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늦게 온 사람들 [생명력 넘치는 삶,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6:30

늦게 온 사람들 (마태복음 20:8-16)

2008 11 23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여러분, 수원성에 한번 가보셨습니까? 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성을 화성華城이라고 합니다. 화성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성은 조선 후기 정조대왕 때의 실학자요, 정치가였던‘정약용’이 설계한 성입니다. 정약용이 나이 서른한 살에 왕의 명을 받고 그 성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정조대왕의 각별한 신임과 사랑을 입었습니다.

   정조대왕이 화성으로 행차할 때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게 되는데 배를 엮어서 만든 주교舟橋, 배다리를 정약용이 설계하였습니다. 그게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에요. 서른세 살 때 임금이 정약용을 경기도 지방에 암행어사로 보냅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혼탁한 정치판에서 그를 신임했기에 그런 임무를 주었던 것이죠. 나중에 그가 반대 당파의 상소 때문에 부득이하게 물러나게 되었을 때에도 그를 완전히 내버리지 아니하고 황해도 북쪽에 곡산 군수로 보냅니다. 지방의 실정을 알도록. 그는 곡산 군수로 가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문제들을 깨끗하게 해결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정조가 죽으면서 정국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남인이 한 순간에 몰락하고 노론이 남인을 죽이는 대 탄압이 시작되는데 정약용을 죽여야 할 사람 중에 으뜸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털어도 정약용을 죽일 명분을 찾지 못합니다. 할 수 없이 귀양을 보냅니다. 그는 전남 강진에서 십팔 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적적으로 생명을 얻은 사건이었습니다.

   그 나이 서른아홉에 귀양을 떠나게 됩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순간 좌절하고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마는 곧 마음을 비우고 그곳에서, 머리를 들면 이마를 부딪칠 만큼 나지막하고 다리를 뻗으면 문턱에 닿을 만큼 그렇게 좁은 집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훗날 그가 아들에게 쓴 편지가 있습니다.‘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우리 집안은 폐족이 되었다. 망한 집안이 되었다. 과거길이 완전히 막혀서 너희는 더 이상 출세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구나. 이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독서 밖에는 없다.’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나의 지난날들을 회고해 볼 때 젊을 때에는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 공부했고 관직에 진출해서는 벼슬자리를 찾아서 이리저리 일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학문을 했다고 할 수 없구나. 이제 비로소 감옥과 같은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는 처지에서 책을 펴드니 비로소 그 책의 저자들이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인지 내 가슴에 다가오는구나.

   그는 십팔 년 귀양살이를 통해서 수많은 저작을 남깁니다. 무려 오백여 권의 책을 남깁니다. 죽기 살기로 책을 쓰는 것이죠. 거기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죠. 또 하나의 의도가 있었어요. 역사라는 것은 승자들이 기록하는 것이니까 귀양살이하고 쫓겨난 정약용은 국가 공문서에는 대역죄인으로 기록되어 있어요.‘훗날 역사가 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오늘 내 기록을 남기리라.’심지어는 책을 다 쓰고도 모두 다 공개하지 않았어요. 몰래 전했어요.‘내가 죽은 후 이 정권이 바뀐 후에 이 책을 공개해 주시오.’우리가 정약용의 이름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가 한낱 재상으로만 출세했다면 그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저 이름 한자 남긴 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십팔 년 동안의 귀양살이, 그 외로운 삶 속에서 뒤늦게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죠.

   오늘 본문에 포도원 주인이 포도를 수확하는 철이 되어서 갑자기 많은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일찍 아침 장터에 나가서 일꾼들을 찾습니다. 유대사람들의 시간 계산법으로 제삼 시, 육 시, 구 시, 십일 시 라고 했습니다만 오늘 우리 시간으로 얘기하면 아침 아홉 시, 낮 열두 시, 오후 세 시, 마지막으로 오후 다섯 시에도 나간 거예요. 오후 여섯 시면 일과가 끝인데 오후 다섯 시에 나가보니 아직도 일자리를 못 구해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지요. 그 사람들마저 거두어들입니다.‘빨리 가서 일하라.

   해가 저물게 되었습니다. 일이 끝났습니다. 그들과 계산하게 되었습니다. 청지기에게‘일당을 주되 늦게 온 사람부터 주라’고 합니다. 늦게 온 사람들은 너무 궁금합니다.‘과연 얼마나 줄까?’그런데 뜻밖에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이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일당이요, 하루 양식 값입니다. 비록 한 시간 일했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서 한 데나리온을 넉넉하게 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그걸 보고 있던 먼저 온 사람들이‘저렇게 늦게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걸 보니 우리는 좀 더 주겠구나.’하고 기대했는데 웬걸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원망과 불평이 터져버립니다. 주인에게 항의 합니다.‘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고 우리는 아침부터 와서 온종일 수고하고 이 더위 속에 일했는데 한 데나리온을 주시다니요.’그때 주인이 말합니다.‘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소. 나는 당신들하고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당신 것이나 받아 가지고 가시오. 늦게 온 사람에게 하루 양식 값을 주려고 하는 것이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잘못이오. 내가 선한 일을 하는데 오히려 나를 악하게 보는 것이오.

   여러분, 늦게 온 사람들에게는 감격이 있어요. 한 데나리온이 꼭 필요합니다만 차마 달라고 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데 주인이 나누어 주는 한 데나리온에는 풍성한 사랑이 담겨 있어요. 은총으로 받고 있어요. 감사로 받고 있어요. 반면에 먼저 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합리적입니다. 많이 일한 사람 많이 주고 적게 일한 사람 적게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죠. 아주 합리적입니다마는 그러나 감사가 빠졌어요. 오히려‘우리는 종일 수고하고 더위에 고생했다.’이렇게 말해요.

   사실 따져보면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오후 다섯 시가 되도록 길거리에 서있어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걸 생각하지 못해요. 또 주인이 사람들을 택했을 때 전적으로 주인의 주권이에요. 주인의 은총을 따라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아침부터 일하게 된 사람들은 마음이 너무나 평안해요.‘오늘의 문제는 해결됐구나. 오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되었구나.’이게 얼마나 평안한 마음입니까. 그 은총은 생각하지 못해요.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연약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원래 주인과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어요. 주인의 말대로 얼마를 나누어 주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마음에 있어요. 한 데나리온은 하루 양식을 위해 충분한 돈이에요. 오늘 내가 약속했던 것을 열심히 일하고 받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죠.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원망하고 있다는 거예요. , 우리는 어떠합니까.

   여러분‘폴 포츠Paul Potts’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잘 알지 않습니까. 성악을 공부했고 성악가의 꿈을 키웠습니다마는 실패해서 휴대폰 외판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연습하면서 일했어요.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그 얼굴을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가 한번의 결정적 기회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냈을 때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을 다 감동으로 붙들었어요. 요즘은 세계 순회 연주여행을 다닌대요. 한국에도 왔었잖아요. 그 수익금을 북한의 불쌍한 동포들을 위해서 써달라고 기부했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이 사람이야말로 늦게 온 사람이요, 감격 속에 사는 사람이구나.’했어요.

   제대로 번듯하게 성악을 공부하고 일류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그를 보고 뭐라고 얘기하겠습니까. 글쎄요.‘아이고, 잘 배우지도 못하고 그것도 노래하는 거라고?’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찾는 것은 노래의 기교가 아니에요. 감동을 찾는 거예요. 그 사람은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감동을 준 거예요. 우리 삶에 정작 필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저 높아지는 데에 있는 거 아니에요. 많이 가지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감격이 있느냐 하는 거예요.

   이건 비밀입니다. 여러분만 알고 계십시오. 제가 며칠 전에 쇼핑몰에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커피 매장을 지나치다가 어떤 분을 봤어요. 근데 이 분이 저 멀리 파푸아에 계신 선교사님이에요. 제가 너무 반가워서 평소에는 잘 안 그러는데“아니, 어떻게 오셨어요.”하면서 가서 손을 덥석 붙들었어요. 그랬더니 이 분도 일어나서 제 손을 잡더라고요.‘아니 왜 연락도 안 하고 오셨어요.’라고 다음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제 눈에 그 분 부인이 나타나는데 보는 순간‘아차’했어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선교사님이 아니에요. 순간 혼동이 온 거예요.‘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제가 머리가 좀 좋습니다. 그때 딱 생각이 났어요.‘아, 우리 아파트에 같이 살던 분이로구나.’남자 분이 너무 비슷했어요. 빨리 수습을 해야 되잖아요.“어떻게 여길 오셨어요?”몇 마디 하고는 물러 나왔습니다.

   오면서 집사람에게 물어봤어요.“내가 어떻게 그런 실수를 했을까? 내가 사람을 잘 기억하는데.”그랬더니“저 분들이 몇 달 전에 한국으로 들어가셨잖아요. 모처럼 오랜만에 일이 있어서 여기 오신 거죠.”제가‘야, 잘 됐다.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까.’저 분들은 또‘아파트에 같이 살았다고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주는구나.’하고 얼마나 감동했겠어요. 정말 너무나 반가워서 손을 꽉 붙들고 어떻게 여길 왔느냐고 막 흔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착각한 거였어요.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람을 맞을 때 어떻게 했던가. 누군가 나를 지나치면서 만났을 때 저렇게 반가워한다면 그 사람을 평생 잊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 삶의 핵심은 감동과 감격에 있어요. 생명력에 있어요. 생명력이 넘치는 삶.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첫째는 기본에 충실해야 돼요. 한독약품에‘고양명’사장님이 계셔요. 그 분은 영업의 달인이랍니다. 그 회사에 들어와서 바닥에서부터 사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험한 일을 다 거쳐 사장이 된 분이죠. 그분이 이렇게 말합니다.“나는 원래 너무나 소극적이어서 영업은 나에게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왕 주어졌으니 열심히 해야지 하고 이 날까지 최선을 다했더니 이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영업은 종합예술이다. 회사의 운명은 영업에 달려있다.

   <영업의 핵심>이라는 책을 냈어요. 영업의 핵심은 뭐냐, 고객 만족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 놀랍게도 비결이 있는 게 아니다. 자그마한 것을 충실하게 실천하는데 있다. 사람을 만날 때 환하게 웃으면서 대하고 시간을 약속했으면 정확하게 지키고 자그마한 일들을 배려하는 것이 쌓일 때 신뢰를 얻게 되고 그 신뢰 바탕 위에서 영업이 되어 가는 게 아니냐. 얼마나 상식적인 얘기입니까.

   여러분, 인터넷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아마추어는 불을 쬐지만 프로는 불을 피운다. 아마추어는 변명하지만 프로는 목숨을 건다. 아마추어는 관광객 같이 살지만 프로는 여행가로 산다. 아마추어는 자기 이야기만 하지만 프로는 남의 말을 듣는다. 아마추어는 결과에 집착하지만 프로는 과정을 중시한다. 아마추어는 돈을 소중히 하지만 프로는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아마추어는 쉽게 비난하지만 프로는 비판한다. 여러분은 아마추어입니까? 프로입니까?

   또 감격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마음이 열려야 돼요. 수용성이 뛰어나야 돼요. 배워야 된다는 말이죠. 천년 로마의 비결을 개방성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들은 그리스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정복하고 지배했지만 그리스 문화는 우대하고 숭상하고 그 문화를 다 받아들였어요. 그러했기에 천 년을 갈 수 있었어요. 미국 또한 유럽에 비하면 얼마나 늦게 출발한 나라입니까. 그 역사가 얼마 되지도 안잖아요. 그러나 오늘날 세계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이에요.Melting pot’용광로잖아요. 새로운 사람들이 끝없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활력을 얻고 일어나는 것이죠. 교회는 말할 것도 없어요. 누구든지 다 받아들여야 돼요. 다 존중해야 돼요. 다 하나가 돼야 하는 거죠.

   또 하나 더 나아가서 연약한 자를 배려하고 용납해야 돼요. 이거 좀 심한 말이지만‘화냥년’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어원은‘환향녀還鄕女’예요.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들이라는 뜻이에요.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를 무시하다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신하의 나라가 됩니다. 수십만의 남녀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소현세자, 봉림대군, 왕자들도 끌려갔지만 수많은 사람들도 끌려갔어요. 노예 시장에 가서 팔립니다. 오랫동안 많은 동포들이 끌려가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조정에서 오랫동안 사절을 보내고 그 사람들을 돌려 받으려고 외교적인 노력 끝에 결국에는 많은 여자들이 돌아오게 돼요. 그들을 일컬어서‘환향녀’라고 했던 거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전쟁 중에 끌려가고 정절을 잃은 여인들을 어떻게 받을 것이냐. 한강을 비롯해서 여러 강을 지정해서 자기 지역으로 가면서 그 강을 건너면서 목욕을 하는 자에게는 과거를 일체 묻지 않겠노라. 서울에서는 세검정과 이어진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들어오는 여인들에 대해서는 일체 잘못을 묻지 않겠노라. 누가 잘못했어요? 지도자가 잘못했고 남자들이 잘못한 거죠. 상민들은 잃었던 가족을 되찾고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받아들였습니다만 놀랍게도 양반 사대부들은 그 여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정승 며느리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목을 매고 죽었어요. 물에 몸을 던져 죽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갔어요. 피눈물을 흘리면서 차라리 이제까지 살던 남의 나라 땅이지만 그곳에 돌아가서 살겠노라. 여러분, 비극이에요. 이 얼마나 위선이에요. 누가 가문에 먹칠을 한다는 겁니까.

   교회의 생명력은 참 신비합니다. 환란 속에 있을 때 오히려 더 왕성해요. 평안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 넘쳐날 때 오히려 교회는 타락하게 돼요. 본질을 잃게 돼요. 예수님을 좇던 제자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주님, 우리는 저 부자와 같지 않게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얻겠습니까?’‘그래,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으니 너희가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영생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거 하나 기억하라.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이게 무슨 말이에요. 먼저 믿었습니다. 잘했어요. 그러나 오늘도 이 생명과 은혜와 은총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뒤늦게 예수 믿는 저 사람은 뭔가 마음 속에 감격이 있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거잖아요. 먼저 믿은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주님이 말씀하셔요. 지금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올라가시는 길이에요.‘십자가 사랑의 은총을 기억하라.

   여러분, 누가 늦게 온 사람입니까? 저는 신앙선배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늘 기억합니다. 나야말로 늦게 온 사람이구나. 모태로부터 신앙 생활하는 가정에서 자라났고 하나님이 많은 사랑을 베푸셨지만 이제서야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늦은 자 중에 늦은 자로구나. 오늘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 그 사람이 먼저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