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65] 제3장 족장 야곱의 역사 - I.분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31

"제3장 족장 야곱의 역사 "
분리 - 에서를 피해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창세기 27장 41절~28장 9절
석원태 목사

  제3장 족장 야곱의 역사(창 27:41-36:43)

  이제 히브리 민족의 역사 중 세 번째 인물인 야곱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I. 분리(창 27:41-28:9)

  1. 에서의 낯을 피하여(창 27:41-46)

  야곱의 역사는 사실상 도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의 형 에서의 증오가 극에 달한 데서부터 기인된다.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을 다 쏟아버린 사실이나 동생 야곱이 행한 간계로 축복을 놓쳐버린 사실 앞에 사실상 분개하였다.
  그것은 마침내 아버지 이삭의 곡할 날, 곧 죽은 후에 동생을 죽일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창 27:41). 에서의 이 무서운 살인계획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들렸다. 리브가는 급히 야곱을 불러 이 소식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리브가는 야곱을 자신의 오라비 라반 곧 야곱의 외삼촌 집으로 피난시키기로 결심하였다.
  창세기 27장 42-46절을 보면 '한을 풀려 한다', '네 형의 노', '네 형의 분노'라고 하는 말이 리브가의 입에서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을 보면 에서의 분노가 가히 살인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어머니 리브가는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창 27:44-45)고 하였다. 그럼에도 실제로 야곱은 몇 날이나 몇 달이 아니라 20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을 보내는 나눔의 아픔이 있게 되었다. 이때 리브가가 "내가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라고 한 것을 보면 가히 이삭 가정의 살벌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을 하란(메소포타미아)으로 보내기 위하여 이삭에게 진언하여 허락을 받게 된다. 그러나 표면적 이유는 야곱의 결혼문제를 들고 나온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창 27:46)라고 하였다.
 
  사실 이삭과 리브가는 큰아들 에서가 헷족속의 딸과 결혼한 일 때문에 마음에 근심과 고통을 갖고 있었다(창 26:34-35). 그러므로 리브가가 야곱의 결혼문제를 들고 이삭에게 야곱의 하란행을 고한 것은 쉽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저들은 우상을 섬기는 헷사람들을 너무나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저 믿음의 족장들에게는 그 만큼 종교적 동기나 내용이나 목적이 저들의 전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사실 저들은 야곱의 결혼문제만은 순수한 언약가문의 신앙과 혈통을 계승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리브가는 이삭에게 아들 야곱의 결혼을 위해 야곱을 하란으로 보내자고 제의함으로, 큰 아들 에서의 피의 복수에서 야곱을 살려내려고 하는 자신의 속뜻을 관철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리브가의 지략은 첫째, 우선 야곱을 에서의 증오의 보복에서 벗어나게 하고 둘째, 장차 야곱의 결혼문제까지도 도모하고 싶었던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것을 보면 리브가의 재치가 대단함을 느낀다.

  2. 브엘세바에서 하란(밧단아람)으로(창 28:1-9)

  이제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야곱은 그가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브엘세바에서 하란(메소포타미아)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갔다고 하였다(창 28:10).

  1) 부모의 명을 좇아갔다고 하였다.
  창세기 28장 7절에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라고 기록하였다.
  '밧단아람'이란 '아람의 평야'라는 뜻으로 하란은 밧단아람 지역 내에 있는 한 성읍으로 추측된다(창 28:2, 7). 하란은 밧단아람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부모의 명은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부탁'이란 말로 표현된다.
  (1)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
  창세기 28장 1절에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라고 하였다.
  성경은 또 이삭이 야곱의 결혼문제를 거론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아마도 이삭 자신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친척들이 있는 먼 땅 본토로 종을 보내었던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기억했을 것이다. 또한 큰아들 에서가 이방여인 헷족속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은 것이 저들 가문에는 지울 수 없는 고통으로 남겨져 있었을 것이다(창 26:34-35).
  더욱이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져 가는 족장권 계승, 곧 언약계승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일이었다. 후에 모세는 율법으로 가나안 족속과 이방 결혼을 하지 말 것을 법제화하기까지 하였다. 신명기 7장 3-4절에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였다.
  이렇게도 족장들(아브라함, 이삭)은 자녀의 결혼문제를 중대하게 취급한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손의 축복과 직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밧단아람으로 가라고 하였다.
  창세기 28장 2절에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였다.
  그곳에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하였다(창 11:29, 24:10). 야곱이 이삭의 명을 받고 가는 밧단아람에서 만난 외삼촌 라반은 바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였다. 라반은 브두엘의 아들이었다. 브두엘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이었다(창 28:5). 이삭은 야곱으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서 자신의 사후에 언약의 가문을 이어나갈 야곱으로 하여금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전하도록 한 것이다.

  2) 이삭의 축복을 재확인 받고 떠났다.
  그 축복은 28장 3-4절에 나타났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이미 선언된 축복의 재확인이다.
  (1) 경건한 자손의 생육과 번성을 축원하였다.
  창세기 28장 3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라고 하였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여러 족속을 이룬다'는 말은 여러 지파의 조상됨을 말하는데, 사실상 후에 야곱의 열두 아들이 열두 지파를 이루어 야곱은 그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
  (2)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기업의 땅을 야곱이 받기를 축원하였다.
  창세기 28장 4절에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3) 영적 축복의 계승도 축원하였다.
  창세기 28장 4절에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야곱과, 야곱과 함께 있는 야곱의 자손이라는 말이다. 3절 중에는 「여러 족속을 이루고」라고 하였다. 여기 '여러 족속'이란 말 '케랄 암밈'(ים󰗳ל ע󰖏󰙓)은 '백성들의 모임'이란 뜻인데, 이는 신약의 교회를 뜻하는 말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와 동일한 의미로 말한 것이다.

  3) 그러면서 그도 역시 '우거자'로서 떠났다.
  창세기 28장 4절에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이삭은 야곱에게 '우거하는 땅'을 축복하였다. 여기 '우거'라고 하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창 12:7) 곧 가나안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땅은 우거할 땅이다. 우거라는 말 '마구르'(ר󰕸ג󰗪)는 '이방인으로 머물다', '순례자로 머물다'라는 뜻이다. 타향에 머무는 같이 잠시 머물 것을 가리킨다. 그러면서 그 땅은 약속의 땅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 이삭에게 계승된 땅 그리고 야곱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땅을 가리켜 '우거하는 땅'이라고 하였다.
  영원한 영주지, 영원한 정착지가 아니고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할 땅이라고 하였다. 나그네로 머물 땅, 행인으로 머물 땅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그 땅이 언약의 땅이고 기업의 땅이 되는 것은, 그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사람된 본분을 다하고 사는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9-10절에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하였다.
  약속받은 땅에 우거(머뭄)한 것은 거기서 영원한 성을 바라보고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히브리서 11장 13-14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받은 이 지상의 경향교회당도 나그네로 우거하는 땅의 교회이다. 그러면서 이곳은 축복의 약속으로 받은 성지(聖地)이다. 그 이유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이 세상에 머물 동안 여기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영원한 성을 준비하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28장 6-9절에는 에서의 또 다른 망동이 나오고 있다. 에서는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과 함께 결혼에 대해 부탁을 받고 아람으로 떠나는 이 모든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두 아내가 부모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는 줄을 그때서야 깨달았다(창 26:34-35). 그래서 아브라함이 86세 때 얻은 서자였던 이스마엘 자손의 딸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에서는 자기가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이 이방여자를 아내로 취한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스마엘의 딸들 중에서 다시 아내를 취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그의 탐욕에 지나지 않는다. 이스마엘의 가문도 순결한 종교를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영광의 기업에서 떠나버린 자가 된 것이다(히 12:17).

  4) 새롭게 시작되는 야곱의 역사에서 받는 교훈
  (1) 야곱 자신의 연약에 의한 시련의 길이 시작됨을 보게 된다.
  성경은 야곱이 에서의 화를 피하여 간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창 27:43). 우리는 어느 경우든지 야곱의 한평생이 평탄치 않을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일로 형의 살기를 피해 일찍이 부모를 떠나고 가족과 헤어져 외로움과 고독을 씹어야만 하였다.
  그는 결혼 건 때문에 외삼촌 라반에게 품삯에 속임을 당하여(창 29:21-25) 21년의 고역을 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라반의 집을 떠날 때에도 당당하게 떠나지를 못하고, 아내들과 소유를 거느리고 도망치듯이 떠나야만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도 형 에서의 복수심 때문에 목숨의 위험을 받아 얍복강의 사투를 경험해야 했으며, 나중에는 요셉이 팔리는 사건으로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하여 20년이 넘도록 그것이 그의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하였다.
  흉년을 인하여 애굽으로 곡물을 사러 갔다온 아들들이 친동생 베냐민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밝히지 않고 일을 꾸민 요셉에게 속임을 당하였는데, 그 내막을 모르는 야곱이 심히 걱정하고 마음고생을 한 일도 있었다.
  사실상 '야곱'이란 '발꿈치를 잡는다'라는 뜻도 있지만(창 25:26), '거짓되다', '속인다'라는 뜻도 있다. 야곱은 자신의 거짓에 대한 보응의 길을 떠난 것이다.
  (2) 그럼에도 이 일은 하나님의 섭리적 분리였다.
  야곱의 연약은 그를 육체(본토와 아비와 형제)에게서 갈라놓고 자립을 시키는 거룩한 분리였다. 나중에 그가 벧엘에 이르러 사닥다리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을 때 드린 그의 기도는 정말 간절하고 눈물겹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절대하신 임마누엘을 강청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야곱이 이스라엘의 족장으로서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성화의 단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모나 고향이나 형이 아닌 하나님 자체로 그 인생의 여정을 개척해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분리(떼어놓음)였다. 세상(육)에서 갈라지는 성도들의 삶은 성별의 삶이다.
  (3) 그에게 약속된 기업의 땅은 역시 '우거하는 땅'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축복의 땅이고 기업의 땅이 되는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받은 땅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받은 모든 축복은 가시적인 것이고 동적인 것이다. 가변적인 것이고 유동적인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축복으로 감사하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불신자들과는 다르게 하나님 섬기는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영광을 받고, 섬김을 받고,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 신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축복으로 주시는 것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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