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선교사 예수[하나님이기뻐하시는일만하면하나님이항상함께하심]/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5:39

081207 선교사 예수 ( 8:25-32)

성경본문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올해 스물 일곱의 보라라는 젊은 여자분이 있습니다. 그는 두 살짜리 아들, 정준이 엄마입니다. 그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스물 다섯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결혼 한지 사흘 만에 잠자던 중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재난을 당한 것이죠. 그들 사이에는 이미 아이가 뱃속에 있었습니다. 양가에서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마는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하고 끝내는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를 비록 남편은 없지만 잘 길러보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현실에 발을 내딛었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와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미 아버지는 중학생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형편이 여유롭지 못해서 아침만 되면 모두 정신 없이 일터로 뛰어나가고 저녁에나 다시 모이는 그런 가정입니다. 아이를 기르면서 일을 해야 하니 그 어려움이란 말할 수 없어요. 온갖 궂은 일을 다 끌어안고 삽니다. 그러니 어찌 눈물이 없겠습니까. 홀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이겨보겠노라고 말했지만 한 순간에 희망이 꺾이는 가혹한 현실에 때때로 절망하기도 합니다.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홀로 내버려두고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 어찌 원망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차라리 뭔가 미워할 구석이 있다면 저를 미워하고 욕하겠지만 사랑이 채 식기도 전에 떠나가버렸기에 저가 남겨준 아름다운 추억이 나를 더 힘들고 괴롭게 합니다.

이 년을 몸부림치며 온갖 궂은 일을 다하다가 가까스로 직업학교 교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제 그나마 일정한 보수를 기대하면서 일할 수 있게 됐어요. 이제 우리 아들 정준이와 함께 살 수 있는 꿈을 구체적으로 키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부질없이 아이를 낳아서 왜 그 고생이냐 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이 아이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모든 세상의 염려와 고통으로부터 나를 건져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내 삶의 희망이고 목적입니다. 너는 누구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정준이 엄마 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는 어렵고 힘든 현실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어서 오늘을 사는 것이죠. 다들 어렵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고 살고 있습니까? 또 여러분은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실 때에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때때로 이적을 베풀어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아주 복잡한 자기 나름의 동기가 있고 목적이 있었어요.   

기득권 세력은 예수님을 아주 위험한 인물로 이해했기에 어떻게 하면 저를 죽일까 했어요. 예수님의 동생들과 친척들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전해 들으면서 안되겠다. 우리가 올라가서 붙들어 와야겠다. 미쳤나 보다. 라고 까지 얘기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당신이 한 말을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데 당신 귀신들린 것 아니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예수님께 이렇게 묻는 겁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님이 말합니다. 나는 처음부터 당신들에게 말씀을 전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 분은 참되신 분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이 있지만 하나님이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만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죽음의 위기를 느끼고 있어요. 결국은 자기가 십자가에 죽게 되리라는 것도 환히 내다보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자유함을 선포하고 있어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내 말을 믿고 따른다면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요, 결코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찌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말합니까?라고 반문하자 죄를 짓는 모든 자마다 죄의 종입니다. 종은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영원히 거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종을 자유케 할 때 참으로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놀라운 자유 선언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고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게 주신 그 말씀을 즐겁게 따르며 그 말씀만 전합니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게 주신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제가 대학생 때 어떤 여학생을 좋아해서 아침 열 시에 다방에 들어갔다가 밤 열 시에 나온 적이 있어요. 다방 주인의 눈총을 얼마나 받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없는 돈에 두 잔이나 시켜 마셨잖아요.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여러분, 저가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랑으로 하나되어 있다 그런 말이죠.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내가 이걸 하겠다고 고집하지 않아요. 상대의 말, 상대의 뜻, 상대의 느낌 모두 다 내 것으로 받아요. 흔쾌히 자유함으로 나를 내어 맡기는 거예요.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에 응답하고 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던지 이제는 내 목숨을 내어 놓고서라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자기 이해요, 자유함의 본질이었어요. 놀라운 일이에요.

이번 휴가 때 시간을 내어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양화진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 외국인 묘지가 있어요. 부러 찾아 갔습니다.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갔어요. 닥터 홀이라고 하는 집안의 무덤을 찾아 간 거죠.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이라고 번역된 책이 있습니다. 닥터 홀 일가의 조선 선교 이야기예요. 거기에 보면 셔우드 홀과 메리안이라고 하는 의사부부가 나오고 그들의 부모인 윌리암과 로제타 역시 부부의사였어요. 2대에 걸쳐서 부부가 모두 의사였어요. 그들이 한국을 사랑한 이야기예요.

셔우드 홀은 1893년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우리나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거쳐서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의사가 되어 1925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1940년에 강제로 추방 당하죠. 16년 동안 우리나라 황해도 해주에서 봉사합니다. 그때에는 결핵으로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요양원을 세워요. 이 결핵 요양원을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에서 보급되고 있던 크리스마스 씰seal을 처음으로 도입해서 학교와 교회에 보급했어요. 이 사람이 바로 셔우드 홀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쫓겨나서 그 길로 인도에 가서 23년 동안 나이 칠십에 은퇴할 때까지 의료 선교를 하고 은퇴한 이후에 73세에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와 우리의 선교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 해서 책을 쓰게 된 거예요.

그분들의 희생도 대단했지만 그 분들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참 아름다워요. 윌리암과 로제타라고 하는 두 분은 각각 중국과 조선에 대한 선교를 꿈꾸며 의사로서 훈련을 받다가 뉴욕의 한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게 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각각 파송 선교단체가 달랐고 목적지가 달랐어요. 여자는 조선으로 가게 돼 있었고 남자는 중국으로 가게 돼 있었어요. 여자는 1년 먼저 조선으로 출발했어요. 그때 미국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한 달은 걸려야 해요. 그런 먼 길을 여자가 혼자 먼저 여자가 오게 됩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리움을 나누고 윌리암도 자기의 선교지가 조선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일년 후에 남자도 조선에 들어오게 돼요.

그런데 미혼 여선교사인 경우에는 한번 파송받으면 적어도 5년 안에는 결혼 할 수 없다는 규약이 있었어요. 이 문제를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먼저 들어온 선교사들과 의논하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결혼하게 돼요. 선교본부에서는 여자는 서울에서 일하도록 하고 남자는 평양에 가서 선교 기지를 개척하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결혼은 했습니다만 떨어져 살게 되었어요. 일년에 더운 여름, 추운 겨울 두 번 만날 수 있도록 휴가를 허락해 줬어요. 그때 서울에서 평양은 걸어서 두 주일 걸렸습니다. 두 주일을 걸어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두 주간 머물다가 두 주간 되돌아가서 사역하고 다음에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1894년 청일전쟁이 납니다. 평양은 청일전쟁의 격전지가 됐어요. 전염병이 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윌리암은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 끝까지 지키다가 자기가 병에 걸리게 됐어요. 끝내 서울로 후송되었지만 아내를 보기가 무섭게 눈을 감게 됩니다. 뉴욕에서 처음 만난 지 5년 만에 결혼한지 2년 만에 사별하게 돼요. 그것도 내내 떨어져 있다가. 이제 겨우 돌 지난 아들이 하나 있었고 곧 태어날 딸이 있었어요. 로제타는 남편을 조선에 묻고 아들과 더불어 캐나다 시집으로 돌아가서 출산을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조선을 잊을 수가 없어서 4년 만에 다 정리하고 다시 어린 아들 딸의 손을 잡고 조선으로 돌아와요. 어린 딸은 4살에 전염병으로 먼저 죽게 돼요. 그런 어려움에도 불고하고 로제타는 조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죠.

로제타가 동대문에서 시작한 자그만 의료시술소가 오늘날 동대문 이대 부속병원이 돼요. 또 그가 시작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오늘날 고대병원으로 발전하게 돼요. 한국 교회의 의료선교사였기에 그가 손대고 만진 많은 곳들이 다 오늘날 큰 병원들이 된 것이죠. 2대에 걸쳐서 조선을 사랑했어요. 집안 식구 모두가 양화진에 묻혔어요. 아주 좁은 구역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묻혀있는 것이죠.

아들인 셔우드 홀이 책을 쓰다가 어머니의 일기 속에서 글을 하나 발견합니다.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미국과 조선으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 서로 나눈 편지 속에서 발견한 글이에요. 어머니가 말합니다. 나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라고 하는 책을 읽었다. 윌리암이 전해 주고 간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 거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예수님이야말로 선교사이시구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오늘 내가 하고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정체성이었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매인 바 되었기에 죽음까지도 넘어 설 수 있었구나. 예수님이 맛보았던 그 뜨거운 사랑을 오늘날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이 사랑을 모르는 조선 사람들에게 알려 주라고 이제는 우리를 보내시는 구나.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낸다. 하나님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 같이 나도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조선에 와서 생명까지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말씀이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즉 소명이에요. 여기에 내 할 일이 있다. 사명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날마다 깨닫게 하시는 대로 즐겁게 따르노라. 계명이에요. 우리 믿는 자에게는 소명이 있어요. 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요. 오늘 내게 맡겨주신 가정과 기업과 일터 이게 나의 사명이에요. 그것을 날마다 내게 주시는 말씀과 은혜와 감동을 따라 하는 것, 그게 계명이에요. 예배시간에 일찍 나오는 것, 그거 잘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을 의식해서 나오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가 있을 때 계명은 우리를 얽어 매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신앙을 받쳐주는 받침대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 나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누가복음 17장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이렇게 구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이 좀 더 커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셔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태산을 움직이게 될 것이다.

여러분, 겨자씨 보셨어요? 제가 성지순례 갔을 때 예루살렘에서 겨자씨를 하나 찾았는데요, 그걸 보존한다고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어버렸어요. , 너무 작고 바람에 잘 흩날려서. 이걸 주머니에 넣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없어요. 너무 작아요. 작은 믿음이지만 생명이 있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때에 그것으로부터 큰 나무를 이룬다는 것이죠. 이런 예를 드셨어요. 너희들이 일하는 종을 보았느냐. 하루 종일 밭에 나가서 일하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종을 위해 식탁을 차리면서 어서 와서 밥 먹으라고 하는 주인이 어디 있느냐. 종이 일하고 돌아오면 이번에는 주인의 식탁을 준비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손을 씻고 식탁을 차리는 것 아니냐. 주인이 다 먹기까지 기다리는 것 아니냐. 그러고 나서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는 주인이 명령하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라고 하지 않느냐? 이 종의 겸손함을 배워라.

결국 종 안에 있는 건 뭡니까? 자기 생명의 주인에 대한 전적인 신뢰,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부터 우리의 삶이 시작될 때 그게 진정한 믿음의 기초라고 하는 것이죠.

예전에 5공 때 장아무개라는 사람이 끝까지 자기가 모셨던 분에 대해서 의리를 지켰다 해서 장안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제일 멋있는 남자라고.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주인이 온전치 못해서 그의 전적인 복종이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죠.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의 온전한 순종을 드리기에 합당한 분이에요. 진실하시고 정직하시고 공정하신 분이에요. 간혹 여러분이 속상한 일이 있어요. 누구 때문에 속상해. 한번 하나님 앞에 조용히 기도해 보세요. 뭐라고 하시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 못지않은 나의 허물을 하나님이 일깨워 주셔요. 이런 허물에도 불구하고 나를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할 거예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때 우리는 아주 온전한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고 놀랍게도 그 순종 속에 자유함이 있어요. 무한정의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에요. 돈이 있고 시간이 있어서 마음대로 여행가는 사람에게는 정작 여행가는 기쁨이 없어요. 돈도 애써 모으고 시간도 짜내야 해요. 여행이란 원래 떠나기 전까지의 긴장감이 여행의 참 맛이에요. 아무 때나 여행 갈 수 있다면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없는 거예요. 놀랍게도 온전한 순종 속에 우리의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런 자유함이 있는 사람이 자기를 찾은 사람이에요.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할 때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주님의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 그 은총, 그것을 깊이 깨닫고 온전하신 생명의 주님 앞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시고 그 안에 내 삶의 자유함이 있고 감격이 있음을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