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2:10-20 믿음이 증언하는 것
2: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 인간의 종교심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서도 의지할 존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2. 문제는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입니다. 누구도 의지하지 않겠다면 스스로를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이 한계에 도전합니다.
3. 인간 안에 있는 잠재된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계발된 많은 시도들이 있습니다. 인간 밖의 능력을 끌어다 쓰기 위한 비방도 여럿입니다.
4. 복음은 이런 인간의 종교심과는 출발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가 인간 곁에서 부르는 음성이고 나누는 교제입니다.
5.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믿음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6. 더 이상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과 고백이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로 그 작업이 시작됩니다.
7. 실상은 관계 회복입니다. 새로운 관계 정립에 붙은 이름이 회개입니다. 아버지가 거룩하시니 아들도 아버지의 거룩을 덧입는 과정입니다.
8. 이후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바르게 회복됩니다. 더 이상 타인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관계가 이루어짐으로써 옳은 관계로 나아갑니다.
9. 모든 관계가 정상적인 삶의 모습을 흠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가 지극히 정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0. 예수님은 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바울이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믿음의 본질을 데살로니가 교회에 밝힙니다.
11. “우리가 거기서 믿음으로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했는지는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나님도 증인이십니다.” 믿음의 모본입니다.
12. 왜 십자가가 복음입니까? 왜 복음이 종교 이상입니까? 왜 교회가 희망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고서는 달리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관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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