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0320 하나님과 연합하라(렘 50:1-5)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5. 14:07

110320 하나님과 연합하라( 50:1-5)

성경본문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바벨론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라. 너희는 나라들 가운데에 전파하라 공포하라 깃발을 세우라 숨김이 없이 공포하여 이르라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은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은 부스러진다 하라 이는 한 나라가 북쪽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그 땅으로 황폐하게 하여 그 가운데에 사는 자가 없게 할 것임이라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

 

지난 한주간 일본의 원전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보았습니다. 소위 원전 강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러시아도 다 그런 전철을 밟은 것이지요. 1979년 미국은 쓰리마엘 섬에 원자로의 폭파 사고가 있었고 러시아는 1986년에 체르노빌에 원전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통계를 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일본 사람들이 일본을 탈출하려 하겠습니까? 예전에 이 나라에 사시던 분들이 1998년에 이 나라에 큰 폭동이 일어나고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 어느 한 가족이 부랴부랴 공항으로 피신을 하고 또 공항에서 언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는지 몰라서 그저 먹을 것과 음료수와 돗자리 이런 것을 준비해가지고 공항에 가서 자리를 깔고 비행기 타기만을 기다리는데 아주 공항이 아수라장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빵이나 이런 것을 넉넉하게 준비해 가지고 가서 보는 사람들에게 서로 나누어주며 먹고 있는 와중에 어느 인도네시아 사람이 유심히 쳐다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리 쳐다보느냐하고 물었더니 당신네는 돌아갈 나라가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나는 여기가 내 나라니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다.’라고 얘기했다는 거지요.

 

여러분, 이번에 일본 이 사태는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우리 문명의 위기지요. 원전을 짓고 원전을 운전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의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고 비단 원전만이 아니라 단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는 이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또 고장이 났을 때 그 결과는 예측불능인 거죠. 우리 문명의 위기예요.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수많은 외국인 들이 지금 우선 당장 막 우리나라로 피신을 온다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 정부에서 그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입국요건을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지금 긴급상황이니까 다 받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이러한 우리의 삶의 위기를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 더 넘어가야 합니다. 이 모든 총체적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라.’오늘 읽는 본문은 예레미야 50장 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할 때에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예언자예요. 그래서 유다가 이러한 참혹한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예레미야는 이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는 것은 피할 길 없는 현실이 되었어요. 이제는 오히려 바벨론에 멸망당한  유다의 그 이후의 미래를 내려다 보면서 예언을 하는 것이지요. 적어도 70년 이후의 사건을 내다보며 예언합니다. 바벨론은 어떻게 될 것이냐? 오늘 읽은 본문의 앞부분을 쭉 읽어보면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는 이스라엘 이 유다의 운명은 항상 주위에 있는 강대국들의 놀이터가 되고 전쟁터가 되었지요. 애굽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이라는 나라와 싸웠습니다. 모압이 있고 암몬이 있고 에돔이 있고 담의 색이 있습니다. 주위에 둘러선 나라와 다 전쟁을 겪었어요. 아주 원수들이지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바벨론이 등장하면서 이 모든 나라를 다 쓸어버리고 마지막으로는 유다도 넘어뜨리는 거지요. 당시의 바벨론은 우리가 세계사를 보면 신 바벨로니아 해가지고 느브갈네살 왕 이야기가 나오고, 세계7대 불가사의라고 해서 공중정원이라고 하는 그 당시의 건축술로는 이해 할 수 없이 높은 건축물 그 위에 화려한 정원을 만들었다 해서 지금이야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인간문명의 참으로 찬란한 유산이고 미스터리라고 했던 바로 그 바벨론이지요. 포로로 그 나라로 끌려갔습니다.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자기들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깝지만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강대국 바벨론의 모습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그러나 여러분 놀랍게도 그 바벨론도 무너지더라는 거예요. 예레미야가 예언했듯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들 앞에 영원할 것 같았던 그 바벨론도 하룻밤에 무너지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바벨론이 무너지면서 유다 사람들은 포로에서 해방이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고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예레미야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그때가 오면 너희들은 새로운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어떤 신앙을 고백하느냐? 이제까지 이스라엘과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은 자기민족의 하나님이시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의 신과 싸우는 하나님이라고 이해했어요. 그러나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는 거예요. 영영 그 바벨론의 포로로 그저 그러고 살다가 죽을 그 수밖에 없는 인생인 줄 알았던 우리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그저 이 모든 민족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라고 하는 새로운 신앙의 눈이 활짝 열린 거예요.  그리고 이 역사 속에 주인이 되셔서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이렇게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죄를 범해서 죄값으로 죽어야 하는 우리를 그 놀라운 은총으로 다시 한번 구원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사람은 참 신기합니다. 뭘 더 먹어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미 하나님이 가득 다 만들어 놓은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발견할 때에 우리 안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세상을 보는 이 눈이 떠지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너희는 포로로 해방이 되어서 포로로 돌아올 때 그 마음이 변화되어서 내가 이제 돌아가는데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리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온으로 가는 길을 찾으리라.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붙들리라. 그리고 하나님과 연합하리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리라. 이게 도대체 언제 얘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의 일이에요. 이것은 모든 인류 역사 속에 영원한 역사의 주제예요. 하나님과 연합하리라. 모든 시대의 주제이며 모든 역사의 주제예요. 오늘 이 주제는 오늘도 변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급하고 중요하지만 항상 물어야 할 것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어요. 나는 지금 오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신앙이 좀 껍데기를 벗고 온전한 신앙으로 건강한 신앙으로 변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의 기둥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말씀이지요. 성경말씀 하나님께서 인생을 향하여 모든 것을 담아 놓으셨어요. 우리가 좋은 전자기기를 사오게 되면 항상 따라오는 매뉴얼이 있잖아요. 성경은 인생 매뉴얼이에요. 숱한 남자와 여자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어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하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는 것이지요. 성경말씀 또 하나는 기도예요. 그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내 것으로 삼을 때에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할 때 그 말씀이 내게 적용이 되요. 그렇게 기도할 때 다시 한번 응답을 확인하게 되고 그 받은바 응답을 가지고 성경을 볼 때 성경이 더 새롭게 내 눈에 들어오는 거지요 그러니까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은 우리신앙의 두 기둥이에요. 두 바퀴 같은 거예요. 기도하지 않고 성경만 읽는다. 성경을 연구한다.’라고 하면 인간의 이성의 활동은 왕성해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만나지 못합니다. 인본주의가 돼요.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을 분석하고 파헤칠 뿐이에요. 그것을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기도할 때 그 응답이 내게 주어질 때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인데 그러한 기도가 따라가지 않는 성경은 자기 나름의 논리만을 충족시키는 인본주의가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성경을 제쳐 놓고 기도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체험하던지 말씀을 떠나서 그것은 신비주의가 되는 것이에요. 모든 이단은 크게 둘로 분류할 수 있어요. 말씀만 파다가 이성에 빠진 이런 그러한 인본주의 이단이에요. 반대로 기도하고 성경의 체험만 강조하다가 그쪽으로 나가버린 신비주의 이단들이에요. 이 두가지 조화가 필요해요. 말씀은 항상 뭐라고 얘기하느냐 예수 그분이 그리스도다.’

 

여러분, 사도행전에 나오는 크고 짧은 모든 설교들을 유의해서 읽어보세요. 설교가 길던지 짧던지 항상 결론은 딱 한마디로 압축돼요. ‘예수가 우리 인생의 해답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에게 응답이 있다. 그런 말이죠. 이 얼마나 놀라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다.’도 말이 길다고 생각해서 아예 붙여버렸어요.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메시야 이시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해답이시다. 예수님이 모든 문제의 응답이시다. 그 안에 내 인생이 있다. 이게 고백이에요. 그걸 아셔야 해요. 이게 신앙의 두 기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요. 말씀과 기도가 우리 인생의 교과서라면 교과서는 받았는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때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니까 형에게 묻잖아요, 혹은 선생님에게 묻잖아요. 우리도 신앙 선배들에게 묻는 거지요. 신앙에 전통이 있어요. 먼저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들의 간증이 있고 고백이 있고 기록이 있고 신학이 있어요. 그런 것을 우리가 신앙전통을 존중하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말씀을 내게 정확하게 적용하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어요. 구원의 시간표가 있어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이미 ‘25라는 소설이 나오지 않았어요. 여러분 지금 몇시예요. 지금 25시예요. 25시라는 말은 사람이 설정해놓은 이미 24시를 넘어선 시간이에요. 하나님의 시간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시간이에요. 우리는 사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 거예요. 내가 잘나서 사는 게 아니에요. 좀 심하게 얘기하면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도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는 시간이에요. 이게 25시에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할 것이고 마지막 시대에 나에게 이렇게 호흡을 오늘도 연장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니 그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짓을 하는 것은 다 잘못된 거예요. 인생을 허비하고 낭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 참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의사에게 시한부선고를 받으면 그때부터 난리가 납니다. 아니요. 이미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시한부선고를 받은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해요. 지금 구원의 역사를 얘기한다면 복음이 이스라엘에서부터 시작해서 방향을 그리스 로마로 틀어가지고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을 건너서 태평양을 건너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고 지금 중국에 들어가고 있지요. 이제 마지막 남은 장벽을 이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하기를 백투더예루살렘지금은 예루살램 회복 운동 이제 구원의 하나님의 역사가 마지막 끝나는 시간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년도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있을 세계중보기도성회의 중요한 목적은 세계에서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감동은 마지막 이슬람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서 이슬람 선교의 교두보가 되는 인도네시아에서 기도하자는 거예요. 요단강을 건너려면 요단강에 서서 기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요단강을 건너겠다면서 압록강에 서있으면 되겠어요? 이 자리에서 기도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예요. 그런데 우리는 바로 자카르타에 살고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지난번 다 보셨지만 쓰나미가 일어나는 결정적인 시간을 찍은 많은 영상들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 기억나는 대목이 하나 있어요. 쓰나미가 막 몰려오고 있는 것을 들었어요. 동사무소의 여직원이 계속 피난 방송을 합니다. 빨리 대피하라고 화면에는 지금 막 물이 어마어마하게 넘쳐 그 도시를 쓸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대피하라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쓰나미에 휩쓸려서 실종되었어요. 자기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지요. 제가 어떤 분이 저에게 이메일로 책 한 권의 분량을 보내주셨더라고요. 어떤 거냐 했더니 어떤 분이 천국과 지옥을 체험한 글을 쭉 보내주신 거예요. 제법 길었어요. 다 읽어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예전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할 때 교과서가 있고 선생님이 계시지만 그것만으로 모자란다 싶어가지고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나 어떤 사건을 더 자세히 설명하느라고 참고서를 사서 공부하지 않습니까? 참고서를참고서와 같구나! 지금이 얼마나 긴박한 때인지 이러한 대재앙을 통해서 문명의 위기 앞에서 서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라 하나님이 일깨워 주시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이렇게 우리에게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구나. 그리고 그것을 증언하는 그분의 그 글에서 느껴지는 마치 쓰나미 경보가 달려올 때에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자기자리를 지키면서 빨리 대피하라고 외쳤던 그 사람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여러분 그 도시의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어요.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곧 순식간에 그들에게 순식간에 죽음이 덮이게 돼요. 그걸 저 사람이 지금 아기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 쓰나미 얘기는 할 필요는 없겠습니까? 아니요. 그 모든 자세한 모든 것을 우리 이성으로 판단으로 할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죽음 이후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는 자에게 놀라운 생명이 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저는 어린 시절에 오산비행장에서 살았어요. K55 미군부대 앞 비행장 거기서 저의 어린 시절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저는 어린 시절에 미군 상대하는 여자분들이 많았잖아요. 저는 여자분들은 다 옷벗고 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60년대 얼마나 가난했어요. 그저 미국사람들이 내어놓는 껌 하나도 신기했잖아요. 또 그 시대에 누군가가 미국갔다오며 미국 이렇더라 얘기하면 귀가 이만해져 가지고 듣는 것이지요. 갔다온 사람이 증언을 하잖아요. 천국을 갔다온 사람들이 증언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절대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사순절 기간이에요. ‘하나님과 연합하라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할 것은하나님과 연합하라.’예요.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한 그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그 고난과 그 은총을 깊이 주목해야 해요. 지금 일본이 원전 사태를 막으려고 소위 원전 결사대를 구성해가지고 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뛰어 들었잖아요. 체르노빌 사태를 찾아보니까 그 원전 사태를 수습하려고 들어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1년 이전에 목숨을 잃고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다 그 방사능으로 인한 질병으로 평생을 고생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요. 그러니 그런 뻔한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들어간 것이지요. 참 원전 결사대지요. 그러나 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덤벼든다고 받아주겠습니까? 아니요. 원전의 전문가들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급해도 아무나 들어가서 그저 몸뚱어리로 막겠습니까? 아니요 알아야 해요. 우리의 죄와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와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사단이 역사하는 인간의 영적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기에 인간 역사 속에 십자가는 많았지만 정치적 사건으로 인한 수많은 십자가는 주렁주렁 있었지만 우리의 죄와 죽음과 사단의 권세를 해결하는 그 십자가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였던 거예요. 여러분 주목해야 돼요. 그리고 그 십자가 그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이후에 우리의 다가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그래서 이 부활을 발견한 사도바울이 말하잖아요. 고린도전서 15 3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 고린도전서 15 51내게는 비밀이 있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되는 그 비밀이 있노라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고백이에요. 예수를 주로 믿을 때 처음 믿을 때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날마다 날마다 순간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인생이에요. 그렇게 예수를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사업도 하고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웃고 떠드는 거예요. 우선순위가 바뀌면 안 돼요.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제 부활절 연합예배가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4 24일이니까. 우리가 그 이전까지 사순절 기도회를 하면서 저는 이런 꿈을 꾸어봅니다. 아 요즘은 사람들 수준이 높아지고 센스가 있어가지고요. 응원을 할 때 깜깜한 밤에 응원을 할 때 불을 싹 꺼버리고 하나, , 셋 하더니 어떻게 해요 여러분 자기들 휴대폰을 다 모든 사람들이 다 키니까 그것도 작품이더라고요. 아마 여기 계신 분 중에서 휴대폰 없는 분은 그저 얼굴을 보니까요 두 분 정도 계실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도 다같이 이 깜깜한 영적 암흑 속에 있는 이세상 속에 휴대폰을 켜자고요. 같이 켜자고요. 기도하자고요. 부활절 연합예배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부어주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려면 먼저 들은 사람들이 먼저 깨우친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로 불씨를 이끌어야 되는데 해서 이런 소원이 있어요. 남자분들은 출퇴근할 때 차 안에서 기도하세요. 차 안에서 단 1분이라도 기도하세요. 우리 여자분들은 집에서 기도하세요. 그렇다면 어떡해야 되겠어요.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이 자카르타의 이 어둠 속에서 말이에요. 휴대폰을 같이 드는 거예요. 같이 켜는 거예요. 그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보시고 기뻐하시는 거예요. 거기에 박수를 보내시는 거예요. 은혜를 부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새로운 변화가 우리가운데 일어나는 거예요.  그거는 막연히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바로 나를 위해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 은혜 받은 사람의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