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01107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17-22)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1. 10:14

101107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19:17-22)

성경본문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1세기를 3D라는 단어로 표현을 합니다. 21세기를 상징하는 핵심언어 세 가지를 3D, DNA 유전공학,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에 대한 깊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시대죠. Digital시대입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정보기술이 앞서고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을 보면 정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디지털기술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손안에 있는 핸드폰만한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죠. Design시대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그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는 거죠. 여러분도 아시겠습니다만 28세 이재석이라고 하는 한국청년이 세계무대 광고업계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자랄 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고 뛰어난 성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죠. 그러나 자기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가지고 단 돈 5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뛰어들어서 고생 끝에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가 만들어내는 광고작품들을 보면 정말 무릎을 칠만큼 공감을 주고 탁월하다고 하는 거죠. 흔히 한국의 젊은이들이 스펙을 쌓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시대는 그렇게 무리 지어 몰려가는 그런 사람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생각을 과감하게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세상이죠. 디자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이렇게 급격히 변하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한 발을 디디고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하늘나라가 있어요. 지금 DNA, Digital, Design으로 상징되는 이 21세기에 이러한 모든 첨단기술들이 다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한계가 또한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언어를 성경적인 관점에서 다시 한번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DNA, 유전과학으로 발견해서 DNA까지도 다 풀어냈어요. 유전자지도라는 걸 만들어냈어요. 인간과 침팬지가 얼마나 가깝고 다르냐 하는 것까지도 다 만들어냈어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DNA,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은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도 찾아낼 수 없는 것이죠. 성경이 말하고 있어요. 인간의 참모습은 아무리 과학으로 파헤쳐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요. 그 계획을 발견하고 그 계획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하는 거죠.

Digital만 하더라도 첨단 무선전화기를 가지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간을 초월해서 연락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만날 수 없어요. 그것을 아무리 눌러도 하나님은 나오지 않아요.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그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 젖먹이 아이를 낳은 엄마가 그 아이를 잊을 수 있겠어요? 성경이 말합니다. 엄마가 어찌 그 자기의 젖먹이 아이를 잊을 수 있겠느냐.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 그 엄마가 자기 젖먹이는 잊어버릴지라도 나는 결단코 너희를 잊어버리지 아니하리라.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요, 이렇게 자기 이름을 걸고 약속하시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쏟아내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에요. 이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이게 바로 성경의 Digital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는 거예요. 유창한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말이 서툴러도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십니다.

Design을 생각해봅시다. 사람의 상상력이 오늘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마는 여러분,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또 하나 있어요. 하나님의 상상력이에요. 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역사를 펼쳐나가시는 그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상상력. 인간의 능력이 있고, 없고, 배우고, 못 배우고, 부하고, 가난하고, 오래 살고, 짧게 살고, 그건 다 우리끼리의 얘기에요. 하나님의 상상력,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이제 그것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거죠. 제가 나가있는 동안에 이렇게 저렇게 이메일을 통해서 우리 교회소식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입시생들이 이렇게 저렇게 나름대로 다 학교에 합격하고 입학하게 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설령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큰 생각으로 더 넓은 생각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셔요.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이걸 고백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이게 바로 우리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때에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과 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말씀에 담아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할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의 좁은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끌어가신다 라고 하는 거죠. 교회는 바로 이러한 것을 함께 공유하고 연약한 우리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함으로써 마치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방향으로 우리는 함께 나아가는 것이죠.

정말 여러분을 만나니 참 반갑습니다. 제가 표현이 좀 서툰 사람이니까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제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아주 반가워요. 일일이 제가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을지라도 우리 마음을 열고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이번에 여러분께서 기회를 주셔서 제가 안식월을 두 달 반 지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도 바울의 선교여정을 따라서 성지순례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터키와 그리스와 로마를 거치는 2주간의 여행이었습니다. 사실은 2주간 동안에 그곳을 간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한국 사람만 가능한 발상이에요. 뭐 찬찬히 들여다 볼 시간도 없었어요. 터키에서부터 말이죠, 로마까지2주간에 그걸 주파한다는 건 그야말로 무리였어요. 주파라는 건 달려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늘 성경을 통해 익숙한 지명들이기에 그 사건들을 마음에 품고 한곳 한곳 섰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성령에 이끌려서 선교한 그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는 것, 2천 년의 시간을 넘어서서 사도 바울의 마음을 느끼고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갖고 은혜를 받고 왔습니다. 제가 목사안수를 받고 만18년이 지났기 때문에 저의 남은 목회생활하고 비교해보면 벌써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안식월을 갖고 성지여행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는 하나님께서 이제까지도 은혜로 지켜주셨지만 이제 나의 후반전을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목회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제가 먼저 하나님께 붙들리고 그래서 우리 모든 식구들이 다같이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같은 은혜를 누리고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누구라도 다 그 순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번 여행을 마치고 지난 목요일 밤에 돌아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우리 장로님들이 영접을 나오셨더라고요.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저는 뭐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어요. 깜짝 쇼를 하고 싶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신목사님이 또 마중을 나오셨어요. 제가 차 타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사실 여행을 하는데 참 좋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제가 없는 동안에 초상 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다행이 그런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들어보니 또 이웃 교회의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얘기를 나눠보니 아는 분이에요. 또 젊은 분이었어요.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뭐 깊이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제가 그래도 조금 아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에 너무 아픔이 있었어요. 이렇게 젊은데도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불러가시는구나.

여러분, 이제 죽고 사는 날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우리 신앙의 3D, DNA, Digital, Design으로 이야기되는 이 영적인 비밀과 하나님의 비밀을 마음에 품고 오늘을 사는 사람,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같이 교회를 이루고 성숙하고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여정은 로마에 가서 끝나는 것입니다. 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할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어요. ‘로마까지 가리라그랬어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사도 바울은 사실 로마에 가서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됐고 그는 그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제가 20여 년 만에 로마를 다시 가보게 되었는데요, 사실은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로마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짧은 일정에 다 볼 수는 없었고 사도 바울의 마지막 갇혔던 감옥과 그리고 순교 당했던 그 자리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 번에 걸쳐서 선교여정이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자기 고향인 터키지방의 소아시아지방의 다소라고 하는 지역 근처의 도시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두 번째는 성령에 이끌려서 유럽으로 건너가서 그리스지방이 되겠죠. 북부는 마게도냐라고 하고 남쪽지역은 아가야라고 하는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특별히 고린도라고 하는 도시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선교여행 때에는 사도 바울의 계획이 있었어요. 이 소아시아 터키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면서 가장 우상이 극성을 부리는 에베소를 거점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요. 적어도 2 3개월 이상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했던 것이죠. 그래서 에베소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증거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일들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비전을 갖는데 그것은 곧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리라 이렇게 꿈꾸게 되는 것이죠.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그렇게 움직이셨어요. 2000년의 세월이 지나 기독교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어요. 그리고 오늘 우리는 자카르타에 살고 있어요. 지금 서울은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역시 G20의 한 나라에요.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무섭게 변화할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에요. 우리로 하여금 세계 어디에 가서도 살 수 있는 거지만 자카르타에 와서 살게 된 것은 내가 결정한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걸음과 상황을 이끄신 하나님의 뜻이 있죠. 저와 여러분을 이곳에 살게 하셨어요. 오늘 살게 하셨어요. 그러면서 이곳에서 기업도 하고 사업도 하고 직장 일도 하고 가정을 돌보고 자녀들을 기르면서도 우리로 함께 교회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하신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흔히 TV뉴스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나오지만은, 여러분, 그런 외적인 것만 보면 안돼요. 성경을 보면 역사는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원하는 구원의 역사에요. 구원사예요.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요. 우리가 마지막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정치적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이루었냐를 묻지 않으세요. 경제적으로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를 묻지 않으세요. 얼마나 세상에서 공부 많이 했느냐를 묻지 않으세요. 오직 하나를 물으세요.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너의 주로 고백했느냐를 물으세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교회공동체가 되어서 살았다면 이제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과 공간과 그 상황 속에서 그 교회 속에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 같이 참여하고 살았느냐, 그것을 물으신다고 하는 거죠.

여러분도 그 영화를 보셨을 거에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하는 영화 있잖아요. 스티븐 스필버그 라는 유명한 감독이 만들었잖아요. 제가 그 영화를 보면서 ,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저는 영화를 좋아해서 그 영화의 장면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아닙니까. 어려서부터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이런 저런 영화를 많이 봤고 그런 장면을 많이 봤지만 그 상륙작전을 이 영화처럼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을 보지 못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린 것 같아요. 영화 초반부에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하고 진지를 구축하기까지 일어나는 장면을 보면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잖아요. 2차 세계대전 6년 간의 전쟁 속에서 결정적으로 연합군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전투가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에요. 그래서 1945 5월에 히틀러가 자살하고 독일이 항복하면서 전쟁은 끝났지만 그 1년 전 1944 6월의 ‘D-Day’, 가장 길었던 그날, 그 전투로 말미암아 연합군은 결정적으로 승리하게 된 거죠. 그래서 흔히 이 사건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빗대어 많이 얘기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이미 죽으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모든 인간들을 저주와 고통 가운데 묶는 사탄의 권세를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셨어요.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아직 우리 눈에는 전쟁은 다 끝나지 않았지만 예수 십자가의 결정적인 전투의 승리가 있었어요. 우리는 그걸 의지하고 이제는 쫓겨가는 적을 쫓아서 마지막 완성의 깃발을 꽂기 위해서 가는 것과 같아요.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는 거예요. 예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런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어요. 그리고 그 전투에서 승리했어요. 그러므로 그 6년간의 전쟁이 승리로 끝날 수 있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통을 당하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결정적 승리를 얻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어요.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배하고 말씀을 이해하고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들, 가정의 모든 문제들, 사업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기도하면서 사업하는 거예요. 기도하면서 공부하는 거예요. 기도하면서 자녀들을 기르는 거예요. 기도하면서 우리 간에 서로 얽힌 인간관계를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거예요.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몰라요.

그러므로 이제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선교에서 발견했던 그 공식을 따라서 우리는 가는 거예요. 여기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 열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열두 사람을 만나요. 그래서 그들에게 묻잖아요. 말씀을 보니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어요. 그들이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우리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이제 가르쳐줍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다 불러가지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에 그때 뭐라고 말했는지 잘 들어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여러분, 우리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걸 우리가 잘 알아요. 그래서 회개했어요. 그러나 신앙생활은 회개로 끝나는 게 아니고 회개는 그야말로 시작인 것뿐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보혈로 세례를 받는 거예요. 그의 죽음이 바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건이었구나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거예요. 예수의 이름으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것 그게 바로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거예요. 그럴 때에 우리 가운데에 이제부터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은 여러분 발견이에요. 더 몸부림을 쳐가지고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법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에요. 우리가 다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됐습니까. 1948 8 15일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잖아요. 이미 우리는 그 다음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그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 대한민국 사람이잖아요. 이제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사도 바울이 그 열두 사람을 중심으로 에베소에 들어가서 3개월 동안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부지런히 전했더니 반응이 일어나요. 듣는 사람이 있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듣는 사람들을 구별해서 그들과 함께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공부했다. 그럴 때에 온 아시아 터키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럴 때에 이제 많은 사람과 많은 가정과 많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증거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예수 믿는 것은 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상황 속에 들어가야 하는 거죠. 늘 말씀을 들어야 되요. 그래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은혜 받는 자리를 사모하고 찾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은혜 받는 것을 귀 기울여 듣고 쫓아가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거죠. 늘 우리가 건강을 얘기합니다만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건강하잖아요.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고 안 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신앙도 귀로는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죠.

제가 이번에 한국에서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도 하고 같이 예배도 드리고 했는데요,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서울, 대구, 대전 이렇게 다니면서 우리 선후배, 친구 목사들이 목회하는 것을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하게 목회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교회하고 그 목사님이 딱 하나가 되어 있는데 꼭 자기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요.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할 때 보면 꼭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하나가 되어 있어요. 우리는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에요. 여러분하고 저는 공동운명체에요. 저는 선장이에요. 선장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에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자카르타에 살면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이 뭔가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해요. 다른 것 아니죠. 사람들이 다 목마르게 이야기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는 거죠. 구체적으로는 상식이 통하는 교회, 뭐 더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상식이 뭔지는 아니까. 가끔 교회가 말이죠, 상식이 안 통할 때도 있어요. 그건 뭐가 잘못된 거예요. 잘못 믿는 거예요. 상식이 통해야 돼요. 그러면서 우리만의 교회가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자카르타, 적어도 한인공동체를 섬기는 교회, 그러면서 여기는 특별히 한인선교사가 240가정이나 나와서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해외 선교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많은 일선 현장에 있는 선교사들과 연락하며 저들을 후원하며 기도하며 협력하는 선교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교회, 이게 우리 교회의 비전이에요.

내년이 우리 한인교회, 한인선교 40주년을 맞는 해에요. 지금이 새로운 시대의 과도기에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비전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교회. 하나님이 일하시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마음을 여는 사람을 하나님이 붙들어서 쓰셔요. 그래서 저도 행복하고 여러분도 행복하고. 사업도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헌금도 많이 하시고. 그러면 얼마나 그것을 가지고 이 현지인들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귀하게 쓰겠어요. 한국에서 쓰는 것보다 여기서 얼마나 값있게 쓸 수 있어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열심으로 사업하고 자녀들을 기도로 양육하고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용서해주고 격려해주고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행복한 교회가 되고 건강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