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09 이 비밀이 크도다 (엡 5:31~33)
성경본문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며칠 전에 ‘스티브 잡스’가 죽었습니다. 그는 전 세상에 IT혁명을 이룬 천재죠. ‘차가운 디지털에 따뜻한 감성을 입혔다.’ 아주 창의적인 천재입니다. 그는 재산도 8조나 남겼습니다. 그는 마지막에 철저하게 자기 가족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례식도 비공개로 치뤘습니다. 그런 엄청난 재산을 남기고 전세계가 인정하는 창의적인 천재로서 그는 죽으면서 자기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습니다. 먼저 가서 미안한 것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지 못했던 것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생각을 바꾸어 자서전을 쓰기로 했고 지난 2월부터 준비해서 곧 출간된다고 합니다. 자서전을 쓰는 이유는 자녀들에게 아빠가 함께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은 마음에서 자서전 쓰는 것을 동의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가정은 참 중요합니다. 사람의 나이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보고가 있습니다. 사람의 나이에 따라 행복지수가 다르다는 거예요. 대체로 U자형 곡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행복하고 행복지수는 점점 낮아지고 중년이 되면 가장 낮아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상승해서 노년이 되면 다시 높아진다고 합니다. 보통 남녀 평균 44세를 전후해서 가장 행복지수가 낮다고 합니다. 자기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좌절을 경험하는 것이죠. 반면에 노인들의 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주위에 있는 동년배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자기의 남은 시간에 대해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행복지수가 낮아지는 중년에게 가정생활은 많은 경우 위로가 되기 보다는 무거운 짐으로 지워져 있습니다.
중년들에게 가정이 짐이 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가정이 무엇인지를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여러분은 결혼하시기 전에 결혼 예비학교를 들어가서 나는 누구이며, 상대는 누구이며, 부부는 무엇이며, 가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대로 성경적으로 공부해본 적이 있습니까? 대학 가기 위해서는 유치부 때부터 공부 시키는 세상이지만 정작 결혼을 위해서 진지하게 공부하고 결혼한 사람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공부 못해보고 그냥 결혼했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여러분, 세 가지 불행이 있다고 합니다. 늙어서 돈 없는 것, 중년이 되어서 배우자를 잃는 것, 너무 젊어서 크게 성공하는 것, 너무 일찍 성공하면 내려올 일 밖에 없거든요. 중년이 되어서 배우자를 잃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불행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 버겁다고 느낀다면 가정이 무엇이고 부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죠.
또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홀로 살거나 불행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과 똑같은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려면 1년에 10만 달러 이상은 더 벌어야 된답니다. 남보다 1억 2천만 원은 더 벌어야 돈 번 재미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행복지수를 겨우 따라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 말을 뒤집으면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1년에 10만 불을 더 버는 거예요. 1억 2천만 원을 더 버는 것이란 말이죠. 그렇다면 행복한 가정에 투자해야 되는 거죠. 가정은 금광이니까요.
역설적으로 중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신앙이 신앙다워집니다. 흔히 목회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말이 있어요. 그래도 목사가 되려면 나이 40은 넘어서야 된다. 왜? 그래야 인생의 고난이 무엇이고 어려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고통을 모르고 고난을 모르고 순탄하게 가는 사람이 인생을 얘기한다는 게 뭔가 빗나간 것 아니겠습니까? 저 개인적으로도 제 인생 이날까지 가장 어려웠던 시간은 나이 사십 때였어요. 그 때 가장 큰 좌절을 맛봤어요. 저 자신도 제 가정도 제 건강도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뼈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생명의 복음이, 머리 가운데 머물러 있던 복음이 가슴으로 내려왔어요. 그때 복음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년을 겪으면서 삶의 좌절을 맛보고 고난을 맛보기에 이제는 겉치레가 아니라 진실한 고백으로 주님을 찾게 되고 주님의 응답을 맛보게 되는 것이죠. 이제 시작하면 돼요. 가정에 이런 놀라운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어요.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돈으로 환산했습니다마는 무엇보다 엄청난 하나님의 은총이 가정에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해 성경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첫째는, 사람이 부모를 떠나는 것이에요. 결혼하면서 물리적으로 공간을 떠나게 되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으로도 독립해야 되요.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리적으로도 독립해야 되요. 흔히 두 사람이 결혼할 때 그건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아니라 네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몸은 성숙했을지라도 우리 안에 심리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있어요. 우리가 제때에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어요. ‘어른 아이’라고 해요. 결국 네 사람이 결혼해요. 둘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는데 그 안에 미성숙하고 연약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내 속의 내가 있어요. 그래서 서로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제대로 사랑을 담아내지 못하고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요. 갈등하는 것이죠.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과 응원과 지원을 통해서 성장하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이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러나 사랑만 받는 게 아니라 연약한 부모를 통해서 상처도 받는 거예요. 겉모습만 닮은 게 아니라 못된 기질도 닮았어요. 까다로운 성격도 닮았어요.
한 10년 전 아파트에 살 때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무심코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혼자 들어갔는데 고개를 드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거울로 둘러싸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 앞에 제 아버님이 서 계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기억하던 아버님의 모습을 제 모습 속에서 그대로 발견했어요. 외모가 똑같았어요. ‘야, 이렇게 닮는구나.’ 닮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이 내 모습이에요. 그의 모든 것이 그대로 내 안에 들어가 있는 거죠.
우리가 살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만 동시에 부모도 연약했기에 그로 인하여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가 내 안에 들어와 있어요. 어떤 사람은 그게 인생의 굴레가 되어 울부짖고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고 세상을 향하여 마음 문을 닫아 걸죠. 너 때문이라고 원망하죠. 그러나 아니요, 거기까지만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에요. 분명 일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그러나 그러한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셔요.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이 있어요. 그러므로 내가 상처받았다고 마음을 닫아거는 순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복을 차단하게 돼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거부하게 되는 거예요. 부모를 용서해야 되는 거예요. 비록 그 부모님이 돌아가셨을지라도 용서해야 되는 거예요. 부모님도 모르고 그렇게 한 거예요. 부모님도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 고통 가운데 사신 거예요.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면 상처와 모든 관계를 복음 안에서 과감하게 정리해야 되는 거예요. 부모님이 편안히 떠나시게 해드려야 되는 거예요. 나의 행복을 위해서 부모를 용서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부으실 새로운 은혜를 받기 위해서 마음을 활짝 열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사람이 부모를 떠난다’는 말의 실상이에요.
두 번째는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된다고 했어요. 물론 이건 몸의 결합을 말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는 심리적인 결합이죠. 여러분, 결혼한 지 10년, 20년 되신 분들 계시죠. 그렇다면 이제 겪어봤으니 알잖아요. 상대방을 절대로 고치려 하지 마세요. 그거 못 고치는 거예요. 내버려 두세요.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되요. 아직도 그걸 모른다면 자기 발등을 찍는 거예요. 있는 그래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에요. 절대로 상대방을 고치려 하지 마세요. 잔소리도 하지 마세요. 그거 입만 아픈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냐? 있는 그래도 다 받아들여요. 여러분이 연애할 때는 다 가능했어요. 연애할 때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어요. 다 괜찮다고 했어요. 그러니 우리가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내가 그런 마음으로 회복되면 오케이에요. 그게 바로 신앙의 모습이에요. 상대를 고치려 하지 마세요. 어리석어요.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며 대화를 나누어야 되는 거죠. 러닝머신에서 20분간 땀 흘리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이 훨씬 사람을 건강하게 한대요. 면역세포를 더 생성시키고 더 튼튼하게 한대요.
남자는 하루에 일만 마디의 단어를 말하고 여자는 이만오천 마디의 단어를 말해야 속이 편안하대요. ‘남자여, 수다를 떨어라.’ 같이 얘기해야 되요. 들어야 되요. 여러분, 제일 어려운 게 뭡니까? 부부간의 대화가 제일 어려워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 부부간의 대화에요. 불쑥 물어대잖아요. 특별히 남자들은 상황파악이 안 되잖아요. 이게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요. 여자분들에게 부탁드려요. 조금 뜸을 들이면서 이게 무슨 말이라는 것을 얘기해주세요. 남자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뭘 들으면 “알았어. 그래서?”라고 묻잖아요. 그게 아니죠. 여자분들은 답을 기대하는 게 아니고 그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래서?”라고 묻는 것은 틀린 물음이에요. 그냥 들어야 되요. 그러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훈련, 이게 가장 어려워요. 아내와 남편의 대화를 끝까지 듣는 사람이 성인(聖人)이에요. 무지개는 너무나 아름답잖아요. 그런데 무지개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아요. 함께 있으므로 조화를 이루어요. 그리고 아름다워요. 무지개와 같아야 되요. 또 하나 있어요. 부부간에 얘기하면 벌써 판단이 서잖아요. “그건 틀렸어.” 아니요,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틀린 거예요.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시비를 가리면 안돼요. 맞았네, 틀렸네 그게 본질이 아니에요. 그냥 그 마음을 안는 게 대화의 본질이에요. 그러므로 남자분들은 아내가 뭐라고 말하든지 내 이성은 틀렸다고 말할지라도 이성을 억누르고 무조건 아내를 지지하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그냥 편을 드세요. “그래, 당신이 맞아.” 누구를 욕하면 “왜 그렇게 욕을 하는 거야?” 하지 말고 일단 같이 욕을 해대세요. 일단은 지지해줘야 돼요.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그런데 말야”하고 살짝 시작하세요. 일단은 지지해야 돼요. 그래서 저는 대화할 때만큼은 예수님 말씀을 듣기 보다는 아내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성경말씀을 얘기하기로 했어요. 사실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깨달았어요. 그게 아니다. 무조건 지지하고 그를 끌어안고 다음에 하나님은 또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을 함께 조용히 나누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죠.
오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관계와 똑같다는 거예요. 신앙의 원리와 똑같다는 거예요.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우리가 주님으로 부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똑같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잘 하는 사람은 누구냐?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믿음 안에서 잘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에요. 가정은 교회보다 먼저 시작된 하나님의 기관이고 교회는 가정들이 연합한 거잖아요. 우리 가정이 모여있는 게 교회잖아요. 가정이 무너진다면 무너진 가정 위에 교회를 세울 순 없어요. 교회의 여러 가지 행사도 다 필요하고 중요합니다마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또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의 가정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두 기둥인 남편과 아내 각 사람은 소중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와 같다. 이 비밀이 크도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이게 인간의 가치에요. 남편을 존경해야 할 이유는 남편이 똑똑해서, 돈이 많아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존경하는 거예요. 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 가운데 고통 당하던 인생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오늘 이 시간까지 지속되고 있어요. 그런 사랑을 받은 존재이기에 아내를 사랑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십자가 사랑을 받은 존재이기에 또 그 사랑으로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죠.
오늘 말씀에 남편을 존경하고 아내를 사랑하라. 이게 바로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내용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의 가정들은 다 나름대로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마치 병원에 들어 온 환자들과 같아요. 병원에 같이 입원한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든 배가 아프든 팔다리가 부러졌든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지 않아요. 서로 빨리 낫기를 바라고 소망하고 서로 어려움을 나누어요. 교회는 병원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든 가정을 시간을 두고 고쳐가시는 거예요. 이것은 하루 아침에 반창고 하나 붙여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부모가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그 부모의 영향 속에 살아왔기에 우리는 그것을 오늘도 하나하나 주님께 내어놓고 고쳐가는 거예요. 의사이신 우리 주님께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치질 수술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한다는 병원에 등록을 했어요. 갔는데 저를 담당한 의사는 젊은 여자분이더라고요. 참 난감했어요. 그러나 그건 잠깐이에요. 지금 엉덩이 보이는 걸 부끄러워 하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몇 십 년을 고생했는데. 여러분,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으세요.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덮으시는 주님 앞에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거예요. 괴테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세상에서 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나다.’ 그러나 이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려요. 주님만이 나와 너를 고치실 수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일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거죠.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뭐냐. 내 삶의 주도권을 완전한 지혜와 능력과 사랑으로 이끌어 가시는 주님께 일마다 때마다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 그게 영적인 결합이죠.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은 육체적 결합만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심리적 결합만이 아니라 주님을 인정하고 바라보며 나아가는 영적 결합과 우리 가정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서 발견하고 함께 마음을 모아가며 살아가는 것, 그게 그리스도인의 삶이에요. 이 비밀이 큰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려고 결단하고 걸음을 뗄 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내 마음을 주장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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