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창세기 강해(11) 셋의 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4:48

2. 셋의 길(창 4:25-5:32)

이제 하나님을 떠난 가인계(界)의 세속문화사(창세기 4장)에서 경건한 셋의 역사로 옮겨진다.

1) 셋은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주신 다른 씨였다.
창세기 4장 25절에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라고 하였다.
‘셋’(tve , Seth)이란 ‘놓다’, ‘지정하다’, ‘안정되다’란 뜻의 ‘쉬트’(tyvi)에서 파생된 말로 ‘정해진 자’, ‘안정된 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셋은 아벨 대신 보상으로 ‘주어진 자’란 의미이고, 또 하나님을 떠나 유리하며 피하는 가인과는 달리 ‘안정된 자’임을 의미하였다. 하나님을 떠나 유리 방황하는 가인과 그 후예들에게는 ‘안정’이 없었다.
셋은 아벨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는 불경건한 가인계와 구별된 계통으로 온 사람이다. 그래서 구속사의 물줄기는 아벨에서 셋으로 이어지게 됨을 보게 된다. 그가 아벨을 대신했으니, 아벨의 역사를 받아 가지고 온 사람이다.

2) 셋의 자손의 특징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창세기 4장 26절에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였다.
창세기 4장에 나타난 그의 선조들은 ‘여호와께 드렸다’고 하였다. 곧 경배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시대에 와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함으로 사람들이 제물을 드리는 소극적 행위에서 이제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고백하는 단계에 옮겨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알더스(Alders)는 이것을 가리켜 단순한 기도 이상의 행동하는 예배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종교적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 셋의 후손인 ‘에노스’란 이름은 ‘한 사람’, ‘병든 사람’, ‘죽음’, ‘부패로 사라져 버릴 사람’ 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 가인의 후예들이 인본주의를 표방함과 대조적으로 철저하게 약한 인간, 죄인된 인간, 허무한 인간의 실존을 간파한 이름이다. 그래서 강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뢰적 피조물, 의존적 피조물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에노스는 ‘경건한 공적 예배의 창시자’였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공적 예배와 관계되어 사용된 말이다.
예컨대 창세기 12장 8절에 아브라함이 「…그 곳(벧엘 동편)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한 경우와 같다(창 13:3, 21:33, 대상 16:8, 시 105:1).
가인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떠나 에녹성을 쌓고 세상 왕국의 기초를 다져가는 동안, 셋의 후손들은 연합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신령한 왕국의 틀을 짜기 시작한 것이다. 가인의 후예들이 땅의 것을 추구하고 있을 때, 셋의 후예들은 하늘의 것을 추구했다. 가인의 후예들이 육을 추구하고 있을 때, 셋의 후예들은 영을 추구하고 있었다. 가인의 후예들이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이름을 내고 인간의 문화를 찬양할 동안, 셋의 후예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다.

3) 셋의 후예들(창 5:1-32)
셋은 에노스(언약)를 낳았다(창 5:6). 에노스는 게난(소유, 대장장이)을 낳았다(창 5:9). 게난은 마할랄렐(하나님께 찬송)을 낳았다(창 5:12). 마할랄렐은 야렛(내려감)을 낳았다. 야렛은 에녹(봉헌, 시작)을 낳았다(창 5:18). 에녹은 므두셀라(무기의 사람, 내어 보냄)를 낳았다(창 5:21). 므두셀라는 라멕(정복자)을 낳았다(창 5:25). 라멕은 노아(안식)를 낳았다(창 5:28). 노아는 셈(유명한 자), 함(뜨거움), 야벳(아름다움)을 낳았다(창 5:32). 셋의 후예들이 역사를 엮어가는 모습들의 기록이다.

4) 메시야의 조상들
누가복음 3장 38절에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셋의 후예는 메시야 계열이다.

5) 셋의 후예는 경건운동과 직결하고 있다.
셋의 후예 중에서는 에녹(승천), 노아(방주 운동) 등의 영걸들이 나왔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창세기 5장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다. 여기 ‘하나님과’라고 하는 말은 ‘그 하나님과 함께’라는 뜻이다. ‘동행하다’라는 말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의미이다. 그 걸음은 어떤 기준과 목표를 정하고 행함을 나타낸다(신 8:19, 왕상 11:33).
그렇다면 저들은 경건운동의 후예들이 되었다는 말이다. 창세기 4장 26절에 보면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였다. 창세기 5장 12절에 보면 마할랄렐이 나오는데 그 이름은 찬송이란 뜻이요, 에녹은 300년 간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5:21), 라멕의 아들인 노아는 안위의 아들이 되어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의를 좇는 자의 후사가 되었다.

6) 셋의 길에서 얻는 결론적 교훈
(1) 인류 역사이래 나누어진 두 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기인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시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한 결과에서 기인되었다(창 4:4-5). 교파의 오랜 원인은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과 섭리이다.
(2) 두 길은 신앙과 불신앙의 길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신앙의 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고, 불신앙의 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길로 나타났다. 결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다.
(3) 가인의 후예들은 저주의 길을 걸었고, 아벨의 후예들은 구속의 길을 걸었다.
두 길을 걸었던 그 후예들을 보면 종교적 행위의 길-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예배, 찬송, 기도…) 아벨의 후예가 있고, 성을 쌓고 노래를 부르고 무기를 만들고 일부다처주의의 타락한 성문화로 기울어진 가인의 후예가 있다.
역사상에 유대 민족들은 종교적 방편으로 흐르고, 헬라인들은 예술을 발달시켰고, 로마인들은 법률과 정치를 발달시켰다.
가인의 후예들은 저주의 길을 걸었고, 아벨의 후예들은 구속의 길을 걸었다. 결국 영벌과 영생의 길로 다른 결과를 나타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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