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10 표적의 조건(막 6:34-44)
성경본문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인도네시아 나와 있는 여러 선교사 중에 제 친구인 이필환 선교사는 중부자바 웅아란에 있는 압디엘 신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데요, 한 주 전에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다행이 가족이 옆에 있었기에 긴급히 스마랑 엘리자벳병원으로 후송해서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직 의식은 깨어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며칠 전에 찾아가서 손을 만져보니 손이 차가웠습니다. 순간 마음에 낙담이 되더라고요.
그는 지난 1990년 인도네시에 들어와서 5년간 선교사역을 하다가 후원이 끊어지자 미국으로 들어가서 10여 년 한인목회도 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녀들을 길러 대학도 졸업시켰습니다. 본인도 미국 시민권도 받았으니 이제는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고 고향 같은 인도네시아에 돌아와서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가르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인생의 노년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쓰러지던 바로 그날 저에게 전화를 했었어요. 만난 지도 오래 됐는데 시간을 내어보자 그러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날 밤 갑자기 쓰러졌답니다. 그의 차가운 손을 만지는 순간, 해 저무는 빈 들판에 홀로 서있는 인생임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있습니까? 따뜻한 햇볕아래 앉아 있습니까? 추운 그늘 아래 서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자기 앞에 나온 무리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했어요. 여기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을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라고 하는데 우리 표현으로 옮기면 ‘애가 탄다’는 말이에요. ‘애‘라는 말은 창자를 가리키는 옛말이죠. 너무 속이 타고 안타까울 때 ’애간장이 탄다‘고 말하잖아요.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볼 때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어찌 그들만 불쌍하겠습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길 잃은 사람들이죠. 목자 없는 양 이라는 말은 길을 잃었다는 말이에요.
물론 건강관리도 잘 해야 하죠. 진작 혈압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일이 터지기 전에는 밤낮 미루지 않습니까? 그저 ‘괜찮아 괜찮아’ 이번에 저도 돌아오자마자 당장 병원에 갔어요. 혈압은 늘 체크하지만 당뇨는 어떤가 해서 체크했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여러분도 다 체크하세요. 의사가 있잖아요.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서 준비된 사람이 있잖아요. 왜 그것을 미루겠습니까? 하물며 길 잃은 인생을 위하여 주님이 계셔서 불쌍히 여기시고 자기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이게 은총이에요. 여러분, 겸손해야 해요. 핏줄만 하나 터져도 영락없이 쓰러지는 거예요. 옆에 가족이 있었으니까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그냥 외롭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겸손해야 되고요. 우리를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는 주님이 계심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죠. 은총으로 사는 인생이에요.
찬 손을 만지니 너무 기가 막힙니다. 이것 저것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요. 다행히 곁에서 젊고 똑똑한 선교사님이 도와주고 있어요. 제가 환자의 찬 손을 만지면서 걱정을 하니까 의사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해 주더군요.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감각이 많이 돌아와서 몸도 뒤틀고 하품도 하는 등 많이 좋아졌습니다.’ 얘기해요. 그날 제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하품 여러 번 하면서 몸을 뒤틀더라고요. 의사 얘기는 뇌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는 뇌가 많이 부풀어 있으니까 잘 가라앉을 수 있도록 하고 또 아직 혈압이 높아서 지금 깨어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맞은 시간에 눈을 뜨도록 수면제를 주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눈을 감고 있는 것은 낙담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싸인이라는 거예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 낙담하고 있었던 거지요. ‘아, 그게 아니로구나’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상황에 관해서는 내가 보는 대로 판단하고 느낄 게 아니고 전문가인 의사의 상황해석을 들어야 되는 것이죠.
여러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잘 귀담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믿음이에요. 오병이어, 떡 다섯 덩어리 생선 두 마리, 어린아이의 도시락이란 말이죠.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 주님께서 굶주린 무리들을 먹이셨다는 이적이에요. 이것을 믿느냐 마느냐 하고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여러분이 생각이 깊은 분이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날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몸을 생각해 보세요. 언제 한번 자기 건강을 제대로 관리했습니까? 사실은 은총으로 살고 있어요. 믿음의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에겐 떡 다섯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로 무리를 먹이시려는 뜻이 있어요. 예수님의 주도적인 계획이 있고 그대로 일을 이끌어 가셔요. 마가복음 6장과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어요.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보다 더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주님,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벌써 해가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그만하시고 이들을 마을과 촌으로 돌려보내서 먹을 것을 각자 구하도록 하시죠, 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의견을 얘기했어요.
그러나 주님은 이미 하실 일을 아시고 계획대로 일을 풀어가고 계셔요. 그 때가 유월절이라고 했어요. 유월절은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명절을 지키는 절기에요. 그런데 여기는 갈릴리 호숫가예요. 유월절이지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모여 있어요. 또 병들고 아파서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유월절 잔치를 베푸시려는 거예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저 떡을 먹은 게 문제가 아니고 자기들 앞에서 일어난 이적을 보고 새로운 눈을 열고 감동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50명 100명씩 떼를 지어 앉히신 것이죠. 마치 넓은 들판에 꽃이 핀 것 같이 모여 앉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유월절 잔치를 경험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게 우리 주님의 의도예요. 누구도 그 계획을 알지 못했어요.
제자 중 똑똑하다는 빌립이 말합니다. 이 사람들을 조금씩이라도 먹이려면 최소한 200데나리온이 듭니다. 1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이에요. 그 엄청난 돈도 없지만 그 많은 음식을 어디서 갑자기 구하겠습니까? 그게 머리 좋은 빌립의 계산이자 빌립의 한계예요.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 찾아 보아라 그랬더니 동작 빠른 안드레가 부지런히 돌아 다닙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즉시 자기 형 베드로를 이끌어 왔고 친구 빌립도 인도해 왔고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헬라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온 사람이에요. 안드레가 돌아다니다가 찾아낸 것이 어린아이의 도시락 이에요. 주님 앞에 내어놓으면서 여기 하나 찾아왔습니다마는 아이고 주님 이것 가지고 뭐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안드레의 장점이며 약점이에요.
먼저 주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일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어요.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가까이서 보게 하시고 이적을 체험케 하셨어요. 주님은 우리 인생의 멘토가 되시는 분이죠. 주님의 일을 통해서 이제까지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지혜를 부어주시는 거죠.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빌립, 생각이 빠른 사람 이에요. 안드레, 친화력이 있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는 어린아이와 같이 그저 자기 먹을 것에 매인 사람도 있어요. 주님은 그들을 다 받아주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고 주님이 행하시는 이적을 보게 하셔요. 그러니 우리가 서로 비판하고 판단할 게 없어요. 주님께 가까이 나오기만 하면 되요. 주님께 믿음을 배우면 되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되는 거예요.
이제 여기 이적이 일어납니다. TV 프로그램 중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것이 있지요. 정말 별의 별 일이 다 있습니다. 콜라에 밥 말아먹는 사람도 있고 희한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또 요즘 프로그램들이 온통 ‘써바이벌’ 생존 경쟁이에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브라운관에 옮겨놓았어요. 시합에서 승리한 사람들,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동을 얻으려고 해요. 감동에 목마른 세상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감동을 주님 안에서 찾으세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삶에 목마르지 않는 감동을 주시는 거예요. 성경에 많은 이적이 있지만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말해요. 어떤 목적을 증거하는 이적을 표적이라고 말해요. 무리들이 떡을 얻어 먹었어요. 떡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어요. 저런 능력자라면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왕으로 모시려고 했어요.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던지 막 쫓아다니는 거예요.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 아닌가 그러나 먹어 없어질 양식만 구하지 말고 하늘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구하라. 바로 내가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의 떡이다.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내 인생의 생명의 떡임을 증거하는 사건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발견하라고 하는 것이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날마다 고백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오병이어와 같이 보잘것없는 나의 인생에 친히 찾아오셔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체험하는 것, 이게 우리 삶의 표적이에요.
예수님께서 떡을 받아 드시고 축사하셨어요. 여기서 말하는 축사는 ‘축복하고 감사한다’는 뜻이에요. 하나님께 감사기도 하시고 나누어 주셨어요. 기도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내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것입니다. 카톨릭에 예수회가 있죠. 예수회를 시작한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라는 인물이 있어요. 그는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것이 주님께 달린 것처럼 기도하라.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게 달린 것처럼 노력하라. 또한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적당히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최선의 노력을 해야죠.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보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지루한 일상이 아니고 단순한 이적도 아니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표적이 되는 거예요. 파도같이 다가오는 어려움조차도 내게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건으로 볼 수 있기에 내 삶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나와 함께 살아계심을 기뻐하고 증거하고 찬양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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