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난없이는 깨닫지 못하는 인간,창립6주년]/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4:50

내 잔이 넘치나이다

2009 1 18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러분, 박찬호의 눈물을 아십니까? 며칠 전 박찬호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올해 열리는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박찬호가 꼭 참가했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는 기자회견에서“WBC에 참석하지 않겠다. 그리고 국가대표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한 것이죠. 그러나 그는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그 이유는 자신이 없다. 두 가지를 다 잘할 자신이 없다.”박찬호는 이미 전성기가 지났죠. 스타의 이면에 깔려있는 아픔을 솔직하게 내어놓은 것입니다. 더구나 그가 새로 이적한 필라델피아 팀에서 기자회견조차 일방적으로 취소당하는 서러움을 많은 사람들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뿌렸습니다.“나도 나라와 여러분을 위해서 더하고 싶지만 내 여건과 형편이 허락하지 않습니다.”그가 울먹이고 눈물을 쏟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냈습니다.‘당신은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했다.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영웅이다.’경제 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많은 국민들이 오히려 스타의 눈물과 아픔에 공감하며 지지했어요.‘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하겠다.

   우리 삶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성취의 기쁨도 있지만 상실의 아픔도 있어요. 그것을 피해갈 인생은 아무도 없어요. 어린 시절에는 공부 조금 잘한 것이나 좋은 학교에 들어간 것 가지고 엄마 아빠 앞에 자랑하고 떠들면 부모가 함께 기뻐하며‘우리 아들딸 잘한다.’응원했습니다. 그 응원의 힘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철들고 보니 인생이 잘나가는 것 보다는 마음 아픈 일도 많고 서러운 일도 많고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일이 더 많이 있습니다. 남들은 그것을‘능력 없다’비판하고 손가락질 할는지 몰라도 부모는 같이 아파하고 위로하고 기도해 주고 기다려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로운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잘 나갈 때는 그것이 내 존재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내가 넘어지고 있을 때 뜻대로 되지 않을 때입니다. 그때 위로와 사랑의 음성으로 우리는 소망을 얻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부모의 위로와 사랑을 넘어선,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많은 분들이 임종을 맞을 때 듣고 싶은 말씀으로 시편 23편을 찾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위로예요. 세상을 떠날 때는 사랑하는 가족도 이제까지 쌓아 올렸던 학식과 부와 명예와 모든 것 다 나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 내려놓고 가야 돼요. 벌거벗은 몸으로 온 인생,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가야 돼요. 그 순간 하나님의 위로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죠.

   그런데 시편 23편 그러면, 우리는 흔히 액자 그림을 통해서 익히 보아왔던 이미지가 머리에 떠올라요. 예수님께서 양 한 마리를 안고 계시고 주위에 많은 양들이 푸른 풀밭과 물가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죠. 저는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대표적인 오류의 한 예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성지순례를 가서 유대 광야를 보면 전혀 아니에요. 황량해요. 목자가 인도해 주지 않고서는 풀을 찾을 수 없어요. 풀이 없어요. 목자가 이끌어 가지 않으면 물을 구할 수 없어요. 그저 마음대로 누워서 풀 뜯고 물 마시는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목자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것이 당시 유대의 양들의 모습이에요. 그게 우리 인생의 솔직한 모습이죠.

   언젠가 죽음을 맞아야 하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궁극적인 문제는 의로움의 문제예요. 우리가 실패할 때 또는 병들어서 병상에 누울 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내가 오늘 왜 이 자리에 있을까? 내가 지난 날 잘못했던 그 일로 인하여 지난 날 저질렀던 그 죄값으로 인하여 오늘 이렇게 병들고 이렇게 실패하고 이런 지경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그것이 인간을 괴롭게 하는 거죠.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면 어떻게 될까요?‘아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만나려고 오늘 이러한 아픔을 주는 것이다. 이 아픔과 눈물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내가 오늘 이 일을 예비하였노라.’이 음성을 듣는 순간 우리는 자유하게 돼요. 죄로부터 자유하게 돼요. 그렇다면 오늘밤 나를 부르셔도 주저할 것이 없어요. 하나님이 빚으시고 지으신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고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 그러기에 고난이 있는 거예요. , 인간이 어리석어요. 고난이 없이는 깨닫지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에게 고난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그 고난도 시대마다 다르더라고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6.25전쟁 와중에 있었던 실화입니다.‘맹의순’이라고 하는 한 청년이 있어요. 서울역 앞에 남대문교회가 있어요. 그 남대문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던 사람이에요. 20대 젊은 나이에 6.25전쟁을 만난 거예요. 그만 서울에 머물러 있다가 서울이 함락되면서 고립되었어요. 한강 다리가 끊겼어요. 집 마루바닥에 들어가 숨기도하고 삼각산에 들어가 숨어 지내다가‘도저히 안 되겠다. 어렵지만 뚫고 내려가서 국군이 있는 대로 넘어가야 자유를 찾겠다.’몇 사람과 함께 북한군의 수중에 놓인 틈새를 뚫고 낙동강을 향해 자유를 찾아 갑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있었어요. 몇 번이나 북한군과 북한군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말로 다할 수 없이 두들겨 맞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를 겪게 됩니다. 필사의 탈출로 드디어는 넘어갔어요. 미군을 만났어요.‘야, 이제 우리는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처구니없이 빨갱이 혐의를 받고 끌려갑니다.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들어갑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해서 누구를 붙들고 얘기해도 전쟁의 와중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어요. 약식 재판을 했습니다마는 만들어 놓은 각본에 의해서 무려 포로수용소에서 2년을 살게 돼요. 그 포로수용소에는 인민군도 있고 중공군도 있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끌려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는 너무나 기가 막혔어요. 아무도 자기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그 현실에 절망하면서 입맛을 잃었어요.‘내가 밥을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금식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을 향해서 묻기 시작했어요.‘하나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나를 여기에 처박아 두실 수 있습니까?’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며칠을 굶어보니 이 몸이 얼마나 단순한지 그저 먹을 것만 찾고 있어요. 본능적으로 먹을 것만 찾는 몸을 생각하면서‘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정말로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아 본 적이 있는가?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는 했지만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본 적이 없구나.’하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그러면서 내 판단과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하고 의를 말하고 이제는 절망을 말하고 있어요. 그 절망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교만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요.‘내가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손가락질 하려고 했구나.’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시작해요.‘이곳에 이렇게 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이제야 눈을 씻고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아요. 인민군이 되었든 중공군이 되었든 또는 일반인이든 모두 다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 불쌍한 영혼인 것을 발견하게 돼요. 그는 살육이 처참하게 벌어지는 그 포로수용소 안에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사람 두 사람에게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 안에서 광야교회를 시작하게 돼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있었어요.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묵묵히 그 일을 계속합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잃었던 신앙을 되찾게 돼요.

   미군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깊은 밤중에 병든 사람들 막사에 찾아가서 위로해주게 돼요. 중상을 입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빠진 사람들을 씻겨주고 말씀을 읽어주고 기도해 줍니다. 특별히 중공군 포로환자들을 위해서 매일 밤 그 일을 해요.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가 억울하게 갇혀 있는 것을 알고 꺼내려고 구명 운동을 했어요. 그가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서 그에게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그는“아니오. 나는 안 나가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이 사람들을 돌보겠습니다.”누구도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드디어는 나중에 포로를 심사하는 절차가 끝나면서 석방되게 됐어요. 법적으로 석방되게 됐어요. 그러나 그 전날 그는 중공군 포로 환자들을 싸매어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다가 과로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습니다.

   그가 그 포로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얻을 때에 붙들었던 말씀이 바로 시편 23편의 말씀이에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게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전쟁이라는 재앙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절망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제물로 삼으셨어요.‘진정한 신앙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죠.

   지난번 베이징올림픽 때에 박태환 선수가 처음으로 수영에서 금메달을 땄잖아요. 그 동안 촛불집회니 뭐니 해서 마음이 잔뜩 상해있던 국민들이 환호하며 기뻐하며 좋아했습니다. 한 사람이 금메달을 따니까 온 국민이 기뻐했어요.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이 참에 나도 수영을 배워야겠다.’수영 인구가 부쩍 늘었어요. 또 어린 수영 선수들은‘나도 열심히 해서 박태환 선수 같이 돼야지.’도전 의식을 가졌어요. 그런데 그 중에도 실망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누구냐, 박태환 선수와 비슷한 나이에 있는 선수들. 왜냐하면 자기도 이제까지 최선을 다했을 것 아니에요.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잖아요.

   사실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읽고 나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더라고요.‘나는 뭔가.’주위에 포로수용소도 없고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 그런데 하나님이 위로를 주시려고 했는지 며칠 후에 또 다른 책을 읽었는데요. 거기에서 길을 찾았어요. <남미 최초의 한인선교사>라는 책이었어요. 거기에 한성욱 목사님의 이야기가 나와요. 놀랍게도 조금 전에 소개한 맹의순이라는 사람과 같은 해에 태어난 분이에요. 이 분은 6.25때 군목이었어요. 군목으로 제주도 훈련소에서 수많은 국군 환자들을 돌봤어요. 군목 소령으로 제대했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했어요. 이분의 꿈은 뭐였냐 하면 중국 선교사였던 아버지 목사님의 뜻을 따라서 세계 오지에 가서 선교사가 되는 것이 그 분의 꿈이었어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서 미국에서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가 미국 교회가 파송하는 선교사로 나가게 됐어요. 어디로 갈까? 그러다가 이름도 생소한 저 남미의 파라과이라고 하는 곳에 갔어요.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일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기반을 잡는가 했더니만 들리는 소문에 한국 사람들이 파라과이에 온다는 거예요. 60년대의 가난을 벗어보려고 파라과이로 농업이민이 시작된 거예요. 고국에서 온 사람들을 반갑게 만나러 갔는데 만나보니 농사를 지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냥 무작정 이민을 온 거예요. 아무런 준비 없이 건너 온 거예요. 파라과이의 밀림 속에 땅을 사놨다고 하는데 같이 가보니까 농사지을 수 없는 땅이에요. 

   이 목사님이 이들을 부둥켜안고 먹을 것을 주고 모든 행정 처리를 도와주고 모아서 예배하기 시작합니다. 무려 3년 동안 5천명의 이민이 쏟아져 들어온 거예요.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 얼마나 고통이 심하겠어요. 모두 다 교회에 모여들어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러면서 파라과이에 정착하고 아르헨티나로 넘어가고 브라질로 넘어가고 해서 오늘날 남미의 의류업계를 완전히 장악한 거죠.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한 사람은 50년대 전쟁의 고난 속에서 하나의 등불로 쓰시고 또 한 사람은 60년대 후반에 한국 이민자들의 기초를 놓는데 쓰셨다. 그래서 제가 무슨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60년대 후반이라면 인도네시아에도 한국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40년 한 세대가 지났어요. 저쪽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교민들이 한 세대 지나서 거기에 기반을 잡듯이 오늘 우리도 40년 한 세대가 지나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어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과 광야 40년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을 바라보는 그러한 시점이에요. 2000년대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와 한인교회와 우리교회를 향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뜻이 있어요. 시대적인 음성이 있어요.

   며칠 전 신문에 보니까 최근에 영국 무신론자협회에서 800대 버스에 광고를 붙였대요.‘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걱정을 멈추고 너의 인생을 즐겨라.’이런 광고를 부쳤대요. 그리고 호응을 얻게 되자 영국 지하철 1,000곳에 이런 광고를 부치기로 했대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해외 한인사회 중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 자카르타래요. 저도 공감해요. 자카르타 한인교민들의 교회 출석률이 매우 낮아요. 놀기 좋고 살기 좋으니 그렇겠지요.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기도 아마 조만간 버스에다가 광고를 부칠 겁니다.‘한국에서 살다가 여기 와보니까 하나님은 아마도 안 계신 것 같다. 그러니 이제 걱정을 멈추고 골프를 즐겨라.’위기예요. 고난이 없는 것이 우리의 위기예요. 우리 교회에 주시는 사명은 그거예요. , 그렇다면 꼭 전쟁을 만나야 하나님을 찾을 것이냐. 꼭 가난해야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만날 것이냐.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세대의 수고를 통해서 오늘 막내 같은 우리들에게 풍요함을 주신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느냐? 비전이 있어요. 700만이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사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어요. 모든 세계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대적인 뜻이에요.

   우리 교회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어요. 아름다운 모델이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이 분명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셨어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구름 기둥, 불기둥을 따라 갈 뿐이에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갈 것이에요. 내 필요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번 밖에 없는 이 기회에 마음과 뜻을 모아서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건강과 물질과 풍요로움을 가지고, 나누고 베풀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교회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창립 6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