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이른 비와 늦은 비[I have a dream,하나님순종하는 열정=기적]/장영수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6:49

081109 이른 비와 늦은 비 ( 2:21-27)

성경본문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찌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지난 주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결과를 다 아실 것 입니다. 참으로 역사적인 사건이죠. , 역시 미국이다. 역시 세계를 이끌어 나갈 자격이 있는 나라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역사에 뿌리가 있어요.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지 40년 만에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 졌어요.

그의 역사적인 연설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is afternoon. 1963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지 100주년 되는 그 날에 그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피부 빛으로가 아니라 그 인격으로 평가 받고 대우받는 그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연설이었어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 이제 자유가 왔습니다. Free at last. 드디어 자유입니다. Thanks God, 하나님 감사합니다. We are free at last. 드디어 우리가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우리가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 사실로는 오늘 자유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날 그렇게 외치며 기도하지 않았다면 40년 후 오늘 이런 사건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오늘 성경을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농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뭄으로 굳어진 땅에 하나님이 비를 내리셔서 땅을 부드럽게 할 때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시작해요. 그때 비가 오지 않으면 한해 농사를 망치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른 비를 주셔야 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열매를 거두기 전에 늦은 비를 주셔야 제대로 열매를 맺게 되고 수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른 비도 주시고 늦은 비도 주시는 하나님.

오늘 단순히 오바마의 승리가 아니고 40년 전 한 세대 전에 자유를 외치다가 총을 맞아 쓰러졌던 마틴 루터 킹의 희생 위에 오늘의 결실이 있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미국보다 더 드라마틱한 나라가 있어요. 그게 바로 우리나라에요. 우리나라 백 년 역사를 보세요. 주권을 빼앗기고 짓눌리고 해방이 되고 자유를 찾았는가 싶더니 또 남북으로 나뉘고 전쟁이 나서 잿더미가 되고 한겨레가 갈등과 미움 속에 빠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어요.

피터 드러커 <Next Society>라고 하는 책의 서문에서 1945 2차 대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나라는 미국이 아니고 한국이다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20년 동안 무섭게 변할 나라도 미국이 아니고 한국이다 라고 말했어요. 실제로 그래요. 놀라운 일이에요. 서양 많은 나라들이 2, 300년에 걸쳐 이루어 왔던 산업화, 민주화를 우리는 한 세대 만에 이루어 냈어요. 그 짧은 시간에 그것을 이루다 보니까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산업화를 이루는데도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또 민주화를 이루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드디어 선진화를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진화 역시 거저 되는 것은 틀림없이 아니에요. 우리의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어요. 사람들의 기대를 하나님이 철저하게 배반하고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되면 큰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철저하게 실망했어요.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 갈망했는데 또 다시 철저하게 실망하게 만드셨어요. 다 하나님의 시간이 있고 방법이 있는 것이죠.

한국교회는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 근대 현대 역사 속에 함께 호흡해 왔습니다. 산업화가 일어날 때 새마을 운동을 하고 가난을 벗어버리려고 할 때 한국교회는 민족 복음화를 기치로 내걸었어요. 그때의 복음은 예수를 믿어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보자 했어요. 또 크리스쳔 중 일부는 사회의 정의와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피를 흘렸어요. 이제 선진화를 이야기하는 글로벌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부산을 가시는 분은 반드시 경부선을 타야 돼요. 호남선을 타고 가면 아무리 가도 부산은 안 나옵니다. 기차 안에서 싸우는 한이 있어도 목적지는 분명히 하고 가야 합니다. 왜 혼란이 없겠어요. 사랑하겠다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너와 나,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사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떻게 열정이 끓어 오르는 한국사람이 하나가 되려 할 때 어찌 혼란이 없겠어요. 그러나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어요. 그걸 봐야 하는 것이죠. 글로벌 시대에 세계 복음화를 이루시기를 원해요.

세계 기독교 역사 속에 유례가 없이 100년 만에 놀라운 부흥을 이룬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오늘날 한국의 제일 수출품은 반도체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닙니다. 복음이에요. 전세계 선교사들의 상황을 보면 미국의 선교사들은 갈수록 줄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고 있어요. 그 빈자리를 젊은이들이 메꿔주지를 못하고 있어요.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한국을 가만 내버려 두시지를 않아요. 오늘날 세계 시장을 BRICs 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BRICs 다음에 NEXT ELEVEN이라는 게 있어요. 11개의 주목할 만한 나라, 그 나라 중에 가장 앞서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에요. 주목 대상이에요.

골드만 삭스에서 전망하기를 205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다. 역사가 바뀔것이다. 이번에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어요. 서로 친한 나라들에게만 달러를 빌려주고 있어요. 중국도 부지런히 동맹을 맺을 수 있는 가까운 나라들에게 달러를 빌려주고 있어요. 싸움은 시작된 거예요. 2050년 경에는 역전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또 하나의 굿뉴스가 있어요. 2050 1인당 GNP는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될 것이다. 오늘날 이 경제 위기의 고통 속에 있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어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세계에서 우리나라보다 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뛰어드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뛰어든다는데 하나님이 그 돈을 어디다 부어 주시겠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한국 사람이 성격도 급하고 제멋대로 이고 말도 잘 안 듣지만 하나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기우뚱거리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어요.

이건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모델이기도 해요. 말씀을 전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배고파했어요. 그러자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오병이어 떡 다섯 덩어리,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이적을 베푸셨어요. 필요할 때 이적을 베푸셨어요.그러나 그게 궁극적인 일은 아니었어요. 또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그 이적을 보면서 자기 출세를 꿈꾸는 제자들에게 인생의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셨어요. 마가복음 1045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함이니라. 내 목숨을 희생제물로 내어놓기 위해서 왔노라. 누구든지 낮아지는 자는 으뜸이 되리라. 다 멋있게 살기를 원하고 일등이 되기를 원하잖아요. 세상의 기준으로는 일등은 한 사람밖에 될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기준으로는 모든 사람이 일등이 될 수 있어요. 낮아지는 자는 일등한 거예요. 낮아지는 자는 승리한 거예요. 여기에 고민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낮아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오늘 본문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뚜기 재앙이 왔어요. <대지>라는 펄벅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메뚜기 떼가 덮쳤어요. 다 먹어 버렸어요. 메뚜기 떼가 지나가서 아무것도 안 남았는데 이번에는 또 황충 떼가 와서 그나마 작은 싹도 다 먹어버리고 그 다음에는 늣[느치=개역개정]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 팟종[팥중=개역개정]이가 나타나고 메뚜기 종류들이 거듭 와서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람은 고사하고 들짐승도 먹을 것을 찾지 못했어요. 경제대공황이죠. 농업사회에서 생존의 위기에 부딪히게 됐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셔요. 이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속히 내게로 돌아오라. 옷을 찢지 말고 너희의 마음을 찢고 내게로 돌아오라.

옛날에 유대인들은 금식할 때 자기가 통렬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옷을 찢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아셨어요. 옷을 찢지 말고 너희의 마음을 찢어라. 내가 너희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고 있다. 너희가 마음을 찢고 돌아선다면 너희에게 구원을 베풀리라. 비를 주겠노라. 이른 비도 주시고 늦은 비도 주시겠다. 말씀하는 거예요. 비를 주시니 땅이 살아납니다. 땅이 기뻐하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조금 있으니까 싹들이 일어나요. 들짐승들이 먹을 것이 생겼다고 기뻐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거예요. 드디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노래합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기뻐하고 춤추고 노래할찌어다.

여러분, 사실 경제위기를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죽지는 않아요. 정말 우리의 문제는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죠.

여러분 덕분에 몇 주간 휴가를 얻어서 미국도 다녀오고 한국에도 머물고 좋은 시간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제가 떠나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번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꼭 들어야 할 소리를 듣게 하시고 정말 나를 살리는 말씀을 주십시오.

여행 중에 여러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 중에 좋은 책을 발견했어요. <도림교회 70년사>,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에 도림교회라고 있어요. 지금 역사가 82년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70년 역사책이 있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만나 뵙고 말씀 나누다가 그 책을 받았는데요.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았어요. 흔히 목사를 중심으로 기록한 역사책이 아니었어요.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그 많은 구성원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왔는가 하는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다행히 70년사였고 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책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살아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초기 역사를 기록한 책이었어요.

제가 원래 영등포 사람이거든요. 100여 년 전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경부선 철로를 놓고 경인선 철로를 놓을 때 갈리는 지점이 영등포였어요.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조성한 공장지대였더라구요. 많은 이주민들이 모여들고 6.25때는 피난민들이 모여들어서 구성된 그런 곳이었더라구요.

거기 보면 교회를 처음 이룰 때에 볼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어디 가나 사업을 잘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자기의 재산으로 교회를 섬겨요. 또 가난하지만 기술이 좋은 분이 있어요. 거기에도 목수가 나오더라구요. 그 분은 늘 교회를 몸으로 봉사하셔요. 늘 기도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 분은 자나깨나 교회를 지키며 기도하죠. 그렇게 교회가 서는 거예요.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어요. 마치 조각그림이 맞아 떨어지듯이 그렇게 교회가 이루어 지는 거예요.

남의 교회 이야기지만 전혀 낯선 느낌이 없었어요. 마치 내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이 이름도 얼굴도 보지 못했고 이미 다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그 분들 무릎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감동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백 년 만에 한국교회가 부흥을 이루는데 어찌 미지근했겠어요. 한국교회가 비록 오늘은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 시작과 성장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희생과 눈물과 인생이 녹아 들어 있는 거죠. 저와 여러분은 한마음교회의 벽돌 한 장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길 원해요.

우리는 어떠한 신앙으로 나아갈 건가. 그 원로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셔요. 그때 철로 변에 사는 사람들과 목회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날마다 그들을 심방하며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 신유의 이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차츰 삶이 넉넉해 지면서 목회의 초점이 사회 봉사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렇죠.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서 메시지의 초점이 옮겨가게 되고 교회의 방향이 옮겨가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거죠. 그렇다면 자카르타 한인사회, 이 사회 속에 우리의 초점 어떻게 맞춰져야 할 것인가. 지정의(知情意)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신앙인.

사람이 얼마나 완악한지요. 죽은 사람이 살아나면 물론 깜짝 놀라지만 내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면 혹 변화될까 남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건 나하고 별로 관계가 없어요. 우리는 그만큼 둔해요. 남이 말기암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것 보다는 내 손톱 밑의 가시, 그게 더 아프고 이게 빠지는 게 더 시원해요. 그게 인간이에요. 그러므로 지금은 다 필요하지만 지정의의 조화와 균형을 가진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아야 하는 거죠.

2006년도에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The Revolutionary Wealth>라고 하는 책을 썼죠. 참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었어요.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이때까지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인간의 기본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그것을 심층기반이라고 얘기하면서 시간, 공간, 지식이라는 거예요. 시간, 공간, 지식을 지배하는 자가 부를 지배한다는 거예요. 그 말은 시간, 공간, 지식을 새롭게 이해하는 자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시간, 누가 빠르냐 이거죠. 공간, 누가 미개척지를 먼저 찾아내고 그곳으로 나가느냐. 21세기는 동양과 우주가 새로운 부가 잠재되어 있는 곳이다. 그곳으로 빨리 진출하는 나라가 부를 얻을 것이다. 그런 말이에요. 지식, 지금 인터넷 혁명으로 인터넷에 한번 들어가 보세요. 쓰잘데없는 지식이 쓰레기같이 쌓여 있습니다. 잘못 클릭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정처 없는 여행을 하다가 겨우 빠져 나오게 돼요. 그런 지식이 아니라 정말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저는 그것을 우리 신앙에 대입시켜 보았어요. 시간의 문제가 뭔가. 이 짧은 시간 속에 어디에다가 초점을 두고 살 것 인가. 여러분, 왜 사는지 아세요?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사는 거예요. 백 년을 살기 위해 사는 거 아니에요. 높은 빌딩을 세우기 위해서 사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 사는 거예요. 하나님 만난 사람이라면 오늘 하나님이 불러도 하나도 아쉬울 거 없어요. 뒷일은 다 하나님이 책임지는 거예요. 십자가의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초점을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께 맞춰야 해요.

또 공간, 어디에 보화가 있느냐. 잠언 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기 인도네시아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면서 늘 느끼는 것은 우리가 가진 건 저들보다 훨씬 많은데 웃기는 저들이 훨씬 더 많이 웃어요. 이게 어찌 된 일이에요. 여기까지 나와서 살면서도 얼굴이 굳어있으니 아니에요, 정말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돼요. 우리의 마음 속에 무궁무진한 보화가 있어요. 삶의 진정한 기쁨이 있어요. 그러므로 빌립보서 46-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또 지식은 뭡니까. 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발견한 지식이 있어요.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이날까지 자랑했던 가문과 학식과 경험 이 모든 것, 그리스도를 발견하고나니 이 모든 것은 쓰레기 같았다. 오해하시면 안돼요. 공부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열심히 공부해야 돼요. 열심히 노력해야 돼요. 그러나 그리스도와 비교해볼 때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 열쇠라는 것이죠. 이런 지적 이해를 갖는 신앙인, 그런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거예요.

성경이 말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이른 비는 굳은 땅을 부드럽게 하는 비예요.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내리리라. 또 늦은 비를 주셔요. 우리의 인생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까? 그래서 전 자기 전에 꼭 그런 기도를 해요.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이 될지라도 아무런 여한 없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십시오.

<해란강의 어부>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중국 연변에 가서 선교하시는 김만식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분이 자라날 때 얼마나 가난했던지 스스로 생각해낸 대책이 뭐냐 하면, 내가 빨리 월남전에 가야겠다. 가서 죽어야겠다. 내가 죽어야 그 보상금으로 우리 집이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치고 일어나겠구나. 얼마나 가난했으면 그랬겠어요. 드디어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해병대를 들어가고 해병대에서도 빨리 월남가게 해달라고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월남을 갔어요. 그 부대원 400명중에 200명이 죽고 200명만 돌아왔어요. 그런 위기 속에서 자기 눈 앞에서 수 많은 사람이 쓰러져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어요. , 자기는 죽으러 왔기 때문에. 내가 죽어야 우리 집이 살기 때문에. 참 별난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어요. 다행히 월남 갔다 온 덕에 그 집이 일어났어요.

다음에는 또 미국병에 걸렸어요. 내가 이 가난을 아예 끊기 위해서 미국에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 10년 동안 미국 가게 해 달라고 온갖 수단방법을 다 쓰는 거예요. 조금 이상한 분이에요. 드디어 미국 갔어요.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종으로 부르셨어요. 중국 연변에 선교사로 갔어요. 여러가지 부족한 면이 많이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열정이 있어요. 바로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그를 들어 쓰시는 거예요. 말씀이 심겨지고 싹이 나는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란 말입니다.

앤디 그로브라고 그 유명한 인텔의 회장이 그랬죠. 미친 사람이 세계를 이끌어 간다. 여러분, 너무 미친 사람 욕하지 마세요. 알고 보면 그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요. 좀 보기 민망해서 그렇지, 자기는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러고 보면 우리도 한번은 다 미쳤던 경험이 있어요. 미치지 않고서는 결혼할 수 없어요. 멀쩡한 정신으로 자기의 계산이 뻔한 사람은 시집가고 장가 갈수 없어요. 다 하나님이 눈멀게 하시는 거예요. 제일 미련한 사람이 아직도 눈멀지 않은 사람이에요. 한번은 눈 멀어야 시집 장가 가는 거예요. [Sunday 27 June 2010, 열정은 기적을 낳는다=5:17-26]

신앙이란 하나님의 사랑에 눈머는 것이에요. 신앙이란 다른 거 아니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에 눈 먼 사람이에요. 십자가의 은혜를 알았기에 내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거예요. 놀랍게도 그럴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오병이어의 이적에 대해서 좀 불순하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어린 아이가 도시락을 예수님 앞에 내어놓으니까 어른들이 부끄러워했다. 자기들도 먹을 거 챙겨왔는데 다른 사람과 나눠 먹으면 빼앗길 까봐 웅크리고 있었는데 어린아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다 자기 도시락을 내어놓고 나눠 먹었더니 아주 풍성히 먹었다. 아주 인본주의적인 해석입니다. 그러나 실제 오늘의 현실 속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이에요. 우리 교회가 조금 어려움도 있잖아요. 그러나 한 사람이 백보를 앞서 가려고 할게 아니라 우리 모두 백 명, 이백 명이 한 보씩만 가면 그 태산 같은 문제는 와르르하고 무너지는 거예요. 그런 은혜에 여러분이 함께 하시기를 원해요.

제가 <도림교회 70년사>를 보면서 하나님, 우리 교회가 70년이 되고 80년이 되어서 교회사를 기록할 때 목사 이름만 기록할 게 아니라 들풀 같은 우리 모두의 땀과 눈물과 기도가 모아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그런 교회로 기록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입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오늘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으로 지켜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눈을 밝게 하셔서 십자가의 사랑, 그 놀라운 은총을 깊이 깨닫고 오늘을 감사하고 오늘의 고난까지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이 짧은 삶을 하루도 허비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