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빌립보서 강해(39) 빌립보 교회의 선교연보③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33

"빌립보 교회의 선교연보"
주고받는 나의 일
빌립보서 4장 15~16절
 
석원태 목사

  Ⅳ. 결론(빌 4:10-23)

  1. 빌립보 교회의 선교 연보(헌금: 빌 4:10-20)

  1) 다시 싹이 나게 된 기쁨(빌 4:10)
  2) 복음의 고난에 동참한 좋은 일(빌 4:11-14)

  3) 주고받는 나의 일(빌 4:15-16)

  바울은 자신을 위한 선교연보는 오직 한 교회, 곧 ‘빌립보 교회’뿐이었다고 빌립보 교회를 격려하였다. 빌립보서 4장 15절에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고 하였다. 4장 16절에도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하였다.
  바울 서신에 기록된 여러 교회를 향한 편지 내용 가운데 유독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애정의 표현은 참으로 특별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가 구라파 선교비전을 받은 후 얻은 구라파 선교의 첫 열매가 빌립보 교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유독 빌립보 교회는 시종이 여일하게 주 안에서 믿음이 자라고, 또 주님을 향한 복음 선교의 싹이 났던 교회였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지목해서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 4:15)고 함에서 나타내고 있다. 그는 먼저 「빌립보 사람들아」라고 다정하게 표현된 이 말로 저들이 로마의 시민 된 점을 지적하면서 저들을 칭찬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낭만어린 복음 선교의 과거를 깊숙이 돌아보면서 사랑어린 감사를 하고 있다. 여기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라고 한 말은 사도행전 16장 12절에서 17장 14절에 기록된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그가 제2차 선교원정 시에 마게도냐 지방에 들어가 빌립보 - 데살로니가 - 베뢰아에서 전도를 한 후 아덴을 거쳐 고린도 등 아가야 지방으로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특별히 데살로니가에서는 바울이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는 이곳에서 유대인들의 시기로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소동을 일으키는 자로 오해를 받았다. 그는 밤중에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베뢰아로 옮겨졌다. 그는 여기에 3주간을 머물면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크리스천이 되게 하는 전도의 열매를 보게 되었다. 그는 이 어간에 자신이 밤낮으로 노동하여 그의 생계를 유지하였는데(살전 2:9, 살후 3:8), 이때 뜻밖에 빌립보 교우들이 보낸 선교연보를 받아 보충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 4:16)라고 했다.
  바울은 이러한 일을 「주고받는 내 일」이라고 했다. 이 말은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신령한 복음의 은혜를 전해주고, 교인들은 목자로서 전도자를 봉사(섬기는)’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내 일」에 유독 빌립보 교회만 참여했다고 칭찬한 것이다.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 4:15)고 했다. 이렇게 빌립보 교인들은 주를 섬기고, 사랑하는 방법 가운데 특별히 물질적 봉사가 독특했음을 칭찬한 것이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교회와 복음 전도자(교역자)와 교인(양)과의 관계를 볼 수 있다.

  1) 먼저 주님은 자신의 교회 운동, 곧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위하여 당신이 소명하고, 사명 주신 전도자를 따로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주님은 세계 선교를 통하여 교회 설립을 목적했다. 사도행전의 중심 내용은 성령이 각 성에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고, 양육하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선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행 20:28).

  2) 주님은 교회 설립과 양육을 위하여 「감독」을 세웠다고 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다.

  3) 그리고 전도자를 성도들의 자유로운 물질적 봉사에 의하여 살도록 했다.
  마태복음 10장 9-10절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송하면서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했다.
  이 사실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대로 일러주었다.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고 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전도자가 먹고 마시는 권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 9:11)고 했다. 그 결론에서 이르기를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성경의 교훈은 교회가 교역자를 위한 물질의 봉사를 규례화(조문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구약의 경우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고전 9:13)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무를 전담하는 레위인을 위하여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자기 소산의 1/10을 구별시켜 드리도록 했다.
  신약의 경우 ‘전도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는 대 원칙 아래서 전도자를 향한 물질적 봉사는 너무 자유로운 감사에서 움직였다. 그래서 목사에게 드리는 생활비를 ‘사례’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의 저서 「목회신학원론」 ‘감독으로서의 목사 사역’이란 항목 가운데 ‘목사와 사례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거기에서 목사 사례 문제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언급했다.
  (1) 심은대로 거두는 자유 사역의 원리를 취한다(갈 6:7).
  목사 사례는 자유 파종과 수확의 원리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목사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 그럴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2) 목사의 사례는 철두철미하게 ‘감사하는 원리’에 기초해야 된다고 했다(살전 5:18, 빌 4:11-13).
  (3) 자족의 원리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빌 4:11-13).
  (4) 생산성 있는 추수 원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시 126:5-6).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다.
  (5) 주를 위하여 먹고 마시는 목적 원리에 착념해야 한다고 했다(롬 14:8, 빌 1:20-21).
  (6) 항상 제물을 먹는 복음의 제사장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빌 4:17-19).
  (7) 말씀을 주식으로 삼는 원리주의를 확신해야 한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다.
  실상 존재 세계의 모든 물질은 ‘말씀’ 안에서 나왔다. 「가라사대…있으라」 하신 하나님의 창조적 명령의지(가라사대)에서 물질이 나왔다. 그러므로 ‘말씀’을 위하여 물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성경 진리에 기초하여 초기부터 주를 섬기고,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위주영광(爲主榮光)의 마음에서 교회를 위하여 주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을 정성을 다하여 섬겨온 것이다.
  「주고받는 내 일」은 실로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 복음 운동에 나타나는 거룩한 사랑의 교제가 아닌가?.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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