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0327 별처럼 빛나리라(단 12:1-4)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5. 14:10

110327 별처럼 빛나리라 ( 12:1-4)

성경본문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집에서 책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큰 신상에 그림이었어요. 알고 보니 성경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꿈꾸었던 신상 그림이지요. 초등학교 때라 뭘 모르면서도 그 그림이 재미있어서 내용을 읽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머리는 금으로, 가슴과 두 팔은 은으로, 배는 놋으로, 다리는 쇠로 되어있고 발가락은 쇠와 흙이 섞여있다는 그림이요, 글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세상의 종말에 관한 대표적인 그림이요, 설명이지요. 금으로 된 머리는 바벨론이요, 은으로 덥혀있는 두 팔과 가슴은 메대와 파사요, 구리로 되어있는 배는 알렉산더의 그리스 (헬라) 그리고 쇠로 된 다리는 로마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늘 해석의 마지막 부분이 중요하지요. 그러면서 쇠와 흙이 섞여 있는 열 발가락은 뭐냐? 서로마 제국말기에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다. 오늘의 유럽을 형성하게 되는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리고 거대한 신상이 어디선가 날아온 돌에 맞아 깨어지고 무너지고 돌이 수북이 쌓인다는 이야기로 끝나죠. 그 돌은 뭐냐? '그것은 우상의 제국을 넘어뜨리는 하나님의 돌, 하나님의 교회다' 이렇게 해석을 했어요. 그러니까 '게르만 민족이 대이동하여 유럽이 형성되면서 기독교 세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설명을 해놓았어요. 이것은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시대의 종말이라고 판단했던, 그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가 군에 입대해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설교집도 부지런히 봤는데 그 가운데 당시에 내로라하는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강의>를 읽어 봤어요. 거긴 어떻게 해석을 했느냐 하면 머리는 바벨론이요, 두 팔과 가슴은 메대와 파사(페르시아), 구리로 된 배는 알렉산더의 헬라요, 그 다음에 다리는 로마요, 그런데 마지막 열 발가락은 뭐냐? 열 발가락은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데 1970년대 당시 오늘날의 EU, 유럽연합 이전단계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제 기억에 가입한 나라가 일곱 나라였어요. 세 나라만 더 가입하면 종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AD 2000년이 종말이다'라고 생각하고 쓴 글이에요. 물론 지금은 지나가 버렸습니다마는 그게 1970년대 후반에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던 종말론이었어요. 대부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벌써 2000년이 지나고도 10년이 지났어요.

제가 신학대학원에 가서 공부해보니 이렇습니다. 바벨론, 메대, 파사시대가 지나고 헬라의 알렉산더가 등장해서 나이 서른에 전 세계를 다스리게 돼요. 그런데 알렉산더가 젊어서 죽지 않습니까? 알렉산더가 죽은 이후에 나라는 부하들에 의해서 네 쪽으로 나눠지지요. 그 가운데 특별히 애굽(이집트)과 시리아가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되요. BC 160년경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계속해서 전쟁을 하게 됩니다. 전쟁의 틈바구니에 이스라엘이 끼어있어요.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라는 왕은 예루살렘을 침략하고 성전에 올라가서 유대인들이 금기시하는 돼지를 잡아가지고 피를 뿌립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지요. 유대인들로 하여금 우상을 세운 곳에 와서 절하게 합니다. 거부하는 자를 죽입니다. 할례를 행하지 못하게 하고 할례를 행하는 자들을 잡아서 죽입니다. 어마어마한 환란이고 핍박이지요. 유대인들이 볼 때에는 가장 극심한 박해와 고통가운데 있는 거예요.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쓰여진 책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메대 파사로 권력이 바뀌는 시대의 사람이거든요. 다니엘은 이미 옛 사람이잖아요. 다니엘의 이름을 빌어서 자기들의 상황을 표현하고 신앙을 고백한 것이지요. 고대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글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서 아브라함, 모세, 다니엘 같은 신앙의 인물들의 이름을 빌려다가 그들이 말하는 것 같이 하는 것은 표절이 아니에요. 그들에게는 말씀의 권위를 더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거지요.

어거스틴이 이해했던 종말, 1970년대 한국교회가 이해했던 종말, 그리고 쓰여졌던 BC 160년경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지고 핍박을 당하는 고난 속에서 바라본 종말, 사람은 시간을 BC 100년경, AD 100년경, 1950, 이런 식으로 짤라서 얘기하지만 여러분 조금 달리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 것 같아요? 하나님 보실 때에는 모든 인생이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있듯이 하나님 앞에 동시에 같이 있어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에요.

예전에 서울대 물리학과 제원호 교수가 쓴 <시간의 의미>라는 칼럼은 짧지만 의미 있는 내용이었어요.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존재이신 하나님' BC 4000, BC 2000, AD 2000년은 영원 속에서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하나님 앞에서는 동시에 모여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맨 앞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고 그 뒤에 모세가 있고 또 그 뒤에 다윗이 있고 우리는 저 뒤에 앉아 있는 것뿐이에요. 우리 뒤에 태어날 후대들도 하나님 앞에서 다 함께 있는 거죠. 이게 하나님의 종말의 시간이죠.

물론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재난과 고통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열망하는 그 시간을 종말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마태복음 24 15절을 보니 '다니엘이 말한 대로 거룩한 성전에 가증한 것이 선 것을 볼 때에 너희는 당장 산으로 도망하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고 성전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이 있어요. 초대 교회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추방되는 역사적 사건을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종말이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다니엘서를 예언서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묵시서 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지혜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예언서라는 건 앞으로 무슨 일이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을 예언하는 것이지요. 묵시서 라는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죽으면 가는 하늘나라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그것이 묵시서 에요. 차원이 다르잖아요. 예언서는 수평적이라면 묵시서는 수직적인 것이에요. 다니엘서에 두 가지 내용이 있어요. 그러나 다니엘서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숫자도 나오고 연대도 나오지만 그것은 다 자기시대를 종말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낸 숫자들이에요. 그 연대와 숫자들을 추적해 보면 결국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서 끝나는 숫자들이에요. 특별히 BC 160년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들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로 된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열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힘을 얻을 수 있는 글이란 말이에요. 핍박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은 알아볼 수 없도록 그들끼리만 쓰는 암호로서 그런 숫자들을 쓴 것이지요. 그런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자기 시대에 맞게 왜곡해서 쓰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미국에서 안식교가 등장한 것은 150년 전, 19세기 중반이었어요. 안식교도 그 당시를 종말이라고 주장해서 우리나라에 종말론 열풍이 일었던 것과 같이 미국에서도 어마어마한 종말론 열풍이 일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정결하게 흰옷을 입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제 오실 예수님을 맞이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계산했어요. 계산이 틀렸다고 발표 했어요. 그 다음해가 맞는다고 주장했는데 또 오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들이 낸 변명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오시긴 오셨는데 공중 재림 하셨다. 우리가 구원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고 계신다. 이제 정말 우리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면 그때가 마지막 심판이다. 그러니 준비해라' 그렇게 해서 안식교가 등장한 거예요.

여러분, 다니엘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종말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종말은 세 가지로 얘기할 수 있어요. 우선 객관적 종말이 있어요. 분명 언젠가 세상의 종말이 있지요. 두 번째는 내 인생의 종말이 있지요. 우리 곁에 같이 계시다가 한분 한분 세상을 떠나지 않습니까? 부인할 수 없는 내 인생의 종말이 있어요. 그러나 또 하나 주관적인 종말이 있어요. 사업이 무너졌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든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든지 하는 격심한 고통 속에 있을 때에 차라리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그 시간이 주관적 종말이에요. 그런 상황에 빠져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지혜서라고 하는 거예요.

 

'종말론적 신앙 자세를 가지고 살아라.'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첫째 종말의 시간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 하셨지요. '그날은 아무도 모른다. 천사도 모르고 아들인 나도 모른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그건 아버지만 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왜 깨어 있습니까? 언제 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 내 인생의 종말이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종대왕을 살펴보니까 쉰 넷에 죽었더라고요. 제가 쉰 넷이 되기 전까지는 세종대왕을 기준으로 삼고 살았는데 세종이 벌써 죽었으니 다시 수정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태종을 기준으로 잡으려는데 태종은 쉰여섯에 죽었어요. 며칠 안 남았어요. 인생은 다 이렇게 가는 거예요. 알 수 없어요. '깨어 있으라.' 그날이 언제일는지 알 수 없지만 시대는 분별할 수 있다. 예수님 말씀하셨어요. '악하고 음란한 세대야, 너희는 어찌 기후는 그렇게 잘 분별하면서 시대는 볼 줄 모르느냐 오늘 당장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너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예수님은 마지막 시대 종말의 표적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씀하셨어요.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줄 표적은 하나밖에 없다. 마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사흘을 있다가 되살아 나온 것 같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는 사건이야말로 종말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무슨 말이에요? 예수 십자가 사건을 믿는 사람이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이에요. 예수 십자가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이에요. 그것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종말 준비가 끝난 거예요. 그런 사람은 오늘밤에 하나님이 불러 가셔도 아쉬울 것 없어요. 나머지는 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거예요. 그 신앙고백을 해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태복음 24 15절 말씀, '다니엘이 말한 대로 거룩한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우상이 선 것을 보거든 그때가 종말이다' 여러분, 우리가 더 이상 교회에 우상을 세우지 않지요.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욕심이 우상이다' 그 욕심이 돈을 좇는 거죠. 돈과 하나님을 두 주인 이라고 말했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되요. 정말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돈을 믿는가? 종말은 사실 세상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지요. 교회의 타락이지요. 교회의 타락이 종말의 징조에요. 세속의 물결이 너무 많이 들어와 가지고 이제는 어떤 게 바른 건지도 잘 구분 못하게 됐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깊은 은혜와 사랑을 늘 고백하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나머진 다 우상이 되는 거예요. 순서가 바뀐 거죠.

전 최근에 아돌프 히틀러의 기록영화를 봤습니다. 1961년에 독일에서 제작한 영화인데요. 아돌프 히틀러가 1차 대전 때는 독일군 하사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 왔어요. 1차 대전 이후의 독일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잿더미가 되었고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삶이 어려웠지요. 바이마르공화국이 일어났습니다만 민주주의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극좌파와 극우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어정쩡하게 서있는 공화국이 위태위태했어요. 그런데다가 결정적으로 1929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경제 대공황이 밀어닥치면서 독일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요. 하루아침에 육백만 실업자가 나왔어요. 바이마르공화국이 힘을 못 쓰는 거예요. 이때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요. 거짓 환상을 심어줍니다. 그러면서 "내가 독일을 재건하겠다. 원래 독일 게르만 민족은 가장 우수한 혈통인데 우리가 잡다한 인종과 섞여 살면서 변질된 것이다. 전 세계를 다스리는 게르만 민족을 다시 세우겠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은 세상의 법칙이요 당연한 것이다." 선동합니다. 2차 대전 때 유대인을 무려 600백만을 학살해요. 유대인 어린이 150만을 학살해요. 그 필름을 보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히틀러가 독일국민들을 다 속이잖아요. 그 마음을 뺏잖아요.

라디오 같은 선전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화려한 퍼레이드를 통해서 사람들을 환상 속에 빠뜨립니다. '대중은 어리석다. 그들의 이해능력은 낮고 그들의 수용능력은 좁다. 그러므로 선전을 통해서 얼마든지 우리가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심을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온 나라와 세계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히틀러에 대해서 독일교회가 지지를 보냈다는 거지요. 소수 깨어있는 사람들은 반대하다가 다 처형당했어요. 그런데 근면 성실한 일반 독일 대중과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지지를 보냈어요. 나중에는 구호가 '하일 히틀러' 가 되었어요. 구세주 히틀러가 되었어요. 그들의 구호는 '총통은 언제나 옳다' 였어요. 그가 신이 돼 버렸어요. 구세주가 돼 버렸어요. 안 믿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독일 교회가 그렇게 갈수 있었을까요? 이게 교회의 타락이에요. 정말 교회가 깨어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이 시대에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거지요. 종말론적 신앙은 시대를 분별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어요.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들이 생각지 못한 때에 마지막 날이 오리라' 어떻게 종말을 준비할 것이냐? 성경을 보니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그때에 종말이 오리라' 이게 기준이에요.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때 기업 활동이라든지 공부하는 일이라든지 가정생활이라든지 섬기고 봉사하는 모든 일들이 어느 것과 함께 가야 되느냐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시고 복음의 물결이 어디까지 가고 있으며 지금은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를 알고 그 일에 우리의 관심과 마음을 함께 실어야 해요. 그게 종말을 가장 확실하게 준비하는 방법이에요.

내년에 WPA 세계중보기도성회가 있습니다. 2012년에 미국 대통령, 프랑스 대통령, 중국 주석, 한국 대통령, 중요한 선거들이 있어요. 권력이 바뀌는 이때에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역사가 세속의 역사로 흘러가지 아니하고 하나님 손에 붙들려서 구원의 역사로 이끌려가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려고 하는 거예요. 지난 1월 인도네시아인 한인연합으로 중보기도 집회를 할 때 바로 그날 이집트에서 온 중보기도 대표가 말했죠. "지금 이집트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집트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 집회 끝나고 돌아가자마자 뉴스를 틀었더니 이집트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이슬람 선교에 문을 열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슬람 선교의 문이 열리고 있는 거지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거지요. 지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거지요. 이걸 봐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종말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방법은 뭡니까?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하는 거지요. 지금 하나님의 종말의 시간표는 사순절 기도회에요. 사순절에 같이 성경을 읽자고 했어요. 같이 성경을 읽는 것은 종말을 준비하는 거예요. 같이 기도하자고 했어요. 같이 기도하는 것은 종말을 준비하는 거예요. 가장 바람직하게 준비하는 거예요. 내 일하는 것과 내 모든 것이 교회 시간과 맞춰지고 하나님의 시간표와 맞춰져서 같이 가는 것, 그러다가 어느 날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아멘'하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 가장 훌륭한 종말의 준비에요.

오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요.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모든 기도와 관심과 걸음을 모으는 자를 불 속에서도 보호하리라' 약속하십니다. '부활을 주고 영생하게 하리라' 이 비밀을 깨닫는 자에게 햇빛 같은 삶을 약속하셨어요. 어두움 속에서 빛나는 별과 같이 잠들어 있는 자를 흔들어 깨우고 하나님의 복음으로 인도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