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0403 진실을 밝히리라(요 16:5-15)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5. 14:12

110403 진실을 밝히리라 (16:5~15)

성경본문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 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또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영국의 스타발굴 프로그램에서 폴 포츠라고 하는 휴대폰 외판원이 아주 감동적으로 오페라의 아리아 한 자락을 불러서 관객들이 열광했죠. 그 바람에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하는 인기 성악가가 됐어요. 그 이후로 그런 스타발굴 프로그램이 유행하더니 우리나라도 지금 오디션 열풍입니다. 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하는 미디어의 전략입니다만 <나는 가수다>라고 하는 프로그램은 더 기발해요.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을 전문가들이 심사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가수들을 불러 세워가지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투표로 인기를 결정하는 거죠.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이죠. 첫 회를 방영했는데 며칠 전에 우연히 TV에서 그것을 보면서 , 이래서 문제가 됐구나했습니다. 내로라 하는 7명의 가수를 뽑아서 자기 노래를 부르게 하더니 그 다음에는 남의 노래를 추첨으로 뽑아서 두 주의 시간을 준 후 그 노래를 부르게 한 후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투표로 7명 중에 한 사람을 탈락시키고 새로운 사람을 넣는다는 계획이죠. 그러니 아마추어가 노래 부르는 것하고 가수가 자기 이름을 걸고 노래 부르는 것은 완전히 다르죠. 가수들끼리 경쟁을 시켜서 탈락시킨다고 하니까 출연한 가수들이 목이 타는 거예요. 어떻게 전개되는지 흥미진진했습니다.

7명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정말 멋있게 잘 불렀어요. 투표결과가 나왔어요. 놀랍게도 가수들 중에 여러분이 잘 아는 김건모라는 가수가 있는데 제일 베테랑이죠. 대선배죠. 그 사람이 탈락이 된 거예요. 탈락자를 발표하는 순간 본인도 믿을 수 없고 다른 사람들도 믿을 수 없고 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표정이었어요. 충격이었습니다. 혼돈에 빠졌어요. 탈락자가 무대를 떠나야 되는데 후배가수들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이건 아니라고 하니까 그만 연출하던 PD가 헷갈려 버렸어요.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하더니 여러분들이 동의한다면 재도전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원칙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 버렸어요. 그날 녹화방송은 거기까지 끝났지만 네티즌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옳다, 그르다 논쟁이 쏟아져서 사장이 그 PD를 면직시켰습니다. 또 그게 옳으냐, 그르냐 하면서 심야에 100분 토론 하는 것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한 달 유보, 한 달 휴식기를 갖고 머리를 식히고 생각한 다음에 5월에 다시 하겠다고 결정됐습니다.

만약 다른 가수가 탈락이 되는 것으로 결정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틀림없이 서로 안타까워하고 격려하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거예요. 제일 잘 한다는 사람이 탈락자가 되니까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 모두가 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거죠.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 상황과 아주 비슷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날 저녁 유월절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내가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자들이 충격을 받았어요.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록 나귀였지만 왕으로 입성을 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호산나환호를 부르고 메시야 라고 외쳤는데 그 후 며칠 동안 물론 분위기는 좀 무거워지고 여의치 않다는 것은 제자들도 느꼈지만 차마 예수님의 입에서 내가 오늘 이 밤에 붙들려 가서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거죠. 혹시 예수님이 우리가 지금 위기 속에 놓여있다. 혹시 너희들 중에 죽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그랬다면, 사람은 다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 베드로가 죽나 보다, 요한이 죽을지도 모른다이렇게 생각하면서 대비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예수님이 내가 죽을 것이다하시니까 충격을 받은 거죠. 아주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걱정하지 마라. 내가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진실을 밝힌다면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야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는 것이다. 그가 오시면 이제까지 전개된 모든 일들을 너희에게 소상하게 알려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고 물위를 나오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그에게 오셔서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고 사명을 알게 되고 감동과 용기가 솟구쳐 광야에 가서 사십 일을 금식하고 극한 상황 속에서 주리게 될 때에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히 이겨내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않습니까.

여러분, 누가복음의 핵심이 뭔지 아세요? 인간의 몸으로 이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조건 속에 사신 예수. 그가 어떻게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었는가? 그가 뱃속에 잉태되기 전부터 성령께서 함께 하셨다. 그게 누가복음이에요. 누가복음은 사도행전과 짝을 이루어 소설의 상하권과 같아요. 사도행전은 뭐냐?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배우지도 못하고 연약하고 허물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그들도 성령이 함께 하셔서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감사하며 감격하며 승리할 수 있었다. 이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에요. 연약한 인간이지만 성령께서 오실 때에 우리 가운데 놀라운 삶이 열린다고 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미 성령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계셨기 때문에 앞에 십자가를 두고도 제자들은 말만 듣고도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는데 예수님은 말씀하셔요.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내가 떠나가고 성령이 오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왜 그럽니까?

요한복음 14 16절에 보면 예수님이 또 다른 보혜사를 하나님이 보내주신다고 말했어요. 여러분,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란 말은 어떤 보혜사가 있고 또 다른 보혜사가 있다는 말이에요. 여기서 또 다르다는 말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 아니에요. 똑 같은 종류인데 또 하나가 더 있다는 말이에요. 즉 예수님도 보혜사란 뜻이에요. 보혜사란 말은 우리를 보호하고 은혜로 지켜주시는 분이란 뜻이에요. 예수님이 이제까지 제자들을 지켜주셨어요. 성령도 제자들을 지켜주실 거예요. 더 엄밀히 구분한다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일이 예수님의 일이에요. 지금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걸 다 설명할 수 없어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감이 잡히지도 않아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깨닫든지 못 깨닫든지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게 예수님의 일이에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런 말씀이죠.

제 기억에는 중학교 3학년 때쯤 일거에요. 우리 교회에 문제가 하나 생겼었어요. 전도사님이 오셔서 성령에 관한 설교를 하셨어요. ‘성령은 하나님이시다고 했는데 장로님이 어떻게 성령이 하나님이냐고 해서 문제가 된 거에요. 많은 부흥강사, 목사님이 오셔서 성령 받아라. 불 받아라.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그랬는데 성령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니까 그게 뭐냐?” 했던 거지요.

여러분, 성경은 사도행전과 요한복음에서 성령의 두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성경은 항상 양면을 얘기하고 있어요.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받아라. 하나님의 선물이다이런 표현이 있어요. 사람은 연약한데 하나님께서 이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위로부터 부으시는 성령이에요. 위로부터 임하신 성령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베드로가 배우지도 못했고 거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임할 때 담대해져서 많이 배운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선포할 수 있었어요. 그런 용기를 주시는 성령이에요. 은사적인 성령이죠. 우리에게 놓여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전혀 없던 능력을 부어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어요.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셔요. 영원히 함께 하셔요.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을 도우셨던 것 같이 성령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면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지키시고 도우신다. 성령께서 내 안에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은혜를 알게 하신다. 성령이 단순히 위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능력이 아니라 인격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당연히 하나님이 눈에 보이겠어요? 영으로 계시니까 그분이 성령이시죠. 또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으니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성령은 이제 그 육신을 벗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 속에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신다.

마태복음 28 19절에서 20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또 우리가 예배를 마칠 때마다 하는 축도가 있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하심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같은 데서는 이것은 논리적이 아니다.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 예수는 누구냐?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천사장 중 하나이다. 성령은 뭐냐? 그건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이다 라고 해석해요. 어떻게 보면 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죠.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아요. 우리의 이해에 한계가 있어요. 천국을 갔다 오고 지옥을 갔다 온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사실이죠.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을 증언할 때에 그들의 언어와 경험을 가지고 표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제약이 있어요. 이렇게 저렇게 얘기해요. 비슷하기도 하고 서로 약간 다르기도 해요.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 경험적 한계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삼위일체의 하나님, 세 분이 각각 계시지만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신학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해석 가운데 가장 공감을 얻는 해석은 어떤 것이냐 하면, 여러분 강강술래라고 있잖아요.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같이 춤을 추죠. 춤 추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창조 때도, 구원할 때도,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실 때도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우리의 것으로 고백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택하셔서 그의 백성을 삼으셨다, 성도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공회, 즉 거룩한 교회, 성교회를 고백해요. 다섯 가지를 고백합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오늘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15절에 보니까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예수님의 말씀이죠.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다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표현이에요.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사실까 하는 그 물음에 답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사셨던 그 모습, 그 말씀, 그 능력, 그게 바로 우리 눈 앞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이에요. 그 예수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15절 후반절에 보면 성령께서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성령이 하시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일을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우리로 깨달아 알게 하시는 거죠. 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고 고백하게 하고 살게 하시는 거죠. 

8절에 보니까 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세상이 잘못 말하고 있으니까. 그러면 죄는 뭐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다 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나 안 나오는 사람이나 삶의 조건이 다 비슷해요. 다 죄인이에요.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꼭 도덕적으로 바른 것도 아니에요. 다 죄인이에요. 차이가 있다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 받은 죄인이에요. 우리는 늘 넘어져요. 믿는다 하지만 또 죄를 범해요. 그렇지만 예수 이름 앞에서 죄를 용서 받았어요. 우리가 아기를 낳으면 부모가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개구장이라도 좋다라고 하잖아요. ‘너의 모든 인생을 내가 다 책임지겠노라.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물질과 나의 온 마음, 내 사랑을 다해서 너를 사랑하겠노라이게 부모의 마음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할 때 법적으로 말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은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그 믿음을 가지고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이 몇 번 넘어지셨습니까? 스스로에 대해서 실망할 것 없어요. 원래 그런 존재인데 뭐 새삼 실망을 해요. 넘어지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냥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거예요. 여기 높이뛰기가 있어요. 얼만큼이나 높이 뛰십니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2m는 넘었다고 할지라도 기준을 3m로 높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대부분 다 걸려 넘어지겠죠. 기준을 높이면 넘어지게 되어있죠. 하나님의 기준에는 넘어설 사람이 없는 거예요.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허물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죄를 예수의 생명을 내어주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거죠. 뭐가 죄냐? 예수를 믿지 않는 게 죄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루시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이 죄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의는 뭐냐?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감으로 다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의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 십자가 사건을 다 이루셨어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셨어요.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셨어요. 이게 의란 말이에요. 우리가 좀 열심히 일하는 걸 가지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사람끼리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죠.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은 것과 같아서 말라 비틀어지는 것이에요. 부끄러운 것이에요. 그런 의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하는 거죠.

의는 뭐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구원의 행위, 하나님의 의로움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인정할 때 하나님이 네가 이제 내 마음을 알았구나하고 하나님이 칭찬하셔요. 이것을 칭의(稱義)라고 해요. 잘했다는 말이에요. ‘내가 너를 위하여 베푸는 구원을 네가 받아들였구나. 너 참 잘했다.’ 하나님이 선물을 주셔요. ‘내가 선물 받을 자격이 없는데요. 나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거 잘 하는 거 아니에요. 생명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 뭘 마다합니까? 저는 못돼서 그런지 선물이 좋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자격이 없지만, 선물은 노력의 대가로 받는 게 아니에요. 주는 사람의 온전한 사랑을 받는 거예요. 그리고 난 어떻게 하느냐,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거예요. 돈이 돌고 도니까 돈이잖아요. 사랑도 돌고 돌아야 돼요. 선물도 돌고 도는 거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선물에 감격하면서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선물로 나누어 주는 것, 이게 신앙생활이죠.

심판은 뭐냐?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는다. 세상 임금이라는 것은 사단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놀라운 은총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자기의 공로로 구원받으려 하는 모든 거짓된 이론과 생각의 배후에는 인간의 교만을 이용하는 사단의 역사가 있어요. 그 사단을 꺾으셔야 되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제사장이 되시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신 선지자가 되시고, 이 세상 임금인 사단의 권세를 꺾으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의 왕이 되신 예수. ‘예수가 그리스도란 말은 제사장이시고 선지자이시고 왕이시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고 사단의 권세를 꺾으시고 심판하셨다고 하는 뜻이에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많이 구하잖아요. 성령체험하기를 구하잖아요. 그런 게 다 필요하지만 핵심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예수가 내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다. 오늘 현실 속에 이 모든 문제를 기도할 때 들으시고 선한 뜻대로 응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러므로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만난 내 인생의 멘토>라는 책이 있어요. ‘웨인 코데이로라는 목사님의 책이에요. 이 분이 수십 년 전 삼십 남짓한 나이에 하와이에 처음 가서 목회를 하려고 했을 때 너무 어려웠어요. 굉장히 힘들어하다가, 그 하와이에 100여 년 전에 먼저 와서 선교사로 계셨던 타이터스 코언이란 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분이 쓴 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도서관에 가서 열람신청을 했더니 그 책은 고문서로 취급되어 대출은 안 되고 고문서 보관실에서만 열람할 수 있어요. 사서의 안내를 따라 고문서 보관실로 내려갔어요. 사서가 말합니다. “이 책은 절대로 손상되어서는 안 됩니다. 책장을 넘길 때에도 조심해주십시오.” 사서가 밖으로 나갔어요. 그 책을 읽을 때 참 감동적인 대목이 있었어요. 사서가 나간 다음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 웨인 코데이로 목사님이 책의 주인공인 타이터스 코언을 책 속에서 만나는 순간을 말하는 거예요. 그 책을 읽어요. 자기보다 100 년 전에 하와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면서 겪는 여러 경험담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고 어떤 위로를 얻고 어떤 지혜를 얻었는지를 한마음이 되어서 깊이 빠져버린 거예요. 읽는 것만으로는 너무 안타까워서 공책을 준비해가서 그것을 다 필사를 합니다. 그는 아주 성공적인 목회자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 성경읽기를 하고 있어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보면서 오늘 하나님께서 그 이야기를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성경을 하나님의 연애편지로 읽는 사람, 아주 똑똑한 사람이에요. 복음서를 읽어보세요. 그 불붙는 사랑을 주목해보세요.

여러분이 잘 아는 시인 한용운의 <복종>이라는 시가 있어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냐?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에 반응하는 사람, 이게 바로 사랑의 진실을 발견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