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넘치는 기쁨으로[웃겨야산다,하나님과의만남이반드시있어야됨]/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5:13

넘치는 기쁨으로 (히브리서 13:15-21)

2008 12 28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인간극장 시리즈 중에‘웃겨야 산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남자 개그맨이 함께 살면서 벌이는 에피소드죠. 스물여덟 늦깎이로 개그맨 세계에 뛰어든 후배가 있고 스물네 살이지만 일찍이 개그맨 세계에 발을 디뎌서 선배가 된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늦깎이 후배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한번 해보겠다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개그맨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보니 만만치 않아요. 자기보다 웃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열심히 합니다마는 방송국의 개그맨 공채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그 경제적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때때로 낙망되고 좌절이 오는 것이죠.

   나이 어린 선배가 그의 연기를 하나하나 지적해 줍니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서 지하철로 끌고 가요. 그곳에서 개그를 하도록 시켜요. 그러나 여러분 지하철 타보셨죠? 가장 무표정하고 살벌한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을 웃기려고 하니 등에 땀나지 않겠어요? 여러 번 시도하고는 내렸습니다. 내리기가 무섭게 기둥에 몸을 기대면서 털썩 주저앉아요. 진이 다 빠져버렸어요. 어려운 거예요. 개그맨으로 데뷔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예요.

   반면 스물네 살의 나이 어린 선배는 이미 나이 스물에 TV 인기스타로 한번 떴습니다.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인기 정상에 올랐어요. 그의 고백이 그래요.“내가 갑자기 너무 높은 인기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보니 그만 나를 놓아버린 것 같다. 그토록 되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는 순간 허무했다.”허무했어요. 갑자기 긴장이 풀어져 버렸어요. 2년 동안 그러다가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퇴출됐어요. 시청자들이 식상한 거죠. 요즘 시청자들의 입맛이 얼마나 까다롭습니까? 그만 퇴출됐어요. 2년 공백을 겪은 후 재기를 위해서 몸부림을 칩니다. 개그 콘서트에 개그를 내어놓는데 그때마다 탈락해요. 사람들을 잘 웃기는 것 같은데 왜 안 되느냐? 스스로 이렇게 진단합니다.2년 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더니 좀 웃기는 것 같기는 한데 개그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

   목사 역시 한 달만 설교 안 하면 흐름을 놓칩니다. 남을 웃기기 위해서 나는 울어야 하는 개그맨의 이 모순된 상황. 여러분 이해하실 수 있어요? 저는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 목사와 개그맨은 공통점이 있어요. 첫 번째, 무대에 선다는 점. 두 번째, 남을 웃겨야 한다는 점. 고상하게 표현한다면 남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점. 그런데 개그맨보다 더 어려운 점이 있어요. 개그맨은 남을 웃기기 위해서 속으로 울어도 된다지만 목사는 그렇지 않아요. 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먼저 행복해야 돼요. 내가 행복하지 못한데 누구한테 행복 하라고 얘기 하겠어요? 그런데 이건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거든요. 여기에 목사의 깊은 고민이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미국에서 나온 현대설교 방법론을 보면 그 짧은 설교 한편에 두 번 울리고 세 번 웃겨야 한다는데 이거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참 어려운 거예요. 어느 선교사님이 이런 얘기를 해요. 한국 목사님이 선교지 방문을 오셨기에 통역을 했는데 한국 상황하고 현지 상황이 다른데 한국에서 이제 막 오신 분이 그런 걸 알겠어요. 뭐라고 복잡하게 웃기는 긴 얘기를 했는데 통역하려니 너무 난감해서‘여러분, 이럴 땐 그냥 웃으셔야 합니다.’했다는 거예요.

   또 하나 목사에게는 참 큰 과제가 있어요. 경쟁사회예요. 어느 직종이나 예외가 없잖아요. 자카르타의 식당을 보면 무서움을 느껴요. 수많은 식당이 생겨나고 또 문을 닫잖아요. 사실 교회도 그렇죠. 교회 성장이 목사에게 있어서 절체절명의 과제가 돼버렸어요.

   옛날에 한경직 목사님이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어요.“교회가 싸우지만 않으면 성장합니다.”맞는 말씀이에요. 그러나 그 당시 상황에 딱 맞는 말씀이에요. 지금은 달라요. 그것만 가지고는 안돼요. 사람들 마음이 더 둔해졌고 차가워졌고 닫혀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게 돼요. 교회성장에 따르는 유혹도 있어요. 

   여러분, 요즘 두바이 소식을 들어보셨어요? 일년 전만해도 두바이는 성장의 모델이었어요. 모두 다 두바이에 가서 배워야 한다고 내로라하는 기업 회장들이 두바이에 모여들었어요. 그러나 지금 세계경제 위기 앞에서 완전히 뒤집어 졌어요. 지난 11월에 두바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 본격 개장을 했어요. 그런데 세계의 언론들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두바이 대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과 같다’그랬어요. 거기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매장이 600개가 들어와 있어요. 제가 지난 6월에 한번 들려봤습니다만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스키장도 있고 올림픽 규격의 아이스링크도 있어요. 그리고 본격 개장을 했는데 많은 기자들이 말하기를‘두바이 몰락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드디어 거품이 터졌다.’두바이에서 파티는 이제 끝났다는 거예요.

   지금 부동산 가격이 막 추락하고 있어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가격이 추락하는데 전문가들 얘기가 지금 가격의 20%가 적정가격이래요. 그러니 이제까지 투자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바이 사람 1인당 4만 달러의 외채를 지고 있대요. 심각한 거예요. 도시국가가 망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지 않고 기업경영의 방법을 도입해서 자본을 끌어들이고 프로그램을 끌어들여서 올라갈 때는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거품이 터져요. 추락하는 날이 있어요. 건강한 교회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야 돼요. 건강한 교회를 이루려면 만남이 중요해요. 목사가 교인을 잘 만나야 하구요, 교인이 목사를 잘 만나야 해요. 이건 결정적이에요. 교회는 목사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해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중요합니다마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반드시 있어야 돼요. 건강한 교회의 출발은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3장 말씀을 쭉 읽어보면 이렇게 말합니다.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목사가 교회 주인이 아니에요. 장로가 교회 주인이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를 위하여 세우신 종들이에요. 부르심이 다르고 직분이 다르고 은사가 다를 뿐이에요.

   교회성장에서 흔히‘카리스마틱 성장’이 있어요. 목사님이 아주 영험해요. 40일 금식기도를 했어요. 박사학위를 가졌어요. 남다른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것으로 교회를 끌어나갈 수 있어요. 그것이 주는 장점이 있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그런 교회는 그 다음이 어려워요.

   또 조직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조직의 귀재예요. 사람들을 묶고 엮고 쉴 틈이 없이 교회 일에 몰아부쳐서 교회가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러나 누구를 위하는 성장인가를 물어봐야 돼요.‘정말 하나님이 바라시는 성장인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성장인가’물어봐야 돼요.

  건강한 교회는 신학적 성장을 해야 해요. 즉 말씀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성장해야 돼요. 그 첫 번째가 바로 신앙고백이에요.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3 8절 말씀을 보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하시다.’ 어떻게 동일하신가.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다. 성령의 인도를 인정하는 교회여야 되는 것이죠.

   또 하나는 오늘 말씀에 보니 ‘음식으로가 아니라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건강히 해야 된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에요. 교회에서 점심을 나누어 먹기도 하죠. 밥이 맛있는 거 중요하죠. 요즘 얼마나 요리 솜씨가 발달했는지 어디 가든지 너무 맛있어요. 과식의 유혹을 느껴요.‘야,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맛있게 전하면 좋을 텐데.’그렇잖아요? 누가 그러더라고요.‘미니스커트와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목사로서는 참 유감입니다. 그게 현대인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사대로 부르셨어요.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함께 섬겨나가는 리더들을 세우셨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가 벌써 일년이 넘었죠. 그 얘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어요.‘아니, 벌써 일년이 지나갔나?’누구 말대로 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취임 직전 지지도가 80%였는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한창인 6월에 15%까지 떨어졌어요. 12월 현재 25%래요. 그 실패의 원인을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대통령 자신의 판단착오, 온 국민의 무리한 기대, 세 번째 제대로 그를 도와주고 막아주는 일꾼이 없었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 교회 문제의 해답이 거기 있구나.’ 했어요.

   오늘 성경에 보니 목사를 ‘영혼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제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어떤 부부가 쇼핑몰에 갔는데 쇼핑몰에서도 손을 꼭 잡고 다니더래요. 한 점원이 그걸 보고는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물어 봤대요.“어쩌면 부부가 다정하다고 하지만 이런 쇼핑몰에서도 손을 꼭 잡고 다니십니까?”그랬더니, 그 남편이 하는 말 “이것이 우리 아내의 충동구매를 막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영혼 지킴이예요. 여러분을 꼭 붙들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혼을 지키는 교회의 지도자로 하여금 그 일을 기쁘게 하게하라. 즐겁게 하게 하라.’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헌신한 사람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사람이에요. 그러나 사람 앞에서는 격려와 칭찬과 응원으로 사는 거예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수고하는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바울이 말해요. ‘내가 간절히 바라노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그렇죠. 어떻게 여러분 눈에 100% 맘에 들겠어요. 그러지 마시고 10가지 중에 하나만 잘하면 그것만 보세요.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협력해 주세요.

   또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서 협력자들을 세우신 거예요. 장로, 안수집사, 권사 모두 교회 살림을 맡아 보라고 한걸음 더 들어와서 일을 맡게 하신 거예요.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젊을 때 기억이 있어요. 저희 아버님이 장로님이셨어요. 어느 주일 밤 늦게까지 당회를 하고 들어 오셨어요. 저를 보자마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야, 내가 장로가 되고 나서 예수 믿는 기쁨을 잃었다.” 얼마나 뼈아픈 얘긴지 몰라요.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됨으로써 예수 믿는 기쁨이 더해야 돼요. 교회 일을 맡을수록 더 많은 은혜와 기도가 있어야 돼요. 사실 권사 그러면 아예 그 생각이 온통 교회일로 꽉 차있는 사람, 더 나아가 그게 일이 아니고 생활이 되어버린 사람, 그래야 돼요. 원래 한국교회에서 장로는 목사보다 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목사는 예전에 목사 없는 교회가 많았기 때문에 늘 이리저리 옮겨 다녔어요. 교회를 세운 사람이 장로요, 목사의 필요를 공급하는 사람이 장로였어요. 군대로 말하면 목사가 장교라면 장로는 하사관이에요. 하사관은 한 부대에서 30년 전역할 때까지 있잖아요. 목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장로는 묵묵히 뒤에서 그것을 다 바쳐주는 사람이에요. 더 귀한 분들이에요.

   제가 휴가 중에 고향에 가니까 어린 시절 교회에서 같이 뒹굴던 친구들이 남녀불문하고 다 모였어요. 거기에는 장로도 있고 권사도 있고 안수집사도 있고 심지어는 오랫동안 방학하다가 돌아온 평신도도 있어요. 그 자리에서는 그야말로 계급장 떼고 옛날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가요. 얘기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교회 얘기가 나와요. 담임목사님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면 저는 할말이 없어요. 다 듣고 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목사도 인간이다. 할 수 없는 건 죽을 때까지 할 수 없는 거다. 그러니 잘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 줘라. 그게 바로 장로, 권사가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요? 장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 협력자요, 일꾼들의 일이지요.

   제가 이제까지 골을 넣어본 게 한 열 골 돼요. 동네 축구 포함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골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여고 교사로 있을 때 선생님들이 연습을 해서 다른 학교하고 시합을 하게 되었어요. 유니폼도 맞추고 축구화도 신고 폼 나게 나갔는데 후보 선수가 우리 팀에 딱 하나 있어요. 바로 저예요. 교장선생님이 감독을 맡아 선수 배치를 하면서 저를 후보로 세워놨는데 후보의 서러움을 알겠더라고요. 정말 민망해서 앉아야 할지 서야 할지. 그러나 할말이 없어요. 객관적으로 봐도 제가 실력이 제일 모자라니까. 모두 다 열심히 뛰고 있으니 제가 뛰어 들어갈 기회가 있어야죠. 그런데 우리 팀 스트라이커가 골을 멋있게 넣더니 두 번째 골을 더 멋있게 넣으려고 하다가 그만 넘어져서 다쳤어요. 그래서 나왔어요. 그 바람에 제가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들어간 지 얼마 안돼 제 발에 공이 걸린 거예요. 그 공을 냅다 찼는데 골인이 됐어요. 20으로 이겼어요. 부족한데 기회를 주셨어요.

   우리는 마치 후보 선수같이 자격은 없으나 하나님이 모처럼 기회를 주셨어요. 남은 삶을 아름답게 살라고 기회를 주신 것으로 알고 겸손한 마음과 감사함으로 이루어 가려고 해요. 목사도 기쁨으로 일하고 장로, 권사, 안수집사도 기쁨으로 일할 때 이것이 온 교우들에게 유익이 되고 행복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