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13 내가 가르치리라 (시 32:1-11)
성경본문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셀라)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저는 전에 교회로 쓰던 주택을 원상복구해서 살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동네를 한 시간씩 도는 걷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에요. 그런데 돌다 보면 쥐들을 보게 되요. 집은 크고 멋있는데 쓰레기 처리는 잘 안 돼가지고 쥐를 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 ‘월트 디즈니’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는 참 가난한 만화가 였습니다. 자그마한 셋집에 살면서 월세도 제대로 못 내는 아주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데 그런 집에 쥐가 들락날락 하잖아요. 유심히 쥐를 관찰했다는 거예요. 쥐에게 먹이도 줬다는 거예요. 드디어 1928년 ‘미키 마우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어요. 그게 오늘날 전 세계의 만화캐릭터 가운데 가장 수입이 높아요. 1년에 5조를 벌어주는 캐릭터에요. 남다른 생각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끔찍하고 징그러운 쥐를 전 세계 아이들의 친구로 만들어놨으니 말이죠.
남다른 생각을 하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 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러나 여러분, 방법이 있어요. 남다른 생각이라는 게 꼭 내 머리에서만 나오라는 법이 없어요. 남의 머리에서 나온 걸 좀 빌려다 쓰면 그게 남다른 생각이에요. 좋은 모델로부터 힘써 배우면 그게 다 내 생각을 새롭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왜 책을 읽습니까?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요. 고정되어 있어요. 묶여 있어요. 책을 통해서 생각을 휘젓는 것이잖아요. 그러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잖아요. 주위에 좋은 모델을 두고 따라 하는 것은 아주 효과가 있는 학습법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이 필요한 거잖아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선생님이 지도합니다. 학생들이 혼자 집에 앉아서 공부한다면 아주 효과가 낮기 때문이죠. 모델을 두고 공부할 때에 학습 효과가 있고 또 학습촉진효과가 있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흥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이 모델을 따라가면 이러한 결과가 주어진다고 하는 검증된 결과가 있다고 하는 것이죠.
<The Divine Mentor>라고 하는 책이 있어요. 우리 제목으로는 <성경에서 만난 내 인생의 멘토> 이렇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멘토’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길잡이를 말하잖아요. 인생의 마디마디 조언해주는 사람을 멘토라고 얘기하잖아요. 이 책을 지으신 분은 ‘웨인 코데이로’라고 하는 목사님이에요. 31살 젊은 나이에 하와이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목회를 시작했는데 너무 너무 어려움이 많은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31살 나이에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시작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너무 답답하고 괴로운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알고 보니 150년 전에 ‘타이터스 코언’이라고 하는 선교사가 하와이에 들어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큰 부흥이 일어났다고 하는 거예요. 150년 전이니 그는 이미 고인아닙니까. 그런데 그가 하와이에서 선교를 하면서 남긴 책이 있다는 거예요. <하와이에서 보낸 삶>이라고 하는 책이에요.
도서관을 찾아서 그 책을 청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그 책은 고문서로 분류돼서 일반에 대출되지 않아요. 그 책은 고문서 보존실에 있어요. 어렵게 부탁을 드려서 사서를 따라 고문서 보존실에 들어갔습니다. 책이 낡았기 때문에 아주 잘 포장이 돼있어요. 그것을 잘 벗기면서 사서가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대출도 안 되고 복사도 안 됩니다. 책이 망가질까봐요. 단 하나, 손으로 옮겨 쓰는 필사는 가능합니다. 책장을 넘길 때에 책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거예요. “알았습니다.” 책을 받아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폅니다. 한참 지켜보던 사서가 떠나갔어요. 웨인 코데이로 목사님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했어요. ‘사서가 떠나가고 문이 닫히자 이 방 안에는 늙은 타이터스 코언 목사와 젊은 웨인 코데이로 단 둘만 남았다.’ 몇 달동안 날마다 찾아가서 그 책을 옮겨 적습니다. 그 책 속에 타이터스 코언이 하와이에 첫 발을 내딛고 목회를 하는 동안에 겪었던 수많은 실패와 성취와 다양한 경험들을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다 빨아들이는 거예요. 그와 대화하는 거예요. 자기가 하와이 30년 목회에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타이터스 코언의 멘토와 조언을 통해서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웨인 코데이로 목사는 이렇게 얘기해요. 인생에 두 스승이 있다. 하나는 지혜요 하나는 결과이다. 지혜라고 하는 스승은 나에게 선불을 요구한다. 훈련을 요구한다. 그 남다른 훈련에는 고통이 따르죠. 그러나 순종할 때 그 열매는 달다. 그러나 또 다른 스승, 결과라고 하는 스승은 후불제에요. 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둬요. 방임해요. 그러나 끝내는 뼈저린 실패를 겪게 되고 그제서야 후회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하는 것이죠. 성경에는 약 400명의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엄선한 멘토들이다. 주의 깊게 성경의 책장을 넘겨볼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모습을 통하여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이 있다.
여러분, 성경책은 다른 역사책하고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원래 역사책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 다른 거예요.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잖아요. 또 신라중심의 역사관이 있고 고려 중심의 역사관이 있고 조선 중심의 역사관이 있는 거예요. ‘용비어천가’라고 하는 것은 고려를 넘어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그의 왕권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성계의 4대조 조상들의 이야기를 다 모아가지고 그것을 신화화한 책이란 말이에요. 조금이라도 조선 왕조에 흠이 될만한 내용은 다 뺐어요. 신화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어요. 합리화하는 거예요. 그러나 성경은 달라요.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의 속사람을 낱낱이 아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성경에서 인간은 벌거벗은 것 같이 그대로 다 드러나요. 아름다운 것만 이야기하지 않아요. 우리 맘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다 드러내는 거죠.
여러분 직장생활을 하는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요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도대체 어디가 길이냐? 도대체 나는 누구냐? 특별히 직장생활 초년병들이 너무 힘들잖아요. 전화하잖아요. ‘그만두고 싶어.’ 그럴 때 여러분은 뭐라고 말합니까? ‘안돼, 참아야 돼.’ 그러면 말이죠, 그것은 말은 맞는데 전화 건 사람의 기대에 빗나간 거예요. 전화 건 사람은 공감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어, 그러니? 많이 힘들겠구나. 그럼 그만둬.’ ‘그렇게 힘들구나. 얼마나 힘들었니. 그만둬.’ ‘엄마가 책임질께. 아빠가 책임질께. 그만둬.’ 막상 그만두라고 하면 갑자기 싱거워져요. ‘알았어요.’ 그러고는 전화 끊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일하게 돼요. 왜,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었기 때문에.
그러나 의사는 다르잖아요. 아픈 사람 옆에서 부모나 친구는 위로해줄 수 있지만 의사는 고쳐야 되잖아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고치시는 의사에요. 그래서 때로는 엄청난 얘기를 하세요. 시한부 선고도 하세요.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하나님 앞에 이야기하게 하는 거죠. 하나님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고귀한 존재지만 하나님 없이 살겠노라고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길을 잃어버렸어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되는데 길을 알지 못해요. 또 안다고 해도 그것을 헤쳐나갈 능력이 없어요. 더 심각한 것은 자기가 길 잃은 죄인이라고 하는 것 조차도 몰라요. 스스로를 속여요. 내가 이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이런 부를 쌓고 이런 지위를 누렸으니 나만큼 열심히 일한 사람 있으면 한 번 나와보라고 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스스로 속아버렸어요. 남을 속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미혹돼서 속게 됐어요. 예레미야 17장 9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물 가운데 가장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누가 이것을 알리요.’ 자기도 몰라요. 자기의 마음이 부패한 것을 스스로 몰라요.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본문은 다윗의 기도요, 다윗의 고백이에요. 여러분, 다윗이 어떤 사람이에요. 그는 한평생 전쟁터를 누비며 싸웠던 용감한 장수에요. 드디어는 권력을 쟁취한 왕이었어요. 그러나 제 아무리 용맹한 장수라도 모든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 거예요. 이제까지는 이겼을지 몰라도 그 다음 싸움에서는 죽을지도 몰라요. 늘 나가서 싸우는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불안이 있는 거예요. 죽느냐 사느냐 이것만은 불확실한 거예요. 언제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거예요. 또한 다윗은 시인이었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어요. 늘 시를 노래하고 이야기 하며 인간을 면밀하게 관찰해요. 인간을 관찰할 때 우리의 일상 속에 유혹이 있고 유혹에 반응하는 죄 된 본성이 있어요. 그래서 다윗이 범죄하잖아요. 그러나 놀랍게도 그 실패를 통해서 잠깐 잊었던 자기의 죄 된 본성을 뼈아프게 깨닫게 돼요. 그리고 주님 앞에 고백하게 되는 거예요.
다윗이라는 이름은 ‘사랑 받는 자’라는 뜻이에요. 구약에 많은 인물이 있지만 다윗 같은 인물이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했던지 이름 자체가 ‘사랑 받는 자’였어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다윗이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이죠. 그는 오늘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를 나의 죄와 허물로부터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고난이 홍수같이 몰려올지라도 나에게는 주의 구원이 있습니다. 나를 인도해주십시오. 말이나 노새같이 재갈에 물리고 고삐에 끌려 가는 인생이 되지 말게 하시고 주의 선하심을 알게 하셔서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그랬더니 하나님이 오늘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너를 가르치리라. 특별히 너를 주목하고 너를 이끌어주리라.’ 여러분 이거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지난 주간에 말레이시아에 다녀왔습니다. 동말레이시아 보루네오섬 북쪽에 사바주가 있고 거기에 SIB라고 하는 교단이 있습니다. 거기 계시는 한인 선교사님의 주선으로 그 곳에 가서 현지목회자들에게 헬라어를 가르쳐주고 왔는데요, 제가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하고 또 다르더라고요. 가보니까 20대부터 60대까지 현지 목회자들이 헬라어를 조금 배워봤거나 전혀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전 지역에서 왔어요. 얼마나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는지 몰라요. 지적인 수준을 가지고 얘기하면 젊은 학생들보다 모자라는 부분이 많죠. 그런데 그들의 강점이 있었어요. 아주 갈급한 마음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여러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대요. 내 입에서 나간 말, 시위를 떠난 화살, 또 하나는 잃어버린 기회. 이 분들이 아주 간절하더라고요. 두 주간에 걸쳐서 그분들을 가르쳐드렸습니다. 저 나름대로 학습법을 부단한 경험을 통해서 익힌 게 있어 문법을 복잡하게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목적은 성경을 읽고 단어를 분해하는 법을 알아서 활용하는 데 있으니까. 잘 가르쳐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총회장님을 비롯해서 모두 아주 기뻐하셨어요. 아주 만족해하셨어요. 내년에는 히브리어를 가르쳐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가르쳐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족함과 허물을 인정하고 나를 가르쳐주십시오 라고 구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내가 너를 주목하여 너를 가르쳐주겠노라. 원래 순종이란 말은 헬라어로 ‘휘파쿠오’라고 말해요. ‘휘포’라는 단어와 ‘아쿠오’라는 단어가 결합된 말이에요. ‘휘포’라는 것은 아래라는 뜻이에요. ‘아쿠오’라는 말은 듣는다는 뜻이에요. 마음을 낮추고 아랫자리에서 듣는 것을 순종이라고 해요. 집중해서 똑바로 듣는 것을 순종이라고 해요. 하나님의 말씀에 내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담겨져 있는 거예요. 그저 귓전을 때리면서 지나가는 말로 들었기에 응답이 되지 못했던 거예요.
덴마크에 ‘오티콘’이라고 하는 보청기 회사는 1904년에 설립됐으니까 벌써 100년이 넘었잖아요. 거의 독점하다시피 세계시장을 장악했었는데 1980년대 일본의 Sony가 그 시장에 뛰어들었어요. 거대자본이 뛰어드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어요. 난리가 났어요.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회사를 옮겼는데, 어디로 옮겼느냐 하면 예전에 생수공장으로 쓰던 창고 같은 데로 회사를 옮겨버렸어요. 왜 그리로 옮겼느냐? 내부에 벽이 없고 기둥이 없기 때문에 탁 트여있는 공간이에요. 이제부터는 전 사원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하므로 벽을 없애겠다는 거예요.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모바일 시스템으로 싹 바꿔놨어요. 프로젝트 중심으로 언제든지 팀을 재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거예요. 부단히 모여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들을 모으는 과정 가운데 혁명적인 생각을 했어요. 이제까지 보청기는 그저 안 들리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마는 보청기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꿨어요. 창조적인 인생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했어요.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보청기를 통해서 휴대폰 통화도 할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도록 완전히 디지털화했어요. 드디어는 Sony가 손을 들고 철수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 회사 사무실 전경 사진이 나와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벽은 언제든지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벽을 화이트보드로 꾸몄어요. 팀 별로 모여 화이트보드에 서로의 아이디어를 적고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테이블도 바퀴를 달아가지고 필요를 따라서 움직이면서 쓸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참 신선한 발상이에요.
오늘 다윗이 말하지 않습니까. ‘너희 의인들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즐거이 소리 높여 외쳐라. 보혜사 성령, 선생이 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로 와서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가볍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다 준비가 되셨어요. 우리가 인생학교에 등록하면 되는 거예요. 마음을 열면 되는 거예요.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뭐든지 하는 거예요. 그런 열정을 가지고 말이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겨드리면서 ‘뭐든지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따라가겠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그 점 때문에 쓰시는 거예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이 그저 막 덤벼드는 한국 사람들의 열정에 하나님이 감동해서 이 마지막 시대에 한국 사람들을 들어서 쓰시는 거예요. 그런 은혜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장영수 목사 설교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620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13-21) / 장영수 목사 (0) | 2011.10.10 |
---|---|
100425 구원을 얻는 복음(고전 15:1-11) / 장영수 목사 (0) | 2011.10.10 |
101205 삶의 울타리가 무너질 때(욥 1:6-12) / 장영수 목사 (0) | 2011.10.06 |
100516 한 가지 소원(시 27:1-6)[스톡데일 패러독스] / 장영수 목사 (0) | 2011.10.06 |
100509 계명과 전통(막 7:9-14) / 장영수 목사 (0) | 2011.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