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임마누엘[예수의웃음,고통은축복,하나님이 부르시는 방법]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5:22

임마누엘 (마태복음 1:18-25)

2008 12 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예수의 웃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프랑스의‘디디에 드꼬앵’이라는 사람의 작품입니다. 그는 영성이 풍부한 작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론중의 하나는‘예수 사생아설’이죠. 마리아가 요셉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가 아니라면 또 다른 누구와 낳은 아이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죠. 그렇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아기 예수 탄생의 스토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나사렛 동네 사람들이 마리아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찾아와서 이야기를 합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마리아가 얘기합니다.“그는 아주 멋지게 생겼어요.”“그렇지, 처녀를 유혹하려고 담 넘어 온 남자라면 멋있게 생기지 않았을 리 없지.”“참, 그리고 보니 그 사람의 이름은 가브리엘이라고 했는데 나사렛에는 없는 이름이죠. 그는 천사가 틀림없어요.”“천사가 아니라 너를 속이려고 가짜 이름을 썼겠지. 또 그게 정말 그 사람의 이름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벌써 자취를 감추고 도망갔겠지.”“그에게는 광채가 났었어요.”“정오에 햇빛을 등지고 서있는 사람에게서는 다 광채가 나지.”“그는 아주 예의 바른 사람이었어요.”“그렇겠지. 아주 숙달된 놈이니까.”“저기에 나타났었어요.”“그럼, 한 번 가볼까? 하나님의 천사라면 분명 어떤 흔적이 있겠지.”“아무런 흔적이 없어요.”“그렇지. 무슨 흔적이 있겠어?

   이번에는 요셉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 요셉은 목수죠. 목수가 하는 일은 이적이 개입될 여지가 없어요. 의자는 의자의 구조대로 만들어야 기능할 수 있을 테니까. 초보적이긴 하지만 과학적 원리대로만 움직이는 것이니까. 아마 요셉은 나이 많은 노총각이니까 나이 어린 처녀 마리아를 포기할 수 없었을 거예요. 요셉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리아의 부정이 드러나 당시 유대의 관습에 따라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요셉의 말 한마디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죠. 요셉은 고민에 빠진 거예요.‘그녀를 과연 부정하다고 말할까? 그러하다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얘기할 수 없어.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니까.’요셉도 드디어 궁리하다가 이렇게 하기로 마음먹고 말았어요.‘그래, 내게도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자.’요셉이 말합니다.“나도 천사를 보았어요. 천사가 와서 말하기를 마리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했어요.”“내 그럴 줄 알았다. 근데 어떻게 만났나?”“꿈 속에 나타났었어요.”“꿈이라면 누구도 더 이상 증거를 요구할 수 없지.”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물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이적을 그토록 기다리면서도 정작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이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에 한낱 노총각과 숫처녀와 바람둥이 사이에 일어난 일로 여기고 말았다 라고 하는 것이죠. <예수의 웃음>이라고 하는 책을 보면 예수님의 일대기를 이토록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피면서 우리의 메마른 생각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적을 기다리면서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곳곳에서 집어냅니다. 빈곤한 생각이 문제지요.

   제가 예전에 영국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갔다가 ‘로제타석’을 봤어요. 로제타석이 뭐예요? 200여 년 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원정했을 때 발견한 비석이에요. 그 비석을 가져와서 프랑스의‘샹폴리옹’이라는 젊은 학자에게 해독하라고 했어요. 그 비석에는 그림으로 된 문자가 있고 또 다른 두 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어요. 즉 세 개의 문자로 같은 내용을 기록한 거예요. 이 사람이 오랜 연구 끝에 드디어 그 언어 관계를 풀어냈어요. 그때까지 이집트의 수많은 유물을 눈앞에 두고도 무슨 뜻인지 어느 왕 때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가 언어를 해독해 내면서 그 모든 유물의 연대와 사건을 다 밝혀내게 됐어요. 굉장한 사건이요, 역사적인 사건이지요.

   그 로제타석을 보는 순간 반갑더라고요. 제가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세계사를 가르쳤고 로제타석을 얘기했는데 그때는 보지도 못하고 얘기했거든요. 적당히 얘기하고 넘어갔거든요. 그 로제타석을 보는 순간‘이걸 보고 가르쳤어야 하는 건데’했어요. 그때 저는 이미 학교에 사표를 내고 떠났거든요. 순서가 뒤집어진 거죠.

   여러분, 간혹 우리가 여행 갔을 때 박물관을 찾아가긴 합니다만 한 시간만 들어가 있으면 머리가 아파요. 내가 먼저 공부해서 보고 싶었던 것을 보는 순간에는 열정이 있고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박물관에 들어가 보세요. 그게 다 보물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머리만 아프게 하는 것이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상상력을 가지고 바라보는가.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엄밀히 생각해 보면 신앙도 상상력이에요. 성경에 기초한 상상력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해내셨을까 라고 생각의 문을 활짝 열어놔야 돼요. 가능성을 열어놔야 돼요.

   예전에 김동길 교수가 강의를 했는데 바로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찌 하나님이 우리같이 미천한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오셔야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나는 동정녀를 통해서 성령으로 세상에 오겠다 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당연히 아, 그러셔야죠. 어찌 하나님이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오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마음대로 원하시는 방식대로 그렇게 오십시오.”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마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How‘어떻게’가 아니에요. 그건 하나의 방편이에요. 궁극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왜 오셨느냐, 무엇 때문에 오셨느냐 하는 Why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다면 How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을 열어야 돼요.

   여러분,‘리처드 용재 오닐’의 이야기를 아시잖아요. 비올라 연주자죠. 그의 앨범이 재작년에 한국에서 대히트를 쳤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어요. 그가 음악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이지만 단순히 그의 재능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온 게 아니죠. 그의 인생 스토리를 알고 보면 그 엄마가 정신이 약간 모자란 사람이잖아요.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사람이잖아요. 젊은 날에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몸을 주어 태어난 아이가 용재 오닐이잖아요. 사생아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멋있는 연주자로 인간 승리의 모델이 되었습니까.

   혹 성경에서 정말 예수를 사생아로 이야기했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용재 오닐과 같이 인간 승리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구원이 완전한 구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와 같이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의 후손으로 오지 아니하시고 성령의 역사라는 방법을 택하셨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궁극적인 의도가 뭐냐, 아기가 태어났어요. 그 아기는 특별할 게 없어요. 태어나고 받아보니 여느 아기와 똑같은 아기일 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셔요.‘이것은 구약의 이사야서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임마누엘이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원래 히브리어잖아요.‘임마’라는 말은‘함께’라는 말이에요.‘누’라는 것은 우리라는 말이에요.‘엘’, 하나님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아기 예수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신 궁극적 목적이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하여. 나와 함께 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렇다면 여러분, 임마누엘의 모델은 뭡니까? 사도행전 10 38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모든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셨음이라.

 

여기에 임마누엘이 무엇인가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어요. 사도행전 10장에 누가 나오냐 하면 베드로와 고넬료가 나와요. 고넬료는 유대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로마군 대대장으로 파견되어 왔어요. 그런데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어요. 유대 땅에 왔다가 유대 사람들의 종교에 주목하게 됐어요. 자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됐어요. 경건하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라고 했어요. 말씀대로 구제와 기도에 힘쓰는 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에게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 아직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그에게 보내셨어요. 만나게 하셨어요. 로마 대대장과 한낱 어부 출신 유대인인 베드로가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묘한 섭리가 있어야 했어요. 두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어요. 그러나 환상이 목적이 아니었어요.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만났고 이제 말씀을 나눕니다.

   베드로 설교의 핵심이 바로 사도행전 10 38절이에요. 고넬료에게 꼭 필요했던 것이 뭐냐,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요. 성령이 함께 하시는 분이요. 인간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일을 행하시고 악한 영 사단에게 붙들려 고통당하는 많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그의 사역은 한 마디로‘임마누엘’이다. 그게 바로 임마누엘의 진정한 모습이에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예요. 그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 자유롭게 사는 거예요. 자유인이 되는 거예요. 죄로부터 자유한 거예요. 모든 얽매이는 것으로부터 자유한 거예요.

   그럼, 이 임마누엘 신앙의 핵심이 뭐냐, 말씀이죠. 항상 사건이 있고 말씀이 있어요.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셨어요. 어떤 병자든지 자기 앞에 나오는 사람을 고치셨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짧은 3년 공생애 동안 그 나라의 모든 병자들을 다 고치신 건 아니에요. 다 돌아다니시며 고치실 수도 없었을 거예요. 병자를 고치셨다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병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었어요. 그 말씀을 알아듣도록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도록 병자를 고치셨던 거예요. 그 말씀이 뭐예요. 사건이 있기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 있어요. 사건을 이룬 다음에 다시 풀어주시는 말씀이 있어요. 그 말씀의 핵심은‘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자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죄와 사단의 권세에 얽매여 있던 모든 자들을 자유케 하시는 분이다 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사건이 있습니다. 사건 속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어요.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문제에 빠져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어요.

   <고통의 선물>The gift of pain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폴 브랜드라고 하는 의사의 이야기예요. 그는 한 평생 나환자를 고친 분이에요. 인도에서 선교사로 나환자들을 고치고 또 미국에 가서 나환자들을 고쳤던 분이에요. 이 분 자신이 감각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던 경험이 있어요. 어느 날 다리를 만져보니까 아무런 감각이 없어요. 나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 하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예요.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한다는 거예요. 그게 완전히 썩는데도 느끼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몸이 망가지는 거예요. 바늘을 찔러 보았습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어요. 더 찔렀어요. 피가 나오는데도 감각이 없어요. 두려움이 왔어요.‘아, 내가 나환자를 고치는 사람이었는데 나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났구나.’그가 알고 있는 치료법을 통해서 스스로 처치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자기 다리를 찔러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나 아픈 거예요.‘악’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너무 기뻐서 웃다가 눈물을 흘렸어요. , 감각이 회복된 것이죠.

   여러분, 고통이 있다는 것은 알고 보면 고통이 아니에요. 축복이에요.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인간 신체 구조상 가장 정교하고도 보편적으로 우리 몸 안에 심어두신 장치이다. 고통이 없다면 자기 몸이 고장나도 그것을 알지 못해요. 고통이 있으므로 우리는 자기를 지키려고 노력하게 돼요. 사건이 있어요. 어려움이 있어요. 그 어려움이 내게 고통이 돼요. 그 고통 때문에 나는 그것을 해결해 주실 분을 찾게 돼요.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두신 장치예요. 하나님을 만나도록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하신 거죠.

 ‘공자’가 <논어>에서 인간을 네 단계로 나누었더라고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 고난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 여러분, 우리는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주님을 찾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거기서 한발 더 나가야 되겠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배우고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두신 비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되겠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배웁니까? 순종할 때 배우는 거죠. 오늘 마리아와 요셉의 상황은 참 믿기 어렵고 순종하기 어려워요.‘이미 네 태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누가복음을 읽어보면 이 똑같은 장면을 더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마리아가 너무나 놀라잖아요.‘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그랬을 때 마리아가 말합니다.‘내가 그걸 과학적으로 이해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의 계집종이오니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것 때문에 내가 수치를 당하고 혹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참,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말이에요, 이런 순종도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거 아니에요. 다 평소에 한걸음 한걸음 순종할 때 이러한 일까지도 순종할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정도를 잘 아셔요. 이렇게 마리아에게 주시듯이 이런 어려운 일은 우리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해요. 하나님이 저에게 무언가 찾으실 때는 늘 먼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하시든지 말씀을 듣고 은혜 받게 하셔서 마음이 따끈따끈해질 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럼 그때는‘아멘’하고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순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휘파쿠오’라고 말합니다.‘휘포’라는 단어와‘아쿠오’라는 단어가 합성된 거예요.‘휘포’라는 것은‘아래’라는 뜻이에요.‘아쿠오’라는 말은‘듣는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순종이라는 말은‘마음을 낮추고 아래에 서서 어른의 말을 듣는다’그런 말이에요. 그게 순종이에요. 듣는 거예요. 말씀을 우리가 주목해서 들으면 순종하게 돼요. 전혀 어렵지 않아요.

   제가 여러 번 얘기했습니다만 제가 자카르타에 오게 될 때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는데 저는 제가 선교지로 나오리라고는 정말 그날 그 시간까지 한번도 꿈꾸어 본적이 없어요. 저는 저를 잘 알거든요.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가 선교지에 돌아다닐 사람같이 보입니까? 서울 샌님 양반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한 일년 동안‘앞으로 어디에 가서 목회를 할 것인가?’하고 기도하고 준비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디든지 보내시면 가야 되고 당연히 갈 것이지마는 혹시 그래도 하나님이 물으실 수도 있잖아요.‘어디 가고 싶으냐?’그럴 때 대답하려고 미리 생각해 논 게 있었어요. 세 가지가 있었어요. 첫째 이왕이면 새로 시작하는 교회가 좋겠다. 두 번째 사업하는 사람들하고 신앙생활하면 좋겠다. 세 번째 이왕이면 서울 소망교회에서 훈련받고 배웠으니 이렇게 소망교회 스타일이면 좋겠다. 딱 그 세 가지. 그랬는데 말이죠. 그날 담임 목사님이 말씀 하시는데‘자카르타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하는데 이제 시작하는 교회고, 모인 사람들이 다 사업하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세 번째 소망교회식으로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라고 얘기하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전 감전됐어요. 그 순간 속으로‘아멘’했습니다. 그 자리에 여러 사람이 같이 들었는데 감동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만 감동받았어요.‘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구나.

   그때 저는 자카르타는 상상도 못하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반둥 정도였어요. 근데 와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아, 하나님이 나를 이제까지 훈련시킨 것과 이곳 상황이 너무나 딱 들어맞는구나.’이렇게 다 만들어 놓고 순종하라는 걸 누가 못하겠어요. 순종에 대해서 겁내지 마세요. 왜 겁내느냐 하면 좀 심하게 얘기하면 무식해서 겁내는 거예요. 말씀을 읽고 들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아셔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건 절대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세요. 다 감당할 수 있도록. 또 나중에는 결국 그것으로 인해서 행복하다고 고백하도록 이끌어 가세요.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생명을 주신 분이고 언젠가 우리 생명을 부르실 분이고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의 필요를 너무나 정확하게 아세요. 특별히 젊은 사람들은 여러분의 비전을 늘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세요. 어른들에게 물어보세요. 이 세상에서 나 혼자 똑똑하다고 행복한 거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이 머리 한번 만져주시면 그 인생의 길이 열리는 거예요. 복된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인생이 행복해요.

   오늘 마리아가 이런 문제를 가졌어요.‘순종하겠습니다.’말은 했지만 엄청난 일이에요. 누구에게 갔는지 아세요? 나이 많은 사촌언니 엘리사벳에게 갔어요. 세례 요한의 어머니에게 갔어요. 세례 요한을 이미 비슷한 방법으로 뱃속에 품고 있는 엘리사벳과 삼 개월을 있었어요. 그 동안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나게 되요. 기도하고 찬송하게 됐어요. 이게 교회의 비밀이에요. 우리가 다 연약해요.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 눈물 흘리고 있는 저 사람에게 위로를 주시는 거예요. 나 혼자 잘나서 신앙 생활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서로 나누므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수 있는 거예요.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모든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니라.’이 비밀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