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16 한 가지 소원 (시 27:1-6)
성경본문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김정열’ 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그 분은 우리나라 초대 공군참모총장으로 6.25를 겪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4.19 때는 국방장관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5.16 이후에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또 노태우 대통령 때는 국무총리를 하신 분이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현대역사의 산 증인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김정열 자서전>이 우리 도서실에 있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그 분이 인도네시아와도 인연이 있더라고요. 원래 그 분은 일본 육사 항공대를 나오신 분이에요. 전투기 조종사였습니다. 1943년 그의 부대가 인도네시아로 파견명령을 받게 됩니다.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남방으로 파견을 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태평양 전쟁의 전세가 일본에게 불리하게 기울기 시작했죠. 그가 자기 중대를 이끌고 떠나올 때 많은 주위 사람들이 애석해했습니다. 이제 곧 죽게 되었다고. 그는 반둥과 솔로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빨렘방 유전지대를 지키다가 전쟁 말기에 마지막 전출명령을 받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들은 직후에 인도네시아를 떠나게 됐어요.
해방 후에 미군정 치하에서 국방경비대가 조직이 될 때 공군의 모체가 되는 모임을 준비하게 됩니다. 공군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를 시작하고 미군정에 건의했더니 수색에 가서 훈련을 다시 받으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소위로 다시 훈련을 받으면서 시작을 해요. 국군 초창기가 얼마나 과도기였는가 하는 것을 참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매달 진급해요. 6.25 때 소장이 되고 참모총장이 됩니다. 전쟁을 겪고 나서 퇴임을 할 때 그의 나이 35세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국방장관으로 부름을 받을 때 40세였어요.
1959년에 북한이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 교포를 북한으로 실어 나르는 북송작전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첫 배가 출발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분노합니다. 국방장관을 불렀어요. “자네, 나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뭐 하나 일을 좀 해보세. 우리 교포들을 북한으로 끌고 가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네. 저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좀 대책을 강구하게나.” 그러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외교라인이 막혀 있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국방장관이 고민을 하다가 대통령께 다시 나아가서 보고를 드립니다. “각하, 우리의 사정이 지금 이렇습니다. 지금 전방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기름은 단 3일밖에 버틸 수 없습니다. 탄약과 화포가 있지만 전투가 벌어진다면 단 하루면 다 떨어집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할 터인데 지금 상황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이 막 화를 냅니다. 38선 바로 아래 백령도 맞은편이 옹진 아닙니까. “옹진이라도 점령할 수 없단 말인가?” “각하, 죄송합니다.” 그대로 물러나왔어요.
그랬는데 국방장관실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막 전화벨이 울립니다. 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이 전화를 하는 거예요. “지금 무슨 일입니까? 대통령이 지금 호출하셨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통령께 가기 전에 빨리 나한테 들리시오” 다 모였어요. 지금 85세가 된 노 대통령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국방장관이 꾀를 냈어요. “가서 이렇게 이렇게 말하시오.” 보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는 “각하, 우리가 지금 당장 황해도로 진격하겠습니다.” 그랬더니 해군참모총장이 맞장구를 칩니다. “각하, 우리는 지금 당장 대마도를 치겠습니다.” 공군참모총장이 말합니다. “각하, 우리는 지금 북송선이 떠나는 일본 니가타를 폭격하겠습니다.” 이렇게 나가니까 대통령이 “아, 장하네, 장해. 그런데 그건 알고 있나? 우리 기름은 3일뿐이고 탄약과 화포는 하루치뿐인데 과연 그걸 할 수 있겠나?” 그리고는 모두 돌려보냈어요. 대통령의 분노한 마음을 가라앉힌 거죠.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이 회고록을 쭉 읽어보니 살아온 게 기적이에요. 6.25때뿐만이 아니었어요. 1959년 북송사태 때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능력이 없었던 거예요. 하나님이 지켜주셨어요.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게 있어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해서 넋 놓고 있어서는 안되죠.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되죠. 부지런히 준비해야 되죠.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 포로가 된 미국 장군의 이름이 스톡데일입니다. 그는 8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풀려나왔습니다. 그가 8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많은 부하들을 잘 이끌고 다스려서 함께 풀려나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8년 간의 포로생활을 지켜보니 포로생활의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낙관주의자들이 아니고 현실주의자들이었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 그것은 해답이 아니죠.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아마 풀려나갈 수 있을 꺼야.’ 기대하다가 실망합니다. ‘다음 부활절 때는 풀려나갈 수 있을 거야.’ 또 실망합니다. 이런 거듭된 실망이 누적되면서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병들고 지쳐서 죽었다는 거예요.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나갈 수 없다. 마음을 다듬고 준비하라.’ 마음을 굳세게 붙들고 언젠가 나갈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다스렸던 냉정한 현실주의자들이 끝내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하는 거죠.
우리의 삶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님의 일이 있고 사람의 일이 있어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풀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하시는 일이에요. 그럼 사람이 하는 일은 뭐냐? 현실을 냉정히 들여다 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이 해야 할 일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 현실로 이해하는 사람은 현실주의자가 아니에요. 오늘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현실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다윗이 나옵니다. 다윗은 젊은 시절, 철 들고 나서부터 나이 칠십, 죽을 때까지 한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사람이에요. 그는 용사였어요. 리더였어요. 장군이고 사울 왕의 사위이기도 했고 총사령관 역할도 했고 끝내는 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시인이었어요. 아주 부드러운 감성을 가진 사람이에요. 노래를 짓기도 하고 그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설계하기도 했던 디자이너였던 사람이죠. 그는 원치 않게도 한평생 블레셋과의 전쟁의 위기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에게 소원이 있었어요. 오늘 이 시를 읽어보면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노라. 그것은 한평생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6.25 때 유명한 전투가 있습니다. 9.28 수복 이후에 전세가 역전이 되어 북진을 할 때 미군을 비롯한 UN군이 함경남도에서 강계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예기치 못하게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죠. 미 해병 1사단이 아주 큰 타격을 입습니다. 미국 전사에 ‘진주만 패배 이후 최대의 패배였다’고 기록될 만큼 큰 패배였어요. ‘장전호 전투’입니다. 그 때 미군들이 속수무책 퇴각을 하면서 수많은 희생을 내게 됐는데 미국 특파원이 한 병사에게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 병사가 말합니다. “Give me tomorrow(내게 내일을 주십시오).” 언제 죽을지 몰라요. 지금 내 옆에 있는 많은 전우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불안과 공포를 말할 수 없어요. 평범한 하루, 그것만 바라고 있는 거예요.
다윗이 용사였습니다마는 다윗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던 거죠. 그가 자기의 소원을 말합니다. ‘평범하게 일상을 맞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을 그가 그토록 소원했단 말이죠.
‘호스피스’라고 아시지 않습니까?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가 없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이 마지막 죽음을 준비하는 자리가 호스피스 병동이죠. 거기에 보니 꼭 나이가 많으신 분들만 계신 게 아니에요. 시퍼렇게 젊은 사람들도 원치 않게 암이라든지 여러 가지 질병으로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서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들에게 묻습니다. “마지막 바램이 무엇입니까?”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 줄 알았다면 좀 더 기쁘게 감사하면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누면서 살아야 했을 텐데”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이렇게 죽음에 임박해서야 비로소 헛된 것들을 다 내려놓고 정말 사람이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그제야 깨달아요.
다윗은 전쟁터에서 그 절박한 죽음의 위기 속에서 정말 내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았던 것이죠. 그건 높은 지위도 아니고 돈도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었던 거죠. 다윗이 예배를 사모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젊은 시절 사무엘을 만나요.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서 하나님의 약속을 들어요.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꾼이 될 것이고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주실 것이다.’ 이게 언약이죠. 이 언약이 있기에 예배할 때마다 언약을 붙들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어요. 그게 바로 십자가의 언약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이제 내 삶 속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사시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전쟁터만 전쟁터가 아니에요. 오늘 하루하루의 삶이 전쟁터에요. 성을 빼앗는 것보다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말했잖아요. 미국 대통령이 아무나 됩니까? 가장 똑똑하고 정치력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데 클린턴 미대통령은 섹스 스캔들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휘두르면서도 정작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어요. 이게 바로 인간의 한계에요.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장하실 수 있어요.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죠. 십자가 구원의 은총을 붙들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사람이죠.
얼마 전에 한경직 목사님의 육성 유언이 공개됐어요. 한경직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그 분이 자기 아들, 손주, 며느리들을 이렇게 불러모아서 남기신 유언이죠. ‘나는 너희들에게 남겨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그 분은 정말 집 한 채, 땅 한 평 가지고 계시지 않았어요. ‘내가 남겨줄 유산은 딱 하나, 신앙밖에 없구나. 예수를 믿되 머리로만 믿지 말고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꼭 가져라.’ 여러분, 지난 한국 100년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인 한경직 목사님의 유언이에요. ‘머리로만 믿지 말아라. 하루하루 밥을 먹듯이 말씀 한 구절이라도 읽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라. 사람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이다. 살아가는 동안 좋은 씨앗을 많이 뿌려서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라. 한국사람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너무 나이 들어서 예수 믿으면 자꾸 머리로만 믿으려고 해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어야 돼요.
며칠 전에 아주 기쁜 일이 하나 있었어요. 제가 사는 주택에서 스나얀시티 쇼핑몰까지는 멀지 않거든요. 어느 날 저녁에 걸어서 다녀왔어요. 그런데 준혁이하고 준우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저희가 걸어가는 모습을 봤던 것 같아요. “엄마, 엄마. 우리 목사님이다.”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목사님이 간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 길이 하도 비좁으니까 저는 차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온통 신경이 곤두서가지고 듣지 못했지요. 제 갈 길 바빠서 몰랐지요. 나중에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래, 내 팬이 확실히 둘이 있구나.’ 했어요. 뭐 여러분이 지나가다가 차 안에서 저를 본다고 창문을 열고 그렇게 하겠어요? 어린 아이는 그래요. 빵 한 번 사준 일이 없건만 말이죠. 그렇게 좋아하고 ‘우리 목사님이다’ 그랬다는 거예요. 순수해요, 아이들은.
그래서 신앙은 아이 때부터 가르쳐야 돼요. 원래 신앙은 보수적 신앙이 좋은 거예요. 복음적 신앙으로 출발해야 되는 거예요. 성경에 의문점이 많아요. 어떤 분은 ‘이게 뭡니까, 저게 뭡니까?’ 계속 물어요. 제가 가르쳐드리기는 하지만 원래 믿음이라는 것은 믿으면서 시작하는 거지, 이게 뭡니까, 저게 뭡니까 그거 알았다고 믿음이 오는 게 아니에요. 믿음의 순서를 아셔야 돼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그 말씀을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우주의 신비를 보면서 우리가 ‘와’ 하고 놀라듯이 ‘아,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단 말이야’ 하면서 받아들일 때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니 나이 들어가지고 머리 복잡한 사람이 믿기가 참 어려운 거예요. 의문이 일어날 때 그것을 찾아보고 물어보고 해야 되겠습니다마는 한 가지 더 생각하세요.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심어주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귀한 거예요. 교회에서 교사로 일하는 분들은 특별한 분들이에요. 잘나서가 아니에요. 부름 받았다는 것, 내 눈빛과 손길과 내 말 한마디에 어린 아이들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거예요.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다 기억해요. 1학년 때 선생님도 기억하고 6학년 때 선생님도 기억하고. 아주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던 선생님을 기억해요. ‘아우! 선생님이 어째 저렇게 뜨겁게 가르치실까?’ 그런 감동을 지금도 기억해요. 교사 일을 하는 것은 축복이에요. 왜? 가르치면서 배우는 거예요. 특권이에요. 알고 보면 먼저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교사에요. 왜? 결국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전쟁터에서 죽음의 위기 속에서 다윗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그 은혜를 덧입고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기도제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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