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교회의 비밀 [상대성원리,헬라어,무소유]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0. 8. 2. 17:13

교회의 비밀

2008 9 21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1:15-23)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로 기억합니다. 때때로 학교에서 예방주사를 단체로 맞는 일이 있게 되죠.“자, 오늘 이 반이 예방 주사를 맞는다. 나와라.”하면 아이들이“아이고”하고 몸을 떨지 않습니까? 그거 일년에 몇 번씩 있는 일인데, 제가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주사 맞는다고 그러면 다 움츠리고 줄을 서라 하면 다 뒤로 피하고 그러는데, 그럴게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언제까지나 주사 그러면 뒤꽁무니에 매달리고 피하려고 하는가.’그런 생각이 들어서 벌떡 일어나서 맨 앞에 섰어요. 그리고 얼른 쫓아가서 ‘따끔’하고 맞았어요. 그일 이후로 주사 맞는 일에 대해서는‘그게 뒤에 서 가지고 움츠러드는 만큼 힘의 낭비이기도 하고 불필요한 두려움으로 자기를 가두는 일이다’하고 그날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어려운 일이라면 도망가겠지만 주사 맞는 거야 얼른 가서 한 대 맞는 것이 차라리 후련하고 낫다는 거죠. 적극적 자세, 또 올바른 이해, 참 중요하죠.

   제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듣자 하니 구보가 어렵다고 하는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다가 마침 대학에서 마라톤 대회를 한다고 하길래‘내가 한번 뛰어봐야 되겠다. 내가 얼만큼 뛰는지 시험해 봐야 되겠다.’잘 뛰었어요.‘어, 할 수 있구나.’그래서 저는 군에 가서 구보 있을 때마다 오히려 은근히 즐기는 마음이 생겼어요. 쉬운 건 아니었지만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순간순간 어려움을 참고 이기는 긴장감을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구보를 잘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제대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서울대 물리학교수로 있는 제원호 교수의 <시간의 의미>라는 칼럼을 읽고 머리가 다 시원해졌어요. 그 글의 요지는 이겁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원리는 빠르게 운동하는 사람 앞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거예요. , 그렇다면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순식간에 돌아버리는 30Km의 광속의 속도로 움직이는 존재 앞에서는 모든 시간이라는 건 다 멈춰서 있는 것과 같다는 거죠. 그래서 시간과 공간도 운동에 따라서는 상대적으로 변한다 하는 거죠. , 그러면 죽음이라는 것은 시간의 울타리, 공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영원이라고 하는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는 모든 것이 완성된 형태로 머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간으로 말미암아 차이가 생겨나고 그 차이를 변화라고 얘기하는데, 그래서 시간은 변화의 측정 기준이 되는데 시간이 없다면 변화도 없다. 우리가 살아서 숨쉬는 인생이야말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삶이고 변화가 가능한 유일한 기회이다. 그러므로 이 변화를 목적을 가지고 목적 지향적으로 살아야 된다. 이런 글이었어요.

   , 물리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만 보이지 않는 우주의 원리를 생각과 관찰을 통해 찾아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을 보면 물리학적인 원리에다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시는 그 존재를 우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대치시키면  사도바울의 고백하고 딱 들어맞아요. , 아인슈타인은 대단하죠. 어떻게 가정과 직장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관찰과 사고를 통해 이 우주의 원리를 해석해 내어서, 적어도 한 세기만에 우주선을 띄워 달에 보내고 화성에 보내고 하는 모든 것들이 가능케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그 물리학을 알든지 모르든지 다 그 원리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거거든요.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의 교회관입니다. 사도바울이 교회를 보는 눈이에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신다. 그리고 그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분의 몸이다. 교회는 모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교회는 영원과 시간 속의 정거장이에요. 우리는 세상에 살다가 잠깐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임으로써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과 함께 하늘 문을 열고 천상의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영원의 시간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죠. 정거장이에요. 정거장에서 열차를 타면 잠깐 후에 서울을 가든지 부산을 가든지 완전히 바뀌는 것이거든요. 비행기를 탄다면 더 말할 것도 없죠. 아예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거든요. 여기는 터미널이에요.

   또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장례식장이에요. 육신과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죠. 잠깐 우리는 우리의 몸을 떠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날 때에 사람은 사람 되고 교회는 교회 되고 가정은 가정 되고 기업은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목적이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이 있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하는 곳이다. 비슷합니다만 틀렸습니다. 그건 사이비에요. 비슷하지만 아닌 것을 사이비라고 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틀린 거예요.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죠. 어그러진 것이 변화를 겪고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체험한 이후 성경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는 성경학자였습니다.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성경을 다시 읽을 때에 그 성경은 내가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해서 뭔가를 이루어야 하는 행위의 관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나를 위해 이루신 놀라운 사건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하는 놀라운 비밀의 책이 되었던 것이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삶 속에 일어났던 수많은 변화의 증거들을 가지고 이제 교회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곧 닥쳐올 죽음 앞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아니하며 교회를 얘기합니다. 이 교회의 비밀이 뭐냐, 핵심이 뭐냐, 바로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해요.

   제가 신대원을 들어가 보니까 제일 먼저 히브리어, 헬라어를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그것을 공부해야 구약을 공부할 수 있고 신약을 공부 할 수 있다. 근데 남의 나라 언어를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습니다만 저도 아주 고생했습니다. 굉장히 어려웠어요. 내심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히브리어 점수를 받아 보니까 겨우 C플러스예요. 1학기에는 히브리어를 이렇게 겨우겨우 통과를 했는데 2학기에 또 헬라어를 공부한다고 하니까 진짜 고민이 되더라고요.‘어떡하면 좋을까?’그런데 누가 저에게 정보를 줬습니다.‘어디 가서 공부해 봐라. 거기서는 아주 잘 가르친다.’가서 제가 공부했어요. 미리 헬라어를 공부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 옛날에 독일어를 공부하신 분들은 아시죠. 격변화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게 다 헬라어에서 나온 거거든요. 헬라어에도 이런 수많은 격변화가 있거든요. 우리는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지만 그거 착각이에요. 헬라어에서는 한 개의 동사가 엄청나게 많은 변화형을 가지고 있어요. 문법적으로. 그러나 변화의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집중해서 훈련을 하면 어느 동사든지 앞을 보고 뒤를 보면 이게 뭐구나 하는 게 훈련을 통해서 한 눈에 탁 들어오게 돼 있죠.

   그렇게 여름 방학에 준비를 하고 나서 2학기에 헬라어 시간에 들어가니까 이거 뭐, 완전히 놀고먹는 거죠. 휘파람 부는 거죠. 그래서 헬라어 시험에 관해서는 2학기 내내 다 100점을 맞은 기억이 있어요. 어느 날 같이 공부하던 어떤 친구가 저를 만났는데 푸념을 하더라고요. 어제 밤에 단어를 하나 찾는데 도대체 이 단어가 뭔지를 알 수가 없어서 찾다 찾다 2시간이 걸렸다는 거예요. 어떤 단어인지 저에게 보여주는데 보는 순간 미리 공부하고 훈련한 바 있기 때문에 그 원리를 따라서 보니까 이거는 이렇게 되네. 정말 몇 초 걸리지도 않았어요. 그때 참 느낀바 많았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우리가 애쓰고 노력합니다만 분명한 원리를 모르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거예요.

   교회의 비밀은 뭐냐, 그리스도다. 교회는 하나님 만나는 곳이죠. 그래서 예수님 제자 가운데 빌립이 예수님에게 이런 말을 했죠.‘주님,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그랬더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빌립아, 네가 이제까지 이토록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으면서 어찌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드러내신 하나님이에요. 이걸 절대로 잊어버려선 안돼요.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붙이고 쓰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 우리는 그분을 믿는 거예요. 김씨가 많지만 김씨라고 다 내 아버지가 아니잖아요. 그 김씨 중에서도 아무개씨가 내 아버지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드러내 보이신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오늘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사실 사도바울의 이 교회론, 교회의 핵심은 그리스도다 라고 하는 이 고백은 사도바울이 예전에 스데반을 죽일 때에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결정적인 충격을 받은 거죠. 스데반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많은 사람 앞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지 않습니까. 그 설교 핵심이 뭡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관통하면서 두 가지로 압축해서 얘기해요.‘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성전과 율법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참된 성전은 무엇이냐. 건물이 아니고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성전이시다.’이게 바로 스데반의 발견이에요.‘그리고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주실 때에 우리는 그 사랑에 감동되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넉넉히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과 율법에 매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니 그것은 곧 그리스도와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이 말을 하고 돌에 맞아 죽은 거예요. 이 말을 했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은 거예요.

   그는 증언이 얼마나 참된 것인가 하는 것을 그의 얼굴로 다 드러냈어요. 천사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저를 죽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인으로 자처했던 바울이 죽어가는 스데반을 바라보면서 저는 육신이 쓰러져 죽지만  얼굴에 광채가 나며 천사의 얼굴이 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거죠.‘나는 지금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데 지금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그 얼굴의 평안의 비밀은 무엇인가.’그것이 내내 궁금했던 것이죠. 그리고 자기도 다메섹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스데반이 그토록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된 거죠.

   예수님은 유월절에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성전에 가셨죠.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양과 염소를 팔고 사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서 돈을 바꾸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득 찬 성전의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시면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다 내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아라.’그러면서‘너희가 이 성전을 다 헐어버려라. 내가 사흘 만에 성전을 다시 일으키겠노라.’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무려 46년 동안 지어지고 있는 성전이었어요. 완성된 게 아니에요. 지어지고 있는 아주 화려한 성전이었어요. 그런데‘헐어버려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아니, 어떻게 당신이 이 성전을 사흘 만에 일으킨단 말이오.’사람들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제자들도 이해 못했어요.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야 제자들이 그 말씀을 기억하고 깨닫게 되었어요. 그것은 뭐예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교회가 비로소 교회 된다고 하는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죠. 예수님도 좀 짓궂으신 분이에요. 그걸 누가 알아들었겠어요. 부활하신 후에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비로소 깨닫게 하신 거죠.

   여러분, 이게 바로 영적 원리예요. 한낱 물리학적인 원리와 같이 하나의 공식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살아계신 인격이 숨쉬는 영적 원리죠.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성도의 축복이 있습니다. 부르심이에요. 첫째는 부르심의 축복이에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안에서 우리의 모든 과거를 바라볼 때 우리는 끝없이 흔들렸지만 시시때때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요. 그걸 믿음으로 받아야 돼요. 또한 오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살아가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 약속하셔요. 이게 우리의 현재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먼저 받고 복을 나누면서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에요. 마지막에는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셨던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변화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제가 신대원 중창단으로 유럽연주여행을 다닐 때 우리 일행이 덴마크를 가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유레일 기차를 타고 덴마크를 가게 되었는데 코펜하겐을 가려면 거기는 섬이잖아요. 우리끼리 논쟁이 벌어졌어요.‘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어떻게 갈 것 같은가?’두 가지로 의견이 나뉘었어요.‘틀림없이 기차로 가고 어느 종착역에서 내려서 배로 갈아타서 거기서 다시 기차로 움직일 것 같다.’또 어떤 사람들은‘혹시 기차가 배 안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열 명이 의견을 모았더니 절대다수가‘기차를 내려 배를 갈아타고 다시 기차로 갈아 탈 거다.’그랬죠. 그랬는데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기차가 배 안에 들어가더라고요. , 장관이데요. 물론 다 들어가지는 않고 딱 세 칸이 들어가더라고요. 배 안에 레일을 깔아가지고 기차를 집어넣은 거예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기차 안에 있으면 배 안에 있고 그대로 바다를 건너가는 거예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시면서 누렸던,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부르심의 은총,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약속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복을 나누는 은혜, 그리고 죽을지라도 부활의 승리를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먼저 이루는 그것을 우리가 그대로 누리는 것이죠. ,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단 하나,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죽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사시는 거죠. 그가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거죠. 항상 그에게 물어보는 거죠. 그를 의지하는 거죠. 신뢰하는 거죠.

   제가 예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이왕이면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유대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늘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얼마나 즐겁게 따라다녔을까.’이게 바로 시간과 공간에 매여 육신을 입은 사람의 한계죠. 감각에 의지하는 사람의 한계죠.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의 한계죠. 우리가 그런 줄 하나님이 잘 아시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육신을 벗고 시간과 공간의 틀을 벗어나서 영원 속에 계시므로 이제는 아담으로부터 우리 후대의 모든 사람을 한 순간에 만나시는 거죠. 그리스도께서 영원 가운데 계시면서 만물을 다스리신다 하는 말은 지금 내게 찾아 오셔서 나를 만나주신다 하는 말씀이에요. 말씀으로 내게 오셔요. 그리고 성령으로 오셔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해주셔요.

   ‘칼 바르트’라는 유명한 신학자가‘예수님은 세 번 오신다. 사람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셨고, 마지막 날에 재림주로 오실 것이다. 그러나 또 한번 성령으로 교회 가운데 오신다.’했어요.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할 것입니다.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을 통해서 깊이 알 것입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그의 뜻을 밝혀 보여주시는 것이죠. 이게 바로 교회의 비밀이에요. 

  ‘핫 초콜릿’이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한 대학 동창들이 모처럼 만났습니다. 예전에 자기들을 가르쳤던 노 교수를 방문하기 위한 모임이었어요. 자기들도 너무 오랜 만에 만났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다 열심히 해서 성공했어요. 한참 자기 자랑들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랑은 다 지나가고 성공 뒤에 가려져 있는 스트레스와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솔직히 내어놓고 얘기를 합니다. 성공한 사람치고 누구 하나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없어요. 노 교수의 집에 갔습니다. 반갑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노 교수가 핫 초콜릿을 대접합니다. 집에 있는 여러 가지 컵들을 이것저것 모아서 내었습니다. 컵들을 하나씩 하나씩 골라 듭니다. 예쁘게 생긴 것도 있고 좀 비싸 보이는 것도 있고 하나씩 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어요. 핫 초콜릿을 부어주면서 노 교수가 말합니다.“자네들이 들고 있는 이 컵이 자네들의 인생의 문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 준다네. 이 컵은 자네들이 이제까지 이루어온 직업과 돈과 사회적 성취를 비유하는 것이네. 컵은 삶의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네. 정작 우리는 핫 초콜릿을 마시려고 하는데 그것을 담고 있는 컵에만 몰두하면서 어떤 것이 더 아름답고 어떤 것이 더 비싸고 어떤 것이 더 좋은가를 이야기하네. 그러나 진정한 행복자라면 본질을 붙들어야 할 것이네. 최고를 찾지 말고 지금 주어진 삶 속에 최선을 찾도록 하게. 단순하게 살아라. 너그러이 용서하라. 세심하게 돌봐라. 그리고 친절하게 말하라.”이런 교훈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돈이고 지위고 다 내려놓고 가난한 마음이 돼서 비로소 인생의 소중한 가치에 눈뜨게 되지요. 부활의 약속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이것을 넘어서야겠죠.

   오늘 사도바울은 말합니다.‘부활의 약속이 있기에 감사하며 기도하며 자기의 신앙을 당당하게 고백하라.’여러분, 우리의 남은 날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을 나의 마지막 날 같이 여기며 하나님 앞에 경건한 모습으로 신앙을 붙들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