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원태목사강해설교

[스크랩] [76] 귀향길에 오른 야곱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5:42

" 귀향길에 오른 야곱⑤"
- 세겜에서의 야곱 -
창세기34장 1절~ 31절
석원태 목사

  제3장 족장 야곱의 역사(창 27:41-36:43)
  I. 분리(창 27:41-28:9)
  II. 벧엘의 체험(창 28:10-22)
  III. 하란에서의 야곱(창 29:1-30:43)
  IV. 귀향길에 오른 야곱(창 31:1-34:31)

  1. 하란을 떠나는 야곱(창 31:1-55)
  2. 형 에서를 만나는 야곱(창 32:1-33:20)

  3. 세겜에서의 야곱(창 34:1-31)

  지금 우리는 하란생활 20년을 끝내고 귀향길에 오른 야곱을 만나고 있다. 그는 하란을 떠난 후 외삼촌 라반의 추격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결정적인 개입으로 문제해결을 받았다. 다시 귀향길을 진행할 때 하나님의 군대들의 호위를 받는 축복의 사인을 받았다. 그는 얍복강 나루 저쪽에서 형 에서의 원한에 찬 복수를 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브니엘의 체험을 입혀 주셔서, 형 에서와의 만남을 눈물 속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셨다. 그는 형을 먼저 보내고 먼 여행의 피곤을 풀기 위하여 숙곳에서 머무는 시간을 가졌다(창 33:17-20).
  그런데 그 다음에 그는 뜻밖의 걸음을 걷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벧엘로 오지 않고 세겜으로 장소를 옮겨 집을 짓고 땅을 사고 머물렀던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 적어도 10년 이상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6-7세 정도밖에 안 되었던 딸 디나가 청혼의 대상이 될 만큼 장성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1) 세겜은 어떤 곳인가?
  세겜은 야곱의 할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처음 머물며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 그때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던 곳으로 세겜이라 불려지고 있었다(창 12:6-7).
  '세겜'이란 뜻은 '등성이', '언덕'이라는 의미이다. 아마 그곳이 사마리아 지역의 유명한 산인 그리심 산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어떤 경우든 세겜은 약속의 땅의 경내로 예루살렘 북쪽 65km지점이었다. 야곱 당시 이곳에 살던 추장 하몰이 이 지방의 이름을 따서 자기 아들의 이름을 세겜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야곱이 귀향하던 길에 여기 세겜에 머물면서 집을 짓고 땅을 샀다(창 33:18-20).
  이곳은 나중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출애굽 할 때 메고 나온 요셉의 뼈를 묻은 유서 깊은 성지가 되기도 한 곳이다(수 24:32). 저들이 그곳에 요셉의 뼈를 묻은 이유는, 그 땅이 자기 선조 야곱이 은 일백 개를 주고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산 땅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호수아 이후부터 이곳은 종교, 군사,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고, 도피성의 하나가 되었다(수 20:7). 그리고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고(대상 6:66, 67),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과 임종 언약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수 24:1, 25). 또한 사사시대에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이곳 사람들을 선동하여 왕이 된 곳이기도 하다(삿 9장). 나중에 왕조시대에는 여로보암이 이곳을 북왕국의 수도로 삼았다(왕상 12:25).
  우리는 야곱이 귀향길에 이곳에 들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제일 처음 머물며 제단을 쌓고, 축복의 약속을 받은 곳(창 12:6-7)이라고 하는 사실을 야곱이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귀향길에 야곱이 숙곳을 떠나 세겜에 머물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2) 세겜에서 당한 수욕(창 34:1-12)
  야곱에게는 레아가 낳은 딸 디나가 있었다. 그 딸 디나가 그곳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욕 된 일이 일어난 것이다(창 34:1-2). 그리고 사실상 얼마 동안 그 딸을 세겜에게 빼앗기고 말았다(창 34:26).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다가 추장의 아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그 후에 추장의 아들 세겜은 그 아버지 하몰에게 이 소녀를 자기의 아내로 얻게 해달라고 강청하게 되어, 추장 하몰은 그 일을 야곱에게 청원하였다(창 34:3-6).
  이 일이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충격적인 근심과 분노가 되었다. 저들은 이 일을 이스라엘 곧 야곱의 가문에 부끄러운 수욕으로 간주하였다(창 34:7). 이스라엘 가문의 영욕(榮辱)이 달린 중대 문제로 생각한 것이다. 이런 야곱 가문의 근심과 분노도 모르고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은 '디나'를 자기 집에 주어 서로 통혼하자고 청혼을 하게 된 것이다.
  세겜의 부모들의 통혼 요청에는 몇 가지 좋은 조건들이 따라왔다. ① 이 일로 양가가 서로 통혼의 길을 열자고 하였다(창 34:9). 그러나 이 일은 사실상 한 민족 되기를 꾀한 술책, 즉 흡수정책이었다(창 34:22). ② 함께 거하며 동맹하자고 하였다(창 34:10). ③ 그리고 서로 매매하며 거래를 하자고 하였다(창 34:10). ④ 디나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면 큰 빙물과 예물을 주겠다고 하였다(창 34:12). '빙물'은 결혼지참금, 곧 신부의 몸값이다. 당시 여자는 그 가정에 있어서 큰 인력이었다. 그러므로 처녀를 데리고 가는 남자 편에서는 인력 손실에 대한 몸값을 지불하였다. '예물'은 특별히 신부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하몰이 자기 사람들을 설득시킬 때 그의 본심이 드러났다. 그것은 통혼으로 말미암아 야곱가를 완전히 흡수하고 동화시켜 버리자고 하는 계략이었다(창 34:20-23). 여하튼 디나의 일은 야곱(이스라엘) 가문에 있어 일대 수욕이었다.

  3) 할례를 미끼로 야곱의 아들들이 세운 복수 계책(창 34:13-24)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과 그 아비 하몰의 요청에 속여 대답하였다고 하였다(창 34:13). 그것은 청혼 조건으로 세겜에 사는 모든 남자가 다 할례받을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창 34:13). 할례받지 아니한 사람과 통혼하는 것은 우리의 수욕이다, 그런즉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취하며, 너희와 함께 거하여 한 민족이 되겠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우리 말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창 34:14-17).
  추장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야곱의 아들들의 말을 좋게 여겼다고 하였다(창 34:18). 그래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은 그 고을 모든 사람들을 성문에 불러 모으고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설득하였다(창 34:20-22). 저들은 추장의 아들 세겜을 존귀히 여길 뿐만 아니라 이 통혼으로 말미암아 저들에게 얼마나 막대한 이익이 돌아올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추장 하몰의 말대로 모든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창세기 34장 24절에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고 하였다.
  야곱의 아들들의 제안인 '할례'는 히브리어 '물'(????)이란 기본 동사에서 나온 말로 '드러내다', '벗기다'라는 뜻이다. 이는 남자 성기의 귀두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표피를 잘라내어 귀두 부분이 드러나도록 하는 의식적 행위였다. 일찍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인으로부터 구별된 선민임을 뜻하는 언약의 징표로서 난 지 8일 만에 이 할례의식을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창 17:2-14).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영영한 규례가 되었다.
  이것이 신약시대에는 세례인데, 이 규례에 따라 '할례 없는 자',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전혀 상관없는 이방인을 뜻하는 표현이 되었다(삿 14:3, 삼상 17:26, 31:4, 겔 28:10). 이스라엘에게 무할례는 수치요 불순종으로 여겨졌다(출 4:24-26).
  그러므로 할례는 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선민이라는 표징이 되었다. ②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에 가입하는 상징이었다. ③ 이방인과 구별시키는 성별의 표시가 된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렇게도 거룩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할례를 복수의 미끼로 악용하고 오용하고 남용하였다.

  4) 야곱 아들들의 복수(창 34:25-29)
  추장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위시한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은 전부 할례를 받았다. 성문으로 출입하는 남자 중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창 34:24).
  저들은 이 할례의 후유증과 고통이 가장 심한 사흘째 되는 날을 복수의 날로 이용했다. 특히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성을 엄습하여 ① 그 모든 남자를 죽였다(창 34:25). ②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③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왔다(창 34:26). ④ 또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하였다(창 34:27-29).
  죽이고, 노략하고, 빼앗고, 사로잡았다고 하였다. 실로 무서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야곱 가문의 일대 치욕이었다. 갑자기 야곱의 아들들이 살인과 폭행과 약탈자들로 전락을 하고 말았다.

  5) 야곱의 탄식(창 34:30-31)
  야곱은 이 처절한 세겜 성의 학살과 약탈 소식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 주동인물이 시므온과 레위임도 알게 되었다. 야곱은 그 주동자인 시므온과 레위를 지목하고 모든 아들들을 책망하고 있다.
  ① 어찌하여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쳤느냐고 하였다. ②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즉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증오를 불러일으켰다고 하였다. ③ 수가 많은 그들이 모여 단결하여 치고 복수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다(창 34:30).
  그러나 야곱의 책망에 그들은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라고 함으로 언약 가문의 자부심과 긍지를 나타내며 자신들의 부도덕성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창 34:31). 분명히 세겜에서 야곱이 토하는 탄식이요 야곱이 당하는 치욕이었다.

  6) 세겜에서 당함 야곱의 수욕에서 받는 현대적 교훈
  (1) 벧엘의 서원을 망각한 결과였다.
  그가 하란을 향하여 떠나던 여로에는 '벧엘 체험'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1-22)라고 서원하였었다.
  그러나 야곱은 하란에서 나온 후 벧엘로 올라가 이 서원을 실행하지 않고, 숙곳과 세겜에서 너무나도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인생은 하나님을 향한 서원에 대하여 망각하는 습성이 있다. 그 큰 이유는 너무나도 현실주의적 사고와 생활에 깊이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 버린다.
  가지 아니해야 할 곳으로 거주를 옮기든지, 살지 아니해야 할 곳을 좋게 여겨 안주해 버리는 현실주의는 항상 하나님을 향한 과거 서원을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적인 서원이나 가정의 서원이나 교회적인 여러 직분들의 서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2) 자녀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더 높여야 될 것을 보여 준다.
  창세기 34장 1절에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라고 하였다.
  디나는 그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 자기와 같은 여자를 보러 나갔다고 하였다. 어떤 여자를 보러 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곳 세겜 여자들의 어떤 축제를 보러 나갔거나, 친구들을 찾아 나갔거나, 아니면 여자들의 어떤 특별한 행사나 유행에 호기심을 갖고 나갔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디나가 그 땅 여자들을 보려고 나갔던 그것이 수욕과 납치(성폭행)를 당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곳 세겜에서 10년이 훨씬 넘도록 살았던 야곱이고 보면 그곳 세겜족 여자들의 유행이나 풍속을 알고 있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곱은 사전에 그 땅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디나에게 했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한 야곱 가문은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치욕을 당했다.
  현대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부모들은 참된 문화인식이나 유행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분별력 그리고 적응력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오늘의 교회 교육에는 세속 역사와 문화 이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가치척도와 평가기준이 따라야 한다.
  창조관, 인생관, 예수관, 구원관, 교회관, 종말관 그리고 그리스도인 된 존재관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가는 자식이나 부모는 결국 그 땅의 종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3) 신성한 할례(언약의 표징), 곧 거룩한 종교적 의식을 잔인한 피의 복수를 위한 계책으로 세운 야곱 아들들의 소행은 실로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었다.
  그 어떤 이유와 목적이든 하나님 섬기는 종교적 의식이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노받을 소행이다. 창세기 34장 13절에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라는 사실이다.
  (4) 환난을 처리하는 야곱의 모습은 참으로 둔하기 짝이 없다.
  먼저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범한 살인과 약탈 행위에 어떤 도덕적인 참회나 통탄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자녀들이 범한 살인과 약탈행위가 하나님 앞에 크고 무서운 죄인 줄을 몰랐다.

  다음으로 야곱은 그에게 임한 환난을 염려함에 있어서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후환을 두려워하는 그의 말을 보면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 34:30)고 하였다.
  '내게', '나로', '나는' '나를', '나를', '나와', '내 집'이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다. 그 일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움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신앙인이면서도 어떤 일을 만나거나 당할 때는 개인주의로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약점들이요 슬픔이다. 그리고 아픔이요 부끄러움이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영광, 교회의 영광, 그리스도 복음의 영광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5) 그러면서도 세겜에서의 야곱의 환난은 하나님의 섭리적 환난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야곱은 그 일로 인하여 세겜을 떠나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또 다시 나타나서 세겜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창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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