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25) 3.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린 바울의 특권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18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린 바울의 특권들"
 
빌립보서 3장1~21절
 
석원태 목사

 

  3.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린 바울의 특권들(빌 3:4-11)

?????????????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에 거짓 교사를 경계하라고 경고한 다음 이 부분에서 과거 자신의 신뢰할 만한 육체적 특권들을 열거한다. 그것은 육체로 볼 때 자랑할 만한 것들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 모든 육체적 특권들을 해로 여기고 또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하는 바울 자신의 체험적 고백이다.
  그가 말하는 육체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들이란 인격적 특권(혈통)이나 종교적 영예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얻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은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이요, 또 그것들은 영적으로 배설물과 같은 것들이라고 했다. 

 1) 바울의 육체적 특권들(빌 3:4-5)
  먼저 빌립보서 3장 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라고 했다.
  여기 육체 ‘사륵스’(sa,rx)는 인간에게 속한 모든 특권이나 자랑꺼리를 말한다. 그는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을 따진다면 바울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적 독백과도 같은 말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가 그 모든 육체적 특권들을 버렸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있었던 신뢰할 만한 육체적 특권들이 어떤 것들이었던가?

??(1) 그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던 특권이 있었다고 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창세기 17장 12절에 ‘너희 중에 남자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명령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에게 대대로 이르는 불변의 언약적 법칙으로 반복되었다(창 17:10, 레 12:3). 바울은 이 말을 함으로 자기는 이스마엘 자손이 아니요, 정통적인 이삭의 후예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은 13세 때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창 17:25). 적자 이삭과 그 자손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이것은 율법의 명령이었다. 바울의 이러한 주장은 자기야말로 순수한 정통적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순수한 혈통적 특권을 드러내는 말이다. 

(2) 그는 이스라엘 민족 출신이란 특권이 있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 「이스라엘 족속이요」라고 했다.
  여기 「이스라엘」이란 명칭은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후에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히 개명된 축복의 이름이다(창 32:28). 이 이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이긴 자’란 뜻이었다. 후에 에돔 족속에서 구분된 아곱의 족속을 말할 때 쓰여졌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두 아들 야곱과 에서가 있었는데, 에서의 후예 중에 에돔이 있었다. 지금 바울은 자기는 아브라함의 후예 중에도 에서의 후예로 이어진 에돔의 후예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곧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정통 적자의 후손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선조로 말해도 자신이야말로 역사와 전통의 후예라고 말한 것이다.

?(3) 그는 베냐민 지파란 특권이 있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 「베냐민 지파요」라고 했다.
  베냐민은 야곱이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몸에서 출생했다. 베냐민만이 12족장 중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출생한 자였다(창 35:17-18). 더욱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베냐민 지파의 출신이었다(삼상 9:1-2). 유다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열 지파가 여로보암 편으로 따라가 버렸을 때에도 남조 유다에서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과 함께 충성을 다한 지파였다(왕상 12:21). 유다가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나라와 백성을 재건하는 일에도 베냐민 지파가 중심 역할을 했다(스 4:1). 또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권면 중에 명예 있는 지위를 얻었다. 때문에 전쟁 중에 부르짖은 소리 가운데 ‘너희 중에 베냐민이 섞여 있다.’고 할 정도였다(삿 5:14).
  유대인이 받은 큰 명절 중에 하나가 부림절이었다. 이 부림절 축제의 중심인물은 유대인 모르드개였다. 바로 그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은 베냐민 지파라고 한 것은 단순한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스라엘 중에서 최고 귀족의 지파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영국인이 자기는 노르만인(Norman)이라고 하는 것과 미국인이 자기 조상은 청교도였다고 하는 것과 같다. 

 (4) 그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 된 특권이 있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세계 중에 분산된 민족이었다. 세계 여러 도시나 촌에도 유대인은 흩어져 살고 있었다. 당시 세계적인 수도 로마에는 수만 명이 살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는 1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이방과 동화하는 것을 굳게 거절했다. 저들은 자기들의 종교와 습관과 율법을 충실히 지켜나갔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 유대의 후손들이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헬라 문화 영역에서 사는 일 때문에 헬라어를 사용하며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인은 그 선조가 민족적으로 순수할 뿐 아니라 저들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선민 우월주의적 의식 때문에 자주자주 역사적 냉대를 받은 역사를 갖고 있었다.
  ‘히브리’란 뜻은 ‘지나가는 자’, ‘건너온 자’로 아브라함 때부터 불려졌다(창 14:13). 먼 훗날에 요셉이 애굽의 감옥에서 길몽을 해석해 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기의 신분을 말할 때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창 40:15)라고 할 때 썼던 말이다.
  또 세월이 흐른 다음 이스라엘이 애굽 고센 땅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히브리 여인」이란 말이 바로 왕의 관리들에 의하여 사용된 것을 본다(출 1:15, 16). 그리고 「히브리 산파」라고 하는 말을 썼다. 이것은 애굽인들이 저들을 자신들과 구별시키는 멸시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바울은 이방 도시 다소에서 출생하였다. 그러나 그 부모들이 바울을 가말리엘 밑에서 교육받게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행 22:3). 거기서 그는 히브리적 특수교육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 폭도들 앞에서 히브리말로 설교를 하므로(행 21:40) 군중들을 조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은,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헬라계 유대인이 되어버린 사람들과는 달리 히브리인 된 양쪽 부모에 의하여 태어난 완전한 골수 유대인, 곧 히브리인이란 말이다. 섞이지 않은 히브리인이란 말이다.

?? (5) 율법으로는 바리새인 된 특권이 있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라고 했다. 이 말은 바울이 유대주의자들 앞에서 여러 번 반복한 말이었다(행 22:3, 23:6, 26:5). 당시 바리새인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유대인 중 많아야 6,000명 내외가 될 정도였다. ‘바리새’란, ‘분리된 것’, ‘성별’을 뜻한다. 그는 당시 유명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한 율법의 교훈과 교육을 받았다. 그는 생래적으로 바리새파 교인이었다(행 22:3, 23:6). 이 파의 기원은 마카비 독립시대(B.C. 142-37)에 둔다. 저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율법 수호와 유대를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워온 후손들이라고 자처했다. 예수 당시 사람들은 산헤드린공회(유대 최대 종교 기관)의 주역들이었다. 예수를 잡아 빌라도에게 넘긴 주범들이었다. 이른바 유대주의의 최고 정통파들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이런 류에 속하는 최고 종파의 멤버라고 한 것이다.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는 특권이 있었다.
  빌립보서 3장 6절에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라고 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열심’은 종교 생활의 최대의 자질이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 69:9)라고 했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심은 유대교주의자들에게 최고의 존재의미요, 내용이요, 목적이었다.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자’가 되게 한 것이다. 이런 사울에게 신성모독자처럼 보인 예수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야말로 해악의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산헤드린공회가 보증하는 기독신자 체포권을 소지하고, 교회 잔멸에 뛰어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여러 번 여러 번 반복하면서 독백했다(행 22:2-21, 26:4-23, 고전 15:8-10, 갈 1:13).
  그는 그에게 있었던 율법주의적 열정이야말로 예수와 예수교회를 잔멸하는 유일한 무기가 된 줄로 생각했다. 그는 그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했다고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한 고백을 토하고 있다.

??(7)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의 특권이었다.
  빌립보서 3장 6절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했다. 그는 율법 앞에서 자책을 느끼지 못했다(고전 4:4)고 했다. ‘흠이 없다’는 말은 ‘비난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실로 자아적 의인이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육체적으로 신뢰할 만한 특권’들을 일곱 가지로 열거했다. 요약하면 유대적 혈통(혈통적 우위), 그리고 율법적 지위(종교적 우위), 그리고 율법적 열심, 즉 의를 행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의행득구(義行得救)를 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자기의 인생 전부를 성립시키는 ‘육체’(sa,rx)였다. 자기 생존의 의미요, 내용이요, 목적이요, 자랑이었다고 했다. 바울은 이것을 「내게 유익하던 것」(빌 3:7)이라고 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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