1세가 죽고 조지 2세가 왕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또 영국 사람들도 더 이상 이태리 오페라를 선호하지 않았어요. 몸부림치며 애썼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했어요. 두 번 부도가 났어요. 중풍을 맞았어요. 해도 해도 되지 않았어요.

   그 마지막 절망의 순간에 그에게 오라토리오 작곡 의뢰가 온 거예요. 그 가사를 받아보니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부활과 영생을 그리는 내용이 실려 있는 거죠. 여러분, <메시야> 들어 보셨죠? 2시간 반이에요. 3 52곡이에요. 이런 어마어마한 대작을 24일 만에 작곡을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성령의 감동에 사로잡혀서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며 썼던 거예요. 그의 작품 중 최고 걸작이에요. <메시야>의 마지막 곡, 그게 바로 계시록 5 12-14절의 가사예요.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아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천상에 있는 많은 성도들이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자 모든 만물이 화답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아멘' 헨델이 <메시야> 를 통해서 재기했어요. 여러분, `할렐루야' 의 일화를 아시잖아요. 조지 2세가 감동을 받아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거예요. 왕이 일어났으니 다 일어난 거예요. 그게 오늘날 전통이 된 거예요. 그 연주회가 끝난 후 한 사람이 와서 얘기합니다.<메시야> 흥행이 대박이 났습니다.”그랬더니 헨델이 말합니다.“그렇습니까? , 아쉽군요. 제가 정말 기대했던 것은 그저 즐겁고 재밌다는 반응을 기대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 곡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 거듭된 실패와 질병과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났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많은 사람들이 발견하기를 바랐습니다.

   여러분, 어떤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까? `승리의 노래, 그리스도 어린양의 십자가의 승리, 그것을 붙들고 오늘의 고난을 헤쳐가라.' 요한계시록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가 무지하고 욕심에 매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편의적으로 해석해서 그 마지막 때를 알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시고 새 노래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이야말로 하나님의 선물이요,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 같이 하늘이 열리게 하시고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감격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