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70] 하란에서의 야곱③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36

"하란에서의 야곱(3) "
- 야곱의 치부 -
창세기30장 25절~ 43절
석원태 목사

  제3장 족장 야곱의 역사(창 27:41-36:43)
  I. 분리(창 27:41-28:9)
  II. 벧엘의 체험(창 28:10-22)
  III. 하란에서의 야곱(창 29:1-30:43)

  1. 하란에 이른 야곱(창 29:1-14)
  2. 야곱의 결혼(창 29:15-30)
  3. 야곱의 아들들(창 29:31-30:24)

  4. 야곱의 치부(창 30:25-43)

  본문 창세기 30장 25-43절은 하란에서의 야곱이 크게 치부(致富)하는 축복을 기록하고 있다. 43절은 이 사실을 종합적으로 말하기를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 등은 모두 고대 중동지역에서의 중요한 재산목록들이었다.

  1) 이 사실은 먼저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귀향의 뜻을 나타냄에서 시작된다(창 30:25-26).
  그때는 야곱이 라헬의 몸에서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낳은 때라고 하였다(창 30:25). 이것은 야곱이 하란에서의 14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7년 간은 라헬을 얻기 위하여 노동했고, 다음 7년은 다시 라헬 때문에 일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어간에 열한 아들과 한 딸을 낳았다. 말하자면 결혼을 위한 14년이었다.
  그래서 그는 외삼촌에게 말하기를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라고 하였다. 즉 품삯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하며,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2) 이 소식을 들은 라반은 야곱에게 노동에 대한 품삯을 정하라고 제의한다(창 30:27-30).
  라반은 창세기 30장 27절에서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제는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창 30:28)고 하였다.
  사실 라반은 야곱이 그에게 온 이후로 많은 재산을 증식하였다. 야곱처럼 유능한 유목인을 처음으로 만났던 것이다. 라반의 제안을 받은 야곱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창 30:29-30)라고 하였다. 여기 '나의 공력을 따라'라는 말은 '내 발에'라는 뜻으로 라반의 가축들에 야곱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는 뜻이다. 발이 붓고, 발바닥이 닳고 부르트도록 가축들을 돌보기 위해 걷고 뛴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야곱은 계속하여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가 ① 떳떳한 독립적 가장이 되고, ② 경제적 소유권을 가지고, ③ 일찍이 자신에게 약속된 언약 가문의 기업자로서 살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창 28:13-15).

  3) 야곱은 라반에게 조건부 배분방식을 제의하였다(창 30:31-34).
  라반은 다시 야곱에게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라고 물었다.
  라반은 야곱을 계속해서 자기 곁에 붙잡아놓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야곱의 요구에 응할 자신의 의지를 야곱에게 표현하고 있다. 이때 야곱은 너무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그것은 외삼촌 라반이 마음에 아무런 부담없이 허락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라반의 소유인 양떼와 염소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이 태어나면 그것이 바로 모두 야곱의 것이 된다는 내용이다(창 30:32). 계속해서 야곱은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자나 점이 없는 자나 양 중 검지 아니한 자가 있거든 다 도적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창 30:33)라고 하였다. 곧 자신의 말에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야곱은 조건부 분배방식을 제의한 것이다.
  이러한 야곱의 제의를 라반은 흔쾌히 수락하였다. 창세기 30장 34절에 「라반이 가로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고 하였다. 라반으로서는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다. 야곱이 그렇게 헐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양의 색깔은 흰색이 주류를 이루고, 염소는 흑색이나 갈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단색 짐승들이 숫자적으로 월등하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야곱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야곱에게는 불리한 제안이고, 라반에게는 유리한 제안이 된 셈이었다.
  바로 라반은 그 날에 자기 아들들을 시켜서 현재 있는 그의 가축 떼들 중에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들과 점 있는 것들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들과 점 있는 것들을 가리고, 양 중에 검은 것들을 가려내어 그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자기와 야곱의 양떼 사이를 사흘 길쯤 떨어지게 하고, 야곱은 라반의 단색 가축 떼들을 치게 하였다(창 30:35-36). 사흘 길은 약 30-40km의 거리를 말한다. 라반은 이 기막힌 야곱의 제의를 즉각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리는 여기에서 라반의 속임수가 숨어 있음을 곧 알 수가 있다. ① 혹시 야곱이, 자신이 제안한 이 품삯을 후회하고 번복하기 전에 조치를 취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② 유전법칙상 점박이 동물들이 단색동물들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교미현상의 결과로 야곱의 지분이 많아질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생각이다. ③ 또 야곱이 색깔 있는 가축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끌고 도망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반은 자기 아들들에게 야곱의 재산을 관리하게 하고, 야곱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라반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결과를 보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하여 야곱은 아무 방해나 의심도 받지 않고 색깔 있는 자신의 짐승을 많이 늘려갈 수 있었다.

  4) 야곱이 받은 축복이다(창 30:37-43).
  그 날 이후 야곱은 사실상 본격적인 자신의 경제행위에 들어갔다. 즉 본격적인 자기 재산 증식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냈다(창 30:37). 이 나무들은 겉이 푸르스름하거나 갈색나무들로서 껍질이 잘 벗겨진다. 반면에 속껍질은 매우 희고 윤기가 있다. 벗겨진 나무 껍질들은 겉과 속을 섞어두면 알록달록하게 보여진다. 그렇게 껍질을 벗겨서 알록달록하게 만든 나뭇가지들을 개천의 물통(물구유) 주위에 세워두었다. 양이나 염소들은 주로 물을 먹으러 올 때에 교미를 하는 습성들이 있는데, 교미를 할 때에 알록달록한 나뭇가지의 무늬를 보고 교미를 하면 수태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야곱은 알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동물들의 수태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의하면 생물의 다른 형질은 유전인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특히 교잡에 의해서 생긴 잡종의 제1대는 우성형질만 나타나고 열성형질은 잠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잡종의 제2대에는 우성형질과 열성형질이 완전히 분리되어 나타난다고 한다. 양의 경우에는 흰색이 우성이고, 검거나 점이 있는 것은 열성이다. 염소의 경우에는 털이 검거나 갈색을 띤 것이 우성이고, 흰 반점이 있거나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것은 열성이라고 한다.
  야곱은 비록 단색으로 된 가축 떼를 거느리고 있지만 이들 중에는 열성형질이 잠재하고 있는 양들과 염소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이 서로 교미를 할 때 열성형질을 가진 얼룩지고 점 있는 짐승들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야곱은 이러한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표된 때와는 관계가 없을 때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랫동안의 유목생활과 목축생활에서 무언가 터득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야곱이야말로 멘델의 유전법칙의 대 선구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문제의 초점은 야곱이 자기 재산을 증식시키는 방법이었다. 야곱은 물먹으러 오는 양이나 염소 중에 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제거해 버렸다(창 30:41-42). 그러므로 결국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 결과는 분명해져 버리고 말았다. 야곱은 그 새끼 양들과 염소들을 정확하게 구분하였고, 그것은 외삼촌 라반에게도 증거가 되었다. 결국 두 종류의 짐승이 각기 다른 주인의 재산이 된 것이다.
  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창 31:41-42) 마침내 야곱은 자타가 공인하는 거부가 되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30장 43절에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야곱도 아브라함이나 이삭처럼 거부가 된 것이다(창 13:2, 26:13-14).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 자신의 섭리적 축복이었다(창 27:27-29, 28:12-15, 30:27, 30).

  5) 야곱의 치부(致富) 행위에서 받는 현대적 교훈
  (1) 언약의 자손들은 가는 곳마다 축복을 안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30장 27절에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며 근본이고, 야곱은 그 복의 기구요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여기 '너로 인하여'라고 하였는데, '인하여'라는 말 '게랄'(ל󰗛󰔾)은 '굴리다'(수 5:9), '옮기다'(창 29:3)에서 유래한 말로 '…때문에'라는 뜻이다. 원래가 아니고 옮겨서 일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야곱을 자신의 집으로 굴리고 옮겨왔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는 뜻이다.
  또한 '복 주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복(바라크, 󰗗󰙝󰔯)은 '찬송하다'(창 9:26), '송축하다'(느 9:5)라는 뜻으로, 인간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취한 하나님을 향한 그의 경외심의 태도를 뜻한다. 또 다른 하나의 뜻은 하나님 편에서 인간에게 '복을 주다'라는 뜻도 있다(창 17:16). 그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복 주신 것을 '깨달았다'라고 하였다. '깨닫다'(나하쉬, שׁ󰕘󰗺)는 '징조를 보다'(왕상 20:33), '점을 치다'(왕하 21:6)라는 뜻인데, 이는 라반이 야곱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있음을 직감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야곱은 라반의 집에 복을 끼친 사람이다. 복을 안고 들어온 사람이다. 즉 굴러온 복이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야곱은 하나님을 모신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조부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 자신에게 축복을 거듭거듭 약속했기 때문이다. 요셉이 머물던 보디발 장관 집이 요셉 때문에 복을 받고, 타지 세계가 요셉 때문에 복을 받음과 같지 아니한가? 그래서 야곱은 이 사실을 외삼촌 라반에게 다시 확인시키고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창 30:30)라고 하였다.
  (2) 내 집을 세우고자 하는 야곱의 열망을 배워야 한다.
  창세기 30장 30절 하반절에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라고 하였다.
  이는 실로 야곱에게 있었던 생존의미의 고뇌가 토로된 말이다. 14년 세월을 외삼촌 집에 식객으로 살았던 야곱이고 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한 사람이 아니다. 당당한 독립 가정의 가장이 되고, 아비가 되고, 또 재산을 향유하는 주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자립하고, 독립하고, 자주하고 싶은 야곱의 생존의지이다. 자기 발로 일어서고 싶은 강한 미래지향적 욕구였다. 떳떳한 아브라함 자손의 기업의 후사로서 존재하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이 세상 처세원리를 보여준다. 우리는 신앙의 자립, 생활의 자립, 경제의 자립을 추구해야 한다. 매여 사는 것은 노예근성에서이다. 하나님의 힘을 받아 세상에서 벌떡벌떡 자기 발로 일어서는 굳은 생존의지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야곱의 의지 표현 속에는 라반은 알 수 없는, 야곱이 열망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간절한 소망에 근거하고 나온 말이다. 그는 이미 벧엘에서 하나님의 축복 보장을 받고 왔기 때문이다(창 28:12-15).
  (3) 야곱의 정당방위적 노동행위를 본다.
  얼른 생각하면 야곱이 취한 경제행위가 자못 간사하고 교활한 것처럼 보인다. 나무껍질 작전이라든지, 우물 작전이라든지, 실한 양과 염소만을 고르는 작전 등이 그러해 보인다. 그러나 야곱은 이미 14년을 살면서 외삼촌 라반에게 무수히 기만을 당하고 살았다. 창세기 31장 41절에 보면 야곱은 라반에게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 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이런 라반이고 보면 야곱으로서는 더 이상 인생을 빼앗길 수가 없었다. 시간과 노동을 더 이상 빼앗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제 그는 아주 계획적인 정당방위적 경제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치밀한 계획 아래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 아버지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또 양보한 그 관대함처럼 높이 평가할 수는 없다(창 26:12-22). 그러나 이미 이삭이 아닌 야곱이 만난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만 연속인 세상에서 경제행위의 처세를 올바르게 해야 한다. 무지하고 둔하고 어눌해서 바보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의 약속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계획적이고, 창조적이고, 기민한 처세를 해야 한다. '정당방위'라고 하는 것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최후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4) 하란에서의 야곱의 치부(致富)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축복에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축복을 언약하였다. 이삭에게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이 축복언약을 약속하였다. 그것이 저 유명한 벧엘의 비전이었다(창 28:12-22). 하란에서의 야곱의 몸부림은 사실상 이 하나님의 축복언약에 깊이 뿌리를 박고 나타난 것이다. 그가 나중에 거부가 되어 라반과 결별할 때, 자신이 부자가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으로 인함이었다고 토로한 사실에서 입증된다(창 31:42). 결국 하나님은 축복언약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진실하신 분이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