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누가 이웃인가 [이웃사랑의 출발은 나의 책임을 다 하는 것]/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4:41

2009 1 25 주일예배

누가 이웃인가

( 10:29-37)

29.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이웃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1. 마침 제사장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2. 이와 같이 레위인도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4. 가까이 가서 기름 포도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5.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1. 생각에는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되겠느냐
  2. 이르되 자비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지난 1 15일 뉴욕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1분 만에 새와 충돌했습니다. 새 무게가 1kg일 경우에 엔진 속에서 충돌하면 4톤 내지 5톤의 충격을 받기 때문에 엔진이 다 깨지게 되어 있답니다. 두 엔진이 다 깨졌어요. 관제탑에 긴급히 연락을 하니까 멀리 있는 작은 공항에 착륙하라. 그러나 거기까지도 날아갈 상황이 아니었기에 기장은 얼른 상황을 판단하고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물 위에서는 균형이 약간만 뒤틀려도 비행기가 산산조각 나고 깨어질 수밖에 없는데 완벽하게 착륙했어요. 사고발생 4분 만에 안전하게 착륙했어요. 155명 전원 대피하고 기장이 기내를 두 번이나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탈출했는데 그 모든 일이 딱 한 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온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기장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19천 시간의 비행경력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로 사기가 떨어진 미국사람들에게 큰 재앙이 될 뻔했는데 오히려 희망의 전조가 된 것이죠. 많은 언론에서 그에게 찬사를 보내면서“정말로 경이로운 조종술이다.”이야기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아닙니다. 훈련 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이 얼마나 겸손하고 분명한 태도입니까? `훈련 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여러분, 이웃사랑의 출발은 나 한 사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내게 주어진 일을 책임 있게 잘 감당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훈련 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10장은 말씀에 대한 이야기들이 연속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70명을 선택해서 둘씩 짝을 지어서 예수님이 가시고자 하는 동네에 앞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가서 뭘 말할 수 있겠습니까?”예수님이 보시기에도 `어린 양을 이리 속으로 집어넣는 것 같다'고 했어요. 연약해요. 그러나 예수님이 말합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 대로 가서 전하라. 너희가 말하는 것이 곧 내가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의 말을 거부하는 것은 내 말을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다.”엄청난 권세를 주어서 보냈어요. 70인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막 기뻐하면서 말하기를“예수님, 우리가 말씀하신 대로 가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도했더니 귀신들도 물러갑니다.”예수님이 말씀하셔요.“이미 사단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주었노라. 그것보다 더 놀라운 기쁨이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너희의 이름은 하늘나라에 기록되어 있다.”이게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영적 세계와 영적 현실이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축복이요, 권세라고 하는 사실이죠.

   제자들이 흥분하고 기뻐할 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셨다.' 그러면서 기도를 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에 잘나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의 눈을 가리시고 어린아이 같이 부족하고 미약한 이 사람들의 눈을 여셔서 이것이 바로 영적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이들에게 이러한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너희가 본 것을 보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구약에 수많은 선지자와 왕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너희가 오늘 보는 것을 그토록 보고자 했고 듣고자 했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는데 오늘 너희에게 이러한 복이 주어졌구나. 복이 있도다.'

   마침 요즘 구정 명절이잖아요. 보통“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데 신문 보도에 의하면 요즘 덕담은 말이죠, 취직, 진학 이런 것은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래요. 오히려 추천되는 덕담이 뭐냐 하면“돈벼락 맞아라” 그렇게 이야기한대요. 중국에서 수입한 거죠. 중국 사람들은 꽁시파차이恭喜發財 그러잖아요. `한 해 동안 기쁘고 돈 많이 벌어라.' 그런 얘기죠. 그러나 여러분,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로 지켜주셔요. 그래서 늘 찬송하는 게 중요해요. 예수 이름을 부르고 찬송할 때 마치 환한 등을 밝히는 것과 같아요. 어둠이 물러가는 거예요. 저는 제가 사는 아파트에 형광등을 더 달아서 거실이든 방이든 책을 볼 때 글이 확 들어올 수 있도록 환하게 했어요. 찬송을 부르세요.

   , 이게 우리의 영적 현실이에요.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해결해 놓으신 현실이에요.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보물이에요. 꺼내 쓰는 자가 임자라는 거죠. 그 다음에 우리의 구체적 일상은 어떻게 됩니까? 여기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묻습니다. `어디 제대로 아는지 한번 보자' 이렇게 묻는 거예요.“주님, 하나님의 계명 중에 으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당신은 뭐라고 배웠소?”“네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저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맞습니다.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사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노력을 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 자녀의 축복과 권세를 얻었어요. 영생을 얻었다면 이제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 말씀의 핵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고 하는 것을 한자 성어로는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그 이웃도 남편 아내로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 재미있는데' 했어요. 광고가 하나 실렸어요. `은혜에게. 오늘도 여전히 사랑해. 우리가 1995년 만난 그날 이후로 오늘이 5,000번째 되는 날이야. 아침 이슬과 한낮의 태양과 저녁 바람에도 늘 한결 같이 나무를 키우는 흙이 되고 싶어.' 그때 연애할 때 약속했나 보죠. 그 신문에 광고를 내려면 돈 꽤나 들었을 텐데. 사랑도 표현하며 살아야 하는 거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뭘 그걸 망설이세요. 좋은 날 재미있는 이벤트로 한번 마음을 담아서 표현해 보세요.

   띄어 읽기를 잘 해야 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어요. 어떤 선비가 어느 마을에 들어갔어요. 목이 타서 물을 찾고 있는데 어느 여인이 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다가가서“미안하지만, 그 물 좀 주시겠습니까?”했어요. 남은 지금 정성을 드리고 있는데 웬 훼방꾼이냐 기분 나빠서 말합니다.“이건 물이 아닙니다.”정말 들여다보니 물이 아니에요. 죽이에요.“아니, 죽을 놓고 뭐하고 계십니까?”다시 한 번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야기 합니다.“선비이신 것 같은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해야죠. 오늘 누가 이웃인가? 아주 명쾌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자가 이웃 아니냐? 오늘 보니까 강도를 만났어요. 예루살렘하고 여리고는 거리로는 30km 밖에 안 되는데 해발 고도가 1,000m나 차이가 나요. 계속 내리막길이에요. 길도 험하고 어둡고 그래서 옛날부터 강도떼가 많이 출몰했던 거죠. 오늘 여행자 한 사람이 중상을 업었어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런 데를 왜 혼자 다녀요. 이 사람이 지금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만 잠시 생각하다가 그대로 지나쳤어요. 또 성전의 모든 일을 맡는 레위인도 그를 보고는 잠깐 멈춰 섰다가 지나쳤어요. `아이고, 안됐구나. 불쌍하구나.' 동정은 했겠지만 그냥 지나쳤어요.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모처럼 여행을 하러 나섰다가 그를 발견합니다. `어떡할까? 여기는 아주 위험한 곳이로구나.' 자기를 생각한다면 빨리 몸을 피해서 달아나야 되겠죠. 그러나 내가 여기서 그냥 떠나가 버린다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될까? 늘 우리의 물음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느냐, 아니면 그를 배려하느냐'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없다' 라는 무신론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신학적 무신론이에요. 신학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오류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믿는 사람들의 위기는 실천적 무신론이에요. 그냥 말로만 믿는 거예요. 예수께서 다 이뤄놓으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증거와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죠.

   120년 전에 우리나라에 의료선교사로 들어왔던 `닥터 제임스 홀'이라고 하는 분이 계셔요. 그 분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다가 3년 만에 청일전쟁 격전지였던 평양에 전염병이 퍼져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때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그만 자기가 감염되어서 목숨을 잃은 분이에요. 그때 그 분이 갓 결혼을 했는데 아내는 서울에서 일하고 자기는 평양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름, 겨울 일 년에 두 번 휴가를 얻는데 평양에서 서울까지 그때 2주가 걸렸어요. 2주를 걸어와서 아내와 2주를 지내고 다시 2주를 걸어가야 돼요.

   그렇게 소중한 기회에 추운 겨울에 평양에서 서울로 출발하다가 쓰러진 사람들을 봤어요. 두 사람이 쓰러졌는데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중상을 입은 거예요. `여기는 위험하구나. 빨리 피해야겠구나.' 그러나 지금 중상을 입고 쓰러진 사람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자기가 타고 오던 나귀에 그 사람을 싣고 다시 자기가 출발했던 주막으로 되돌아갑니다. 성경이야기와 다른 거는 뭐냐 하면 선교사의 기록에 의하면 주막 주인이 환자를 안 받으려고 했어요. 이렇게 피투성이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거부하는 바람에 그 사람을 설득하고 자기 있는 것을 다 털어 주고야 떠나왔어요. 하루 한 끼 밖에 먹을 돈이 없는 거예요. 애써 자기를 위로하느라고 `그래, 나는 도둑을 맞을래도 돈이 없으니까 괜찮겠구나' 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추운 겨울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쓰러질 지경이 됐어요. 가까스로 자기가 아는 일본인 의사를 뜻밖에 만나 그에게 도움을 청해서 서울로 돌아왔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런 기억이 있어요. 아주 추운 겨울이었어요. 늦은 밤에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디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나요. 제가 그때 서울 중랑천이 흐르는 공릉동 뚝방 옆에 살았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나가 보니까 저쪽 외진 곳 가로등 아래 눈이 많이 쌓여있는데 뭔가 꿈틀거리는 게 있어요. 가보니까 사람이에요. 술이 얼마나 취했는지 눈 바닥에 엎어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예요.“아이구, 아이구.”하더라구요. 부둥켜안고 일으켜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버스로 여섯 정거장 떨어진 곳이에요. 겨우 번호를 알아서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중화 시장 입구래요. 옷을 갈아입고는 그 사람을 데리고 갔어요. 가서 다시 전화하고 한참 기다렸더니 어떤 아줌마가 나오더라구요. 그러더니 남편을 향해서 욕을 해대더니 골목으로 데리고 들어가 버렸어요. 저는 정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어요. 제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그냥 가더라구요. `원 세상에, 아무리 남편에게 화가 났어도 그렇지. 그래도 남편을 데리고 온 사람에 대해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는 하고 가야지' 섭섭한 생각이 들었어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당시의 이미지는 아주 나빴습니다. 악한 사람, 거짓말쟁이, 종교적으로 정결치 못한 사람들. 그래서 예수님을 공격하는 사람들 중에 `귀신이 들린 것 아니냐' 이렇게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이미지가 확 바뀌어 버렸어요. 예수님이야말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에요. 십자가라는 가장 저주스러운 형벌의 도구를 오늘 우리에게 구원으로 바꿔 놓으셨어요. 자기 몸을 내어 주시고 피를 쏟으심으로 구원으로 바꿔주셨어요.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몰라요.

   여러분,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해서 인생을 허비하며 살아왔다면 확 바꾸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문익점' 그러면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알아요. 고려 말 원나라 시대의 사람이죠. 귀양살이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반출 금지되어있던 목화씨를 붓대 속에 몰래 숨겨 들여와서 우리나라에 보급했어요. 왕족이나 귀족들은 비단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들은 베옷 밖에 없어서 추운 겨울을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목화씨를 뽑아서 따뜻한 솜옷을 만들어 의복혁명을 이루었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실이에요?

   고려 말 원나라 시대에 목화는 반출 금지 품목이 아니었어요. 또 그는 귀양살이한 적도 없어요. 어떻게 해서 이야기가 이렇게 바뀌어 졌습니까? 원래 문익점은 공민왕때 사람이에요.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때 공민왕이 이제까지 고려를 간섭하고 지배하던 원나라에 대항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친원파를 다 제거해 버렸어요. 그러자 원나라에서 공민왕을 폐하고 원나라에 와 있던 고려 왕족을 왕으로 선포했어요. 그 바람에 원나라에 가 있던 문익점 같은 사람들이 큰일 났어요. 그런데 이제까지는 그럴 경우 원나라에 있는 왕족들이 왕이 됐어요.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이 다 그런 경우예요. 그래서 문익점도 원나라에 있는 왕족 지지선언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어요. 공민왕이 승리했어요. 줄을 잘못 선 사람들을 소환했어요. 문익점이 이제 죽게 됐어요. 소환돼서 본국으로 돌아 간 거예요. 그 돌아가는 와중에 목화씨를 발견하고는 걷어 가지고 간 거예요. `이제 죽는구나' 했는데 웬일인지 왕이 관직만 빼앗고 고향으로 내쫓았어요. 고향에 내려가서 할 일도 없고 목화씨를 계속 개량해서 옷을 만들기 시작해서 40년 만에 고려 모든 사람들이 솜옷을 입게 된 거죠.

   결국 후대 역사가 왜곡이 되고 미화가 된 거예요. 심지어는 공민왕을 지지하다가 원나라에 미움을 사서 귀양살이한 것으로 완전히 이야기가 뒤집혀 버렸어요. 왜 그랬을까? 조선시대 왕들이 생각할 때 문익점의 죄가 있지만 그러나 그 보다는 온 나라 백성들을 따뜻하게 한 공은 비할 수 없이 크다. 본국에 돌아가서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도 목화씨를 보고서 `이거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 옷을 해 입혀야지'라고 하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 하나가 그를 죽음에서 건지고 역사의 불명예에서 건졌던 것이죠.

   여러분, 남이 잘돼야 그게 다 내가 잘되는 거예요. 오늘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 말씀대로 행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 기도

   새해를 맞아 새 옷을 입고 덕담을 나눕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주신 말씀,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때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놀라운 은총, 이제는 어려운 이웃들과 마음 상한 자들을 향하여 손을 펴고 서로를 세워주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