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생명의 양식[잘웃게된동기=죄사함의확신,신앙의비밀은자유함]/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5:33

081214 생명의 양식 ( 4:28-38)

성경본문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작년 휴가 중에 한국에 나가서 경험한 일입니다. 나가보니 서울 외곽 순환고속도로가 개통이 됐더라구요. 차를 빌려서 어디를 가는데 그 동안에는 개통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우회해야 했는데 막상 개통이 되니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라구요. 달리다 보니 지나쳤어요. 빠져나가는 길을 놓쳤어요. 그런데 그날 일을 마치고 밤에 돌아올 때가 더 문제더라구요. 제가 길눈은 밝은 편이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지만 서울 근교가 얼마나 많이 변하고 새로운 길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익숙하던 길에서 그만 아차 하고 벗어났어요. 그래도 감이 있으니까 이 방향으로 가면 서울 태릉이 나오겠지 하고 갔는데 거듭거듭 빗나가더라구요. 나중에는 걱정이 돼더라구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열심히 운전하면서 긴장하고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표지판을 보고 여기가 거기구나. 역시 감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빗나간 장소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표지판이 중요해요. 하루 운전 길도 그러하다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영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원래 잘 웃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앨범을 정리하다 보니까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청년부 때의 얼굴사진을 연도 별로 정리했는데 모두 우울한 표정이에요. 젊은 애가 왜 그렇게 소망이 없는지 얼굴에 그늘이 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 바뀌었냐. 그걸 잊을 수 없어요. 군에 가서 일병 때부터 얼굴을 완전히 성형했습니다. 웃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웃게 됐느냐, 졸병생활이 답답하죠. 그런데 제 고향 모교회에서 설교집을 보내줬어요. 읽기 시작했어요. 또 그거 외에는 할 일 도 없어요. 읽다 보니 재미있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대목이 기억이 나요. 죄사함의 확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이것을 이야기로 비유한다면 저기 산 아래에서 소총을 들고 적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전망이 좋은 벙커 안에 들어가 M16 기관단총을 걸고 있어요. 시야가 좋아서 적이 다 보여요. 나타났다 하면 방아쇠만 당기면 돼요.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려 합니다. 네가 그래가지고 어떻게 구원을 받겠느냐? 그러나 아니에요. 우리의 허물을 우리도 잘 알아요. 그리스도께서 방패가 되시고 벙커가 되셔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고 기관단총이 돼서 적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 벙커 안에 있는 자에게는 안전함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서는 그 누구도 그의 구원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 대목을 지금도 기억해요. 그때 제 마음에 그렇구나. 밤낮 들었던 것 같은데 그날은 마음에 와서 꽂힌 거예요. 그 날부터 웃기 시작했어요. 나의 죄를 주님께서 해결하신 거로구나. 내가 몸부림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때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본부 중대 막사 앞에서 감히 일병이 웃으면서 찍었어요. 병장들 없을 때 몰래.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내 인생이 바뀐 날이다. 잃었던 웃음을 되찾은 날이다.

누가복음 17 21절 말씀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하늘나라는 너희 마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것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 천국의 시작은 어떤 외적 상황의 변화 이전에 우리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은 똑 같은 것을 보고도 소망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고 절망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어요. 보는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우리 마음이 모든 것을 주장해요. 문제해결의 열쇠가 여기 있어요.

오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 가셨다가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알고 보니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난과 상처가 많겠어요. 예수님이 물 한 그릇 주시오 라고 말했을 때도 돌아온 말이 곱지 않았어요. 당신은 유대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나한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차별에 대해서 거친 반응을 나타낸 것이죠. 예수님이 한 번 더 부드럽게 얘기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것을 나에게 구했을 것이고 생수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오. 그 여인이 다시 말합니다. 보아하니 행색도 초라하시고 이 우물은 깊고 당신은 물 기를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나한테 생수를 준다고 합니까? 우리 조상들과 동네 사람들이 수 천년 동안 이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고 있는데 어떻게 당신이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까? 현실에 묶여있어요. 거부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그것에서 벗어날 힘이 없어요. 체념하면서 비판하고 있어요.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냉소를 보내고 있는 거죠.

그러나 예수님이 아니요, 진정 내가 주는 물은 당신이 매일 길어 마셔도 목마른 이 물과 같지 않게 한번 마시면 그 속에서부터 끝없이 솟아나오는 생수가 될 것이오. 그랬더니 그 여인은 이 남자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구나. 내가 이렇게 거칠게 쏘아대는대도 이렇게 부드럽게 받는 걸 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구나. 그럼, 어디 그 생수를 나에게 주시오. 관심을 보였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말합니다. 당신의 남편을 불러 오시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당신이 지금 여섯 번째 남자와 더불어 살고 있지만 진정 그에게 마음을 붙히지 못하고 그는 당신의 남편이 되지 못하오. 여자가 자기의 모든 사정을 아는 주님의 말씀에 놀라면서 당신은 아무래도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어디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당신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해야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고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야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데 도대체 사람마다 말이 다르니 대체 어디를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나같이 이렇게 인생의 고난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은 왜 만나주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나의 고통을 외면하고 계시는 겁니까? 나도 과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합니다. 여인이여, 이제 내 말을 들으시오.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예배자를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입고 사는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 생각도 갇혀 있어요. 하나님도 거기다가 가두어 버렸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우리의 사정을 낱낱이 아시는 거예요.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분이에요. 언제든지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에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러한 참된 예배자를 지금도 찾고 계시는 것이지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인식의 전환이에요. 이제까지 닫혀있던 생각이 열리는 순간이에요. 여인이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에 관한 비밀을 말씀하시는 메시야가 오신다고 했는데요. 여인이여, 내가 바로 그 메시야요.

그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여인이 어떻게 합니까? 물 뜨러 온 사람이 물동이도 버려두고 동네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전에는 자기의 부끄러운 일들로 인해서 사람들과 소외되고 격리되어 살았던 사람이 오히려 동네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의 모든 일을 낱낱이 알고 계시는 분이 여기 오셨는데 이분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대화를 통해서 여인의 의문을 풀어주는 거죠.

설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거죠. 성경을 꿀과 같이 날마다 읽는 다면 아주 건강한 신앙인이에요. 그러나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는 음식을 만들기 전의 다양한 재료라고 볼 수 있어요. 설교라고 하는 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답답한 생각을 열어 주시듯이 요리로 만들어 주는 것이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을 때 그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누가 그 말씀을 듣느냐? 여인과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이 그 말씀을 달게 들어요. 몸이 아픈 사람이 뭔가 좋은 치료법을 찾듯이. 그래서 때로는 우리 상황이 어려운 것은 다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제가 몇 달 전에 람풍의 샬롬신학교를 가서 강의하고 돌아올 때 빨리 오려고 비행기를 타기로 했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420분이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3시 반쯤 공항에 왔어요. 그런데 비행장이 썰렁해요. 웬일인가 하고 물어보니까 그 날 비행기가 밤 9시에 온대요. 불도 어두운 곳에서 5시간 반을 기다리게 생겼더라구요.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답답한 노릇이구만.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그런경우를 대비해서 늘 책을 한 권 가지고 다니거든요. 분량을 보니까 열심히 읽으면 집에 갈 때까지는 읽을 수 있겠더라구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과 씨름하면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여러분, 어찌할 수 없는 그 상황, 그게 기회예요. 여러분 차에 갇혀 다니잖아요. 얼마나 교통체증이 심해요. 뭐하고 지내세요? 피곤하신 분은 주무시는 게 약이죠. 아니라면 또 뭐하세요? 설교 테이프를 들으세요.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말씀으로 푹 젖게 하세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하세요. 고린도후서 3 17절에 주님은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신앙의 비밀이 뭐냐, 자유함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몸부림쳐서 수고의 대가로 얻는게 아니에요. 발견하는 거예요. 내 안에 있었어요. 이미 그리스도께서 다 이뤄 놓으셨어요. 그걸 몰랐어요. 발견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아요. 죄로부터 자유해요. 죄인이기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던 불안과 저주로부터 자유해요.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해요. 진노로부터 자유해요. 사망으로부터 자유해요. 귀신의 권세로부터 자유한 거예요. 결혼할 때 택일 하잖아요. 사주팔자, 궁합,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 거예요.

그럼, 어디서 이런 자유를 날마다 얻을 수 있는 것이냐. 그 생명의 양식을 어디서 얻을 것이냐.

예수님이 여인과 얘기하는 그 사이에 제자들은 동네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구하려 막 돌아다니고 있어요. 먹는 것이 중요하죠. 오죽했으면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잖아요. 참 중요해요. 그러나 또 하나 일용할 은혜도 중요해요. 일용할 은혜가 있을 때 일용할 양식이 진정으로 나에게 유익이 돼요.

요즘 먹는 거 얼마나 가립니까? 얼마 전에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의 10대 건강식품이 토마토, 마늘, 시금치, 브로콜리, 귀리, 호두, 연어, 블루베리, 녹차 그리고 레드와인 입니다. 건강식품이래요. 많이 드세요. 그러나 곁들여서 꼭 빠뜨릴 수 없는 게 있어요. 은혜예요.

예수님은 참 짓궂은 분이에요. 제자들이 와서 선생님, 우리가 겨우 이것을 구했습니다. 이걸 좀 드십시오. 그랬더니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우리 말고 또 누가 주님께 음식을 갖다 드렸는가 했더니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며 이루는 그것이니라. 그것이 나의 양식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룬다함은 뭐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말씀을 알고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잖아요. 이 자유함을 나누어 주는 것이죠.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영으로 예배한다. 우리가 시간과 장소에 매이고 우리 능력의 한계에 매여서 그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 하고 만나려 할 때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말씀이 왜곡돼요. 그러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말씀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듣는 거예요. 그게 영으로 예배하는 거예요.

또 진리로 예배한다 함은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성경에서 알아야 할 많은 것이 있지만 예수님, 그 분이 누구신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이죠. 예수님 그분이 누구신가. 말씀은 그 분을 누구라고 얘기하고 있는가. 거기에 주목해야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지금 동네 사람들이 여자가 떠드는 얘기를 듣고 예수님 앞에 몰려 나오고 있습니다.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아직 추수하려면 넉 달 더 있어야 하지만 여기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갈급한 사람들을 보라. 진리의 말씀을 한마디만 하면 이 사람들이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받고 생명을 추수하게 될 것이 아니냐.

제가 예전에 서울 압구정동에 있을 때에 지하철 입구에서 계단을 막 내려가려고 하는데 말이죠. 나이 드신 분이 지하철 계단을 힘들게 올라와서 두리번 두리번하는데 보니까 이분이 어딘가 길을 찾는 것 같아요. 좀 도와드리려고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어디를 가세요? 그랬더니 안세병원을 찾는다고 하는 거예요. 이리로 가세요 하고는 부지런히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을 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잘못 가르쳐 드렸어요. 반대편인데. 기껏 가르쳐 드린다는 게 그만 오히려 호되게 고생하게 만들었어요.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날 비록 실수했습니다마는 우리가 아픈 사람 직접 고칠 것 없어요. 그 사람에게 병원이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면 돼요. 우리가 신학을 가지고 복잡하게 얘기할 것 없어요. 병원만 알려주면 돼요. 정말로 괴로워하고 답답해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제가 신대원 들어가서 1학년 때 히브리어 공부하는데 너무 어렵더라구요. 2학기에는 또 헬라어를 공부한대요. 막 고민이 됐어요. 그때 누가 저를 구원해 줬는지 아세요? 저희 어머님이 어느 날 우연히 저희 집에 들르셨는데 신문 쪼가리를 오려가지고 오셨어요. 이거 혹시 아범한테 필요하냐? 거기 보니까 히브리어, 헬라어를 아주 효과적으로 배우는 비법이 있다. 그 말 한 마디에 제가 완전히 해결받았잖아요. 신대원과 대학원 다니는 5년 동안 그거 열심히 가르쳐서 벌어서 공부했습니다. 어머님의 말 한 마디가 저를 살렸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사람들이 얼마나 갈급한지 보라. 저들에게 내가 만난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내 삶 속에 들어오신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것으로 충분해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구름같이 몰려온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나를 찾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러므로 썩을 양식만을 찾지 말고 썩지 아니하는 양식을 구하라.

여러분, 소식小食하세요. 위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을 100%라고 한다면 8부 식사법이 있어요. 위를 80%만 채워서 식사를 하면 위가 아주 건강하게 몸을 유지해 주고 건강을 지킬 수 있대요. 조금만 적게 먹으면 건강하게 산다는데 그걸 120%, 150%를 먹어가며 고생할 게 뭐예요? 심지어는 노인성 백내장을 치료하는데도 소식이 하나의 치료법이래요. 50%나 감소시킨대요.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몰라요. 대신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게 있어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여러분, 쌀교인이란 말 들어 봤습니까? 우리 한국교회사 속에 쌀교인Rice Christian이란 표현이 있어요. 참교인Real Christian이 있어요. 구한말 나라가 얼마나 어지럽습니까? 교회가 구제를 하니까 교회가면 가난을 벗을 수 있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거예요.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몰려온 사람들을 쌀교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는 이런 기록도 있어요. 동학란이 일어나고 전주지방이 혼란했을 때 그 와중에 선교사들이 곤욕을 치렀던 거예요. 사람들이 다 떠난 거예요. 처음에는 막 몰려 들었는데 난리가 나고 어지러우니까 행여나 교회 갔다가 봉변을 당할까 싶어서 사람들이 다 떠난 거예요. 선교사들이 실망하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장사꾼이 찾아왔어요. 이 사람이 교회를 꾸준히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백리가 되는 곳에서 걸어 오는 거예요. 선교사들이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선교사들끼리 그 사람을 뭐라고 했냐 하면 그는 우리에게 희망의 별이다 그랬어요. 기록에 보면 Bright and special star 그랬어요. 그런데 머지않아 이 사람이 찾아오더니 내가 이렇게 열심히 교회를 나왔으니 이걸 계산해서 나에게 10달러를 주시오. 선교사들이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그 사건이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어요. 쌀교인의 대표적인 예죠.

심지어 인천지방에 있었던 기록이에요. 하도 교인이 안 모이니까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계를 모았어요. 교회에서 계를 하면 외국인이 뒤를 받쳐주니까 좋겠다고 해서 곗군교인 50명이 모인 거예요. 주일에 모일 때 마다 그날이 곗날이 되고 예배당이 계모임 장소가 돼버린 거예요. 그러나 계라는 게 반드시 깨지게 돼있거든요. 깨졌어요. 어떻게 됐겠어요?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교회는 어려움에 빠지고. 선교사들이 또 탄식에 빠졌어요. 우리가 그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한국사람들끼리 뭘 한다고 해서 잘할 줄 알고 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됐구나. 낙담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이 사람들이 혹시 교회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러 온 게 아닌가 했더니만 우리가 계속 교회에 나와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나와도 됩니다. 우리가 비록 곗군 교인으로 시작은 했지만 말씀을 듣다 보니 그 말씀이 너무 좋아서 계속 나오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남아서 계속 나왔어요. 그 중 한 사람이 이승환이라는 사람이에요. 그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어요. 선교사님이 세례를 받으시지요하고 권했더니 물론 세례를 받아야지요. 그러나 세례 받기 전에 제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술집을 하는데 이것을 정리하고 세례를 받겠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 어머님이 강화도에 살아 계신데 이 좋은 복음을 나보다 어머님이 먼저 세례를 받은 다음에 제가 세례 받겠습니다. 그래서 고향에 선교사님과 함께 어머님께 갔어요. 강화도의 한 양반이 서양 선교사가 온다니까 절대로 발 붙일 수 없다고 거부했어요. 그래서 이승환이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업고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는 배위에 올라서서 어머니에게 말씀을 전하고 어머니가 받아들이니 세례를 주었어요. 그리고 자기 고향집에서 교회가 시작했어요. 강화도의 첫 교회인 교산 교회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좀 입이 짧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제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고 하시는데, 여러분 자유하세요.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 , 먹고 싶은 게 없거든요. 오래 전 신학교 친구들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그날 공교롭게 무슨 일이 있어서 두 끼를 굶은 채 갔어요. 식당에 갔는데 덜렁 나온 게 보신탕이에요. 그러나 이거 안 먹으면 세끼를 굶게 돼요. 그래서 먹었어요. , 맛있더라구요.

절망적 상황, 하나님의 기회예요. 그러나 여러분 오늘 이 일상적인 평안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시지 않겠어요? 말 안 듣는 자식을 때려가면서 고치기도 하지만 말 잘 듣는 자식이 있다면 부모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 안에 자유함을 허락하시는 주님,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으니 그 말씀을 달게 받고 먹으므로 건강을 유지하게 하시고 자유한 영혼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감격하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