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93강)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37

(제93강)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묻는 물음에서 영생에 대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 품꾼의 비유'인데 사실 영생의 문제나 천국의 문제는 같은 주제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 곧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고,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곧 영생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보면 마19:30절과 오늘 본문 16절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은 똑같은 말씀으로 결론 내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생의 문제의 결론도 30절에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오늘 천국 비유의 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16절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할/ ◀제목 소개!▶

 

  먼저 본문의 배경은 종합적으로 조명해 보고 본문 한 절씩 상고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은 놀고 먹으며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축복 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에게는 '쉼터, 배움터, 일터' 이 세 가지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쉼터는 어디입니까? 가정입니다. 배움터는 학교요, 일터는 직장입니다. 이 세 가지 터전을 잘 갖추어진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믿/
  인생의 성장과정은 어린 시절에는 쉼터에서 자라고 그 후에는 학교에서 청소년 과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일하면서 생애를 보람 있게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천당에 가면 땀도 흘리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평안히 놀고 먹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막상 천당에 가 보았더니 과연 자기가 믿은 대로 놀고 먹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보니까 그 생활도 지겹고 견딜 수 없이 차라리 지옥에 가서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제발 지옥으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네가 있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나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태어나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사명으로 살 때 비로소 천국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은 본문에서 천국은 일하는 곳으로 비유하시고 계십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많은 영세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장터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꾼을 구하러 장터에 나갔습니다. 당시 노동자가 하루 종일 일하면 한 데나리온 받은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제 삼 시에 다시 장터에 나와 보았더니 아직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도 모두 불러서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시간과 우리나라 시간의 차이는 6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제 삼 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9시경입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또 나가 보니까 제 육시 우리나라 시간으로 12시 정오입니다. 점심때 나갔는데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농장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제 9시 즉 오후 3시에 가보니까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고용했습니다.
  마침내 11시에도 가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후 5시입니다. 유대인들은 오후 6시면 해가 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해지기 1시간 전인데 그때에도 가보니까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인은 그들마저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일을 시킬 때 맨 처음 시킨 사람들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지만 다음 사람들은 얼마를 주겠다든지 그런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냥 일을 시켰습니다.
  드디어 해는 지고 품삯을 줄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맨 나중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 먼저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일한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서슴없이 줍니다. 다음 늦게 온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것을 본 제일 먼저 들어온 품꾼들과 다음 들어온 품꾼들은 기대가 큽니다. '야! 우리는 두 서너 배쯤 주겠지?' 하는 기대입니다. 드디어 자기들 차례가 왔습니다. 주인은 역시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그러자 그들이 크게 불평을 합니다.
  이때 주인은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그리고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 것도 내 뜻이요' 이러한 비유를 들려주신 예수님께서 결론을 내리시기를 16절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할/
  이 비유에서 나타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그의 교회를, 청지기는 예수님을, 이른 아침에 온 품꾼은 유대인과 바리새인을, 늦게 온 품꾼을 이방인을 암시합니다. /할/

 

  ▶1절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여기 '천국'은 성경에서 말할 때 세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⑴마음의 천국과, ⑵교회와 ⑶천년왕국, 영원한 하늘나라를 가리키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천국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시는 구원운동은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는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포도원은 교회를 의미하며, 품꾼은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모든 신자들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천국은 일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일할 고용인을 찾고 계십니다. 나를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천국은 일하라고 부르신 곳입니다.
  인간의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할 일이 없는 고통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고독한 사람은 할 일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복된 사람들은 평생 할 일이 있고, 일 할 수 있는 건강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문제가 무엇입니까? 경제 파탄으로 기업들이 어려워져 '명퇴, 조퇴, 억퇴'가 유행입니다. 명퇴는 명예퇴직입니다. 조퇴는 조기 퇴직, 억퇴는 억지로 퇴직시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가정에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위가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요즘 어린아이들을 깨울 때도 아버지가 깨우면 안 일어난답니다. '야! 엄마가 너 빨리 일어나라고 한다.' 그때야 벌떡 일어난답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온 식구가 밥상머리에서 즐겁게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뽕'하고 누군가가 방귀를 뀝니다. 이때 7살 먹은 큰아들이 어머니를 향해 '엄마가 뀌었지?' '난 아니야' 이번엔 동생을 가리키며 '네가 뀌었지?' '형 나는 정말 아니야' 그때 큰아들이 하는 말이 '어떤 놈이 한번만 더 뀌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어째든 지금 우리나라 사정은 실업자가 많아지고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경기가 회복하려면 일거리가 많아져야 하고 일꾼을 필요로 하는 일터가 많아져야 그 사회 노동가치가 상승하고 경기가 회복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점점 더 일자리가 없어 큰일났습니다. 청년들이 얼마나 어렵게 삽니까? 그런데 본문은 보십시오, 천국은 차별 없이 누구든지 일할 수 있는 세계요, 무제한 일터가 보장된 곳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좋은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고 지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이 포도원 주인은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할/ 하나님은 오늘도 포도원을 세워놓고 일꾼으로 계속 부르고 계십니다. 조건 없이 부르고 계십니다. 주인의 그러한 부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계속 부르는 이 은혜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세상이 심판을 받고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부르기 위해서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을 고하지 않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에 부름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조건 없는 부름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포도원에 일하러 오게 된 것입니다. /믿/

 

  ▶2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계약이 나옵니다. 주인은 품꾼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데나리온은 그 당시 은전의 명칭이며 당시 장점의 하루 일한 품삯에 해당됩니다.
  주인은 이 품꾼들과 한 데나리온씩의 약속을 하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주인과 부름 받은 품꾼의 계약입니다. 이 계약은 불변합니다. 절대로 파기할 수 없습니다. 이 계약을 잘 살펴보면 부름 받은 품꾼의 의지나 조건이 아니고 주인의 절대적인 의지입니다.
  한 데나리온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일당 한 데나리온은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을 가르칩니다. 한 데나리온의 약속은 누구든지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계약이 우리 믿는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의 약속과도 같습니다. 요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약속과 같습니다. 그런 약속이 없다면 우리는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약속의 책이라고 하며 구약,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할/

 

  ▶3-4절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포도원 일꾼은 보통 언제 부르느냐하면 제일 시에 부릅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환산하면 이를 아침 6시경입니다. 우리나라도 노동시간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는 몰라도 남대문시장 입구에 중국집기술자들이 있습니다. 아침 5시부터 8시까지 득실거립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일꾼들이 포도원에 들어가는 시간이 각각 다릅니다. 여기 제 삼 시는 9시입니다. 여름철이면 아홉시면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입니다.
  시골가면 식전 일이 반나절 일이라고 하는데 9시에 불렀으니 시간에 1/3은 벌써 지나간 때를 부른 것입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여기 3절에 '장터'는 품꾼들의 인력시장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곳인데 이곳은 상징적으로 부름 받은 자와 부름 받지 못한 자가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은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불러주셨기에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믿/ 또 '상당하게 주리라'고 한 것은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지 않고 적당한 양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5-7절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계속적으로 포도원에 들어가는데 시간이 차이가 있습니다. 제6시는 12시 제 구시는 오후 3시 제11시는 오후 5시입니다. 한마디로 시간 제한 없이 고용했습니다. 이 말은 천국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누구든지 구별 없이 아무 때나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여기 시간 별로 부르게 대해 학자들의 해석이 구구합니다.
  ①ST. 그레고리의 견해입니다. 처음 온 자는 아담부터 노아까지 사람들입니다. 제3시는 노아 때부터 아브라함까지, 제6시는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제9시는 모세부터 예수 그리스도오실 때까지입니다. 제 11시는 그리스도부터 세상 끝날 까지 구분하여 설명했습니다.
  ②크랙크의 견해입니다. 먼저 온 자는 유대인이요, 후에 온 자는 이방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③이레누우스의 견해입니다. 먼저 온 자는 구약성도요, 후에 온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보았습니다.
  ④칼빈의 견해입니다. 첫째는 베드로, 둘째는 바울과 바나바, 그 다음은 오고 오는 모든 교역자들로 마19:23-30절에서 베드로의 우월감을 견책하신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중표 목사님은 이른 아침에, 유아 때의 부름 받은 자들로 보았고, 오전 9시는 소년시절, 12시는 인생의 반을 헤매다가 중년기에 주 앞에 부름 받은 사람으로 보았고, 오후 3시는 인생의 장성기를 넘어서 부름 받은 사람들, 제5시는 인생의 황혼기에 부름 받은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부르실 때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일한 시간도 묻지 않습니다. 건강이나 재능도 묻지 않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에서 있느뇨? 그때 그는 답답한 마음으로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 축복을 하나님 앞에 나와 일하는 것입니다. /아멘!/
  ▶한 청년이 목사님의 천국설교를 듣고 찾아와서 '목사님! 도대체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저도 천국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목사님은 '아!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천국을 보여드리지요! 우리 마을 어귀는 조금 벗어나면 가난하게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 할머니는 병이 들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굶는 날이 많습니다. 그분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입을 옷을 갖다 주고 약도 사다 갖다 주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며 그분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천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면 천국을 볼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천국을 보실 것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 청년은 목사님의 말씀대로 그 할머니를 찾아가 먹이고, 입히고, 약을 주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같이 하나님은 찬양입니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천국을 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목사를 찾아가서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는 했지만 저는 천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당신이 그곳에 있는 동안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천국은 바로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곳입니다. 아무 것도 자기의 것이 없는 곳입니다.' 청년은 이 말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천국이 바로 내 곁에 있었다니'
  그 후 청년은 더욱 더 가난하고 병든 이웃과 함께 나누며 매일매일 천국을 맛보며 살았습니다.
  불란서의 문호 룻소는 '인생은 두 번 때어난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일에는 때가 늦는 법이 있고,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지금하면 됩니다. 항상 기회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일이라고 생각할 때 소명이 됩니다. /아멘!/

 

  ▶8절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여기서 주인이 청지기에게 참 재미있는 명령을 내립니다. 일을 마친 후 품삯을 주는데 제일 먼저 온 사람부터 주지 않고 제일 나중에 온 사람부터 주라고 했습니다. 제일 늦게 온 사람부터 주라고 했습니다.
  제일 늦게 온 사람은 오후 5시에 온 사람입니다. 일이 오후 6시에 끝났으니까 이 사람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16절에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대로 제일 나중 사람이 제일 먼저 되었습니다. /할/

 

  ▶9-12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이제 청지기가 품삯을 주기 시작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때 그 옆에 있었던 제일 일찍 온 사람이 9시에 온 사람, 12시에 온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었습니다.
  '한 시간 일했는데 한 데나리온을 준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이 줄 것이다.' 그것도 그런 것이 제 삼 시에 들어간 사람을 9시간을 일했고, 제6시에 들어간 사람은 6시간을 일했고, 9시에 들어간 사람은 세 시간을 일했으니 이런 기대도 할 만합니다.
  그런데 여러 시간 일한 사람들이 일당을 받고 보니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들 마음이 섭섭하기 시작해졌고,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평한 말이 12절에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일하는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해 힘써 노력했는가를 짐작해 봐야 합니다.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종일토록 기다려도 일자리가 없었는데 해가 다 지는데 품꾼으로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밖에 없는데 오늘 일은 못하면 생활비가 없어서 곤란하게 되었기에 간절히 사모하며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때 포도원 주인이 와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고 하므로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있는 힘을 다해 주인에게 충성했습니다. 그 사람은 포도원에 더러운 일과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 사람이 다 해치웠을 것입니다.
  주인이 보든지 안보든지 죽을 똥, 살통 모르고 전심전력해서 충성했더니 이 사람들이 첫째가 된 것입니다. /할/ 그러나 아침에 들어온 사람들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라고 했는데 늦게 온 사람들은 이 소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일을 하면 수고와 더위를 무르겠습니까? 죽을 똥, 살통 일하면 수고도 더위도 모릅니다. 적당히 농땡이를 치면 수고도 더위도 압니다. /할/
  먼저 온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자만심에 빠져있었습니다. 10절에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이 말은 '자신들이 더 받을 수 있는 자격자'라는 착각을 했습니다. 이런 의식을 '공로자의식'이라고 합니다. 이 의식은 '정치판 의식'입니다. 정치판은 철저하게 공로 따라 직위가 나눠집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할/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롬1:1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아멘!/
  여러분! 공로의식이 많은 사람들은 불행과 원망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진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합니다. 주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을 들어 은혜'를 주십니다. /할/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나를 몰라주다니' 하는 섭섭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주님께 빚진 자 의식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그에 상당한 대접을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한 성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선 성도들의 맨 뒷자리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훈장처럼 잘한 것을 달고 나온 가운데 그만은 유별났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하였느냐?'고 주님이 물으실 때 '주여, 잘한 일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습니다.' 이런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할/
  ▶일생을 아프리카 선교사로 생애를 바쳤던 '리빙스턴'은 '천국에 관계된바 없이는 내게 있는 것 그 어느 것도 나는 아무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내가 아프리카에서 나의 생을 희생한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희생한 일이 없다. 하나님은 나에게 건강한 몸으로 좋은 일을 하게 하셨고, 마음에 평화를 주셨고, 이후에 올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의 밝은 소망 가운데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요,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할/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여러분, 왜 불평이 일어나는가?
  오늘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전부 타인과 비교하다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하고 주인과는 문제가 없습니다. 나와 주인과의 계약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나 혼자 일하고 한 데나리온을 받아 가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와서 조금 일하고 자기와 똑같은 대우를 받으니까 비교하면서 원망하게 되고 그렇게 하는 주인을 악한 주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죄 성은 발전합니다. 처음에는 불평입니다. 왜 공평하게 대해주지 않습니까?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이 불공평은 자기 기준입니다. 주인의 뜻에서 보면 주인은 공평한 분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타인과 비교하여 형제를 원망하는 것만 아니라 그렇게 대우하는 주인까지 나쁜 주인으로 오해를 하고 죄를 범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내가 너를 일꾼으로 불렀을 때 너는 나를 선하다고 여겼는데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는 주인의 이 말속에는 상당히 준엄한 책망이 있습니다. /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⑴한 데나리온, 즉 구원이 큰 줄을 몰랐습니다.
  ⑵구속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⑶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⑷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간섭했습니다.
  ⑸자기 공로를 내세워 욕심을 부렸습니다.
  ⑹하나님이 하는 일에 원망했습니다.
  ⑺하나님의 주권 적인 행사를 절대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⑻선한 일을 악하게 본 것입니다. 이런 비유를 들려주신 예수님은 결론 내리시기를 16절 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십니다. /할/

 

  ▶13절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주인이 먼저 온 사람들에게 대답하기를 너희에게 한 데나리온 주는 것은 약속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약속대로 한 것이므로 주일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으나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9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주는 것이 천국 특별노동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원리는 은혜의 원리임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14-15절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나중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 주는 것은 주인의 뜻이니 자기 것을 가지고 누구에게 주는 것은 선한 일이다. 선한 일은 악하게 보는 것을 자기 욕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한 데나리온은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구원이 큰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구속에 은혜에 대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기의 공로를 세워 욕심을 부렸습니다. 하나님의 하는 일에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에 절대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악하게 본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그들의 잘못된 의식을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⑴제자들의 잘못된 비교 의식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품꾼들이 가져야 할 의식은 비교의식도, 경쟁의식도 아닙니다. 동업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정신'입니다. /할/
  ⑵제자들의 잘못된 공로의식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내가 마땅히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우리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요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아멘!/
  ⑶제자들의 잘못된 흥정의식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위해서 희생을 했으니 내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속에서 베드로의 흥정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꾼들은 정치판처럼 흥정하는 것이 아니고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자발적인 사랑의 발로에서 나타나는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⑷잘못된 동역자의식'을 깨우치는 말입니다.
  13절에서 주인이 원망하는 자들을 향하여 '친구여'라고 부른 것을 주목하십시오. 이 말은 일차적으로는 '동료'라는 의미이지만, '전우'를 가리키는 데도 쓰입니다.
  즉, '같은 목적을 가졌고, 운명을 같이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성도들에게 '동역자 의식'이 강할 때 그 교회는 화목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


  ▶16절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유대인들이 먼저 된 자들인데 지금 나중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할/ 나중 온 자가 먼저 온 자의 몫인 한 데나리온을 받으며, 먼저 온 자 역시 나중 온 자의 몫인 한 데나리온을 받듯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교회는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천국을 이루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온 자도 사랑하시고 나중에 온 자도 사랑하십니다. /할/

 

  ▶본 비유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교회에 먼저 들어왔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뽐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누가 높으냐?'는 교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사고방식을 보신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어서 '착각하지 마라 천국의 질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또 오늘날 우리에게 먼저 믿고 왔다고 해서 혹은 나이가 많다고 하니 특수한 자리에서 영광을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래 되었다고 하여 교회를 흔들고 마음대로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교회는 텃세가 심해 초 신자들이 발을 못 붙이고 떠나갑니다. 교회는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큰 자나 작은 자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며, 귀한 자들입니다. /아멘!/
  ②이 비유는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아주 강했습니다. 그들은 선민을 가지의 명예와 특권으로만 생각했지 해야 할 의무는 안 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처럼 취급했습니다. 이런 교만한 유대인들에게 '나중 된 자가 앞선 것'을 말씀했는데 오늘날 현실이 예수님 안에서 미국이 앞섰고, 대한민국이 앞섰습니다.
  ③하나님 앞에서는 시간적 순서가 없습니다.
  유아 때 믿은 자나, 소년 때 믿은 자나 청년 때 믿은 자나 장년 때 믿은 자나 노년 때 믿은 자나 다 소중한 존재임을 가르쳐 줍니다.
  ④나중 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있었던 한 강도는 평소에 예수님을 만나본 일도 없고, 예수에게서 제자훈련을 받은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십자가에서 만났을 뿐입니다.
  한 강도가 예수님을 저주하자 그는 그 강도를 야단치면서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서 나를 기억해 주소서!' 한마디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놀랍게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강도는 그 생애에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천국에 간 것입니다. /할/
  오늘 포도원은 교회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일꾼을 찾으십니다. 교회는 시간적으로 어느 때라도 일을 할 수가 있는 곳이고 아무든지 들어와 일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일꾼들의 차별이 없이 평등한 게 교회입니다. 자기 맡은 일에 충성스럽게 일하면 16절 말씀대로 나중 된 자가 앞서는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됩니다. /믿/
  포도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무적인 일꾼'입니다. 시간만 보내면 되고, 하루 품값, 한 데나리온만 받으면 되는 일꾼입니다.
  또 하나는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한 자, 죽도록 일 한자입니다.
  오늘 늦게 온 자들은 주인이 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 감격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우리들도 선택해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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