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0731 말씀을 즐겁게 듣더라 (막 12: 35-37)<The Heaven is for real>[천국은 진짜 있어요]/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8. 15:29

110731 말씀을 즐겁게 듣더라 ( 12: 35-37)

성경본문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기업체에서 신입사원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채용한 것을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면접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들어와서는 열정이 부족한 사람, 책임감도 부족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쉽게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기려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을 뽑게 된 까닭이 무엇이냐? 급하게 서둘러 사람을 뽑다 보니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반대로 사람을 뽑았는데 만족하는 경우는 어떤 것이냐?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배우며 일하는 것을 볼 때에 그를 뽑은 사람은 기쁘죠. 사람이 열정이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인생을 아름답게 성취하며 살려면 열정이 있어야 되요.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조건을 들라면 지혜라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해리포터 시리즈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조앤 롤링이라는 올해 마흔 여섯살의 여자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1997년부터 14년 동안 일곱 권의 책을 썼으며 그것은 8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나왔습니다. 책은 4 5천만 권이 팔렸으며 67개국에서 번역이 되었지요. 그 여자의 재산은 현재 약 10억 달러, 1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 전, 1997년 만하더라도 얘기가 전혀 달랐어요. 대학 졸업 7년 후 나이 서른에 인생을 중간 결산해보니까 그녀는 결혼생활에 실패해서 어린 딸 하나 딸린 이혼녀였고 직업도 없었어요.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작은 아파트에서 정부보조금으로 겨우겨우 살아야 했어요. 어찌 걱정근심이 없겠습니까?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글을 쓸 공간이 없어서 아기를 유모차에 재워 놓고 카페 한 구석에서 글을 써야 했습니다. 그 글을 출판사에 제의했는데 줄줄이 퇴짜를 맞아 13번째 출판사에 가서야 오케이 사인을 얻었던 것이지요.

  2008년도에 하버드대학 초청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패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준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가장 중요한 일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게 했다. 만일 내가 적당히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살아있었고 길러야 할 사랑하는 어린 딸이 있었고 다행히 구식 타자기가 하나 있었고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 위에 인생을 새롭게 세울 수 있었다.’

 여러분! 실패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 이게 지혜 아니겠어요? 인생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열정과 지혜는 어디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타고나기를 똑똑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지요. 또 열정을 타고 난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여러분, 여기 열정과 지혜의 샘이 있어요. 그게 뭐냐? 우리 인생을 향한 영적인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 바로 그것이에요.

 <3>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원래 이 책의 원제목은 <The Heaven is for real>, 아이들 어투로 표현 하자면 <천국은 진짜~ 있어요.>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한국어 번역판은 제목을 <3>이라고 바꿨어요. 참 재미있는 표현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바빠서 천국조차도 신경 쓸 겨를이 없거든요. 3분 동안에 일어난 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보라, 이거예요.

  미국의 시골 목사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그의 별명이 욥 목사예요.  왜냐하면 야구하다가 발목이 부러져서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그게 나을 즈음에 신장결석으로 또 입원하게 되었어요. 다시 나을 때쯤 되니까 전혀 뜻밖에 유방암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던 거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네 살짜리 어린 아들이 급성맹장 수술 받았는데 그만 사경을 헤매는 겁니다. ‘욥 목사가 하나님께 내가 이렇게 시달리는 것도 부족해서 내 아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부르짖는다는 이야기예요. 감사하게도 사경을 헤매던 아이가 회복이 되었어요. 다시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어요.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이 네 살짜리가 종종 깜짝 놀랄 말을 하는 거예요.  자기가 수술 받을 때 아빠는 기도실에서 부르짖고 기도하고 있었고 엄마는 병상에서 눈물 흘리고 있고 의사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있는 걸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니?’ 했더니 난 그때 예수님 무릎에 앉아 있었는데요?’하는 거예요. 천국을 경험한 거예요. 지금은 그 아이가 11세 소년이 되었습니다만 사경을 헤매던 그 시간은 분명 3분이었는데 아이는 그 동안에 우리가 마치 한 순간에 천국을 다 돌아보고 온 거예요. 그리고 툭툭 던지는 말이 부모를 깜짝 놀라게 하는 거예요. 지상의 시간으로는 3분 이었습니다만 그 순간에 아이는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경험하고 천국의 모든 것을 보게 되었어요. 돌아온 이후에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는 여전히 공부해야 되고 먹어야 되고 자라나야 되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지만 그 마음속에 놀라운 고백을 가지고 있어요.

  친척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어요. 친척들이 다 모여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대하고 슬퍼하는데 이 아이는 할아버지 손을 잡으면서 아무것도 걱정 하지 마세요. 천국에 가시면 예수님이 마중 나올 거예요.’  목사 아빠가 그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뭔지 아니?’ ‘네 알아요. 예수님이 저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그렇게 죽으셨대요.’ 여러분, 그게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이유예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생명의 원천이에요.

 이 아이가 길을 갈 때 왔다 갔다 뛰잖아요. 그러다가 차에 부딪치면 큰일 나지 않겠어요?  아빠가 걱정이 되어가지고 얘야! 너 그러다가 차에 부딪치면 죽는 거야, 어쩔려고 그래그러자 그럼 난 예수님을 또 만나게 되겠네요도대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거예요. 부부가 한참 논의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겼어요. ‘그래도 순서가 있잖니, 아빠가 먼저 예수님 만나고 너는 나중에 천천히 만나도 되지 않니.’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실상을 보게 되는 거예요.

 또 하나는 이 아빠가 시골교회의 목사니까 그런 모양 이예요. 마을의 의용소방대장이에요. 또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이기도 해요. 또 사업도 해야 되요. 비즈니스도 하면서 주일에 교회를 섬기는 거예요. 아마 경제적으로 어려운 모양이에요. 그러니 책 읽는 시간이 늘 모자라지 않겠어요? 설교해야 되는 목사로선 부담이 큰 거예요. 엄마가 어느 날 얘야, 아빠를 위해서 기도해야겠다. 아빠가 좀 더 책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그랬더니 아이가 말하는 거예요. ‘아빠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요. 내가 봤어요.’ 엄마 깜짝 놀랬습니다. 남편한테 얘기 합니다. 아빠 목사가 아이를 불러서 묻습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 ‘우리가 기도하면 아빠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님이 함께 하셔요.  아빠에게 능력을 주셔요.’ 우리가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신 마지막 주간, 정확히 말하면 화요일이에요. 이날을 논쟁의 날이라고 해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나 제사장이나 사두개인 등 많은 사람들과 논쟁을 하신 날이에요. 그 다음 수요일은 침묵의 날이예요. 그날은 조용히 베다니에 물러가서 하루 종일 다른 말씀 하시지 않으셨어요. 십자가 죽음을 생각하며 기도하셨던 것 같아요. 목요일에는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붙들리셔서 밤새 거짓 재판을 받으시고 금요일 아침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긴박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지요.

 본문은 많은 논쟁 중의 한 대목이지요.  예수님이 말합니다. ‘바리새인 중에서도 신학자인 서기관들은 말하기를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시편을 읽어 보라. 시편 110 1절 말씀에, 다윗이 말하기를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수들을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보좌 옆에 앉아 있으라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구약 시편 110 1절 말씀을 인용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글로 번역하다 보니 좀 복잡해졌어요.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에서 주라는 표현이 두 번 나와요. 이 문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님이신 예수님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뒤에 나오는 주님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거예요. 다시 풀어서 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야 되신 내 주님에게 말하시기를 너는 내가 모든 대적들을 내 발아래 꺾어놓을 때까지 내 보좌 우편에 앉았으라, 이런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다윗이 메시야를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이 물음에 대해서는 서기관, 신학자들이 아무 말도 못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백성들은 아주 즐겁게 들었어요. 원래 이 말씀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을 한 것이지요. 다윗이 어떻게 메시야의 비밀을 알았겠어요.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임하셔서 예수님의 눈을 여사 하나님 보좌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말씀을 읽고 생각할 때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셨던 것이지요. 성경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말해요. 보혜사란 선생님이란 뜻이에요.

 보혜사 성령이 하시는 일이 뭐냐?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게 하시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현실 속에 응답되도록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분이시죠. 일류 학교는 학생들도 일류지만 선생님들도 일류예요.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 주지요.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인생길에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려주시는 분이에요.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능력을 부어주시고 응답을 주시는 분이에요. 나중에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도 예수를 모르는 자에게는 절망이요 죽음이요 고통이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순간 하늘 문이 열리고 저 멀리 하나님의 보좌가 보이고 천사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기쁨으로 나아가 천국 문 앞에 설 때 예수님이 두 팔 벌려 맞아주신다고 약속하셔요.

 고린도후서 3 17절에 주님은 영이시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명을 마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셨고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세요. 영으로 계세요.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찬송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을 부어주세요. 이 기쁨이야말로 우리를 자유케 하는 능력이에요. 사람이 이런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을 때에 나의 감성은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되고 나의 이성은 하나님이 시시각각 부어주시는 지혜로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실패가 실패가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우리에겐 죽어도 소망이 있기 때문이지요.

 바리새인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할 말이 없었어요. 고정관념에 매여 있었어요. 사람 앞에서 자기의 지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허위의식에 갇혀 있었어요. 차라리 좀 못 배운 게 나아요. 백성들 보세요. 고정관념이나 허위의식에 매여 있지 않으니까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께 가까이 나와서 생각을 열고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즐겁게 반응하는 거예요. 기쁨이 있는 거예요. 감사함이 있는 거예요. ‘즐겁게라는 헬라어 단어를 찾아보니까 맛있게라는 뜻도 있어요. 말씀을 맛있게 먹는 거예요. 그럴 때 행복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영적인 사실이에요. 여러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호적에 다 기록 되어 있잖아요. 잘 생기건 못 생기건 조건과 관계없이 여러분은 법적으로 한국 사람이에요.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시민이에요. 이것은 영적인 약속이요, 특권이에요. 여러분 것이란 말이에요. 그 이름을 부르세요. 그 이름으로 찬송하세요. 그 이름을 붙들고 한마디 말씀을 마음을 열고 즐겁게, 기쁘게, 맛있게 오늘 내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받아들이세요. 이럴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