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0626 싸움이 끝난 후(수 10:12-15)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5. 14:34

110626 싸움이 끝난 후( 10:12-15)

성경본문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이런 짓궂은 유머가 있습니다. 조폭과 목사의 공통점 세가지. 첫째, 떼로 몰려다닌다. 둘째, 늘 검은 옷을 입는다. 셋째, 밥값을 안낸다. 어떻게 해야 밥값을 하는 것일까?

미래학자 피터 드라커는 말하기를, 리더에게는 헬리콥터 마인드가 필요하다. 비행기는 높이 날지만 멀리 볼 수 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자동차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멀리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헬리콥터는 높이 날 수도 있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목사는 교회 형편에 대해서도 익히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교회가 자리잡은 한인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해야 밥값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며칠간 슬라웨시 북쪽의 마나도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회교도가 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 사회로 남아있는 마나도 지역에서 느낀 인상은, 30년 전 한국교회와 똑같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차이점도 많지만 우선 첫 느낌이 그러했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고 또 밤마다 부흥회에 가보니 30년 전 한국교회가 뜨겁게 찬양하며 은혜를 구하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마나도 지역의 교회 역사는 180년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 교단의 역사가 180년이고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죠. 한국보다 먼저 교회가 들어왔습니다마는 어느덧 한국이 훨씬 앞질러 버린 것이죠. 한 세대를 앞질렀죠.

150년 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어요. 19세기 후반기에 전 세계에 엄청난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또 그런 정치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선교를 주도하는 나라였어요. 한국교회 역사에서 첫 번째 순교자는 영국 사람으로 로버트 토마스입니다. 그는 조선에 대한 선교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원군의 쇄국정책 때문에 들어올 수 없어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에 통역으로 승선을 해서 성경을 가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까지 왔다가 평양 군민과 충돌하는 와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1866년 그의 나이 27세였습니다.

얼마 전 한국 목사님들이 영국 교회를 탐방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고향교회를 찾아가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웨일즈 하노버라는 작은 동네였어요. 요즘 발달한 네비게이션에도 뜨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어요. 작은 교회를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건이었지요. 이렇게 작은 교회임에도 150년 전에 세계선교를 위해서 한 청년을 파송했구나. 아들을 선교사로 보낸 아버지가 그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고 하는데 그는 아들의 순교 소식을 듣고 온 교인들과 함께 이렇게 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 아들이 흘린 피의 열매를 반드시 거둘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결과 교회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한국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고향교회는 현재 노인들만 10여명 모이는 교회가 되어 담임목사를 둘 수 없어서 순회목사가 돌아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영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는 가장 큰 교회가 매각되어서 사무실로 개조되고 까페가 열렸다고 합니다. 또 회교도들이 많이 이민 오면서 날마다 교회는 문을 닫는 반면 회교사원들은 새로 문을 여는데 그 중에 교회를 매입해서 회교사원으로 꾸미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 모습 속에 과연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물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의하면 한국에 있는 학교들이 주 5일 수업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5일 근무에 이어서 주 5일 수업을 하는데, 가족들이 함께 하는 기회를 더 많이 주어 관광산업을 일으켜 내수를 진작하려는 의도가 있죠. 물론 맞벌이 부부들은 더 어려워 질 것이고 사교육 문제가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이냐? 20여 년 전에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프랑스 교회를 빌려 쓰더라고요. 주일 아침 11시에 예배 드리기에 프랑스 사람들은 언제 예배 드리느냐고 물었더니 여름 바캉스 두 달간은 모두 휴가를 갔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않는데요.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한인들이 11시 예배를 드리더라고요. 주인은 다 놀러가고 손님들이 집을 지키는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가 그 뒤를 따라가고 있어요.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지금 한국교회는 맨 앞서가는 유럽교회와 그 뒤에 선 미국교회를 따라가고 있어요. 또 뒤돌아보니 인도네시아교회가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유럽교회가 가버린 그 길로 갈 것인가? 지금 미국교회가 가는 그 방향으로 따라갈 것인가? 지금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참 놀라운 이적의 말씀이에요. 가나안을 정복하러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과 싸울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승리를 주셨는지! 그날의 싸움이 결정적인 승리가 되도록 해와 달이 멈추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디딤돌을 놓게 된 것이죠.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대로 기도하고 준비하여 하나님의 이적으로 요단강을 가르고 건넙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아이성 싸움에서 크게 패합니다. 군대를 다 보낼 필요 없다. 이삼천 명만 보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했어요. 그런데 웬걸 크게 패배합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낙담하게 되요. 하나님께 엎디어서 옷을 찢고 ‘하나님, 우리에게 왜 이런 패배를 주십니까’ 부르짖게 되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범죄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 모든 것을 불살라 버려라. 너희가 가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아간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금덩어리와 외투를 숨기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에서 패하게 된 거죠. 하나님께 다시 엎드려 회개하고 마음을 정결하게 한 다음에 나가 싸울 때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 오늘의 본문 내용이에요. 아주 결정적인 승리를 주시는 것이죠.

본문은 한국전쟁 6.25에 대한 상황과 절묘하게 대비됩니다. 한국이 세계 속에 정치 경제 스포츠와 한류 문화를 통해서 이렇게까지 그 위상을 높인 때가 없었죠. 반만년 역사 속에 처음 있는 일이죠. 해와 달이 멈춘 사건보다도 더 놀라운 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적중의 이적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8.15해방을 생각해 보세요.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그 소용돌이 속에 사실 독립할 희망은 거의 없었어요. 물론 여기 저기서 전투를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가지고는 독립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해방은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안이숙 여사의 책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에 많은 신앙인들이 옥에 갇히면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합니다. 당시 20대였던 안이숙 여사가 어머니와 함께 날마다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일본 신사 우상에게 돌을 던지는 장면이 있어요. ‘일본은 망해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해방은 그 기도의 응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 대혼란이 일어납니다. 정치적 혼란뿐 아니라 교회에도 대혼란이 일어나요. 교회가 분열되어 싸웁니다. 일제 치하에 신사참배한 것을 온전히 회개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6.25 전쟁을 통해서 뒤집어 놓습니다. 마치 여리고성 싸움 승리로 교만해진 백성을 자그만 아이성 싸움에서 크게 패하게 하시듯이 회개하지 않는 한국교회를 전쟁으로 치셨어요. 전쟁의 잿더미에서 교회는 다시 엎드러지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고 한 세대 만에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루게 되었죠. 엄청난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죠.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제 다시 갈림길에 섰습니다. 다시는 실패하면 안됩니다. 이미 유럽교회가 실패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어요. 미국교회에서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제 곧 세계선교를 주도하게 될 한국교회가 어느 길로 나아가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뒤따라오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따라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큰 승리를 거둔 다음에 길갈로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넌 후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멈추어선 강바닥에 있는 돌을 12지파 대표들이 하나씩 메고 요단강을 나와서 그들이 머무르는 자리에 돌탑을 쌓았습니다. 거기가 길갈이에요. 하나님의 이적을 잊지 말자고 돌탑을 쌓은 곳이죠.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처음으로 할례를 베풉니다.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는 늘 움직여야 했고 언제 어디서 적의 침입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할례를 행할 수 없었어요. 한번 할례를 행하면 다 낫고 아물기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광야에서는 할례를 행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가나안땅에 들어온 후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승리를 확신한 다음에 처음으로 할례를 베풀었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할례의 의미를 되새겨 주셨어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부끄러움을 벗어 버려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존재였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죄인이 되고 남의 종이 되어 살아야 했던 부끄러움을 벗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받아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라. 여러분 오늘 내가 왜 살아야 하고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발견 하지 못하면 그는 종이에요. 몸은 자유로울지 몰라도 그는 죄의 종 된 사람이에요. 왜 공부하는지 왜 사업하는지 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 할 수 없다면 그는 종이에요. 논산훈련소에 들어가서 훈련 받고 첫 휴가 나온 아들을 보세요. 일병 아무개! 하고 씩씩하게 관등성명을 대지 않습니까. 그렇죠, 군인이 되었잖아요.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할례의 의미예요.

우리에겐 사명이 있어요. 그저 돈 벌러 오지 않았어요. 물론 돈도 벌어야 되고 자녀들도 가르쳐야죠. 그러나 오늘 우리로 여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는 것이에요.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야 해요. 내 자신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가능한 것이에요. 그건 많이 배웠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배움도 지혜도 돈 버는 수완도 필요하고 열심도 필요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이 늘 내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서는 될 수 없어요.

길갈에서 할례를 행한 다음에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킵니다. 여러분, 유월절은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의식이잖아요. 하나님이 지키라고 했잖아요. 우리들이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과 같죠. 그리스도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죠. 그리스도 십자가를 기억하는 것이죠. 한 주간의 나의 삶을 십자가에 비추어서 그릇되고 잘못된 것들은 씻어 버리고 다시 십자가를 붙들고 살기로 다짐하는 것이죠. 전쟁이 끝날 때마다 길갈로 돌아와서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 해요. 길갈로 돌아와야 해요. 십자가의 은혜로 돌아와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는지 살펴보고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절대로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우리 앞에 갈림길이 놓여있어요. 하나님의 시대적인 뜻을 좇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육신적인 욕망을 따라 살다가 텅 빈 교회로 될 것인가?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에요.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에요. 이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