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목사 설교집

110807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 롬 1:13~17)[페르소나] / 장영수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8. 15:57

110807 그리스도인의 자존심 ( 롬 1:13~17)

성경본문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의 기억력을 테스트해보겠습니다. 몇 년 전에 한 개그맨이 우리 교회에 들렸다가 한바탕 웃기고 간 이야기죠. 할머니 여고 동창생들이 모처럼 강남의 메리어트 호텔에 모여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든지, 왜 진작 이런 것을 하지 않았을까. 매달 한 번씩 모여서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메리어트 호텔이에요. 이름이 어렵잖아요. 이름을 기억하기가 어려워서 한 할머니가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러지 말고 메리야스하면 생각이 나겠지. 흩어졌습니다. 한 달이 지났어요. 한 할머니가 택시를 탔어요. 어디로 모실까요? 갑자기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한참 애를 쓰다가 난닝구 호텔로 갑시다. 했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기사가 메리어트 호텔로 갔다는 거죠. 더한 승객도 있었대요. 전설의 고향으로 갑시다. 했는데 기사가 알아듣고 예술의 전당으로 모셨다고 해요. 우리가 한바탕 웃었던 개그인데 얼마나 기억나세요?

 

중년이 되어서 갱년기를 겪으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기억력에 자존심을 걸면 안돼요. 그건 남자거나 여자거나 피장파장이에요. 특별히 남자분들의 갱년기는 배와 함께 시작된다고 합니다. 여성들같이 뚜렷하거나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기는 하지만 남성에게도 갱년기가 있죠. 따라서 삶에 우울증이 오죠. 그런데 자기가 그런 상황에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흔히 가면우울증이라고 말합니다. 우울증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거예요. 버럭 화를 낸다든지 술이나 도박에 빠진다든지 일중독에 빠진다든지 또 지나친 열정도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의 생활환경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직장인 거의 대부분이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자기개발을 하지 않으면 생존경쟁 속에 뒤쳐진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마치면 영어학원에 가서 공부해야 되고 MBA도 해야 되고 결국 강박증에 시달리는 거예요. 대인관계를 잘해야 된다. 맞는 말이지만 그것 때문에 시달린다면 문제죠. 또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야 된다. 승진해야 되고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되고 요즘엔 남자들도 잘 생겨야 된다. 얼마나 시달립니까. 서부활극의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니면 수퍼맨, 고상한 사람들은 넬슨 만델라가 같은 인물을 모델로 삼으려고 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윈스턴 처칠도 우울증에 시달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도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저는 얼마 전에 권투선수 최용수에 관한 다큐멘터리 기록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야말로 남성의 자존심에 대한 아주 안타까운 모델이 되어 버렸어요. 그는 WBA 수퍼페더급 챔피언이었어요. 8차 방어에 실패하면서 바로 은퇴해요. 권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가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뚝 떨어져서 돈도 제대로 벌지 못했거든요. 권투에서 은퇴하면서 새롭게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이종격투기에 진출했어요. 돈을 벌어 보려고. 3연속 승리를 거두죠. 그러다가 결정적인 1패를 당하면서 3년 만에 은퇴합니다. 아무리 봐도 내 길이 아니라는 거죠. 서른일곱에 모든 걸 다 내려놓자 갑자기 인생의 목표가 실종됐어요. 방황하기 시작했어요. 어디 가든지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가 없어요. 왕년의 챔피언이니까. 한국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몽골로 갔어요. 거기서 권투선수로서의 화려한 재기를 꿈꿉니다. 몽골 신인 선수하고 스파링을 하다가 졌어요.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도 내가 세계 챔피언이었는데 몽골의 이름도 없는 선수에게 패하다니. 그 수치심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훈련합니다. 코치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운동은 체력이 기본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체력이 없으면 소용없다. 자기 주먹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데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겠느냐. 결국 체력이죠. 몽골의 고지대에서 고된 훈련을 하며 탄탄한 체력을 키워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연속 승리를 거둡니다. 화려하게 재기했어요. 전문가가 말해요. 저 친구 대단하다. 한 라운드에 주먹이 50개 나가기가 어려운데 세어보니 100개가 나가고 있네. 넉넉하게 이겼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어요. 그의 마지막이 된 시합 마지막 라운드에서 한 방 맞았는데 그대로 쓰러졌어요. 의식을 잃었어요.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만 뇌사판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가족들이 그의 장기를 기증하고 그의 마지막을 보게 됐어요. 죽음이 가까웠던 그의 마지막 일기를 보면 나는 맞는 것이 두렵다. 서른여덟임에도 다부지게 훈련을 했습니다만 나이를 못 속이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암환자가 마지막으로 반짝하고 살아나는 것 같이 잠깐 눈을 뜨고 활기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챔피언이지만 맞는 게 두려웠던 거예요. 우리 사회가 챔피언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씌워가지고 그로 하여금 오도 가도 못하게 얽어매는 안타까운 모델이 되었어요. 비장미가 넘쳐흐르는 드라마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니요, 그야말로 인간 본연의 자유로운 모습이 송두리째 묶여버리고 날개가 꺾여버린 새 한 마리에 불과해요.

 

남자들이 이렇게 슈퍼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일, 지위, 명예, 권력의 뒤에 숨어 있어요. 이런 것을 모두 가면이라고 볼 수 있어요. 페르소나 그것과 나를 구분할 줄 몰라요. 물론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일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설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길러가야 되잖아요? 퇴직과 함께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는 인생이라면 뭔가 잘못 산거죠.

 

하나님이 그래서 아담을 찾아와서 물으셨어요. 무화과나무 아래 숨어있는 아담에게 물으셔요.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뿐만 아니라 아담의 후예인 모든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여러분의 일과 지위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여러분의 자존심으로 삼으려 하지 마세요. 그런 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물으실 때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나설 수 있는 자존심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나는 소중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간에 소중한 존재라는 것, 특별히 남자들은 자존심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아내가 남편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것, 이게 참 어려워요. 왜? 우리가 서로 벌거벗은 모습을 다 알고 서로의 허물을 아는데 이렇게 말한다는 건 어려운 거예요. 이건 오직 믿음으로 말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을 봤어요. 김우현 감독의 팔복 시리즈 가운데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를 한 이십 년에 걸쳐서 찍었어요. 정재환이라는 사람이 나와요. 지금은 아마 40대 후반쯤 됐을 거예요. 뇌성마비 장애인이에요. 손발이 자기 맘대로 돌지 않아요. 말이 잘 나오질 않아요. 그러니 그 사람이 이 거친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하겠어요? 배운 것도 없어요. 광화문에 종이박스 하나 펴놓고 그 자리에 앉아서 장갑 나부랑이를 팝니다. 그래서 30대에 그를 찍은 장면을 보면 담배 피는 모습이 나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요. 나는 담배나 피우다가 죽을란다.” 자기의 현실을 뼈아프게 얘기해요. 그 사람은 넓은 길로 다니지 않아요. 거의 사람들이 찾지 않는 뒷골목으로만 왔다 갔다 해요. 그게 자기의 모습이니까. 쓰레기통 옆에 피어있는 풀 포기 하나, 꽃 한 송이에 코를 갖다 대면서 냄새를 맡아요. 꼭 자기 모습 같아서. 그러다가 시를 쓰고 싶어서 벽에다가도 써보고 담배 종이나 나무판에다가도 쓰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시를 끄적거리고 뒤틀리는 손으로 쓰다보니 읽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날부터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들어보니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어요. ‘하나님이 나 같은 놈을 기뻐하실까?’ 나이 사십이 넘어서서는 소원이 생겼어요. 하나님, 많은 사람을 고치셨다고 들었는데 나도 좀 고쳐주십시오. 나도 좀 고쳐주셔서 다른 사람들같이 장가도 가고 애도 낳고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옆에서 돕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집회에 가요. 그곳에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옆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기쁨을 부어주시기 시작한 거예요. 육체를 고쳐주시지 않으시고 마음을 만져주셨어요. 얼굴에 웃음이 떠나가지 않아요.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만지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시(詩)가 달라졌어요.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로 하여금 춤추게 하신다. 더운 여름이건 추운 겨울이건 광화문 길바닥에 종이박스 하나 깔고 앉아서 물건을 팔 때 추워 덜덜 떨면서도 열심히 성경을 읽는 거예요. 시편 27편 1절에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마태복음 4장 4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그 말씀을 실제로 믿는 거예요.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요.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다. 하나님이 만드셨으니 걸작품이잖아요.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그 놀라운 고백을 해요. 자기가 깔고 앉은 자리가 글로리 존(Glory Zone), 영광의 땅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땅이라는 거예요. 그곳에서 뭘 하느냐?, 중보기도를 해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유대인들이 빨리 예수 믿고 돌아오기를 기도해요. 아니 네가 뭐라고 이런 데서 유대인을 위해서 기도하냐? “어서 유대인이 예수 믿고 돌아와야 세상의 모든 구원 계획이 완성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자기가 깔고 앉은 한 평의 땅, 그 위에서 온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생각이 열린 거예요. 전에는 그렇게 죽겠다고 노래하던 사람이 이젠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 하신 일을 나의 모든 삶과 노래로, 주께서 하신 일을 노래하리라. 참 감동적이었어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학생때 기차통학을 하면서 기차를 종종 놓친 적이 있어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기차를 놓쳤어요. 한 사람은 1초가 모자라서 놓쳤고 한 사람은 10분 늦게 오는 바람에 놓쳤어요. 그런데 1초 때문에 놓친 사람이 10분 늦게 온 사람보고 바보같이 그렇게 늦게 오니 기차를 놓치지.”말했어요. 그게 맞는 말이에요? 자기도 놓쳐 놓고.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서로 비교하면서, 너보다는 내가 낫다, 나는 큰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둘 다 기차를 놓쳤는데. 하나님의 뜻을 놓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놓치고 고민과 갈등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리석게도 손에 쥔 것만으로 서로를 비교해요. 아니요,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다 생명을 놓친 인생이에요.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고 말해요.

그러나 여기 더 놀라운 복음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구겨진 지폐와 같아요. 길을 가다 보니 100달러 짜리가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땅바닥에 떨어져서 누구 발엔가 밟혀서 구겨졌어요. 발자국이 선명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 같으면 얼른 집어가지겠어요. 아, 먼지야 털면 되죠. 여러분은 혹 자존심이 세서, 난 저런 지저분한 돈은 안 갖는다고, 그냥 지나가시겠어요? 아니죠. 지폐는 구겨지거나 빳빳하거나 가치는 똑같아요. 한 번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하나님이 값을 매길 때 그 값은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나는 부족하니까 나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무지요, 불신앙이에요. 우리는 구겨진 지폐들이에요. 가치는 영원불변한 거예요. 하나님은 한 번 정하신 값을 바꾸지 않으셔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시고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으셨어요. 믿음이란 다른 게 아니에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말해요.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무엇이 복음입니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사는 거예요. 우리의 능력이 어떠하든지 환경이 어떠하든지 처지가 어떠하든지,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오늘도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되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던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놓으시고 십자가의 놀라운 구원 사건을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셔서 우리 앞에 펼쳐 놓으셨어요. 이게 하나님의 의라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계획을 이루시고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나에게 구원이 되고 생명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하나님이 멋있게 하신 일이에요. 하나님이 잘 하신 일이에요. 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의는 뭐냐? 용서받은 죄인이에요. 구겨진 지폐이지만 그 가치는 불변하는 거예요. 우리는 또 넘어져요. 죽을 때까지 넘어지는 거예요. 그거 신경 쓰지 마세요. 태어난 대로 사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고치는 게 아니에요. 성령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내 안에 오셔서 나와 함께 사시는 거예요. 내가 불순종할 때 안타까워 하셔요. 내가 순종할 때 기뻐하셔요. 그러면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은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날마다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고 사는 거예요. 날마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로마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누구를 만나든지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겠노라. 왜? 이 복음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이게 사도 바울의 자존심입니다.

여러분의 자존심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어디에 인생의 기초를 두려고 합니까?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사랑을 오늘도 부어주신다. 오늘도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성령으로 이끌어 가신다. 오늘 내 일터와 가정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라 말씀하셨다. 이게 사명이에요.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예배하며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는 거예요. 이게 사명자에게 주신, 우리를 살리는 계명이에요.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