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65강) 바알세불과 성령! (마 12:22-3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15

(제65강)         바알세불과 성령! (마 12:22-37)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뛰어난 명작이라고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탠버그의 십자가'라고 하는 유명한 그림입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가 일화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스탠버그라고 하는 유명한 화가가 성 베드로성당 위고 신부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그는 성당의 부탁을 받고 그림을 조심스럽게 그려 갑니다 만은 얼마동안 그리다가 중단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림 값이 너무 싸게 흥정되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림 값을 다시 흥정할 생각으로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도 그는 다른 그림을 또 그렸습니다. 집시 '페피타'라고 하는 모델을 놓고 그는 세속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마도 나체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가 잠깐 쉬게 될 때, 이 모델 페피타가 초안만 만들어놓고 완성하지 않은 그림을 보면서 '저 그림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그림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이군요.' '그렇습니다.' '무슨 사연입니까?' 교회에 대하여 성경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한 집시여인의 질문입니다. 좀 귀찮지만 설명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통속적인 성경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오셨고 이렇게 많은 병자를 고치고 착한 일 많이 하시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이 페피타는 그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슬퍼합니다.
  너무너무 슬퍼하니까 화가인 스탠버그는 그 우는 집시여인을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울지 마세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셨으니까 울지 마세요.'
  그랬더니 눈을 번뜩 뜨면서 '정말로 부활 하셨습니까?' 이 여인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쁜 낯을 하는 것을 본 순간 스탠버그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지금 이 여인에게 예수는 만백성을 위해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셨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고 저 사람은 저렇게 밝은 생명력을 얻는데, 나는 정말 예수의 부활을 믿고 있는가? 정말 내가 부활했다고 말했는데 내가 정말 믿는가?'하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성령의 터치를 받아 다시 부활신앙을 부활시켰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을 그리면서 돈 적게 준다고 흥정을 하고 있어? 이 나쁜 놈아.....' 스텐버그의 양심은 몹시 찔렸으며 며칠을 생각하고 뉘우치고 기도한 끝에 전력을 다하여 예수 상을 착수했고 주는 화료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이 '스탠버그의 십자가'는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영감을 주는 그림으로 기독교사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젊은 공작 진젠돌프가 이 그림 속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성화를 바라보면서 그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할 때에 큰 은혜를 받아서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었고  자기의 전 재산을 바쳐 선교회를 창립한 것이 '모라비안 교파'가 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설자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뜨거운 신앙과 전도열에 자극되어 새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 ◀제목 소개!▶

 

  본문 22절은 '그때에'로 시작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그때는 바로 앞부분 즉 1절 이하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거의 같은 시기라는 뜻입니다. 12: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①안식일에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는 추수행위로 간주하고 예수님께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②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을 트집 잡아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안식일의 바른 개념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안식일의 바른 개념은 어떤 형식과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로 깨닫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 그분의 뜻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논쟁이 있던 그때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납니다.

 

  ▶22절 "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여기 이중고에 시달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눈이 먼데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보지 못하면 말이라도 하든지, 말을 못하면 보기라도 하든지 그래야 되는데 둘 다 못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우리는 '헬렌 켈러'를 잘 압니다. 그녀는 20세기의 여자로써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헬렌 켈러는 말을 못하는 벙어리요,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요, 앞을 못 보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말하기를 '내 일생에 간절한 소원 한 가지가 있다면 사흘 동안만 눈을 뗬으면 좋겠다. 사흘 동안 눈을 뜬다면 첫째 날은 나를 낳아주신 인자하신 어머님이 얼굴을 하루 종일 보고 싶고, 두 번째 날은 나를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주신 설리번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대자연을 마음껏 보고 싶다'고 했답니다.
  본문에 이 사람은 생명은 있으나 고독과 소외감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암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병은 고독과 소외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웃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믿/ 그런데 본문에 이 사람이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된 동기가 바로 귀신에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의사는 귀신에 억압되어 생긴 병에 대해서는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병들이 있습니다. 병균이나 외상에 의하여 생긴 질병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에 억압되어 생긴 병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나을 수 있습니다. /믿/
  여기 '고쳐 주시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귀신에 걸린 병이 더 고치기가 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만 쫓아내면 깨끗하니까요? /할/
  본문에 중요한 진리는 '데리고 왔거든'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본인이 못나오거든 우리가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그 사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할/

 

  ▶23절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그 사람이 치료받은 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무리가 놀라' 여기서 이 '놀라'라는 말의 원 뜻은 '정신이 나갔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감탄했습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이 말은 바로 '저분이 바로 메시야가 아니냐?'라는 뉘앙스가 담긴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통하여 이 땅에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나와 이런 기사와 이적을 행할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사29:18절에 '그 날(메시아가 오시는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을 볼 것이며'
  신약성경에는 몇 군데 소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소경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하나같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들은 육적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어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로 불렀는데 당시 육적으로 눈이 떠있고 지식적으로 수준이 높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했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기회만 엿보았습니다. 육적으로 눈뜬 이스라엘백성의 종교지도자들은 영적인 맹인이었고, 육적으로 못 본 맹인들은 영적으로 눈이 떠져 있었습니다.

 

  ▶24절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그런데 이 사실은 같이 목격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과 사람들의 충격적인 반응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실은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기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억지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듣고' 무엇을 들었습니까? 군중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한마디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리쳤습니다. 이 소리를 들고 뭐라고 합니까?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무슨 말입니까?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이라는 마귀대장을 업고 마귀의 졸병을 쫓아냈다는 그런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귀신들린 사람에게 마귀 졸병이 들어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대 마귀가 들려 가지고 그것을 쫓아냈다고 아주 역설을 붙여 중상모략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두 가지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①그들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왜? 만일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예수님의 주장대로 그가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말 믿고 싶어도 자존심 때문에 전통과 습관 때문에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다 보면 말끝마다 반박하고 화를 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속을 가만히 보면 속에서는 받아들이고 겉으로는 거부합니다. 제가 전에 그랬거든요. 사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고백이요, 인정입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릅니다. /할/
  ②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엉뚱한 변명을 합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이론이 있습니다. 도둑질해도 이론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다. 공산당도 그들대로의 이론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엉뚱하게도 예수님의 기적을 베푸신 것을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조종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불 신앙의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것을 보지 않고 부정적인 것을 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함을 아신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귀신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명확한 말씀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25-26절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리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첫 번째 반증입니다. '예수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15절에서도 나옵니다. 이것은 신적인 능력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칼까지 세신 바 되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과 사상과 체질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다 속여도, 귀신을 속여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본문을 쉽게 표현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바리새인들의 주장과 같이 사탄의 힘을 빌려서 사탄을 내쫓은 것이라면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고 싸우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마귀가 마귀를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마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반문하십니다. 마귀도 저희끼리 분쟁하면 망할 것을 알기 때문에 마귀가 마귀를 대적하고 쫓아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7절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두 번째 반증입니다.
이 말씀 중 '너희 아들들'은 유대인들을 가르치고, 특히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막9:38절과 행19:13절을 보면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낸 일이 있다고 합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귀신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 아니지 않으냐?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너희가 인정한다면 내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성령의 힘을 받을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제자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판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이 말씀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그들을 재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렇게 두 가지 논증을 하시고 나서 아주 중요한 결론을 내리십니다. 귀신을 쫓아낸 것은 '분명히 성령의 힘입어 한 것이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쫓아낸 것이라면 이미 너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귀신은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만 쫓아낼 수 있다는 것과 귀신이 쫓겨 나가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의 비극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런데 마귀도 있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더러운 영들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더러운 악령들은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타락시킬 뿐 아니라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5: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내 자신을 내가 바로 다스리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을 좀 더 잘 믿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가 안 됩니다. 전도하고 싶은데 힘이 없습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끈적끈적한 더러운 악령이 우리를 조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이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할/

 

  ▶29절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예수님의 세 번째 반증입니다.
여기서 '강한 자'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세간'은 마귀에게 잡혀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늑탈'은 마귀의 수하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건져내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강한 사탄의 세력을 꺾으셨기 때문에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를 건져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꺾으셨습니다.
  창3: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러분, 원수마귀는 지금도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합니다. 발꿈치 상해서 죽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깨뜨렸습니다. 한마디로 목을 잘랐다는 것입니다. 뱀은 토막을 내도 삽니다만 머리를 자르면 그냥 갑니다. /믿/
  세상의 법도 강한 자를 꺾지 않으면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라고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이론의 생각을 반증하시고 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30절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 말씀은 부드러운 말씀 같으나 사실은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일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마귀에 대해서는 단호하십니다.
  본 절의 뜻은 한마디로 '영적인 전쟁에는 중립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과의 싸움에 있어서는 엄격한 입장을 취하셨습니다. 마치 왕상 18장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바알의 싸움과 같습니다. 엘리야가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 이것은 절대 혼돈할 수 없습니다. 고후6:15절에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교파가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선명이나 구원파 극단적인 것, 성경에서 벗어난 것 외에는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성결교,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가면 우리는 다 같은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역사는 절대 다릅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냐? 반대하는 자냐?' 분명히 밝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 비판하고 대적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믿/

 

  ▶31-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한층 더 강도 높은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왜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니 얼마나 무섭습니까? 죄라면 무엇이든지 다 용서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죄는 내세에까지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걱정하신 말씀입니다. 무슨 죄가 용서받을 수 없습니까?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성경의 곳곳에 보면 죄에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시32:1절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아무리 너희 죄가 붉을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흰 눈같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무리 붉을지라도' 이 말은 '우리의 죄가 비록 하늘에 사무칠 정도로 크다 할지라도'입니다. 이런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 훼방 죄 성령 거역 죄입니다.
  본문은 '모든 죄가 다 용서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 성령을 말로 거역하는 죄는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막3:28-29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접할 길이 막히지 때문에 큰 죄입니다.
  고전12: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 당신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느냐?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게 한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거역하고 모독을 했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마귀의 역사라고 거역합니다. 그들이 성령을 훼방하는 이 결정적인 죄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마지막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여기 '사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요.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죄가 굉장히 크다는 것입니다.   
  또 '거역하다'란 말은 '카타'라는 말로 성령의 일을 '자주 반대'하는 말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입니다. 영혼을 구원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거역하다'는 말은 고의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이란 필요할 때 사용하면 유익하지만 쓸데없는 말을 사용하면 자신에게 '유익이 없고 손해'를 가져옵니다. 본문에 보면 '입으로 전달하는 말과, 마음에 품은 생각과 소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와있습니다.
  말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말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이 실패와 성공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이요 품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도 마음으로 믿고, 말로 고백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말을 '마음의 생각, 씨, 마음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도 하고 닫게도 합니다. 최소한 자신이 말한 내용 때문에 지옥 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또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망하고 실패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할/


  ▶여기서 성령에 관한 세 가지 죄를 알아보겠습니다.
  ①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입니다.
엡4: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님이 어느 때 근심할까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정반대로 가서 나쁜 일을 하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할 때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여러분, 자식이 부모의 뜻과는 정반대로 나가면 그 부모는 근심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죄와 짝하고 나가면 근심하고 슬퍼하십니다.
  ②성령을 소멸하는 죄가 있습니다. 살전5: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성령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영이실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의 한 위가 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서 성령이 소멸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소멸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불이 활활 타오르려면 장작이 있어야 하고, 휘발유가 있어야 합니다. 장작이 다 타고 휘발유가 다 타면 그 불은 꺼지게 되어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불도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고 말씀 읽지 아니하면 꺼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성령 근심 죄는 세상의 사람들이 짓는 죄가 아닙니다. 성도가 짓는 죄입니다.
  ③본문에 나오는 성령 훼방 죄, 거역 죄는 어떤 사람은 자살도 성령 훼방 죄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자살하면 회개할 기회를 놓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큰 죄는 오늘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곧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였지만 그 성령을 모독하고 사탄의 영으로 보는 것이 더 큰 훼방 죄입니다.
  이 죄는 신성모독 죄라고 합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도 성령 훼방 죄입니다. 하나님이 다 같으십니다. /믿/ 예수님은 33절에서 마음을 고쳐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33절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우리 자신이 나무라고 하면 나무의 열매는 우리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어떤 나무인지 그 열매를 보아서 아는 것처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좋지 않은 사람인지 그의 말을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나무에 말의 열매는 어떤 것이 맺히고 있습니까? 좋은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쁜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 속은 얼마나 더러운지 사도 바울은 우리 마음을 '열린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악하고 부패하고 더러운지 마치 무덤 속에 있는 썩은 시체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펴주고 병을 고쳐주고 귀신들린 자를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벙어리가 말하게 하고 눈먼 사람을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선한 열매를 보면서도 바알세불은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성령은 훼방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굽히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마음만 고치면 행동은 근방 고쳐집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보고 알았으면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복을 받습니다. /할/

 

  ▶34-35절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드디어 예수님의 입에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을 하십니다. 독사는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독사의 자식'이란 '불 신앙과 믿음이 없는 생활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마음에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실함이 없고 정의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감동과 용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불 신앙의 마음에는 불신이 나오고, 강팍한 마음에서는 미움이 나옵니다. 그래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악하니' 신32:5절에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마음속에 악한 것이 쌓여 있는 사람은 쌓인 악에서 악한 말이 나오고 마음속에 선한 것이 쌓여 있는 사람은 선한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체포되어서 한 6개월 동안 옥에 갇혀서 모진 고문과 매를 맞았습니다. 그 후에도 YMCA 등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또 조선일보 사장도 한 아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분이 옥에 갇혔을 때에 일본 경찰이 몽둥이로 때리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고문을 해도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치고, 건드리면 건드릴 적마다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습니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때리는데 때릴 때마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세게 때리면 더 크게 외치니까 오히려 순사가 지쳐버렸습니다. '이 영감아! 대한독립 만세 라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때리는데 왜 자꾸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이상재 선생이 대답하기를 '내 속에는 대한독립 만세로 가득 차 있어서 대한독립 만세가 내 목구멍까지 차 있는데 건드리지 말아야 그 말이 안 나오지, 건드리기만 하면 대한독립 만세가 나오는 것이 아니요?'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건드리면 내 속에는 무엇이 가득 차서 무슨 말이 먼저 나옵니까? 다른 사람을 한 번 건드려 보세요. 무엇이 먼저 나오던가요? 일반적으로 욕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왜 욕이 나옵니까? 그 속에 욕처럼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믿/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마음'이란 말을 '에크발레리'라는 말로 '창고, 곳간'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창고'와 같습니다. '곳간'과 같습니다.
  이 창고에 무엇이 쌓여 있느냐에 따라서 그 쌓여진 것이 입을 통하여 말의 형태로 나오게 됩니다. 쌀이 쌓여진 창고에서는 쌀이 나오고, 보리가 쌓인 창고에서는 보리가 나오는 것처럼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보아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악한 말이 나오는 것은 그들 마음이 악이기 때문입니다. /할/

 

  ▶36-3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하더라도 심판 날에는 문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농담이 안 통합니다. 하나님은 불 신앙의 말을 하더라도 심판 날에 그것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말로 나옵니다. 속에 선한 것이 있으면 선한 말이 나오고, 악한 것이 있으면 악한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속에 세상 것이 있으면 세상 말이 나오고 신령한 것이 있으면 신령한 말이 나옵니다.
  37절에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결정을 우리도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의롭다 함을 받을 수도 있고 정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지혜자인 솔로몬은 잠4: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고, 잠16:32절에서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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