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104강) 큰 계명에 대한 논쟁! (마 22:34-4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7:44

(제104강)     큰 계명에 대한 논쟁! (마 22:34-46)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구별됩니다. 34-40절까지는 계명에 대한 논쟁이요, 41-46절까지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세상에는 많은 질문도 있고, 의문도 있습니다만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는 질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생각과 대답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인간을 향한 세 가지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①창3: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음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 묻는 물음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예수 안에 있느냐? 예수 밖에 있느냐?' /할/
  ②창4:9절에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음도 우리를 향한 질문입니다. '너희 형제들이 지금 예수 안에 있느냐? 예수 밖에 있느냐?'를 물으신 것입니다. /할/
  ③창16:8절에서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렇습니다.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를 가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 속에서 인간의 존재성과 이웃과의 관계성과 인생의 삶에 대한 방향을 생각게 하는 질문이라 하겠습니다. /아멘!/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마16:15절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과 오늘 본문에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므로 주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물음에서 바리새인들은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할/
  먼저 34-40절의 단락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제목 소개!▶

 

  지난 시간에도 배웠지만 그 당시 유대교에는 세 종파가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센파'입니다. 그들은 서로 교리 면에서 볼 때 원수지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하는 데는 일치가 되어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난처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핍박하고 조롱하고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마22장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교대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질문공세를 벌이는 내용들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두개인들이 자기의 교리의 주장대로 부활이 없음에 대하여 주장하면서 부활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들이 '성경을 잘못 알고 있다'고 꾸짖고 구약성경에서 부활에 대한 예언이 자신에게 대하여 예언한 것이라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하여 논쟁을 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멀쑥해 졌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 중에 한 율법사가 등장하여 율법에 대하여 논쟁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할/

 

  ▶34절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은 서로 원수지간입니다. 서로 미워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교리 면에서 항상 대립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무 통쾌하게 부활의 문제를 해결해 주자, 바리새인의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두개파 사람들은 입도 뻥끗 못하게 만드셨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몰려왔다는 것입니다.

 

  ▶35절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그 당시에 율법사, 서기관, 교법사들이 있었는데 율법사는 소위 율법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율법해석의 전문가들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교법사라고 했는데 율법사나 교법사는 같은 직임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 서기관은 성경을 필사하는 사람으로서 성경은 줄줄 외울 정도로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사나 교법사나 서기관들은 율법에 정통한 신학자들이며 법률전문가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박사들로 넓게는 서기관에 속합니다.
  지금 이 율법사는 자기의 전문지식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주여! 우리가 율법을 가르치지만 중심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으니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했다면 예수님은 기쁘게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 예수가 하나님 나라가 어떻고 성경은 어떻고 아는 체하는데 어디 구약성경을 제대로 알고 말하는지 시험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질문한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랍비들은 율법을 확대해석해서 끊임없이 토론 없이 변론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 랍비들은 율법에 대해 끊임없이 변론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율법에다 많은 주석과 해석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계명이외에 율법을 613개로 나누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시행세칙을 무수히 제정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무엇무엇을 하라는 계명을 365개로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그 계명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논쟁만을 일삼았습니다. 지금 본문에서도 단순히 배우고자하는 태도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라 그들의 취미인 논쟁 속에 예수님을 끌어들여 시험하여 예수님과 싸우자는 작전입니다. /할/

 

  ▶36절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사실 하나님의 계명은 다 큰 것이지 적은 것이 없습니다. 죄도 큰 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다고 하는데 죄는 똑같은 죄입니다.
  호숫가에 큰돌을 던지면 큰돌도 가라앉고, 작은 돌을 던져도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계명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받고 우물쭈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지체 없이 명쾌하게 구약의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37-3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예수님은 구약 율법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 모든 율법의 원리가 되는 큰 계명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6:4-9절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쉐마 교육에서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쉐마'란 '들으라'는 깊은 의미로,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삶의 중심을 이루는 핵심적인 교훈으로 이 쉐마를 늘 방송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돌에 각을 떠 새기듯이 나무에 각을 떠 새기듯이 네 마음에 각을 떠서 기록하라, 그리고 자녀들에게 이 말씀은 주야로 가르쳐라, 그들의 머릿속에 완전히 들어가도록 가르쳐라, 집을 나갈 때에도 들어올 때에도 알았을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교육의 원리요, 기독교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신앙교육이 바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금융권을 누가 취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600개의 대학교수들의 분포도를 보면 그 중의 30%가 유대인들인데 수석교수들이랍니다. 또한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분석하면 유대인들이 1/3을 차지했습니다.
  적은 땅덩어리에서 이렇게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들의 신앙교육 쉐마 교육에서 나온 것입니다.
  38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 가운데서 가장 큰 계명일 뿐 아니라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누립니다.
  잠8: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 사랑을 더 풍성히 누리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세 가지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①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받은 우리 역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머리의 사랑이 아니라 가슴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슴을 열고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4: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할/
  ②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 역시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사랑은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걸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목숨 걸고 달려든 사람입니다. 목숨 걸고 매달리는 사람 앞에는 누구도 못 당합니다. 하나님사랑도 목숨 걸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③뜻을 다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뜻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사랑하셨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그것은 변함 없는 하나님의 뜻이며 포기할 수 없는 그분의 의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아멘!/
  '뜻을 다하라'는 말은, '온 정성을 다하여 모든 생각과 의지를 동원하여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 즉 시간, 재능, 물질, 정열, 은사 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외적 표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배이고, 다른 하나는 십일조입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 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예배라는 말과 섬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같습니다. '아바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이십니다. 최고의 존재에게 드리는 사랑은 나의 최선의 것입니다. 나의 최상의 것은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예배요, 참된 사랑입니다.
  '예배'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 최상의 것을 드리지 않았다면 그 예배는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아멘!/
  그리고 십일조는 하나님을 섬기는 지름길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기독교 방송국 드라마에서 윤인수 맹인 목사님의 간증이 낭독되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맹인인 그가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아 돈을 벌어 왔습니다. 장님으로서 돈을 벌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뻐하며 돈을 자랑스럽게 어머니 앞에 내놓았을 때 어머니는 등을 두드려주면서 말했습니다.
  '십일조를 먼저 떼자!' 윤인수는 화를 버럭 내면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십일조는 무슨 십일조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였고, 어머니를 병들게 하였고, 내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산당에게 우리를 피해 다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 무슨 돈을 냅니까?'
  그러나 병석에서 누운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인수야! 고향을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을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을 잃어버린 것도 서럽고,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도 아프거늘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
  그리고 아파 누워 있으면서 장님이 벌어다준 돈의 십일조부터 떼어 정성껏 봉투에 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할/ '어니 브리지'라는 사람은 GM사를 SONY사 보다 더 발전시켜서 미국의 제일 기업으로 만든 경영자였습니다. 그 분이 TWA로 가니까 TWA가 미국의 제일 항공사로 자랐습니다.
  하여튼 그 분이 손만 대기만 하면 그 기업이 미국의 제일 기업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우리 회사에도 '어니 브리지'만 있다면 미국 최고의 회사가 된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니 브리지'는 대학교 2년 중퇴자입니다. 그 분은 '내 모든 지혜와 내 모든 삶의 경륜은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성경 읽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서 얻어졌다. 내가 그 분을 사랑했던 그 사랑이 이렇게 내게 큰 선물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할/
  이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질문하지는 않았지만 큰 계명, 두 번째 계명까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할/

 

  ▶39-40절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은 레19:17-18절을 인용했습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곧 이웃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1서4:20-21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그런데 39절에 보면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기서 '네 몸같이'는 자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할 때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랑은 모든 사랑의 출발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나의 존재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렇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온 천하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천하에 내 존재와 비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믿/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당신의 당신 자신을 존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제자가 된 자입니다.
  요13:34절에서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누가 내 이웃인가? 눅6:32절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웃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이웃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원수'까지 포함됩니다.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을 거부하는 불신자, 교회를 핍박하는 악독한 사람, 도움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소외된 사람들 모두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것인가?
  ①이웃의 일을 돌아보고 자비와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2001년도에 일본에 유학 온 한국 대학생이 도쿄(東京) 전철역 구내에서 술 취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술 취한 승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며 이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기독교의 고전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교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할/
  먼저 시골에 있는 아주 작은 성당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던 한 소년이 실수를 하여 제단 성찬으로 사용하는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갑자기 소년의 뺨을 후려치면서 '어서 물러가라!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소년이 나중에 장성하여 공산주의의 대 지도자인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대통령이 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큰 도시 천주교회당에서 미사를 돕던 한 소년이 역시 실수로 성찬에 사용할 성찬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손을 잡아주면서 말했습니다. '애야! 그렇게 실수할 때도 가끔 있단다. 항상 조심하여야 해! 성찬을 돕던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이 자라서 신부가 되었단다. 너도 잘 연습하여 신부가 되거라'
  오히려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소년은 후에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홀톤 쉰'입니다. 조그만 실수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 한 것이 한 사람을 마귀의 거두로 만들기도 하고 조그만 실수를 사랑으로 감싼 것이 큰 인물을 만들기도 하는 좋은 예입니다. /할/
  ②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해야 합니다. 마7:12절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할/
  ③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막9:50절에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④격려해 주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롬12:17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⑤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롬12: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불한당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보고 '내가 만일 저런 자리에 놓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도와 준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지나갔으나 무슨 소용이 있었으며 유식한 지도자 레위인이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저희는 어려움 당해 죽게 된 사람을 보고 그저 '아, 거참 안 됐군'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사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까?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 때 율법사의 대답이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행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추워서 떨고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여러분, 세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참 사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랑 없음'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운운하면서도 정작 '보이는 이웃을 향한 사랑'은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본질은 사랑 즉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옆으로는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가지 사랑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우리 교회는 온전한 교회가 될 것이고 우리 역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40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무슨 말씀인가? 이 두 계명이 구약 전체의 큰 강령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두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십계명을 크게 두 가지입니다. 1-4절은 '하나님의 사랑', 5-10절은 '이웃사랑'입니다.
  제 1계명은 '나 이외 다른 신들은 네게 있게 말라'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비유했습니다. 아버지는 둘 일수 없고, 남편도 둘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한 분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제2, 제3, 제4계명도 사랑으로 지켜야 하는 계명들입니다. 그 다음 5-10 까지의 '이웃 사랑도 사랑이 없이는 못 지키는 계명'들입니다.
  왜 우리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니까? 그들은 누구보다도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입니다만 율법의 조문은 잘 따졌으나 지키고 행하는 것은 한 마디로 제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구실로 부모를 섬기지 않고 부모의 식생활까지도 외면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받은 재물과 그 삶에 대한 감격으로 자기의 제물은 하나님께 바치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고르반 전통'입니다. 하나님께 바친 것은 다른데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르반 제도를 취소할 수 있는 제도를 두었는데, 한 달 이내 취소하면 일 활의 수수료만 내고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그 자체가 인간을 위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 제도를 최대한으로 악용했습니다. 따로 살던 노부모가 먹을 것이 없다고 자식들을 찾게 되는데 그들은 그것을 미리 알고 자기 제물을 '고르반'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부모에게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내 재산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니 도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신 뒤 하나님께 바쳐 놓은 재산을 일 활의 수수료만 내고 다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주문만 줄줄 외웠지 지극히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냉랭한 종교인입니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말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 계명의 전체를 요약한 것이고, 모세 오경의 요약이며 십계명의 요약이요 선지자의 가르침이 요약을 잘 설명해 드리고 계십니다. /할/
  이제 41-46절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41-42절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굉장히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입니다. 이 질문은 '너희가 메시아에 대해서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즉 '메시아는 누구의 자손이냐?'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주저 없이 '다윗의 자손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은 통상적인 유대인의 매시야 사상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잘 아는 것 같았으나 그들은 성경의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즉 신령한 면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계속합니다. 지금 대세가 역전된 것입니다.

 

  ▶43-44절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예수님의 두 번 째 질문의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44절은 시110:1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쉽게 의역해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원수를 예수님 발아래 둘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았느라 하셨도다'라는 해석입니다.
  본문은 굉장히 어려운 구절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 누구의 자손으로 온다고 했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거침없이 '구약에 보니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윗이 왜 그리스도를 향해 주라고 했지? 자기 후손을 주라고 하는 법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을 육신으로는 조상이라도 영으로는 결코 조상이 아니고, 다윗의 매시야, 주로 오신다는 것을 다윗이 고백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할/
  예수님은 본문에서 구약에 대하여 세 가지, 성령 관을 말씀합니다.
  ①시편 110년의 말씀이 다윗의 기록이라고 인정하신 점입니다. 왜 이 말씀이 중요하냐 하면 요즘 많은 학자들이 다윗의 시편을 다윗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의 편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②다윗이 시편을 쓸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지 않고 단순히 유대인의 역사적인 기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딤후3:16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성령)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할/
  ③본문에 인용된 시110:1절의 말씀은 메시아에 관한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말씀을 메시아와 연결하여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온통 메시아의 이야기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무지한 유대인들은 성경 박사라고 하면서도 그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45절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다윗이 어찌 그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참 메시아로 오신 자신을 다윗의 자손 그 이상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1:3-4절을 보겠습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할/
  그렇습니다. 다윗이 시간적으로 그의 훨씬 후대에 오실 이를 가리켜 '내 주'라고 부른 것은 그리스도께서 시간을 초월해 계신 즉 하나님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이의 영원한 주님이십니다. 로마제국과 싸워 그 압제로부터 해방을 쟁취해줄 군사적 메시아가 아니라 사탄과 악한 세상의 권세를 파하시고 죄의 노예상태와 죽음의 공포와 절망과 불안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해방시키실 구세주로 오시는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그러자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다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7).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오신 왕이십니다. 영원한 구원과 생명의 진리를 선포하려 오신 주님이십니다. 먹어도 또 배고프게 하는 양식과 마셔도 또 목마르게 하는 음료가 아니라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게 해주는 하늘의 양식과 음료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일시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영원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신 주님이십니다. 잠시의 만족과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과 영생복락을 우리에게 담보해 주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믿/아멘!/

 

  ▶46절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그 정도 설명해 주셨으면 '아!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셨구나, 이 예수가 바로 그런 분이시구나, 우리는 비천한 자로만 보았더니 그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깨달아야 될 터인데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모르기 때문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고, 따라서 예수님의 질문에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되기 전에 다윗이 주님이었다고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다윗의 예언에 의하여 오신 메시아임을 증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8:56-58절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예수님은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고,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메시아, 구세주입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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