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814 우리가 꿈꾸는 나라 ( 시 126:1~6 )
성경본문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아주 오래 전에 서울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섰던 기억이 납니다. 올라가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정상에 서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는 거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역사를 돌아보게 됩니다.
지난 120년 우리의 근현대사는 전쟁의 역사였다고 말하겠습니다. 1894년, 95년 청일전쟁, 10년 후엔 러일전쟁, 다 우리나라가 전쟁터가 됐었죠. 그 결과로 1910년 나라를 빼앗기고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있었고 본격적인 독립투쟁들이 있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그리고 드디어 8.15 해방을 맞습니다. 또 1950년 6.25사변이 있었죠. 완전히 전쟁터였어요.
그런데 학자들이 볼 때에 너무나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아시아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자유를 찾고 독립을 찾았지만 한 세대가 지난 이후 평가해 볼 때 대한민국 같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장한 나라가 없다고 말합니다.
피터 드러커는 <Next Society>라는 책 서문에서 ‘2차대전 이후 50년 동안 대한민국 같이 급격한 변화를 겪은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또 하나, 앞으로도20여 년 이상 적어도 한국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을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랬어요. 정말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이후 오늘의 민주질서를 갖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1960년대 초에 영국의 한 일간지는 이렇게 말했죠.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섰어요. 많은 희생과 피흘림이 있었지만 드디어 이루어낸 것이죠.
안익태 선생이 1960년대 초에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코리아 환타지(심포닉 환타지아 코리아)’, ‘한국환상곡’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여드렸습니다. 1960년대 초라고 하면 아직 가난한 나라에요. 전쟁 잿더미에서 이제 겨우 일어나려고 꿈틀꿈틀하는 나라에요. 그런데 미국 오케스트라 합창단으로 하여금 한국의 고난과 좌절과 전쟁, 그러나 그것을 딛고 소망을 가지고 한국의 미래를 노래하는, 애국가 선율을 주 선율로 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걸 보고 깜짝 놀랬어요. 역시 예술가들은 선지자에요. 시대를 앞서서 내다보는 사람들이에요. 시인이 그러하고 음악가들이 그러하죠. 60년대 초에 그러한 환상을 가지고 미국사람들로 하여금 만세를 부르고 애국가를 부르게 하더니만 드디어는 50년 만에 그걸 현실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죠.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변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역사가 있는 것이죠.
이천 년 기독교 역사 속에 지난 100년 한국교회는 참 경이적인 부흥을 이루었어요. 또 세계 선교에 이렇게 뛰어든 나라가 없어요. 다들 놀라요. 그러나 거저 된 일이 아니죠. 일제의 지배하에서 신사참배에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순교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또 한국교회가 걸음마를 하는 단계에서부터 선교하는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난 100년 한국교회를 돌아볼 때 모델로 몇 분을 꼽아볼 수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방지일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한 시대를 같이 살면서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 한국 교회의 기둥이 된 분들이죠.
주기철 목사님은 당대에 예수를 믿은 사람이에요. 손양원 목사님은 아버지 대에 예수를 믿은 사람이에요. 방지일 목사님은 할아버지 별명이 ‘방예수’였어요. 목숨 걸고 예수를 믿은 분이에요. 그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난 분이에요. 한경직 목사님도 그가 태어나기 10년 전에 그 시골동네에 교회가 세워졌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온 집안이 기독교 신앙 속에서 자라난 것이죠. 신앙배경이 다 다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1897년에서 1944년에 돌아가셨으니까 마흔 여덟을 사셨죠.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생인데 1950년 9.28 서울 수복 바로 그날 여수에서 학살 당하셨으니까 마흔 아홉에 돌아가셨죠. 반면에 방지일 목사님은 1911년생인데 아직도 살아계시니까 올해 101살이 되시는 거죠. 한경직 목사님은 1902년생이시니까 손양원 목사님하고 같은 해에 태어나시고 지난 2000년에 아흔여덟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은 인생 절반 밖에 못살았어요. 두 분은 100세 가까이 살았어요.
또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목숨을 걸고 반대한 사람들이죠. 주기철 목사님은 경상남도 웅천 출생이에요. 그는 평안북도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예수교대학 즉 연희전문 상과를 들어갔다가 1년도 안 돼 자퇴합니다. 뜻을 바꾸어서 평양신학교에서 공부를 합니다. 나이 삼십에 부산에 가장 먼저 세워진 초량교회 담임목사가 돼요. 목회를 잘하셨어요. 마산 문창교회에 문제가 생기니까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로 주목사님 밖에 없다해서 옮겨서 마산 문창교회 문제를 잘 해결하고 부흥시켜요. 그리고는 당대에 으뜸가는 평양의 산정현교회에 사십도 안된 나이에 담임목사로 갑니다. 그야말로 엘리트목사죠. 아주 목회를 잘 하신 분이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젊은 나이에 목회의 성공과 성취를 맛보게 하시더니 그 다음에는 신사참배 투쟁에 선봉이 되게 하셔요. 결국 그분은 6년 동안 일곱 번이나 감옥을 드나들면서 끝까지 신사참배 반대투쟁을 하시다가 옥에서 순교하셔요.
손양원 목사님은 중동중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가 3.1운동 주동자였다는 것이 학교에 전해지면서 그날로 퇴학당합니다. 일본에 건너가서 야간중학을 다니다가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평양신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됩니다. 아주 가난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늘 늦은 나이로 공부하게 됩니다. 평양신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여수 나환자촌 애양원에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소외된 자들과 병든 자들과 낮고 천한 자들과 더불어 삽니다. 그 역시 신사참배에는 목숨을 걸고 투쟁합니다. 1940년에 붙들려 가서 극적으로 해방된 다음 다음날 8월17일에 풀려나옵니다. 신사참배 투쟁에 주기철 목사님이 북쪽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면 손양원 목사님은 남쪽에서 앞장섰던 분이시죠. 주기철 목사님이 목회에 큰 영광을 맛 본 분이라면, 또 손양원 목사님은 아주 낮고 어려운 곳을 평생 지키셨어요. 8.15해방 이후 남한의 대혼란 속에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태가 일어날 때에 그만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동인, 동신 두 아들이 기독학생회였기 때문에 같은 반의 좌익 학생들에게 학살되는 엄청난 일을 당합니다. 본인도 6.25 때 순교하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렇게 한평생 가난과 고난을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어요. 그분의 일기를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가난을 사랑하는 아내로 삼고 괴로움을 선생으로 삼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죠. 이 분도 훌륭했지만 그 아버지가 문중에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며 예수 믿는 것을 어린 손양원이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거예요. 손목사님네 자녀들은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왜? 신사참배를 시키니까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다니다가도 신사참배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다 퇴학당했어요. 참 고난이 많았던 가족입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평양 숭실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게 됩니다. 유학준비를 다 끝냈는데 총회에서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보내야 되는데 거기가 너무 힘든 곳이라고 다들 가려 하지 않으니 당신이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제의를 받습니다. 그런데 방지일 목사님은 대학을 다니고 신학교를 다닐 때에도 뜻을 세운 것이 있어요. 공부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것 아니냐. 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썼어요. 첫째 시간의 1/3을 공부하는데 씁니다. 또 벌어서 공부해야 했으므로 하루에 3시간은 일을 했습니다. 나머지 한 토막은, 이 모든 것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전도를 했어요. 그분은 평양신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평양에서 자전거로 1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오정리’라는 곳에 가서 아이들 주일학교를 시작해서 어른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큰 교회를 세웠어요. 평생을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마음을 두었어요. 그래서 미국 유학을 갈 것이냐, 중국의 산동성 선교사로 갈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결국 내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다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서 하려는 것이 아니냐. 오늘 하나님께서 총회를 통해서 나를 선교사로 보내려 하는데 내가 어찌 가지 않겠는가. 선교사로 갔어요. 1937년에 중국 산동성 선교사로 갔습니다만 37년이 바로 중일전쟁이 일어나는 해였기 때문에 중국이 아주 어수선한 때였어요. 49년에 중국이 공산화됐잖아요. 최후의 선교사로 버티다가 57년에 쫓겨납니다. 그가 21년 동안 선교사로 있는 동안 중국 대륙에는 권력이 다섯 번 바뀌어요. 중국의 국민당 정권에서 일본군 지배로, 해방이 되어 국민당정부가 다시 회복되고 또 내전이 일어나서 공산당으로, 그런 어려움 속에 마지막까지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게 됩니다.
여러분,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서는 더 얘기할 게 없죠. 이런 분들을 통해서 한국 교회가 많은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어왔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이만한 부흥을 이루고 세계선교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문제가 해결된 교회가 더 어려운 법이에요.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죠. 얼마 전에 하용조 목사님이 65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죠. 작년에는 옥한흠 목사님이 70세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두 분 다 깊은 병이 있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그 병으로 참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해봅니다. 오늘날 이렇게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큰 교회 목회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어렵고 불의한 일에 얽혀 들어갈 소지가 많은 것이죠. 하나님이 저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마치 사도 바울에게 평생 떠나지 않는 육체의 가시를 주었던 것같이 그들을 연약하게 해서 하나님께 항상 엎드려서 기도하도록, 그 큰 교회를 이룬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실 때 주셨던 초심을 잃지 않도록 각별한 고난을 주셨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구나.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성경 박사들인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문을 가로 막고 서있는 외식하는 자들이여’. 교회 문을 가로 막는 사람이 누굴까. 오늘 우리 교회 문을 가로 막는 사람이 누굴까. 저죠. 하나님이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네가 똑바로 예수를 믿었다면 오늘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믿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그 어려운 발걸음을 내디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을 터인데.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세요. 우리의 삶에서 세 사람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첫째는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고, 그 다음엔 한 평생 삶을 나누는 아내,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목사에요. 우리가 한평생 살다가 그저 흙으로 돌아갈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죠. 분명 우리의 이 짧은 인생, 백세를 산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 속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계획이 있고 축복이 있고 모든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는 자요,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제 막 연애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간절한 소원이 있어요. 젊을 때 예수를 똑바로 알면 복되고 아름답고 건강한 인생,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의 복을 누릴 터인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갈등하고 길 잃은 나그네같이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쓰러지는구나. 그들 책임도 있지만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안내해야 할 목사의 책임도 무거운 것이죠. 내가 하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올바로 따라간다면 하나님 만나기를 원하는 어린 아이이든 젊은이든 나이 든 분이든 남자든 여자든 사업이 무너진 사람이든 가정이 깨어진 사람이든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지 다 하나님이 고치실 터인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정확하셔요. 우리를 아셔요. 하나님이 제게 기대하는 것은 너도 저 목사님들 같이 큰 인물이 되어라.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정확하게 아시기에 필요한 자리에 세워놓으셔요. 다섯 달란트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에요. 부름 받은 대로 그 자리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지배에서 해방된 사건이잖아요. 바벨론이 넘어지고 페르시아라고 하는 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면서 바벨론 포로로 왔던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는 거예요. 이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하나님의 은총이에요. 그래서 이들은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큰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 포로들을 유대의 남방 시내같이 흐르게 하소서, 유대의 남쪽 광야 시내는 ‘와디’라고 해서 평소에는 바짝 말라있어요. 그러다가 비가 쏟아지면 순식간에 강물이 넘치는 그런 마른 강이란 말이죠. 한 순간 비가 퍼붓더니 강이 넘치게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구원의 역사 속에 ‘오 주님, 우리 백성들을 단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다 해방시켜 주시고 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지난 날 이 해방을 위해서 눈물을 뿌리며 기도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는 기쁨을 주십시오.’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해방 사건이나 우리가 8.15해방된 거나 똑같습니다. 그러나 해방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으로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시대적인 계획이 있어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과 같아요.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너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심지어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라고 까지 말씀하셨어요.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권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총이에요. 해방의 목적은 우리 한국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해서 수많은 나라들을 새롭게 하시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한국을 더 연단하셨어요. 해방됐지만 정치적 혼란 가운데 6.25가 있었어요. 잿더미가 됐어요. 그 가난 속에 경제성장을 이루게 하시고 교회 부흥을 이루게 하시고 오늘날 2만 명이 넘는 선교사를 전세계에 파송하고 있어요. 한국 사람이 안 들어간 데가 없어요.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다 준비해놓으셨어요. 고향을 떠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한민족을 지난 150년 전부터 가난과 고통 속에 내모셨어요. 세계 강대국을 비롯해서 전세계 한민족이 7백만 이상이나 흩어져 있어요. 그렇게 흩어져 모두 다 교회를 세우고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어요. 전세계 5,000여개의 한인 교회가 있어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제가 어느 교수님의 책을 읽었는데 재미있는 표현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시대냐? ‘신광개토대왕시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한류를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것들이 전세계를 덮고 있어요.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요. 이것은 한민족이 새로운 광개토대왕시대를 맞는 거예요. 지난 1984년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이 되는 그 해에 여러 가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한경직 목사님과 CCC대학생 선교회 김준곤 목사님이 주도해서 전세계 기도자들을 모아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전세계 3천 명을 초청했다고 했어요. 10만 명의 교인들이 뚝섬 유원지와 영락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했어요. 세계를 위해서. 그 이후에 지금 30년이 지났습니다만 한국에서 되어진 모든 일들은 그 날 그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거예요. 집중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기도했을 때에 40년 한 세대에 걸쳐 하나님이 기도의 응답을 펼치시는 거예요. 지금 인도네시아 교회가 기도하고 부흥하는 교회에요. 인도네시아가 지금 공룡같이 막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일어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인도네시아를 통해서 이슬람 선교에 큰 문을 여시는 거죠. 틀림없이 앞으로 새로운 40년을 하나님께서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역사를 이루어나갈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안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죠. 우리가 그 현장을 봐야 돼요. 성령의 불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1983년 삼성 이병철 회장의 나이가 73세였다는데 결단을 내립니다. 삼성이 앞으로 살아갈 길은, 자원이 없는 한국이 살아나갈 유일한 방법은 기술집약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이테크 산업에 투자해야 된다. 부가가치를 따지자면 철강 1톤에 20만 원 벌고 자동차 1톤에 500만 원을 벌고 컴퓨터 1톤에 3억 원을 벌지만 반도체는 1톤에 부가가치가 13억 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는 반도체에 승부를 걸겠다. 73세면 이제 손발 씻고 집에 들어가서 쉬시고 돌아가실 날을 준비할 때 아닙니까? 이렇게 창의적이니까 그의 결단으로 인해서 삼성만이 아니라 한국이 다 먹고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시대를 봐야 돼요. 우린 지금 멀리 앞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 내 옆집에 불이 난 거예요. 제가 신혼 초에 옆집에 불이 났어요. 저희가 출타 중이었어요.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얼마나 감사한지 이름도 모르는 어떤 분이 우리 집에 뛰어들어와서 가스통부터 잠갔더라고요. 옆집의 불똥이 튀어 호스에 불 붙기 직전인데 그것을 잠궈줬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교회를 인도하셔요. 그걸 우리가 같이 봐야 돼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9장4절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내가 바로 세상의 빛이니라.’ 여러분, 우리의 남은 인생을 무얼 하며 살겠습니까? 여러분이 뭘 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가면 되요. 거기에 돈 버는 목적도 있고 공부하는 이유도 있고 여러분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기르고 사는 모든 의미가 있어요. 그 일을 위해서 오늘도 밥 먹는 거예요. 종의 자유를 누리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내 생명의 주인이시니 나는 이제 주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아요? 다 가르쳐주시지 않아요? 기도하면 어련히 알아서 다 응답해주시지 않아요? 세상에 이렇게 편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여러분의 소망으로 삼으세요.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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