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69] 하란에서의 야곱②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35

"하란에서의 야곱② "
- 야곱의 아들들 -
창세기 29장 31절~ 30장 24절
석원태 목사

  제3장 족장 야곱의 역사(창 27:41-36:43)

  I. 분리(창 27:41-28:9)
  II. 벧엘의 체험(창 28:10-22)

  III. 하란에서의 야곱(창 29:1-30:43)
  1. 하란에 이른 야곱(창 29:1-14)
  2. 야곱의 결혼(창 29:15-30)

  3. 야곱의 아들들(창 29:31-30:24)

  야곱이 결혼한 후에 그에게 아들들이 태어났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셨다고 하였다(창 29:31). 여기 '총이 없다'는 말은 '미움을 받다'라는 뜻으로 야곱이 라헬을 사랑함으로 인한 결과였다. 그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레아에게 아들을 허락하심으로 그녀를 위로하였다. 하나님이 레아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다고 하였다. 레아가 먼저 야곱에게 네 아들을 낳았다.

  1) 첫째 아들은 르우벤이었다.
  창세기 29장 32절에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고 하였다.
  '르우벤'의 뜻은 '보라 아들이라'는 의미로 '감찰하다'(창 31:42), '진찰하다'(레 13:3), '탐지하다'(민 13:18),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살피다' 등의 뜻으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다. 레아는,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창 29:32).

  2) 둘째 아들은 시므온이었다.
  창세기 29장 33절에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다.
  '시므온'의 뜻은 '들으심'이다. 레아는 첫째 아들을 남편에게 낳아주고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고통을 호소하였고, 하나님이 그 호소를 듣고 그 응답으로 아들 시므온을 주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3) 셋째 아들은 레위였다.
  창세기 29장 34절에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라고 하였다.
  '레위'는 '연합함'이다. 전도서 4장 12절의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처럼, 세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이 자기와 연합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4) 넷째 아들은 유다였다.
  창세기 29장 35절에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라고 하였다.
  '유다'의 뜻은 '찬송함'이었다. 네 아들까지 낳은 레아로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원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미하는 마음이었다. 그 후에 그의 생산이 멈추었다고 하였다(창 29:35b). 그러나 레아는 후에 다시 다섯째 아들 잇사갈과 여섯째 아들 스불론을 낳고, 한 딸 디나까지 낳았다(창 30:17-21). 그러니 그녀는 야곱에게 6남 1녀를 낳아준 셈이었다.
  레아는 야곱에게 아들 넷을 낳아주면서 점점 그의 신앙의 단계가 하나님과 가까워짐을 체험한다. 이는 그의 아들들의 이름에서 볼 수 있다. 처음 르우벤을 통하여 '하나님의 감찰하심'을 느끼고, 두 번째 시므온을 통하여 그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세 번째 레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함을 느끼고, 네 번째 유다를 통하여 감사(찬송)하는 단계에 이르게 됨을 볼 수 있다.

  5) 다섯째 아들은 단이었다.
  창세기 30장 6절에 「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다.
  단은 라헬의 시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아들이다. 자식을 낳지 못한 라헬의 투기는 거의 죽음에 이를 지경이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고 하였다. 그러자 야곱이 노를 발하면서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창 30:2)라고 하였다.
  라헬은 자기의 시녀 빌하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낳아 자신의 무릎에 두고 싶다고 하였다. 창세기 30장 3절에 라헬이 가로되 「나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고 하였다. 실로 대단한 어두움이었다.
  라헬은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었다. 그후 빌하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다. '단'이란 '판단하심'이라는 뜻이다. 라헬도 하나님이 자기의 억울함을 판단하셨다고 생각하였다.

  6) 여섯째 아들은 납달리였다.
  창세기 30장 7-8절에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잉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가로되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 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빌하가 야곱에게 두 번째로 낳은 아들이었다. '납달리'라는 이름의 뜻은 '경쟁함'인데, 라헬은 납달리를 통해 형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무서운 질투와 시기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7) 일곱째 아들은 갓이었다.
  창세기 30장 9-11절에 「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복되도다 하고 그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다.
  레아는 자신의 생산이 멈추고, 또한 라헬이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득남함을 보고 자기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었다. 실바도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갓'이라는 이름의 뜻은 '복 됨'이다. 아마 레아는 이 아이에게 장차 복이 있기를 기원한 것 같다.

  8) 여덟째 아들은 아셀이었다.
  창세기 30장 12-13절에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가로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아셀'의 뜻은 '기쁨', '만족'이다. 레아의 쾌감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는 실바가 야곱에게 두 번째 낳은 아들이었다.

  9) 아홉째 아들은 잇사갈이었다.
  창세기 30장 17-18절에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다.
  레아는 야곱에게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하였다. '잇사갈'은 '값', '보상'이란 뜻이다. 그녀는 아들 르우벤이 자기에게 준 합환채를 동생 라헬에게 준 대신에 남편을 맞이하여 동침하고 아들을 낳았다.

  10) 열 번째 아들은 스불론이다.
  창세기 30장 20절에 「레아가 가로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 하고 그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라고 하였다.
  레아는 야곱에게 여섯 번째 아들을 낳았다. '스불론'은 '거함'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레아는 야곱에게 일곱 번째로 딸 디나를 낳았다.

  11) 열한 번째 아들은 요셉이었다.
  창세기 30장 22-24절에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 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고 하였다.
  레아가 야곱에게 6남 1녀를 낳았을 때까지 라헬은 무자하였다. 그때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다고 하였다. 아마 그 당시 그녀는 자기상실의 상태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 결과 그녀는 잉태의 은총을 입고 아들을 낳았다. 그가 요셉이었다. '요셉'은 '씻음', '더함'이라는 뜻이다.
  라헬은 드디어 자신이 아들을 낳음으로 수치가 씻겨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더 주시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요셉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무자함은 수치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2) 야곱의 결혼과 가정 형성에서 받는 교훈
  (1) 그의 결혼은 기만당한 결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잘못된 수단으로 장자권을 획득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보응이었다.
  (2) 그의 이중결혼(일부다처)과 축첩과 자녀생산에 관한 교훈이다.
  그는 네 여자로 말미암아 열두 아들을 낳았다. 이것이 기독교적 윤리로 볼 때 정당한가 하는 문제이다. 족장 시대에 나타난 축첩 현상이다.
  ① 성경적 결혼관은 일부일처제도였다(창 2:18-25).
  예수님도 이 사실을 확인하셨다. 마태복음 19장 4-6절에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였다.
  한 남자, 한 여자라고 하였다. 한 몸이라고 하였다. 이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19장 9절에도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하시며 일부일처주의를 말하고 있다.
  ② 모세 율법이 있기 전(레 18:18), 근친결혼이나 첩을 들이는 것은 고대 이방인들의 널리 일반화된 관습이었다.
  창세기 16장에서 사라가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준 경우을 보거나 함무라비 법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본문인 창세기 29장에서 라반이 라헬 대신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주면서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습이 아니라고 한 경우를 볼 때, 그 당시 근동에는 일부다처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인질로 잡기 위해 두 딸을 팔아먹는 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③ 칼빈(Calvin)은 비록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이지만, 이중결혼이나 축첩행위는 저급하고 불미스러운 소행이라고 하였다.
  ④ 하나님의 허용적 섭리, 묵인적 섭리(?)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29장 31절에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고 하였다.
  분명히 하나님이 레아의 태를 주장하셨다는 사실이다. 레아가 낳은 아들인 유다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이 일도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언약의 족속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거나 저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결혼을 통하여 태어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그 택한 백성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의 날, 은혜의 날인 신약시대의 도래와 함께 높고 밝은 도덕률이 빛나고 있음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즉 신약시대에 와서는 일부다처사상이나 축첩사상은 결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딤전 3:2-4, 마 19:4-6, 9). 한 남편과 한 아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 야곱 가문의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는 사실이다.
  야곱이 일부다처제와 축첩의 왜곡된 인간제도 때문에 숱한 분쟁을 겪으면서도 후손이 번성하고, 속고 속으면서도 재물을 얻고 부를 축재해 나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말미암는 하나님 언약의 중심 물줄기가 도도히 흘러내려 가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자녀란 하나님의 축복이요 자신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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